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방

민주당, '변호사 자격 없어도' 대법관 될 수 있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발의

서석천 2025. 5. 24. 04:25
 

 

'끼리끼리 추천'했던 조광조의 '현량과', 당성 강한 혁명가를 판사로 임용했던 중국 연상케 해 

  • 2025년 5월 1일 오후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은 5월 23일 변호사 자격이 없는 비법조인도 대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대법관의 자격을 ▲ 판사·검사·변호사 ▲ 변호사 출신 공공기관 내 법률 담당자 ▲ 변호사 출신 법학 계열 교수 가운데 각각 20년 이상 일한 사람으로 한정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범계 민주당 간사가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하며 법률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에게 '변호사 자격이 없어도' 대법관이 될 수 있는 길이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또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의 수를 기존 14명에서 30명까지 증원하되, 이 가운데 최대 3분의 1(10명)을 변호사 자격이 없는 이들로 채운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미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 출신 대법관, 헌법재판관들이 즐비하고, 판사들이 집단행동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게 다반사가 된 판국에, 굳이 그런 개정안을 내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튀르키예(터키)나 헝가리, 베네수엘라의 경우처럼, 권력자가 좌지우지하는 사법부를 만들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법원조직법 개정안 중 ‘학식과 덕망’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 풍부' 운운 하는 대목을 보는 순간, 쓴웃음이 나왔다. 일본 재판소법은 최고재판관의 요건으로 ‘식견’과 ‘법률 소양’을 꼽고 있지만, ‘덕망’이나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 풍부' 같은 대목은 들어 있지 않다.

 특히 '학식과 덕망'운운하는 대목에서는 ‘학문과 덕행, 재주가 뛰어난 인재’를 천거하게 하여 임금이 면접보고 채용했던 조선 중종 때의 현량과(賢良科), 중국 위진(魏晉)남북조시대에 지방에 중정(中正)이라는 관리를 두어 ‘재능과 덕망 있는’ 인물을 천거해 조정 관리로 임용되도록 했던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이제 나라가 완전히 전(前)근대로 퇴행 하는구나’ 싶었다.  

 

현량과와 구품중정제 모두 기존의 폐쇄적인 엘리트 충원제도를 깨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학문, 덕행, 재주, 재능 같은 기준에서 보듯 선발 기준이 객관적이지 않았다. 결국 현량과는 사림(士林)인 조광조 일파가 끼리끼리 추천하는 것으로, 구품중정제는 지방 유력자들이 자기네 자제들을 서로 추천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민주당의 법원조직법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다. “고위 엘리트 법관 중심인 현재의 대법관 구성을 다원화해 ‘사법 카르텔’을 해체하겠다”는 명분부터가 현량과나 구품중정제의 도입 취지와 흡사하다. 하지만 그 결과 또한 불을 보듯 뻔하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사회적 풍토 속에서 대법관으로 추천되는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하며 법률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이 누구겠는가? 결국은 소위 시민단체나 특정 정당 언저리에서 놀던 사람들을 끼리끼리 추천하는 게 될 것이다.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 전문적인 법관이 아니라 당성(黨性)이 투철한 퇴역 군인 등 혁명가들이 법관 자리를 꿰찼던 1980년대까지의 중국처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사법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더 악성의 새로운 ‘사법 카르텔’이 형성될 것이다. 

혹자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경우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 외에도 학자나 행정관료 출신이 최고재판관으로 임용되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에서 최고재판소 재판관으로 임용되는 법학자는 주로 국립대학교의 법학 교수 출신이고, 행정관료 출신은 내각법제국 장관이나 외무성 국제국장 출신이다.  

 배진영  기자 2025-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