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주변국으로부터 영원한 눈총을 받는다. 독일정부는 히틀러 망령을 지우려 안간힘을 쓴다. 네오나치와 독일민족을 외치는 극우에 대한 독일정부의 제제는 매우 엄격하다.
一話: 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했던 네델란드의 한 여성은 독일로 도망 와 사는 수 밖에 없었다. 네델란드 휴가지역의 호텔은 되도록이면 독일사람들을 받지 않는다. 필자의 믿기지 않는 반문에 독일 사람은 당한 예를 들려줬다. 한동안 네델란드 경찰은 자국 내에 조금만 잘못된 독일 차만 봐도 딱지를 뗐다. 독일정부의 항의로 수그러들었다.
二話: 불란서 귀족의 두 딸들은 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하는 바람에 또한 독일로 도망쳐 나와 산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은즉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 네델란드 여성 또한 똑 같은 사정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불란서 사람들은 한 때 독일사람들을 사람 취급도 안 했다. 서독정부서부터 지금까지 독일지도자들은 불란서에 공을 들였다. „독일의 가장 친한 (여자)친구“ 불란서 국경일 (11월11일 일차대전 승전기념일)에 참석한 독일 수상 Merkel을 소개하며 불란서대통령 Sarkozy가 한 말이다. 메르켈 앞 슈뢰더 수상은 불란서의 같은 행사초청을 거부한 바 있다. 1차 대전 당시 獨佛 피아 幾百萬이 넘는 인명손상이다. „역사는 기억력을 죽이지 않는다“는 사르코지는 양국의 전몰유가족과 특히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우리는 역사를 의식하기로 여기에 섰습니다.“ 메르켈의 답이다. 둘은 두 나라의 발전적인 관계를 다짐했다. (사진은 독일 국기를 들고 메르켈을 환영하는 불란서 젊은이들)
바르샤와 무명용사 앞에 무릎 꿇은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 독일은 주변국에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독일은 폴란드에 엄청난 전쟁희생비용을 지불했다. 지금도 독일과 폴란드 정상이 만나면 국경을 맞댄 두 나라의 운명과 두 대전의 불행을 주제로 삼는다. 용서와 화해는 정치적인 몸짓이다. 독일로서는 시장확보이다. 독일이 지불한 돈은 폴란드가 독일 기계를 사들임으로써 다시 독일로 흘러 들어온다. 폴란드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구매력이 늘어나고 독일은 선진기술제품을 팔 수 있게 된다. 怏宿감정은 피차 좋은 일이 못 된다. 과거사를 잊을 수 없으나 그렇다고 영원한 未濟로 남겨둘 필요까지는 없다. 국가지도자들이 국익을 위해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서독의 초대수상 아데나워와 불란서 외상 독일계 슈마허의 전후 독불친선협정은 오늘날 유럽연합의 모태이다. 아데나워는 통독에 불란서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걸 일찍이 파악했다.
파아노 독주실력의 서독수상 슈미트는 당시 불란서 대통령 지스카르텡과 집무시간에 전화로 음악에 관한 환담을 나눌 정도로 가까웠다.
통독 수상 콜은 불란서가 반대하면 통일이 꼬이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독일은 절대로 통일 돼서는 안 된다“ 불란서 점령사령관이 인터뷰에서 밝혔다. 필자가 사진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바 콜은 외투 호주머니에 넣은 미테랑의 손을 억지로 끄집어 내 꼬옥 잡았다. 두 사람은 테러진압을 위한 독불 기동타격연대를 창설했다.
현 불란서 대통령과 독일 수상 메르켈. 용서와 화해를 넘어 밀월을 즐긴다. 독일언론은 애인 사이 같다고 한다. 대미관계에 같은 목소리를 낼지 흥미진진하다. 미국의 제2차 이락 침공 전 당시 독일 수상 슈뢰더는 불란서와 반전에 합의했으나 불란서가 일방적으로 破棄했다. 경쟁국 두 나라의 국익은 언제나 갈린다.
일본 왕 앞에서 고개 숙인 이명박은 일본총리와 청와대 만찬에서 간빠이(乾盃의 일본발음)를 외쳤다. „타케시마(獨島의 일본발음)에 관해서는 적당하게 얘기하고 넘어가기로 하고... 앞으로 지도에 (한라산을) 제주의 후지산이라고 표기하겠다.“ 노무현이 일본총리를 만나 너스레를 떨었다. 일본무역역조보다 대통령들의 말과 행태는 무엇보다 문제이다.노무현 같은 툭하면 일본에 대한 강경발언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이명박 식 鞠躬은 실용주의와 거리가 멀다. 개인적으로 일본 왕에게 얼마나 많은 신세를 지고, 얼마나 많은 존경심을 품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분명 아니다. 국민으로서 민망함은 둘째 치고 어느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 게 더 탈이다.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고, 우리는 우리이다.
독일과 다른 일본이 더 문제이지만 우리 쪽에도 문제가 많다. 일본이라면 고개를 돌린 이승만 이후 일본에 대한 우리의 앙금은 쌓이기만 했다. 일본이 가까이에 없었다면 우리의 경제발전이 그만큼 늦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일본 놈 때려 눕히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한 김구만 존경의 대상일 수 없다. 영국치하에서 삶을 영위한 인도의 간디는 언제나 한 길을 걸은 건 아니었지만 인도국민의 그에 대한 존경심은 한결같다.
한 신부는 키우는 개를 박정희라 부르며 밥 줄 때마다 발길로 내지른다고 자랑한다. 다른 한 신부는 요즘 나도는 박정희 혈서와 충성맹서를 문제 삼아 홈피에 올린다. 본분을 逸脫, 할일 없어 주접을 떤다. 이런 자들에 의하여 예수가 바라는 세상평화는커녕 저주의 혼란은 확대 재생산된다.
박정희가 일본 왕 맞으려고 고속도로 놨나! 일본 왕에게 바치려고 경제발전에 그토록 비지땀을 흘렸나? 공이 과를 덮을 수는 없다. 역사적인 가치를 선택하면 그만이다.
친일인사명단. 이런 걸 만든 사람들의 조상은 일제시대를 피해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왔나! 빨갱이 권오석의 사위 노무현은 대통령까지 해먹었다. 불란서는 독일에 협력한 10만 이상의 인사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했지만 사정은 우리와 다르다. 무려 36년간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해외로 나간 사람들보다 남아 투쟁하거나 나라를 지켜온 사람들의 용기가 더 嘉賞할 수 있다. 일본 시대에 교육을 받고 해방후 조국에 기여한 인물들은 많다.
여기서 박정희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의 젊을 때 행각(친일)에 반민족적 사실이 있었다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야 그러지 않은 사람들의 정의와 민족정기가 선다. 정의와 민족정기의 판단기준이 된다. 이런 일로 박정희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현시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百害無益이다. 뒤에 김용옥을 예로 들겠지만 김일성의 반일운동을 浮刻시키려는 친북좌파 즉 좌빨들이 앞장섰다는 데 反感이 일고 信憑性이 떨어진다.
조병옥이 친일파라고 소란을 피운 민주당 친일청산인가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 위원횐가 무엇에서 소란을 피웠던 김희선. 그녀는 독립운동가 집안임을 자랑하기 위하여 족보까지 바꿨으나 정작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헌병 오장으로 독립군 잡아들이는 앞잡이였음이 밝혀졌다.
한말 가렴주구의 대명사인 전북 고부군수 조병갑의 증손녀 조기숙은 오늘도 떵떵거리며 산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조선총독부 기관지 기자로 얼마나 친일했는지 물어보지 안 해도 뻔하다.
증조부대에 대원군에게 잘못 보이는 바람에 -집안의 한 종조부는 그의 칼에 맞아 죽었다- 벼슬길이 끊긴 필자의 집안. 무지렁이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본에 협력할 능력이 없었다. 막내 작은 아버지는 徵用에 끌려나가 日本皇軍 만세를 불렀을 터이다. 조상을 잘 둔 조기숙이야 노무현의 홍보상궁으로 집안을 빛냈지만 나 같은 놈이야 백 번 노비어천가∙이비어천가를 써봐야 소용이 없는 줄 알기에 徒勞의 이런 글이나 쓴다.
김일성의 반일투쟁기록으로 그가 소나무 썼다는 구호문을 선전하며 북괴 김일성 세습의 정통을 외치는 김용옥 집안의 일본시절 행적이 궁금하다. 그는 이승만 시절 반일투사들이 산으로 숨어 들어 빨치산이 되었다고 역사를 왜곡∙날조 선동한다.
일본점령 36년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을 향하여 이를 갈기 전에 나라를 왜 잃어야 했는지 뼈저린 반성부터이다. 과거에만 사로잡힌다면 어처구니 없는 낭비만 거듭한다.
정치가들과 역사가들이 게을러서이다. 일본은 不遠不近의 나라임에 틀림없다. 통일에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훼방을 놓을 수 있다. 한반도의 문화역사를 뿌리로 하는 일본은 신라∙백제시대부터 우리와 恩怨의 관계이다. 영원한 반일과 극일 구호 또한 낭비이다. 민간교류도 중요하지만 정치지도자들은 일본의 태도를 바꿔놔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독불 국민감정을 희석시킨 건 독일정치가들이다. 일본의 역사서 왜곡은 줄곧 이어져 오지만 우리의 대응은 언제나 일과성으로 끝난다. 독도문제도 그렇다. 09. 11. 14./16. 수정
글/백선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