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지휘권인가 직권남용인가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은 서울동부지검 ‘인천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 합동수사팀에 백해룡 서울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을 파견하는 지시를 내렸다. 이를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직접 파견 지시한 백해룡, 하루 쉬고 출근해 임은정 직격
백 경정은 지난 15일 파견 첫날 라디오 방송 출연 등 개인 사정을 이유로 연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16일 첫 출근한 백 경정은 서울동부지검 청사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인사 명령에 따르는 것이 공무원의 의무”라며 “출근의 의무가 있어 출근했다”고 했다.
파견 첫날 출근하지 않은 그를 향해 취재진이 ‘지휘권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자, 백 경정은 “그런 적이 없고 단 한번도 절차를 어긴 적이 없다”며 “지금도 인사 명령이 났고 출근 의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백 경정은 수사단을 지휘하는 임은정 지검장에 대해서 “소통하지 않는다”고 밝혀, 합동수사단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합동수사팀은 위법하게 구성된 불법단체라고 주장해왔는데 그곳으로 출근하고 있다”며 “공직자로서의 신념이 흔들린다”고 했다.
백 경정의 이같은 반발은 검찰이 직접 마약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검찰이야말로 세관 마약사건을 은폐·축소시킨 ‘수사 방해 세력’인데, 왜 다시 주도권을 쥐고 합동수사단을 이끄느냐”며, 자신이 합수단 파견을 거부하거나 실질적인 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천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은?...백해룡이 ‘폭로자’이면서 ‘피해자’
백 경정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재직하던 2023년 말레이시아인 필로폰 밀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인천세관 공무원 약 12명이 연루됐다는 정황을 파악했다. 수사 결과 총 108.2kg(시가 약 2,200억 원)에 달하는 필로폰 밀수가 밝혀졌고, 이는 국내 최대 규모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경찰 내부 보고 직후 ‘용산에서 너를 괘씸하게 본다’는 발언과 함께 상급부서의 수사 방해가 시작되었고, 백 경정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검찰·경찰·국정원 등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수사팀이 인천세관을 압수수색할 계획을 세웠으나 검찰이 영장을 두 차례 반려했고, 이후 수사팀은 해체되었으며 백해룡 경정은 감찰 및 경고 조치를 받고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로 좌천되었다. 바로 이 점에서 백 경정은 이 사건의 폭로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었다.
그는 수사를 중단시킨 검찰과 세관의 유착을 폭로했지만, 그 결과 내부 문제 제기자(whistleblower)로 낙인찍혀 조직 내부로부터 배척당했다. 이후 ‘세관 마약수사 외압 합동수사팀’에도 배제되거나 형식적으로만 참여하는 등 사실상 피해자가 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6월 검찰은 경찰,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과 함께 합동 수사팀을 구성했다. 그러나 당시 백 경정은 “합동수사팀이 출범하면서 대검은 물론이고 경찰 지휘부에서 (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었다”며 “출범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합류하지 않을 거고 도움을 줄 의사도 없다”고 했다. 사건을 은폐한 당사자인 검찰과 경찰 수뇌부가 수사팀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이 대통령, 백해룡을 합동수사팀에 파견한 의도는?
강서구청 화곡지구대장으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그를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다름아닌 이재명 대통령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12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인천세관 마약수사 외압’ 사건의 수사 책임자인 동부지검 임은정 검사장에게 ‘철저한 수사’를 당부하는 한편 이 사건 폭로자이자 ‘피해자’인 백 경정을 합동수사팀에 파견하는 등 수사팀을 보강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는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받았다. 백 경정을 향해 "말만 앞세우지 말고, 권한을 줄 테니 어디 한 번 수사해 보라"는 취지로 풀이됐다. 백 경정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반복해온 점을 감안해, 실제로 수사권과 수사 기회 모두를 부여한 셈이다.
또한 이 대통령은 기존 합동수사팀에도 수사 검사 추가 등 역량을 강화하고, "철저하게 수사할 것"을 법무부 장관에게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이 취임 이후 구체적 개별 수사에 대해 직접 지시를 내린 것은 매우 드문 사례로, 이번 사안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 일개 경정에게 직접 수사 지시해...현행법 상 ‘위법’ 지적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거세다. 현행 검찰청법 등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도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돼 있고, 일선 검사나 검사장 등에게 직접 수사 지휘를 내릴 수 없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일개 경정에게 파견 지시를 함으로써 수사를 직접 지휘하는 것은 현행법상 위법한 행위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이 사건의 피해자인 백 경정을 수사에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관 본인이 피해자인 때에는 수사 직무의 집행에서 제적된다는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이런 식이면 ‘대장동 비리’ 수사는 유동규(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씨한테 시키면 되고, ‘쌍방울 대북 불법 송금’ 수사는 김성태(전 쌍방울 회장)씨가 수사관 하면 된다”고 비판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역시 “백 경정이 어떤 근거를 제시한 바 없는데도 이 사람을 쓰라고 하는 건 대통령이 그 얘기가 맞다고 공인해 주는 것”이라며 “그게 대통령이 할 일인가”라고 했다.
백해룡, “내란 수행 자금 확보를 위해 마약 수입 독점 사업한 것”
따라서 대통령이 이같은 비판을 무릅쓰고 백 경정을 투입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정치권에서는 백 경정이 지난달 국회 청문회에서 한 발언이 이 대통령의 지시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백 경정은 지난달 24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및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내란 수행 자금 확보를 위해 마약 수입 독점 사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천세관 마약게이트는 단순한 외압 사건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불법 자금 조달 사업’이었다”고 증언하며, “내란 수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지하경제 수단으로 마약 수입 독점 구조가 형성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특히 백 경정이 마약수사에 외압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로 좌천된 이후로 알려진다.
신자유연대, “이 대통령을 직권남용으로 고발”...국민의힘, “이 대통령이 내란몰이 위해 이용”
이에 대해 최병묵 정치평론가는 “일개 경정 인사는 서울경찰청장 정도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걸 윤 대통령 부부의 마약 밀수 자금까지 넘어가면, 망상이다. (백 경정은) 망상론자 내지는 음모론자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국회 청문회에서 황당한 망상을 얘기한 백 경정을 이 대통령은 임은정 동부지검장의 수사팀에 합류시켰다. 최 평론가는 이 대통령이 백 경정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 “(백 경정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마약을 연관시켰으니, 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흠집낼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통령이 내란 몰이를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하고 있다”며 “수사가 더디니 백 경정을 직접 투입하는 무리수까지 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백 경정을 직접 투입하도록 한 지시와 관련해 시민단체 신자유연대(대표 김상진)는 이 대통령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형사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대전광역시의원 출신의 김소연 변호사는 국민의힘을 향해 ‘이재명 탄핵소추안’발의를 촉구했다. 김 변호사는 “채 해병 사망 사건 수사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며 더불어민주당이 그 난리를 쳤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대놓고 수사팀에 ‘백해룡을 파견하라’고 지시하고, 임은정 지검장에게는 ‘수사 검사를 추가 요청하라’고 하명하는 등 수사 지휘를 했으니 탄핵소추안 발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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