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5공드라마의 역사 왜곡 중에서 국민이 관용할 수 없는 부분이 마치 1980년5월 17일 김대중 연행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주관한 것처럼 방영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실 김대중 연행은 보안사와는 관계없는 치안본부 소관이었으며, 김대중 연행 사유는 김대중이 "민족회복국민회의" 명의로 만일 최규하 대통령이 5월 20일까지 하야하지 않으면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을 책임지지 못하겠다고, (즉 강제로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겠다고) 최후 통첩을 공언하였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바로 이것이 5월 19일 광주 시민군 무장이 시작된 다음날인 5월 20일 신현확 총리 내각이 총사퇴하였던 배경이기도 하였다.
이 사실은 5월 16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5월 22로 예정되어 있던 김대중의 내란(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를 전국대학교총학생회장단연석회의)라는 명의로 준비하던 학생들 중 일부가 그 사실을 그 날 경찰에 알려줌으로 분명하게 재확인되었다. 그래서 최규하 대통령 정부는 김대중의 요구대로 정부를 해산할 것인지 아니면 헌정을 수호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했으며, 그것이 5.17비상국무회의와 김대중 연행의 배경이었다.
그런데, 김대중이 연행되자마자 김대중의 최측근이었던 윤상원이란 인물이 김대중은 전두환이 연행하였다는 픽션 소설을 퍼뜨렸으며, 김대중은 내란 준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김대중 가문 가신이었던 이기동씨는 김대중이 5월 22일로 예정된 내란과 더불어 집권하기 위해 예비내각 명단까지 짜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윤상원 평전"의 저자 박노해 시인의 증언에 따르면 무기 탈취 등 광주사태는 전남대에서 주동하엿던 것이 아니라 "민족회복국민회의"라는 재야단체 관계자들이 주동하였던바, 그 의장이 김대중이었고, 전남지부 실무자가 바로 광주사태 주동자 윤상원이었다.
그리고, 김대중이 의장으로 있었던 "민족회복국민회의"에서 선거를 거치지 않고 쿠데타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위한 김대중 내란 음모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 광주 시민군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시민군이 5월 19일부터 무장함에 따라 정부는 무기 반납을 한주간 호소해 왔으며, 5월 25일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직접 광주에 방문하여 정부의 선처 방침을 전하고 무기 반납을 호소하였다.
최규하 대통령의 대광주시민군 호소문이 낭독되자마자 김대중 최측 윤상원의 항쟁지도부는 정부에 요구하는 7개항의 '80만 광주시민의 결의'를 채택하여 광주 시내 곳곳에 벽보를 부착하고 투사회보라는 유인물을 광주시민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그 요지는 무기반납 조건으로 최규하 대통령 정부가 물러나고, 정권을 항쟁지도부측 인사들에게 넘기라는 것이었으니, 이는 김대중의 "민족회복국민회의" 요구사항과 일관된 것이었다.
아래는 전남대 5.18연구소 사이트에 있는 광주 시민군 증언록[광주민중항쟁일지 제 3 절 항쟁지도부의 탄생과 활동] 발췌문이다.
1)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과도정부에 있다. 과도정부는 모든 피해를 보상하고 즉각 물러나라.
2) 무력탄압만 계속하는 명분없는 계엄령은 즉각 해제하라.
3) 민족의 이름으로 울부짖는다. 살인마 XXX는 공개 처단하라.
4) 구속중인 민주인사를 즉각 석방하고, 민주인사들로 구국 과도정부를 수립하라.
이렇듯, 광주사태 주동자 윤상원이 김대중의 "민족회복국민회의" 전남지부 총책이었으며, 5월 9일부터 이미 예비군 무기 탈취조를 조직하고 있었으며, 예비내각 명단까지 확보하여 "민족회복국민회의" 핵심 인사들이 공유하고 있었으며, 윤상원 명의로 발행된 투사회보에서 최규하 대통령 정부 퇴진을 요구하였다는 사실이 김대중 내란 음모의 실체를 명확하게 증언한다. 즉, 시민군 증언록 사이트가 바로 김대중 내란 음모의 증거물이다.
글/역사학도-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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