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방

한동훈이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

서석천 2025. 7. 8. 05:17
 

우파의 이념은 역사적 경험의 성찰에서 출발한다

국민의힘이 당면한 정치 일정 가운데 첫 번째 고비가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이다. 이 전당대회에서 선임된 지도부는 내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지휘할 사령탑 역할을 하게 된다. 공천을 둘러싸고 당내 정치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선거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리더십에 적지않은 손상을 입을 위험도 있다. 이번 전당대회 승리가 자칫하면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다툴 잠재 후보군으로는 김문수 전 대선 후보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나경원 의원 외에 초선 김재섭 의원이 거론된다. 이 가운데 안철수 의원은 혁신위원장으로 지명되면서 “코마 상태에 빠진 당의 종기를 적출하기 위해 메스를 들겠다”며 “대선 백서 작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후보군 가운데 출마 여부를 놓고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은 아무래도 한동훈 전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동훈의 행보는 당의 정체성과 미래 진로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변수가 된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엉거주춤한 모양새인 국민의힘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리할 수 있는 모멘텀이 한동훈의 전당대회 출마와 그 결과라고 봐야 한다. 나는 한동훈 등 탄핵 찬성파들을 남김없이 국민의힘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실제로는 한동훈 일파가 자기 발로 당에서 나갈 일도, 국민의힘이 탄핵 찬성파를 정리해낼 힘과 의지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전당대회가 당의 방향성을 정립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왜 한동훈 등 탄핵 찬성파를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근원적인 지점에서 성찰하는 내용이다.

‘좌파는 세계관이 있지만 우파는 그런 세계관이 없다.’ 이런 얘기를 하면 ‘우파도 분명한 세계관이 있다’고 반발하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우파도 세계관이 있다. 다만 내가 말하는 것은 도식화된 세계관 즉 체계화하고 시각화해서 정치철학의 대량 전파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서의 세계관이다. 이런 무기가 좌파에게는 있고 우파에게는 없다는 의미이다. 이건 세계관의 합리성이나 현실 정합성과 무관하다. 철저하게 정치투쟁의 무기로서의 유효성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좌파는 이 세계의 하부구조 즉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상부구조인 정치 사회 문화 등이 변화한다고 믿는다. 혁명이란 이런 하부구조의 변화가 상부구조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사건이며 혁명가들은 그런 변화를 구체화하기 위해 목적의식적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그리고 레닌의 조직론에 근거를 둔 이런 세계관은 지금도 좌파 신념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 좌파들의 분파는 다양하고 스스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부정하는 경우도 많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들의 세계관은 이 세계를 구조적으로 해석하고 설계주의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아류이자 파생물로서 관념론적인 접근 방식이다.

우파에게는 이런 체계적인 세계관이 없다. 우파의 세계관은 합리주의에 근거해 경험주의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우파의 정치철학은 좌파의 이념 공세에 맞서 방어적인 스탠스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파들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관인 반공(反共)이 자체적인 가치 체계가 아닌, 좌파의 그것에 반대한다는 의미인 것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난다. 자유도 우파의 핵심 가치이지만 자유는 아마 인간이 만든 개념 가운데 가장 피부에 닿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우파의 세계관은 대규모 전파가 어렵다. 개별적인 경험을 통해서 공유되기 때문이다. 경험은 설계가 아니라 축적이다. 세계에서 그나마 우파 정치가 굳건하게 자리잡은 나라들은 공동체 내부에 거대한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가 축적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암묵지는 개인의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체화되어 있지만 언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을 의미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 무역과 상거래 전통이 강한 나라들이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런 암묵지가 무척 빈약한 나라이다. 전통 사회에서 축적된 암묵지는 거의 실종됐고, 근대화 이후 새로 축적한 지적 자산은 암묵지가 아닌 형식지(explicit knowledge) 위주이다. 그래서 얄팍하고 가벼우며 숙성의 향기가 없다. 좌우파를 막론하고 싸구려 선전 공세나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는 배경이다.

이렇게 빈약한 암묵지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방법은 없다. 그나마 가능한 방법이 토론을 적극 조직화하는 것이다. 토론은 문서상의 형식성에 얽매이지 않고 광범위한 소재와 논리가 동원되기 때문에 암묵지를 축적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은 토론의 전통도 부족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민들 사이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던 서양과는 지적 바탕이 다르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 중심으로 치열한 논쟁이 이루어졌지만 실증적인 논리와 근거를 둔 다툼이 아니었고 그 승부는 논리 외적인 트집잡기에 의해 갈라졌다. 그나마 그 논쟁은 소수 사대부의 전유물이었고 평범한 백성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한국의 풍토에서 토론은 멱살 잡기나 감정 대립으로 치닫기 일쑤이다.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토론을 조직할 수 있는 3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즉 △정치적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들끼리의 토론일 것 △실제적인 관심사를 둘러싼 토론일 것 △상당한 조직적 규율이 작동할 것 등이다. 이런 3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토론이 바로 정당의 공천을 둘러싼 당원들의 토론이다. 즉 공직선거의 후보로 누구를 공천하느냐의 문제를 두고 당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투표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장치가 우파의 근본적인 혁신으로 이어지는 첩경이라는 나의 확신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런 공천 제도가 정비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그게 우파의 역사적 경험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이다. 단적인 사례가 박근혜 윤석열 두 전직 우파 대통령의 탄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다. 박근혜 탄핵부터 보자. 박근혜가 과연 탄핵 당할만한 잘못을 저질렀던가? 문재인과 비교해보면 ‘그렇지 않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상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영역이다. 무엇이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더 좋으냐의 문제라는 얘기이다. 박근혜가 탄핵당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해서 비교해보자. 어느 게 우파 진영과 대한민국에 더 치명적인 결과였을까? 이런 관점에서 아무리 따져봐도 ‘박근혜 탄핵은 반드시 막아야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물론 박근혜는 정치적 실수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실수는 어느 정치인이나 저지른다. 정당 특히 여당은 그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등 정치 지도자를 보호하고 보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건 기본적인 정치 도의이자 계약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대거 탄핵에 동조했다. 그리고 우파 진영과 대한민국은 그들의 그런 행동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물론 탄핵을 주도한 당시 새누리당 정치인들도 정치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그들의 행동에 비하면 그 타격은 사소한 수준이었다.

윤석열 탄핵은 명백하게 박근혜 탄핵의 재현이다. 2016년 당시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새누리당 의원은 전체 128명 중 63명으로 추정된다. 절반에 육박하는 비율이다. 2025년 윤석열 탄핵에 찬성한 국민의힘 의원은 전체 108명 중 12명이다. 10분의 1이 조금 넘는 비율이다. 2016년과 2025년의 동질성과 차이가 우파가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의 무게를 보여준다.

박근혜 탄핵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참조할만한 역사적 사례가 없었다. 조중동까지 가세한 좌파 도그마의 위력은 압도적이었고 우파 정치인들은 거기에 굴복해 무릎을 꿇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문재인 정권은 조직적으로 체제 해체 작업을 강행했고 우파 정당과 대한민국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이런 박근혜 탄핵의 집단 체험이 남긴 교훈의 위력과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2025년 윤석열 탄핵이다.

박근혜 탄핵 동조가 우파의 치명적인 실수였다는 자기 성찰과 집단 체험의 위력이 2016년보다 탄핵 찬성파를 현저하게 줄였다면 그 집단 체험의 교훈이 조직적이지 못하고 개별적으로만 공유된 한계가 결국 윤석열 탄핵 표결을 통과시켰다. 이 역사적 사례에서 우파는 뭘 배우고 뭘 남겨야 할 것인가? 2016년과 2025년에 우파가 공유한 이 집단 체험을 어떤 정치적 교훈으로 남기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한동훈으로 대표되는 탄핵 찬성파는 남김없이 국민의힘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우파의 대통령만 두 번 연속 탄핵당했다는 사실의 역사적 의미를 처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의힘에는 이 탄핵이 정당했다고 받아들이는 견해와 그렇지 않다는 노선이 혼재하고 있다. 이건 탄핵 찬성보다 더 지저분한 정치적 야합이다. 두 가지 입장은 선명하게 갈라서야 한다. 어느 노선이 우파의 대표성을 가져야 하는지 제대로 정리하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파 대중의 선택과 투표는 항상 배신을 당하게 된다. 열심히 노력해서 우파 대통령을 만들고 우파 국회의원을 뽑아줬더니 그 우파 국회의원들이 그 우파 정치인을 탄핵시키는 참사를 앞으로 또 볼 수는 없다. 반드시 이런 사태는 정리해야 한다. 

박근혜와 윤석열의 정치적 실수에 대한 평가는 그 다음 문제이다. 적어도 박근혜와 윤석열은 대한민국을 의식적으로 파괴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그래서 한동훈은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해야 한다. 나서서 당당하게 ‘12.3 비상계엄은 내란이고, 윤석열 탄핵은 정당했다’고 당원들 앞에서 선언하고 선택받아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자신의 똘마니들 이끌고 탄핵 반대파들이 다수인 국민의힘을 뛰쳐나가라.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를 무대로 탄핵 찬성과 반대 어느 입장이 우파의 대표성을 가질 것인지 진검 승부를 벌여야 한다. 이것이 그나마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파는 정치투쟁의 무기로서의 설계주의적 이념과 세계관이 거의 없다. 그래서 정치투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한다. 이런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역사적 정치 경험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조직적 공유이다. 2016년 박근혜 탄핵을 우파가 조직적으로 성찰하고 체화했다면 2025년 윤석열 탄핵이라는 자해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와 윤석열 탄핵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점령한 압도적인 좌파 도그마의 위력이 낳은 하나의 참사이다. 우파라면 이 도그마와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도그마와 싸울 생각이 없는 자 심지어 그 도그마에 동의하는 자들과는 결별해야 한다. 그것이 이 도그마를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202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