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경재

‘초한전’·‘북 특수전’·‘트럼프 2기’

서석천 2025. 6. 27. 05:47
 한반도 안보 위기 ‘대응 전략은’
트럼프 2기 ‘MAGA’와 한미동맹, “위기이자 기회”
“보이지 않는 침략” 중국 초한전, 안보 잠식하다
복합 안보위기, 국가 차원의 선제 대응 필요
▲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2025 KRIS 세미나에서 격변기의 안보환경변화와 우리의 대응 세미나에서 참여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KRIS 제공
 
북한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통해 군사력을 빠르게 진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북한 특수작전군과 전투공병의 러시아 파병이 실전 경험을 축적하는 계기가 되면서 한반도 안보 지형이 중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20일 열린 ‘2025년 KRIS 정책발전세미나’에서 “이제 한국도 군사·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세미나는 고(故) 홍성태 장군 3주기를 기념하는 특별 세미나로, ‘격변기의 안보 환경 변화와 우리의 대응’을 대주제로 급변하는 안보 환경 속 대한민국의 대응 전략을 모색했다. 세미나에서는 중국의 비대칭 전쟁 전략 ‘초한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북한 군사력 진화, 그리고 트럼프 전 대통령 2기 행정부에 따른 한미동맹의 변화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2025 KRIS 세미나에서 격변기의 안보환경변화와 우리의 대응 세미나에서 참여자들 토론을 하고 있다. KRIS 제공
 
첫 번째 주제 ‘중국 초한전 실태와 대비 전략’에서는 이지용 계명대 교수와 이정곤 충북교육청 비상계획관이 중국의 현대전 양상과 전략적 접근을 심층 분석했다. 두 번째 주제 ‘러-우 전쟁의 군사적 교훈’에서는 두진호 KRIS 유라시아연구센터장과 김병재 매일경제 논설위원이 러-우 전쟁의 교훈과 대한민국 안보 태세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세 번째 주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안보정책 전망과 우리의 대응’에서는 박영준 국방대 교수와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정책 변화와 한국의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주은식 KRIS 소장은 개회사에서 고(故) 홍성태 장군 3주기를 기리며 대한민국 안보의 현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책임감을 강조했다. 홍 장군은 육군사관학교 14기 출신으로 평생을 군에 몸담았다. 육사 입교 전부터 손자병법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일어 원서로 독파할 정도로 전쟁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으며, 독일 지휘참모대학 유학, 주월 맹호부대 전쟁사 기록장교, 1기갑여단장, 기갑학교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등을 역임하며 ‘현장형 지휘관’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다.
 
홍 장군은 6·25전쟁 당시 중공군 개입기의 한반도 전장을 ‘기동전의 전형’으로 분석했으며, 육군대학 시절 소련군 작전기동단(OMG) 전술 연구, 실전적 훈련 문화 정착, 기갑학교 소조 토의·사판 훈련 도입, 육군대학 전술담임교관제 창안 등 한국군 교육 체계의 초석을 닦았다.
 
주 소장은 “장군님은 새로운 개념을 발견하면 늘 메모하고 질문하셨고,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연구소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분석 회의를 주관하셨다”며 “장군님의 일생은 군과 연구소, 오직 국가안보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국가는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장군님의 말씀을 이 자리에서 다시 새기며,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를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다짐했다.
 
이지용 교수는 중국의 ‘초한전(超限戰)’ 전략이 한국에 미치는 위협을 집중 분석했다. 초한전은 군사적 충돌을 넘어 경제, 사회, 문화, 법, 사이버, 마약 등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무제한 전쟁’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중국은 외교관, 유학생, 노동자, 언론인, 기업인을 활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기술 탈취, 선거 개입, 여론 조작, 지방 정치 장악 등 광범위한 침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이 펜타닐 등 마약을 사회적 혼란을 유도하는 비군사적 전략 무기로 활용하고 있으며, 한국 내 확산 가능성도 경고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화웨이 등 중국 장비의 전면 재점검 △정보 인프라 보안 강화 △마약단속청 신설 △중국인 부동산·개발 투자 제한 △방어적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제도 정비 △국제적 반중 연대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발제를 하고 있는 두진호 KRIS 유라시아센터장. KRIS 제공
 
두진호 센터장은 러-우 전쟁의 군사적 교훈과 북한 특수작전군의 변화를 주목했다. 2024년 북한은 러시아 요청에 따라 약 6000명의 특수작전군을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 파병했고, 이후 전투공병도 추가 파병했다. 북한군은 러시아군과 연합작전을 수행하며 드론 운용, 사이버전, 전자전, 유·무인 복합전투(MUM-T), 전장 정보 통합 등 현대전의 핵심 요소를 실전에서 체득했다. 특히 드론 군집을 활용한 ‘거미줄 전술’, 저비용 무기의 대량 운용, AI 기반 전투지휘 등은 북한군의 작전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두 센터장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단순한 외화벌이가 아니라, 미래 한반도 전장에서 한국군을 압도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며, 북러 군사협력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다양한 무기와 전투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이전받고 있으며, 비대칭 전력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도 군사 전략과 작전 개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센터장은 “북한의 위협을 정확히 반영한 연합 정보판단서 작성을 시작으로 국가안보전략서, 국방전략서, 합동전략서 등 최상위 안보 문서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존 병력 중심, 전방 방어형 군 구조로는 북한의 드론·미사일 복합 공격, 전방위 인지전(cognitive warfare), 유·무인 복합 작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이 우선 추진해야 할 4대 과제로 △통합 소요기획 및 신속획득제도 정착 △한국형 아이언돔 구축 △합동특수전사령부 창설 △국방통합아카데미 신설을 제시했다.
통합 소요기획 및 신속획득제도는 북한의 빠른 무기 개발 속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제도 개혁이다. 단순히 군 수뇌부 중심의 ‘탑다운’ 방식이 아닌, 현장 수요에 맞춰 신속히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현장 중심’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국형 아이언돔은 개전 초 북한의 드론·미사일·장사정포 복합 공격, 이른바 ‘섞어쏘기’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현재 수도권 다층 방공망으로는 북한의 대량 포격과 드론 공격을 충분히 방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북한 특수전 및 비정규전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합동특수전사령부’ 창설이 필요하다. 북한은 이미 20만 명 이상의 특수작전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러시아 참전을 통해 실전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이에 맞서 한국군도 고도의 합동·통합 작전 능력을 갖춘 특수부대를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방통합아카데미는 AI·사이버·드론·인지전 등 다영역 작전에 능통한 새로운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다. 두 센터장은 “이제 군사작전의 주역은 육해공 지휘관뿐 아니라, 첨단 기술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2025 KRIS 세미나에서 격변기의 안보환경변화와 우리의 대응 세미나에서 참여자들 토론을 하고 있다. KRIS 제공
 
박영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미국 안보 전략 변화를 분석했다. 박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MAGA)’를 강화하며 유럽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전을 추진하는 등 글로벌 전략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 정책에서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방위비 분담금 추가 증액, 연합훈련 축소 등 한국에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박 교수는 이를 ‘위기이자 기회’로 평가하며, 한국이 ‘Make Alliance Great Again’ 전략을 통해 한미동맹을 능동적·주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방위비 협상의 유연한 접근 △연합 방위태세 유지 △전작권 전환 속도 조절 △국방·산업 분야의 글로벌 기여 확대를 통해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혜원 기자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