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자제’ 지시, ‘軍 매뉴얼’대로 김인종 경호처장이 대변인에게 전달(청와대 관계자)
“당시 ‘확전 자제’가 대통령의 첫 발언으로 언론에 나갔는데, (청와대)사람들이 문제의식이 없더라.
불필요한 메시지인데다 보수층까지 떠나가게 하는 발언이라고 봤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정부차원에서 큰 부담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김태효 비서관이 벌떡 일어나 ‘대통령님, 이런 발언하신 적 없지 않습니까. 이거 정리해야 합니다’라고 했다”(청와대 고위 관계자)
⊙ “‘호국훈련’ 때문에 北 포격했을 것”이란 대변인 멘트…北의 포격도발에 명분 제공한 셈
⊙ 청와대, ‘교전규칙’ 강화 국방부에 지시…연평도 포격사태, 국지도발 계획에 따라 자위권 행사하면 돼
⊙ 예비역 장성들의 ‘정치세력화’도 문민통제를 방해
“당시 ‘확전 자제’가 대통령의 첫 발언으로 언론에 나갔는데, (청와대)사람들이 문제의식이 없더라.
불필요한 메시지인데다 보수층까지 떠나가게 하는 발언이라고 봤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정부차원에서 큰 부담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김태효 비서관이 벌떡 일어나 ‘대통령님, 이런 발언하신 적 없지 않습니까. 이거 정리해야 합니다’라고 했다”(청와대 고위 관계자)
⊙ “‘호국훈련’ 때문에 北 포격했을 것”이란 대변인 멘트…北의 포격도발에 명분 제공한 셈
⊙ 청와대, ‘교전규칙’ 강화 국방부에 지시…연평도 포격사태, 국지도발 계획에 따라 자위권 행사하면 돼
⊙ 예비역 장성들의 ‘정치세력화’도 문민통제를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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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국방장관은 국회 예결위에서 새해 국방예산 관련 답변을 하느라 청와대 지하벙커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군(軍)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과 대책을 논의하며 “국방장관은 어디 있느냐”고 하는 갑갑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김태영(金泰榮) 당시 국방장관은 “현재 대응사격 진행 중”이라며 예결위에서 빠져나오려 했으나, 의원들은 질문 공세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 와중에 청와대는 포격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첫 언급이 “확전(擴戰)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것이었다고 언론에 공개했다가 두 시간여 만에 홍보수석이 이를 부인하고 “단호히 대응하라”였다고 정정해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청와대의 “(북한의 소행이라고) 예단하지 마라”는 발언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MB, “도대체 누가 저런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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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가 열렸던 청와대의 국가위기관리센터(일명 벙커). |
북한의 연평도 포격 순간,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청와대 관계자의 코멘트를 통해 상황을 재구성해 보자.
포격 시작 5분 후인 11월 23일 오후 2시40분경, 이명박 대통령은 상황실로 이동한 뒤 긴급 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했다. 이 대통령은 외교안보라인 등 관계 수석들과 함께 한민구(韓民求) 합참의장, 해군작전사령관, 공군작전사령관 등과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합참의장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으면서 참모들과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TV에서는 포격으로 연평도에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는 장면이 나가고 있었고, 국민들은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리고 대응할지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마침 G20 관련 언론 브리핑을 마치고 돌아온 김희정(金姬廷) 대변인으로부터 여론 분위기를 전달받은 참모들은 대통령의 밖으로 나가게 될 첫 공식 메시지를 놓고 잠시 논의를 시작했다. 아직 교전이 끝났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발표될 ‘대통령의 첫 지시’는 확전이냐 자제냐의 이후 방향, 대통령이 어떤 자세로 상황을 지휘하는가 등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었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 임태희(任太熙) 비서실장을 비롯한 그룹들은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하더라도 단호한 대응 의지를 밝혀야 한다”는 의견은 소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분위기를 누군가가 메모로 정리했고, 그 상태에서 실무자들을 통해 오후 3시50분 언론에 발표된 ‘첫 지시’ 내용이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김희정 대변인은 연평도 포격이 오간 긴박한 상황에서 수석비서관회의에 다소 늦게 들어가 자신이 듣지 못한 전반부를 김병기 국방비서관에게 전달받았다고 한다. 김 대변인은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내용을 박정하 춘추관장에게 전화로 전달했고, 관장은 기자들에게 전화메모를 전달했다. 포격이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민을 실망시키고, 적에게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이렇게 허술한 과정을 거쳐 텔레비전 화면에 긴급특보 자막으로 뜬 것이다.
이 대통령은 상황실 TV를 통해 자신이 내린 첫 지시가 ‘확전 방지’였다는 보도를 보고 “도대체 누가 저런 말을 했느냐”고 했지만, 합참으로부터 들어오는 현장 상황에 대한 대응이 우선이어서 일단은 그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상황실 밖 사무실에 있던 정무와 민정수석실 등으로부터도 ‘현재 나간 메시지는 적절치 않다’는 메모와 보고가 들어왔다. 이런 분위기를 본 대변인실 실무자들은 오후 4시30분 다시 정정된 내용의 ‘첫 지시’를 언론에 전했다. ‘단호하게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내용이었다.
박정하 춘추관장은 “대통령께서 군과 민간인 피해에 대한 우려를 했고, 관계기관과 합참에서는 민간인 대피가 완료됐다는 보고를 했다”면서 “합참에서는 ‘호국훈련을 핑계로 한 국지도발로 판단되고,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북한에) 긴급통신문을 보냈다’는 보고를 받으셨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이 무렵, 이명박 대통령은 김성환 외교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김태영 국방부 장관, 원세훈(元世勳) 국정원장, 맹형규(孟亨奎) 행정안전부 장관, 임채민(林采民) 국무총리실장 등을 소집해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었고, 우리 군의 보복 타격을 계속할 것이냐를 놓고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왜 대포만 쏘느냐, 출격한 전폭기가 폭격을 하는 것은 안 되느냐”고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국방부 측이 “교전규칙에는 상응하는 화기(火器)로의 대응을 정하고 있다. 자칫하면 큰 전쟁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고 한다. 오후 6시10분, 홍상표(洪相杓) 홍보수석은 기자 브리핑을 통해 “단호하게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도 대통령 지시가 아니었다”며 “이 대통령은 회의 내내 다시는 북한이 이런 엄두를 못 낼 정도로 확실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대변인, “‘호국훈련’ 때문에 北 포격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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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표 홍보수석(왼쪽)과 김희정 대변인이 2010년 8월 8일 춘추관에서 개각발표를 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포격 당일, 정부의 부실한 위기관리시스템을 청와대 홍보수석실도 거들었다. 청와대 출입 L기자는 김희정 대변인의 ‘실수’를 언급했다. 그는 “김 대변인은 G20 후속 행사, 북한 우라늄 시설 관련 브리핑을 하다, 한 출입기자가 ‘연평도에 포탄이 수십 발 떨어졌다고 하는데…’라고 하자, (뉴스속보를 보지 못한 듯) ‘MBC 속보가 나온 모양’이라며 ‘2시37분경 북측이 연평도 쪽으로 포탄 7~8발 쏜 듯하다’고 답했다”면서 “대변인은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L기자는 “대변인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물어보고 공격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기자들이 ‘왜 공격을 받았느냐’고 물으니 우리가 호국훈련 중이었고, 저쪽에서 반응(북한이 오전 전화통지문을 통해 호국훈련은 일종의 공격이라고 항의)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면서 “정확한 장소나 발수나 어떻게 된 것인지는 확인 중”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의 ‘멘트’는 속보로 퍼져나갔다. L기자는 “국방부와 합참은 청와대의 코멘트에 대해 즉각 ‘호국훈련이 아니라 통상적인 사격훈련’이라고 반박했다”면서 “북한이나 좌파들의 입장에서 보면,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논리적 명분을 청와대 대변인이 제공한 셈”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호국훈련이란 말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나오지도 않았다”며 “여성 특성상 군사지식이 짧아 ‘사격훈련’과 ‘호국훈련’이 별개라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와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별말씀을 안 했다”면서 “‘현재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나, 계속되고 있나, 피해는, 사상자는, 합참대응은…’ 정도의 질문만 하셨고, 지침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즉 전투 중에 대통령이 ‘감 놔라, 배 놔라’할 분위기가 아니었고, 보고만 받다가 1, 2차 포격 상황이 종료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출입 K기자는 “홍보수석과 대변인은 브리핑을 할 때마다 ‘더 이상 확전 안되도록 철저히 대응’ 등 10단어를 안 넘었다”면서 “말에 살을 붙인 것이 없으므로, 벙커회의에서 한 ‘워딩’ 그대로일 것으로 본다,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이 ‘확전 자제는 전면전으로 확대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으면 국민들도 수긍했을 텐데, 여하튼 언론대응이 서툴렀다”고 했다.
L기자는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무엇을 골라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대변인이 홍상표 홍보수석을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취재해서 벙커회의의 발언을 브리핑한 것은 ‘오버’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포격 이틀 후, 김희정 대변인은 ‘책임질 부분이 있는 거 아니냐’면서 거취에 대해 고민을 하더라”면서 “김대중 정부의 박선숙(朴仙淑) 대변인, 노무현 정부의 송경희(宋敬熙) 대변인, 이명박 정부의 김희정 대변인으로 이어져 온 여성대변인 계보(系譜)는 일반 사안에는 순발력이 있지만, 솔직히 안보 관련 브리핑은 아슬아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연평도 사태와 같은 준전시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무방비로 노출돼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홍보수석과 대변인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이희원(李熙元) 안보특별보좌관이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검토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고 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월맹공습과 같은 주요 사항은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브리핑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청와대에선 국가적 위기상황임에도 안보특보나 국방비서관은 브리핑룸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면서 “군이나 전투에 대해 잘 모르고, 차기 총선을 의식해야 하는 여성 대변인이 안보 관련 브리핑을 전담하는 문제점을 청와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지만, 안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면서 “결국 청와대는 책임을 안 지고 국방장관과 국방비서관만 경질하면서 군에 책임을 전가한 것”이라고 했다.
김태영 장관은 11월 25일 국회에서 “대통령으로부터 ‘확전 자제’ 지시를 받았다”며 청와대와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다가, 홍상표 홍보수석과 통화한 후 오후 국회에서 발언을 뒤집었다. 김병기 비서관도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것이 이 대통령의 메시지”라는 메모의 문구만 다듬는 등 억울하게 ‘희생양’이 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두 사람의 경질 이유로 제시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관련한 대응 미숙 책임과 군 분위기 쇄신’보다 ‘확전 자제’로 악화된 여론을 무마하려고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병기 전 비서관은 “대통령이 실제로 확전 자제 발언을 했는가”, “김희정 대변인이 벙커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로부터 미리 전달받은 메모를 문구조정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럼 그 관계자는 누구인가”라고 묻자, “현역 군인(육군 소장) 신분으로 당시 벙커회의에서 오갔던 말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金仁鍾 경호처장이 ‘확전 자제’ 발언 진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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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종 경호처장. |
기자는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통해 ‘확전 자제’ 발언의 내막을 비교적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앞서 수석비서관들하고 회의할 때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고, 김희정 대변인은 춘추관에 있는 기자들이 자꾸 ‘쪼니까’ 회의실 안에서 불러준 것을 전한 것”이라면서 “김인종(金仁鍾) 경호처장하고 김병기 국방비서관이 (대변인에게) 불러준 것이다. 그건 군(軍)의 매뉴얼이다. 50년간 내려온 군의 매뉴얼이니 그대로 불러준 것일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이다.
“11월 23일 수석비서관회의가 끝나고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리기 전 상황이다. 수석들과 함께 벙커로 내려갔다. 회의와 관련 없는 수석 또는 비서관들은 상황이 전쟁 분위기로 가니까 궁금한지 회의실에서 안 나가려고 하더라. 그때 김태효(金泰孝) 대외전략비서관이 확전 자제 발언이 TV에 뜬 것을 보고 화가 난 표정이었다. 조금 ‘살풍경’이었다. 김 비서관이 대통령을 잠깐 옆방으로 모셔간 다음, ‘제가 정리하겠다’고 하고는 ‘회의와 관련 없는 참모들은 다 나가라’고 했다. 김희정 대변인도 나가라고 하더라. 옆에 있던 정문헌(鄭文憲) 통일비서관이 ‘대변인은 이럴 때 다 있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당신도 같이 나갈 생각이냐’고 했다. 백용호(白容鎬) 정책실장은 나가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 회의 참석자인 김병기 국방비서관도 자리에 있었고, 김인종 경호처장은 회의 때 발언을 할 수 없는 신분이기 때문에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그의 말이다.
“당시 ‘확전 자제’가 대통령의 첫 발언으로 언론에 나갔는데, (청와대)사람들이 문제의식이 없더라. 정진석(鄭鎭碩) 정무수석과 김태효 비서관은 문제를 인식했던 것 같다. 불필요한 메시지인데다 보수층까지 떠나가게 하는 발언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정부차원에서 큰 부담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김태효 비서관이 벌떡 일어나더니 ‘대통령님, 이런 발언하신 적 없지 않습니까. 이거 정리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확전 자제’와 같은 용어를 쓰지 않는다. 만약 이 말을 했다면, 쉬운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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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연평도 도발사건에 대한 현황 보고를 받기 위해 합동 참모본부 지휘 통제실로 향하고 있다. |
김태효 비서관은 “큰일 났다, 이 문제가 위험하다”고 이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한다. 김 비서관은 또 “북한의 도발이 몇 시간 내 또 있을지 모르지만, 전투기라도 동원해서 확실하게 1, 2차 왜 하지 못했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통령은 국방장관에게 “그럼, 전투기를 못 쓰는가”라고 질문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군은 60년 동안 이런 일을 안 당해 봐서 항공기를 써서 폭격할 상황이 있을지도 몰랐고, 상상이 안 간 것 같다”면서 “오히려 군이 자위권 발동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보다, 그 상황에서는 유엔사령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교전규칙’(rules of engagement) 이야기가 나오고, 토론이 좀 됐다는 것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그래서 김태효 비서관이 대통령께 ‘저녁에 바로 합참에 가시라’고 했다. 직접 가서 확전 자제 발언 같은 걸 하지 않았다는 걸 직접 말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김인종 경호처장이 ‘합참은 전쟁하는 곳인데, 대통령이 가는 거 안 맞다’고 하더라. 김태효 비서관이 ‘이건 정무적 판단으로 하는 거다’라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합참을 방문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대통령은 합참을 방문해 군 수뇌부로부터 아군이 K-9 자주포로 응사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우리가 공격할 수 있는 게 그것(자주포)밖에 없느냐’고 물었다”면서 “K-9 자주포가 ‘곡사’의 한계 때문에 해안포 진지를 직접 타격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이를 능가할 공격수단으로 전투기 폭격 가능 여부도 물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군이 전투기 폭격의 경우, 전면전 비화 가능성이 있고, 한미연합사 차원의 작전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당장 가능한 방법은 아니라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군은 100번의 성명보다 행동으로 말해야 한다”면서 “군이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대통령이 말려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군이 교전규칙만 들먹이고 있느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군 통수권자’ MB의 교전규칙 ‘카드’는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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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8일 국방부에서 한민구 합참의장(오른쪽)과 마이크 멀린 미합참의장이 협의회의를 마친 후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청와대는 ‘교전규칙’ 강화를 국방부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지난 11월 30일 국회에 보고한 ‘교전규칙 개정 보완 방향’에서 “교전규칙의 비례성 원칙을 기존 동종 동량의 무기 사용 기준에서, ‘적의 위협과 피해규모’를 기준으로 응징의 종류와 규모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교전규칙은 자위권에 국한해 도발에 대응할 필요가 있을 때(필요성의 원칙), 북한군이 사용한 무기와 쏜 양만큼 대응(비례성 원칙)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 구상대로 개정이 될 경우, 앞으로는 북한군이 연평도 포격 때와 같이 곡사포와 122㎜ 방사포로 공격한다면, 피해 규모에 따라 대응 무기나 응사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연평도 피폭 사태처럼 군인 등 인명 살상과 핵심시설 피해 규모에 따라 다른 무기를 동원하는 등 보복 응징의 수준을 높이게 된다. 이와 함께 현장 지휘관 재량을 강화해 단계적 부대(제대별) 책임과 권한에 부합하는 적시적 대응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디앤디포커스> 김종대(金鍾大) 편집장은 “도대체 연평도 포격 사태가 교전규칙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교전규칙은 일선 현장 지휘관에게 미리 내려진 ‘지휘관의 지침’에 불과한 것이고, 연평도 포격 사태는 해병 6여단장과 같은 현장 지휘관 영역이 아니라, 합참 차원에서 구성된 합동전력으로 지원해 전투를 치러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돌연 대통령이 교전규칙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마치 교전규칙 때문에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사태를 호도하고,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라면서 “이번 포격 사태의 책임을 일선부대에 떠넘기는 것으로, 정치적 의도가 있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했다. 즉 교전규칙과 관계없이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합동전력을 동원해 북한에 ‘단호한 조치’를 취하면 그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우리가 K-9 자주포로 응사한 것이 ‘포격 원점(原點)’인 ‘개머리’로 가지 않고, ‘무도’로 가는 바람에 개머리뿐만 아니라 무도에서까지 포탄이 날아왔다. 이런 게 확전이다. 최초로 포격 원점을 정확히 타격하는 것은 확전과 무관하고, 피해도 덜했을 것이다. ‘원점 타격’은 자위권 영역이어서 국제법으로도 허용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국군통수권자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한을 요리하고 군대를 어떻게 운영할 줄 모르는 정치권력의 리더십이 소진된 것이다. 청와대가 확전의 문제를 거론하는 순간, 평양은 이미 승전(勝戰)을 경축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한편, 청와대 관계자는 “군은 전투상황, 즉 적의 도발을 맞았을 때 확실하게 제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의 도발 전에도 확실히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확인시켜 주는 군비태세를 갖췄어야 했다”면서 “그래서 북한의 오판을 부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청와대가 모든 책임을 군에 떠넘기는 것은 아닌가’라고 하자, “그렇진 않다. 정권이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라면서 “다만, 액션의 주체가 군이기 때문에 문제점을 같이 보자는 의미일 뿐”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원유철(元裕哲) 의원실(국방위원장)의 한 보좌관은 “군과 군끼리의 우발충돌을 막는 것이 ‘교전규칙’이고, 이번처럼 민간인이 희생되면 평시의 국지도발 차원에서 대응했어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통수(統帥) 포인트는 국지도발에 대한 우리의 대비, 합리적 판단을 했는가 여부 등을 따져 위기관리를 하는 것으로 끝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금문도의 18분의 1에 불과한 연평도에 다연장로켓 등 최신예 무기를 갖다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성 없는 참모들이 대통령을 흔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단호한 대응을 보여주기 위해 전략적 고려 없이 마구잡이로 아무것이나 끌어들여선 곤란하다”고 했다.
그는 “2009년 이상희(李相憙) 국방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북 국지도발대비계획’을 재가받으면서 ‘NLL 대비계획’을 보면, 공중지원을 포함해 ‘압도적 전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바꿔놓았었다”면서 “연평도 피폭은 교전규칙에 손을 안 대고도 능히 대응할 수 있도록 이미 다 만들어 놓은 셈”이라고 했다. 그는 또 “따라서 이번 연평도 피폭 당시 해병 연평부대장은 공군의 공중지원을 당연히 기다렸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이나 합참의장의 군령권(軍令權)은 현장 지휘관의 ‘수칙’에 불과한 교전규칙보다 상위개념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전시에 휴지조각이 되고 마는 ‘교전규칙’을 이야기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계속해서 그의 말이다.
“우리 군 문화가 아무리 현장 지휘관에게 권한을 줘도 윗선의 통제를 받으려고 한다. 우리 군대의 고질적인 문제다. 이상희 장관은 ‘현장 지휘관들에게 즉각 조치할 수 있도록 반응을 위임했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결재받는 전쟁’이 된 것이다. 현장 지휘관들은 교전규칙에 의해 대응하기 보다, 합참에서 통제한다고 생각한다. 제1, 2 연평해전에서 현장 지휘관들은 교전규칙으로 인해 총 한 발 제대로 쏴보지 못했다. 교전규칙과 별개로 합참이 통제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속초함은 함장이 ‘사격 결재’를 받느라 표적으로 잡힌 ‘새 떼’를 쏘는 데 5분이나 허비했고, 그 결과 새 떼는 NLL을 넘어가고 말았다. 연평도 피폭을 우리 군이 교전규칙에 따라 대응했다고 하는데,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하면 되는 것을 교전규칙에 따라 80발, 100발 운운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현실이다.”
‘자위권’은 주장할 필요도 없는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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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5일 취임 이틀째를 맞은 김관진 국방부장관(왼쪽)이 일요일 아침 서부전선 육군 강안 초소부대를 방문해 경계작전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따라, 한미 양국이 지난 12월 8일 북한의 국지도발 대비계획을 전면 보완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번 사태를 교전규칙보다 국지도발계획 차원에서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민구 합참의장과 마이크 멀린 미국 합참의장은 이날 서울 합동참모본부에서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합의했다. 합참 관계자는 “한미가 지금까지는 정규전 위주의 (전쟁)대비계획에 주력해 왔으나, 북한이 이번 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은 새로운 양상의 국지도발을 감행한 것에 대해 심층적인 평가와 분석이 있었다”며 “미측은 북한이 남측을 선제공격하면 교전규칙과 정전협정에 구애받지 않고 즉각 전투기와 함포 등으로 북한의 공격원점을 정밀타격한다는 우리 군의 자위권 행사 지침에 공감하고, 이를 존중키로 했다”고 밝혔다.
김관진(金寬鎭) 국방장관은 청문회 과정에서 확전 자제 발언을 ‘정리’하고 나섰다. 그는 “군대용어로 확전은 전면전을 의미한다”며 “전면전을 막기 위해 교전규칙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번 연평도 사건과 같이 국지전이 벌어질 때 군인들 생각은 이게 전면전으로 가지 않아야 한다는 전략개념을 가지고 공격한다”면서 “군의 대처가 미흡했던 것은 60년간 지속된 평시체제로 인해 군이 행정조직이 돼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선(先) 도발 시 자위권을 행사할 것이며 (자위권을 행사하라는) 장관의 지침이 이미 (일선부대에) 하달됐다”면서 “비례성을 지키지 않는 자위권 행사의 합법성에 대한 법적인 검토가 모두 끝났다”고 했다. 그는 “자위권은 적이 우리에게 먼저 도발했을 때 이에 대한 응징의 개념으로 교전규칙의 필요성과 비례성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적의 도발의지가 꺾일 때까지 자위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종대 편집장은 “자위권 문제는 보편타당한 주권이기 때문에 구태여 주장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라면서 “이미 천안함 사태에 관한 대북조치를 발표할 때 ‘적극적 자위권 행사’는 김태영 장관이 발표한 내용에 들어 있었다”고 했다.
“우리의 서북해역 위기 관리는 전시(작전계획), 평시(국지도발계획), 우발적 충돌 방지(교전규칙) 등 세 가지 요소가 전부”라면서 “이 중 국지도발계획은 윤용남(尹龍男) 합창의장(육사 19기) 때부터 시작, 현재 17년째 발전시켜 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안보는 충분한 무기가 있으나 유사시 통수권자의 결심이 없어 번번이 당했다”면서 “화살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향하는 와중에 김관진 장관은 자위권 발동으로 ‘톤다운’한 것이고,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이 최종적으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국정원, 軍의 정보책임 공방
특히 지난 8월 국가정보원이 감청을 통해 북한의 서해 5도 공격 징후를 포착하고도 적절히 대비하지 않았던 것을 두고는 ‘정보 판단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군은 서로를 탓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까지 연출했다.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우리는 북한 도발정보를 입수해서 청와대와 군에 다 전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한 여러 가지 말이 국회에서 공개돼 논란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정원에서 그런 내용을 따로 보고한 적도 없고, 아마 정기적인 서면보고서였다면 ‘보고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의미 있는 보고가 없었다”면서 “서해에서 북한군 군사활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수준의 정보였고, 그런 첩보는 거의 매일 올라오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는 일일이 신경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정보위 소속 한 의원은 “국정원은 정보수집 기관임에도 이번 일을 남 일처럼 말한다”면서 “국정원은 배구공(정보)을 공격수(청와대와 군)에게 토스나 하는 ‘세터’ 포지션인 줄 아느냐”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문제가 빚어진 첫째 원인은 위기관리시스템의 문제가 꼽힌다. 청와대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뒤 임시조직인 위기정보상황팀을 외교안보수석이 센터장을 겸하는 국가위기상황센터로 보강했다. 그 뒤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뒤에는 국가위기관리센터로 더 강화하고, 이를 총괄할 대통령 안보특보를 신설했다. 하지만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게 이번에 드러났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통일·외교·안보 관련 정보와 정책을 총괄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체제의 부활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안보문제연구소 김희상(金熙相) 소장은 “외교안보 문제는 정보를 공유하고 통합해 신속하게 지휘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고, 그런 조정력을 갖춘 기구는 청와대 안에 있어야 한다”며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와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에 이어 연평도가 포격을 받아 인명과 재산피해가 속출한 상황에서 전략적 선택과 협상의 여지를 두는 듯한 발언보다는 먼저 군사적 대응수위를 높여 강력한 응징의지를 과시하는 게 중요했다”면서 “북한도 익히 짐작하고 있는 우리의 ‘확전 자제’ 선택은 일단 효과적인 보복공격을 가하고 난 다음에 고려해도 늦지 않은 목표”라고 했다.
청와대의 외교안보시스템이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 들어 ‘국방개혁’도 지지부진하다. 노무현 정부 때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수립된 ‘국방개혁 2020’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그 내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더니 추진 4년차인 2010년 현재 주요 골격이 대부분 해체되고, 각종 일정이 몇 년씩 늦춰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국방개혁 2020의 종언’을 선언하고 새롭게 ‘국방개혁 2030’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방개혁 2020의 핵심은 ‘병력은 감축하되 국방력은 획기적으로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력을 첨단화하고 ▲2020년까지 연평균 8%의 증가율로 국방예산을 투입하며 ▲병사의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고, 병력도 50만명으로 감축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국방개혁은 당초 국방개혁 2020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 연기, 세계적 금융위기, 천안함 폭침사건, 군 당국의 소극적 태도 등으로 국방개혁 2020이 사실상 공중분해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교체는 국방개혁 2020의 종언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노무현 정부를 친북 성향의 좌파정권으로 간주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국방개혁 2020’은 반드시 고쳐야 할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국방개혁 2020의 종언은 이명박 정부 출발 때부터 예고가 됐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국방전력은 한미동맹의 강화를 통해 미군 전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작권 전환 시점의 연기로 전력 증강에 투입될 시간을 벌고 돈 투입을 연기할 수 있게 된 측면이 있다. 군 관계자는 “동맹 강화에 따른 미군 전력 활용과 전작권 전환 연기는 결국 국방예산 투입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노무현 정부가 통일 이후를 대비해 국방예산을 증액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예산의 축소는 전력 첨단화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종대 편집장은 “차세대 전투기, 공중급유기, 차기고속정, 잠수함 사업 등 60여 개 방위력 개선 사업이 1∼5년씩 늦어지고 있다”며 “이 중 29개 사업은 재원이 없어 순연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사건은 안보 위협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게 만든 계기였다. 통일 이후까지 내다본 ‘잠재적 위협’에서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라는 ‘현존하는 위협’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면서 “이는 대양해군을 지향하고 있던 해군 전력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게 했고 병력 감축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지면서 국방개혁 2020의 골격을 바꿔놓았다”고 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 균형전략의 대부분을 없애고 심지어 C4I 예산까지 깎고, ‘기동군단’ 예산을 늘리는 등 육군 위주로 갔지만, 육군이 워낙 세게 나오니까 모두 쉬쉬한다”면서 “합참은 현 정부 들어 합동작전본부장, 작전참모부장, 작전처장, 합동작전과장 등 네 개의 핵심 포스트에 앉은 사람들의 경력을 보면 합참 근무 경력이 거의 없는 이들로 채워져 있다”고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치명적 실수는 해·공군을 키워 육군을 견제하려는 생각이었다”면서 “그들은 전작권 전환을 위해 국방부의 동의를 받는 대가로 ‘국방개혁 2020’을 통해 ‘대양(大洋) 해군’, ‘우주군’을 지향해 고가의 전투기, 이지스함정, 기갑전력으로 치장해 주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내해(內海)’에 해당하는 ‘서해 5도’가 뚫렸다”고 했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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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외교안보수석,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임태희 대통령실장. (사진 왼쪽부터) |
연평도 포격 사태는 이런 시스템상의 문제 말고도, 외교안보라인의 인적(人的) 구성의 문제점도 드러냈다. 한반도 안보의 최대 변수는 북한인데, 이명박 정부에는 북한의 행태와 의도까지 꿰뚫어보며 정보를 종합해 적절한 대응을 판단할 전문가가 드물다는 지적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외교안보라인 최고위 당국자들은 외교, 한미 관계, 국내 행정, 핵 비확산 등에 밝은 인물들로, 북한 전문가와는 거리가 있다.
지난달 연평도 포격 당일 ‘확전 자제’ 메시지가 공식 외교안보 책임자가 아닌 경호처장에서 비롯돼 외교안보수석의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대변인을 통해 언론에 배포된 것은 그만큼 이 정부에 탄탄한 외교안보 ‘키맨’(중심인물)이 없음을 드러낸 단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향후 남북관계 개선까지 고려해 외교안보라인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출입 K기자는 “전임 유우익(柳佑益) 실장은 정권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어선지 이동관 전 홍보수석-박재완 전 국정기획수석-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 등 ‘실세’들을 조정하면서 컨트롤 타워 기능을 유지했었다”면서 “정정길(鄭正佶) 실장처럼 사람만 좋은 사람이 청와대 실장으로 왔고, 후임인 임태희 실장도 조정자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군(軍)과 직접 관련된 최고위직은 이희원 안보특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에 따르면, 이 특보는 포격 도발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려가 상당한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천안함 폭침 이후 서해 5도에 대한 대비태세를 제대로 갖추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는데 막상 도발을 당해 보니 전혀 달라진 게 없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평소 이 특보의 성실함을 상당히 신임했는데, 이날만은 상당히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이 특보는 국방장관 1순위 후보로 지명이 됐는데, 내부 청문회 과정에서 2순위 후보인 김관진 국방장관 후보자에게 밀리며 다시 한 번 상처를 입었다. 한나라당 의원들 일부가 “안보특보로서 북한 도발 이후의 미숙한 대응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며 ‘비토’를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실 김태영 장관을 바꾸기로 하면서 내부적으로 이희원 특보가 장관이 되는 것으로 정리돼 있었다”면서 “내부 청문회도 이번 연평도 사태가 터지기 전에, 김관진 발표하기 전에 이미 했다”고 했다. 그는 “발표 당일 점검 차원에서 또 한 번 했을 수는 있다”면서 “그런데 이번 사태 터지면서 하는 게 너무 못하더라. 나도 그 전까지는 이 특보가 장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다 싶어서 임태희 실장한테 이 특보는 안 되겠다고 했다”고 했다.
청와대 출입 K기자는 “일부 언론에 이희원 특보가 국방장관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갔고, 이 대통령이 ‘내가 언제 임명했느냐’며 ‘당신들이 언론 플레이를 했지’라며 참모들을 질책했다”며 “화가 난 이명박 대통령은 ‘들러리’였던 김관진 후보자를 세 시간이나 면담한 다음, 임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평도 사건으로 진돗개 하나가 발령된 상태에서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서 그런 촌극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라며 “군 관련 인사를 할 때면 MB의 뜻대로 잘 안되고, 청와대 내 군 출신 인사의 영향을 받는 것 같더라”고 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희원 특보는 군 내부에서도 평가가 별로다. 하지만 김관진은 다들 장관감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다”라며, “김관진 장관은 다른 이유로 1순위는 안됐는데, 항상 후보 중에 3순위 정도로 들어 있었다. 인사팀에서 나한테 김관진을 포함해 3명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한 게 발표한 그날 오전이다. 당일 결정됐을 것”이라고 했다.
육군대장 출신으로 청와대에서 사실상 군 문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김인종 경호처장 역시 처지가 다르지 않다. 연평도 포격 당일, 청와대 지하벙커 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한나라당 의원들의 공격에 시달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인종 처장은 ‘북한의 도발이 연평도에 그치지 않고 서부·동부전선으로 번질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을 뿐, 확전 자제 발언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문서 공개파문의 직격탄을 맞고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6자회담 수석대표에 대한 반감, ‘북한과 비핵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홍위병 출신의 마르크시스트’란 말을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에게 흘린 사실이 문서에서 공개됐다. 평소 이 대통령은 대중국 외교의 중요성을 참모들에게 강조하고 있던 차였다.
청와대 출입 C기자는 “청와대는 한때 대북 정책을 놓고 ‘매파’와 ‘비둘기파’ 갈등을 벌여왔다”면서 “천영우 외교안보수석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보수적 성향을 견지해 왔고,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임태희 비서실장은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고 했다. 그는 “임태희 비서실장이 김성환 수석의 후임으로 천영우 외교부 2차관이 부임하자 ‘헌차(김성환)가 가고 똥차(천영우)가 왔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그는 “천영우 수석은 영국대사 시절, 무관으로 온 해병대 장교에게 서해5도 상황에 대해 철저하게 학습했다”면서 “귀국해서 백령도를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 대응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라고 했다.
C기자는 “외교안보수석 물망에도 올랐던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병역면제’로 가끔 곤욕을 치르지만, 청와대 안에 그만큼 전문성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며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그에게 안보 관련 자문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현안에 대해 그의 코멘트를 중시한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안보의 신경망을 완전히 장악해서 초동단계에서 긴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그것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는 ‘국방선진화추진위와 천안함 사태 이후 발족한 안보총괄점검회의가 우리 군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점검했음에도 불구, 연평도 피폭을 당한 것을 어떻게 설명하나’라고 묻자, “국방선진화추진위가 보고한 우리 군의 71개 과제는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국방개혁 과제다. 어느 나라에 보여줘도 감탄할 정도로 완벽하다”면서 “선진화추진위와 총괄점검회의를 탓하기 전에 우리의 정신전력을 가다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예비역 장성들의 ‘군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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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이희원 안보특별보좌관(오른쪽)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
2007년 대선에서 예비역 장성들의 정치참여가 두드러졌다. 예비역 장성들은 서초국방포럼(위원장 김인종 경호처장), 용산포럼(대표 도일규 전 육군참모총장), 마포안보포럼(위원장 박승부 예비역 소장) 등으로 대표되는 그룹들이 출범해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대선이 끝나고 이종구(李鍾九) 성우회장의 제의로 세 포럼을 통합해 업무를 분담하려 했으나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한 예비역 장성은 “성우회에 가면 옛날 하나회 출신 장교들이 다 모여 있고, 서초국방포럼은 정권 실세에 줄을 대려는 장군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면서 “현 정부 들어와 김인종 장군의 서초국방포럼이 군 관련 요직을 전부 장악해 있는 양상”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대선 때 예비역 장성 113명, 예비역 대령 6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한 서초국방포럼은 김인종 전 대장이 한나라당 안보자문위원장을 맡으며 이 후보에게 여러 차례 대면보고를 한 것이 인연이 됐다. 서초포럼은 김인종 위원장을 비롯 박세환 재향군인회장(2군사령관 역임), 김진호 전 합참의장, 신일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김영관 전 해군참모총장 등 4성 장군만 6명이다. 서초국방포럼은 대선이 끝난 후 공식 활동을 접었지만, 그때 인연을 맺은 예비역들은 김인종 처장의 주선으로 요직에 진출하고 있다. 예비역들의 정치세력화가 지나치면 문민통제를 위배하고 방해하게 된다. 예비역들의 조직은 현역들에게 ‘군폐(軍弊)’를 끼칠 수밖에 없다.”
예비역 장성들은 2010년 5월, 안보특보 임명을 둘러싸고 한 차례 격돌했다. 예비역 장성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동관(李東官) 대변인에게 지시해 안광찬(安光燦) 장군을 대통령 안보특보로 임명했다. 그러나 12일 만에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안보특보가 이희원 장군으로 뒤집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안광찬 장군은 이종구 전 성우회장의 후원을 받았고, 이희원 장군은 김인종·유우익 라인의 지원을 받았다. 결국 김인종 장군의 ‘승리’로 끝났고,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만에 인사가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천안함 사태 이후에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지자, 이 대통령은 ‘이 와중에도 자리 싸움이냐’며 질책했다. 보다 못한 대통령이 한마디를 했던 것이다.”
재향군인회의 한 예비역 장성은 “천안함 때 주변에 안보참모가 없다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안보특보를 임명하긴 했지만, 대통령이 여론에 너무 끌려다니는 경향이 있다”면서 “대통령이 안보에 대해 학습하다 G20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손을 놨고, 확전 메시지 소동, 후임장관 임명에 따른 인사청문회 준비에 정작 연평도를 관리할 틈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군의 인사도 마찬가지”라며 “청와대의 김모 비서관, 국방부의 김모 실장, 물러난 김모 기무사령관도 인사에 간여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이들이 인사를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원성의 대상임에도, 모든 군에서 두려워하고, 아무도 교체하라는 말을 못한다. 두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통 작전과 관련 없는 인물들을 채용하고, 전문가 그룹들을 배제했다. 이런 사실을 방치한 청와대, 이들에게 인사청탁을 하는 예비역 장성들도 결과적으로 우리 군을 약화시킨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합동작전과장이란 합참의 보직은 육사의 매 기수당 1명을 선발해 정통 작전통으로 키우는 필수 코스였다.
이들이 선발되면 작전처장→야전→합참 작전부장→야전→합참 작전본부장으로 단계를 거쳐 육성하고, 이들은 1차에서 진급시켜 군의 엘리트로 양성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이들을 노무현 정권의 인물들이라고 ‘낙인’ 찍어 한직으로 내몰았다. 심지어 사단장으로 내보내지도 않았고, 합참은 합참의장부터 합동작전과 무관한 ‘직능’을 가진 장교들로 채워졌다. 합참의 합동직위 370여 개는 합참대학을 이수하고, 동일 유관직위를 2년 이상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합참에는 그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하나도 없다. 군의 초동조치와 통수권자의 조치사항들을 그림처럼 그려낼 수 있는 전문가 그룹들이 사라진 것이다.”
정보병과의 한 장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야전정보 출신들이 약진하고, 전략정보를 한 사람들은 거세됐다”면서 “전략정보는 무기체계나 북한 내 정치국 상무위원, 당 기구 변화, 김정일(金正日)의 건강, 야전 무기 체계 등을 연계해 도발의 위험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상희 장관 시절, 황의돈(黃義敦) 당시 국방정보본부장은 2009년 1월부로 합참의 정보본부 조직들을 작전본부로 귀속시켜 버려 지휘체계 문란, 정보융합 능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고 했다. 그는 “작전은 정보에 개입하면 정보가 왜곡되고 조작된다는 ‘럼즈펠드의 오류’(13만명 미군으로 이라크 작전을 수행하겠다면서 이라크 정보를 주무르다 이라크전쟁 초기 실패를 가져옴-<이라크스터디그룹보고서, 2006년 1월>)를 지금 우리 군은 경험하고 있다”면서 “‘전략정보’ 요원들을 배제하고, ‘전투정보’만 강조함으로써 작전요원들에게 귀속되는 우(愚)를 범해 전략정보가 약화되고 있다, 합참은 육·해·공이 모인 친목단체가 되려는가”라고 한탄했다.⊙
글 : 吳東龍 月刊朝鮮 기자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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