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핵'안보"

[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서석천 2025. 5. 7. 05:33

영국 전쟁부 장관 존 프로퓨모의 섹스 스캔들 
 
 
1961년 여름 해럴드 맥밀런이 이끄는 영국 보수당 정부는 타블로이드 선정주의와 냉전 음모가 결합된 섹스 스캔들에 휩싸여 큰 난관에 봉착했다. ‘프로퓨모 사건(Profumo Affair)’이라고 불리는 당시 전쟁부 장관과 젊은 모델과의 성추문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에 따른 파장은 계속되었고 1963년 당사자가 전쟁부 장관직과 하원의원직을 사임하고 1964년 총선에서 여당인 보수당이 야당인 노동당에 참패를 당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의 당사자인 존 프로퓨모(John Dennis Profumo) 1915년 앨버트 프로퓨모 남작의 장남으로 런던 켄싱턴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의 해로우 스쿨과 브레이세노스 칼리지를 다녔다. 그는 1939년 소위로 임관하여 왕립기갑군단에서 복무했다. 대위 때는 북아프리카 노샘프턴셔 기병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1940년 현역 신분으로 노샘프턴셔 케이터링의 보궐선거에 보수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25세의 최연소 하원의원이 되었다. 1944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하여 칸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다. 그는 군사 공로로 1944 12월 대영제국 훈장(OBE)을 받았다.
 
그러나 1945년 선거에서 노동당 후보에 패배했다. 1945년 후반에 준장으로 진급하여 일본 소재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부에 영국 연락단의 참모장으로 복무했다. 1950년 군에서 전역했고 1950 2월 총선에서 워릭셔 스트랫퍼드 폰 에이번 지역구의 하원의원으로 복귀했다.
 
프로퓨모는 1952 11월 교통항공부 정무차관, 1957 1월 식민지부 정무차관, 1958 11월 외무부 정무차관, 1959 1월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60 7월에는 전쟁부 장관(현 국방부 장관)에 취임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당시 보수당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1954년 유명 여배우 발레리 홉슨과 결혼했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섹스 스캔들에 휘말려 1963 65일 전쟁부 장관직을 사임하고 정치 생명을 마감했다.
 
▲ 영국 전쟁부 장관이었던 존 프로퓨머. 필자 제공
그의 인생 전환점은 1961 78일 시골 영지인 클라이브든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19세의 모델 크리스틴 킬러(Christine Keeler)를 만난 것이었다. 이후 그는 그녀와 성관계를 갖고 불륜 관계에 빠졌다
 
이 사실을 포착한 영국의 정보기관 MI6(비밀정보부)는 프로퓨모에게 크리스틴과의 교류에 대해 경고했다. 그녀가 소련 대사관의 해군 무관인 이바노프와도 성관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바노프는 스캔들이 공개되기 직전에 소련으로 복귀했다.
 
1962 12월 런던에서 킬러와 관계된 다른 두 남자가 연루된 총격 사건이 발생하면서 언론들은 그녀를 추적했고 그 과정에서 그녀와 프로퓨모·이바노프의 불륜 관계가 드러났다. 결국 이 사건은 현직 전쟁부 장관이 여자 모델과 성관계를 나누며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국가안보 문제로 확대되었다. 당시 그는 1963 3월 의회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당국 조사 시 그녀는 소련 무관 이바노프가 핵폭탄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고 자백했고 프로퓨모로부터 들은 정보를 애인이었던 이바노프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관련 증거들이 속속 공개되었다. 결국 프로퓨모는 그해 65일 전쟁부 장관, 하원의원 등 모든 공직에서 사임했다
 
궁지에 몰린 영국 정부는 고위 판사인 데닝 경을 임명하여 이 사건에 대한 사법 조사를 진행해 1963 1014일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직접적인 안보상의 위험은 없었다고 결론지었으나 여론은 이를 외면했다. 그 여파로 총선에서 여당인 보수당은 야당인 노동당에 참패를 당하는 등 보수당 정부의 몰락에 일조했다.
 
▲ 프로퓨머 영국 전쟁부 장관의 연인 크리스틴 킬러. 필자 제공
 
 
2017년 기밀이 해제된 영국 국내 정보기관인 MI5(보안부)와 미국 비밀경호부(대통령 경호실)의 문서를 보면 프로퓨모가 킬러 외에 1930년대 독일 모델 기젤라 와인가드(Gisela Winegard)와도 성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독일 정보부 소속의 스파이였다. 그녀는 파리에서 상업 정보국으로 가장해 독일 정보부를 위한 비밀 정보기관을 운영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녀는 미국 비밀경호국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프랑스 남부에 살면서 독일 스파이 조직의 수장을 숨겨 준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사임 직후 프로퓨모는 런던 동쪽 끝에 위치한 자선 단체인 토인비 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부엌 설거지·청소 등을 가리지 않고 봉사하며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인맥을 활용해 토인비 홀의 거액 자선기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그의 아내인 발레리 홉슨 역시 남편과 함께 1998년 사망할 때까지 자선 활동에 헌신했다
 
그는 토인비 홀에서 무려 40년간 봉사 활동을 했다. 이러한 헌신으로 대영제국 훈장 2(CBE·민간 부문)을 받아 섹스 스캔들로 얼룩진 명예를 일부나마 되찾았다. 2006 37일 프로퓨모는 뇌졸중을 일으켜 병원에서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86년 크리스틴 킬러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그저 한때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19살 어린 여자애였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더라면 당장 그만두고 엄마에게 달려갔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회고록에서는 내 인생은 섹스 때문에 저주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로퓨모 사건을 소재로 1989년 영화 ‘Scandal’, 2017년 넷플릭스 시리즈 ‘The Crown 시즌 2’, 2019 BBC 드라마 6부작 크리스틴 킬러의 재판 등이 방영되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프로퓨모가 전쟁부 장관을 사임한 다음 날인 1963 66일 자 신문에 사생활과 공적 생활이란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는데 그 일부를 발췌해 여기 옮긴다
 
프로퓨모의 몰락은 개인적, 정치적, 그리고 도덕적 비극이다. 개인적 비극인 이유는 그가 킬러 양과의 관계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부인하면서 아내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그랬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비극인 이유는 이 사건으로 왕실의 핵심 장관의 명예가 실추되고 그의 내각이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도덕적 비극인 이유는 대중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평범한 인간의 약점을 용납하는 것보다 더 엄격한 행동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사회의 문화가 고위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거짓말을 용서할 수 없는 범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가?라고 자문해 본다.
 
유동열 2025-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