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경재

金日成의 거짓말 "우리는 핵(核)무장할 생각이 없다"

서석천 2013. 2. 15. 15:56

 

金日成의 거짓말 "우리는 핵(核)무장할 생각이 없다"
김일성-김대중과 막역했던 日잡지 '世界'(일본명: 세카이)의 정체

야스에 료스케(사진 좌측 인물) 이와나미 서점 前 편집장은 김일성과 두 번 인터뷰 했던 인물이다/사진출처: 일본 야후
  

김일성은 1977년 일본의 대표적 左翼 언론 世界(세카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핵무장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핵병기를 생산할 자금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험할 장소도 없다. 조선반도에서 핵을 사용하면 모두가 멸망해버리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원문:「われわれには、核武装をしようという考えはありません。われわれには、核兵器を生産する資金だけでなく、それを実'443するのに適当な場所もありません。…韓半島(朝鮮半島)では、核を使った場合、全てがもろともに滅亡してしまうので、使用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1977年4月に日本の月刊誌『世界』>)

日잡지 '세카이'(世界)의 정체

세카이(世界)는 이와나미(岩波)문고가 발행하는 논단지로 1945년 12월에 창간됐다.

초대편집장은 ‘여러분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의 저자(著者)인 요시노 겐자부로(吉野源三郎)이며, 최고 책임자는 이와나미 문고의 창업자인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의 친구였던 아베 요시시게(安倍能成)였다.
 
훗날 이와나미 문고의 사장으로 일본 좌파인사 미노베 료키치(美濃部亮吉, 前동경도지사, 親北성향 사회주의자)의 문하에서 도지사 특별 비서를 지낸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도 오랜 동안 세카이의 편집장을 맡았다. 현 편집장은 오카모토 아츠시(岡本厚)이다.
 
북한-중국 등 공산진영에 우호적 논조 
 
세카이는 스스로 학술성과 정확성을 중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면면히 살펴보면 소위 평화문제를 중심으로 동서냉전 문제와 관련, 공산진영보다 자유진영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취해왔다.
 
현재도 한국, 미국, 일본 등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북한과 중국 등 공산진영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논조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 좌파 전성기에는 일본 좌파 진영 핵심 월간지로 그 권위(?)를 자랑하며, 좌파 논단의 중심적 위치를 점유했었다. 1980년대 들어 일본 내 좌파 논단의 쇠퇴로 세카이는 수많은 월간 논단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사양길로 접어드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아사히(朝日)신문사가 발행하는 ‘논좌’(論座)가 폐간된 후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유일한 좌파 논단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발행부수는 1950~1960년대에는 20만부 정도였고, 1990년대 이후에는 7만부로 줄어들어 현재는 1만부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일본의 마이니치(毎日)신문사가 실시한 ‘전국독서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카이는 중앙공론(中央公論)보다 독자수가 훨씬 적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잡지 발행 초창기부터 다른 종합지-논단지에 비해 ‘특정이념’을 공유하는 정기구독자가 많았고, 이른바 학술전문잡지라는 타이틀을 붙인 탓에 현재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전(前)편집장 야스에 료스케, DJ와 막역한 관계
 
역사교과서문제, 오키나와 전쟁 등 특정 주제를 다루는 ‘세계임시증간호’(世界臨時増刊号)나 ‘별책세계’(別冊世界)등이 비정기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2005년 다뤄진 특집 기사를 보면, ‘동아시아 공동체-미래에 대한 구상’(1월호), ‘현대 일본의 기분-어디로 향할까?’(2월호), ‘경기(景氣) 상승을 어떻게 볼 것인가?-양극화 확대 속에서’(3월호), ‘오키나와-미군 재편 '미일합의'는 깨지다!’(4월호) 등 이다. 
 
전(前) 편집장인 야스에 료스케의 경우 김대중과는 매우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1998년 10월9일 김대중은 일본을 방문해 같은 해 1월 사망한 야스에 료스케 전 세카이 편집장의 부인을 만났다.
 
김대중은 당시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에 야스에의 부인이 초청 대상에서 빠진 것을 발견하고, 명단에 추가할 것을 특별히 지시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스에 료스케와 김대중의 관계는 1971년 처음 시작됐다.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국내잡지에 소위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 평화공존 등에 대해 기고를 했는데, 글의 내용에 감탄(?)한 야스에가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세카이에 이를 전재했다.
 
김일성과 10여 차례 걸쳐 인터뷰
박정희 ‘새마을 운동’ 비하에 열중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된 후 김대중은 망명을 결심하고 야스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야스에의 도움으로 그는 많은 일본 정치인들에게 유신의 부당성을 알렸고, 이 과정에서 세카이의 지면을 적극 활용했다.
 
1982년 말 김대중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야스에는 미국으로 달려와 인터뷰를 했으며, 무려 30쪽짜리 특집기사를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은 1985년 귀국길에 일본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이때도 야스에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가 편집장으로 있던 시기 세카이는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이 민중을 탄압 하고 있다'면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를 게재, 국내 유언비어의 원산지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북한에 대해서는 호의적 논조로 일관했다.
 
특히 서방언론과 일체 접촉을 피했던 김일성과의 인터뷰를 10여 차례에 걸쳐 게재하면서 확인도 되지 않은 북한의 발전상(?)을 보도했다. 북한의 천리마운동은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한 운동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체제를 연장하기 위한 대중동원 수단으로 비하했다. 
 
'KAL기 폭파사건 조작설' 등 유언비어 퍼트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조작설, 1987년 대통령 선거 컴퓨터 조작설 등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도 세카이가 퍼트렸다. 그리고 문제의 기사들이 한국으로 역수입되어 남한 주사파들의 ‘무기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영어에는 까막눈인 국내 386주사파들 중에 일본어 독해에는 유독 도사가 된 인물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일본 좌파와 세카이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세카이에 문제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쓴 인물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세카이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

그는 바로 현재 한림대 석좌교수인 지명관(池明觀, 1942년 평북 정주출신)이다. 'TK생' 이란 가명으로 세카이에 글을 게재했던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사 작성 당시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정연주를 KBS사장으로 앉혔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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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전 북한의 새빨간 거짓말

한반도 비핵화? 3차 핵실험이 현실,

 21년전 한반도를 비핵화하자는 데 북한이 동의한다. 핵전쟁 위험을 제거해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하고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화 환경을 조성하자는 데 생각을 같이했고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19922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공동위 구성·운영 합의서가 교환함으로써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비핵화공동선언의 주요내용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配備사용의 금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핵재처리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 금지,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에 대한 상호 사찰, 공동선언 발효 후 1개월 이내에 남북핵통제공동위의 구성 등이다.

 

결과적으로 비핵화 공동선언은 모조리 깨어졌다. 모두 북한의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얘기다. 21년간 핵실험을 반복해 온 북한은 제3차 핵실험까지 완료했다. 결국 한반도에 극한의 위기상황을 몰고 왔고, 이제 핵실험의 결과물로서 핵무기를 만들어 낸다면 남한을 압박하고 협박하는 건 시간문제다.

 

비핵화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북한이 이미 인지하고 우리와 합의했음에도 핵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자명하지 않은가.

 

한반도의 평화를 원치 않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절대 한반도 평화가 아니다. 핵무기를 통한 적화통일, 더 나아가 세계를 상대로 싸워 한반도를 화약고로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당시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발효된 것이 또 있다. 북한이 회담 내용을 잘 지켜주기만 했다면 지금쯤 한반도가 서로 협력해 통일을 이미 달성했거나, 최소한 발전적인 파트너로 거듭났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당시 남북이 합의한 내용을 살펴보자.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해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어떤가. 취지만 봐도 정말 마음에 든다. 하지만 지금 지켜지고 있는 합의 내용은 전혀 없다.

 

당시 합의 내용 중에는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해 지나친 간섭 없이 상대에 비방을 하지 말자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동안 북한이 우리측의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간섭 및 선동을 해 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번 대선 때도 가관이지 않았는가.

 

또 다른 합의 내용은 테러, 포섭, 납치, 살상을 비롯한 직간접 폭력, 비폭력 수단에 의한 모든 형태의 파괴 및 전복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연평도 포격 사태는 군부대가 아닌 민간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폭격한 직접적 폭력이었다.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도 합의 사항에 있다. 천안함 폭침사태를 떠올려 보자. 그들의 어뢰 공격은 사실상 우리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것과 같았다.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은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했다.

 

우리는 북한에 더 이상 현혹돼선 안 된다. 그들이 취했던 모든 기만적 선택과 판단을 떠올려 보자. 그 많은 잘못된 결단에 대해 조금의 사과도 없지 않은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거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사과를 받았는가. 아니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이와 중에도 추가 핵실험과 추가 미사일 실험을 예고하고 있지 않은가. 국제사회로부터 눈과 귀를 닫은 채 핵무기 개발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북한에게 햇볕정책을 펼치자고 말하는 세력이 있다. 그만하자. 이제 현실을 직시하라.

 

그들과의 모든 약속은 깨졌다. 북한은 우리와의 상생은 안중에도 없다. 국제사회를 모두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핵실험을 하고 있다. 사실상 전면적으로 대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과 다름 아니다.

 

우리만 아직 착각에 빠져 낙관적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보지 말자. 북한이 먼저 자신의 모든 잘못을 인정, 사과한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선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어떤 협상과 지원도 절대 안 된다.

 

우리의 모든 온정주의가 자유통일을 더 멀게 만들고, 김씨 3대 세습을 더 공고하게 만들어 줘 결국 북한 주민 전체의 고통을 더 길고 오래 가게 만들 뿐이었단 걸 기억하자.

 

김정은은 선대의 유훈에 따라 막가파식 독재를 하기로 맘 먹었다. 우리의 모든 개혁 개방 기대는 접어 버리자. 오히려 더 독하고 세상모르고 날뛰고 있는 게 김정은이다.

 

그들이 엿바꿔 먹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그런 것에 기대를 했던 우리 스스로를 탓하자. 이제 더 이상 북한의 어떤 달콤한 말에도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이 원하는 게 최소한 평화는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