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경재

이석기, RO 조직원 북한 인사 접촉 결과 보고받아

서석천 2013. 8. 30. 19:37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국정원 관계자들이 철수하고 있다./뉴시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국정원 관계자들이 철수하고 있다./뉴시스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지하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가 일부 조직원들로부터 북한 측 인사와 접촉한 결과를 보고받는 이른바 ‘디브리핑(Debriefing) 세션’을 가졌다고 문화일보가 30일 보도했다. 디브리핑이란 공작원이 임무를 수행한 뒤 사후보고를 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RO 회합 관련 녹취록과 영상물 등 증거물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이에 따라 이 의원을 포함한 RO가 북측 지령을 받고 내란음모를 획책했는지 등 이번 사건과 북한과의 연계 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RO 관련자들이 2011년과 2012년 등 수차례에 걸쳐 북측 인사와 접촉한 사실을 포착했다”며 “국정원이 보유 중인 RO 회합 관련 녹취록과 영상물 중에 조직원들이 다른 조직원들에게 북 인사 접촉 결과를 디브리핑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 인사와 접촉했을 때 어떤 말이 오갔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국정원은 이 의원의 일부 측근 인사들의 밀입북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에 따르면 이들은 탈북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루트를 통해 중국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으며, 한국에 돌아온 직후 경기동부연합 조직원 등이 참가한 비공개 회합을 2~3차례 가졌다. 입북 과정에서 국내 고정간첩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관측도 흘러나오지만 이들의 밀입북 여부를 둘러싼 구체적인 행적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을 포함한 통진당 관계자들은 북한과의 연계 의혹들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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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철서신' 김영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에 증인으로 출석…김영환과 이석기의 얽히고설킨 악연(惡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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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緣)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 한 때의 동지가 후일 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악연(惡緣)도 인연(因緣)이라 한다.

이석기와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은 1982년 같은 해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땐 인연이라 믿었다. 둘은 동지로 이 땅에 종북이라는 씨앗을 심으려 했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설립해 북한을 찬양하고, 주체사상을 퍼뜨리기 위해 함께 뛰었다.

그러나 이석기는 이 길을 계속 갔고, 김영환은 북한의 실상을 알고 사상 전향을 했다. 그로부터 32년. 인연은 악연으로 바뀌어 둘은 헌법재판소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됐다. 통합진보당의 해산 청구 사건 등을 놓고 21일 김영환이 법무부 측 증인으로 채택 돼, 헌법재판소에서 RO(혁명조직ㆍrevolution orgarnization)활동에 대한 진술을 한다.

김영환과 이석기, 얽히고설킨 인연

둘의 인연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2학번인 둘은 그해 나란히 서울대 법대(김영환)와 한국외국어대 중국어통번역학과(이석기)에 진학한다.

먼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김영환이었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인 1980년대 중반 ‘강철서신’이라는 제목의 글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전파했다. 학생 운동권은 이때부터 ‘주사파(主思派)’ 일색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종북 세력’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단초가 됐다는 뜻이다.
김영환씨.
김영환씨.

민혁당을 만든 것도 김씨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서울 법대 동기인 하영옥과 이석기가 ‘반제(反帝)청년동맹’을 조직했고, 김씨가 1992년 2월 이를 민혁당으로 발전시켰다. 한참 활동할 당시 당원은 100명쯤이고, 산하에 RO가 17개 있었다고 한다. 보안을 위해 나눴을 뿐 RO조직원들도 거의 정당원과 같았다.

김씨는 이석기의 RO도 여기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이석기는 이 민혁당의 경기남부연합 위원장이었는데, 이때부터 조직을 관리했다는 것이다. 당시 권력 서열을 매기자면 김씨가 첫째이며, 이석기가 다섯 번째쯤 됐다고 한다. 김영환·하영옥·박모씨 등 3인이 중앙위원이었고, 그 산하에 경기남부위원회, 영남위원회, 전북위원회가 있는 구조였다.

당시 둘이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은 없었다. 민혁당이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지하당이었기 때문에 당원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리에 부쳐졌다. 다만 당수였던 김씨는 모든 보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서해에서 북한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과 독대한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실체에 눈을 뜨면서 사상적 혼란을 겪었고, 1997년 마침내 자기 손으로 민혁당을 해체한다. 사상 전향이었다.

해체에 반대한 일부 세력은 남았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통합진보당의 전신이 됐다는 것이 당시 관련자들의 이야기다. 이 중심에는 하영옥과 이석기가 있었다.

이씨가 NL 집단에서 현재의 위치를 차지한 것 역시 김씨와 관련이 있다. 민혁당 해체 후, 김씨의 사상 전향에 실망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김씨를 배신자라 여겼다. 반면 이석기는 전향하지 않은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면서 조직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고 당시 관계자들은 얘기한다.

 

김영환 고문사건 진상 규명안에 반대표 던진 이석기

한번 맺어진 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2012년 김씨가 탈북자들을 교육해 북한에 들여보내는 행위로, 중국 정부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국회는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로 했다. 본회의를 열어 가혹행위 의혹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촉구 결의안을 냈는데, 딱 4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 중 한명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었다. 반대표를 던진 나머지 의원은 통합진보당 김재연·오병윤 의원,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에선 “이들은 종북주의 자라는 것을 국민 앞에 선전하고 있다”고 맹비난했지만, 이석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재적의원 186명 가운데 찬성이 177명일 정도로 통과가 확실한 법안이었지만, 굳이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다.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석기는 그간 내란선동과 국보법 위반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고, 통합진보당은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받고 있다. 21일 이 사건 변론기일에서 김씨는 이씨가 관련된 RO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할 예정이다. 김씨는 이제껏 언론인터뷰서 RO가 민혁당 시절부터 운영된 뿌리가 깊은 실체 있는 조직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는 헌재에서도 마찬가지 주장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