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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美)에 쇠고기 약속해주고 그냥 나간 노무현 정권

서석천 2008. 7. 24. 13:48
[사설] 미(美)에 쇠고기 약속해주고 그냥 나간 노무현 정권
노무현 정부가 작년 11월17일 관계장관회의에서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 권고를 시행하면 미국산 쇠고기를 나이 제한 없이 수입하기로 결론을 냈다는 당시 국무총리실 보고서가 공개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관련 관계부처 장관회의 결과'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1단계로 30개월 연령 제한을 유지하되, 앞으로 미 측이 'OIE 권고'를 시행할 경우 우리는 'OIE 기준'을 완전 준수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OIE 권고'란 소만이 아니라 돼지나 닭 등에도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라는 것이고, 'OIE 기준'이란 광우병 위험 통제국은 특정위험물질만 제거하면 나이 제한 없이 쇠고기 교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보고서 내용은 앞으로 미국이 돼지나 닭 등에도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면 우리도 미국 쇠고기를 나이 제한 없이 수입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그 후 동물성 사료 금지 확대를 천명했다. 결국 노무현 정권 아래서 미국 쇠고기를 나이 제한 없이 수입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민주당 측은 "노 대통령이 거부해서 보고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던 작년 3월29일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OIE 권고에 따라 쇠고기 수입 재개 절차를 밟아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 FTA가 타결된 4월3일 대국민 담화에서도 부시 대통령과 전화를 통해 'OIE 기준'을 존중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고, 그 절차를 합리적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했다고 재차 공개했다.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 'OIE 기준'에 따라 멀지 않은 기간 안에 미국 쇠고기를 수입개방 하겠다고 두 번이나 공개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주한 미대사관이 쇠고기 사태 이후 거듭 "한국의 현 정부가 미국과 타결 지은 쇠고기 협정은 전(前) 정부가 미국에 약속한 것과 같은 내용"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미국에 약속은 다 해주고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미국 쇠고기 개방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 부담을 다음 정부에 통째로 떠넘겼다. 대선 참패 후의 국정 태업(怠業)인지 곧 이어진 총선을 의식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한 일을 후임 대통령이 바꾸지 못하도록 전국에 대못을 박겠다고 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자신이 시작하고 타결 지은 한미 FTA에는 대못이 아니라 작은 못 하나 박지 않고 사실상 방치했다. 미국에 나이 제한 없는 쇠고기 개방을 약속해 주고도 그냥 대통령직을 떠나버렸고 당시의 집권당인 민주당은 촛불시위 내내 시위대의 꽁무니를 줄줄 따라다녔다.

조선일보 사설

입력 : 2008-07-23, 00:41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