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초대형 개발 비리, ‘김포판 대장동’ 뇌관 터지나

서석천 2023. 5. 19. 12:46

2조원 넘는 규모… “김포시가 가져가는 게 하나도 없어”

⊙ 민관 합동개발 형식임에도 민간업자에게 이익 몰아주는 구조… 대장동과 흡사
⊙ 검찰, 감사원 수사 의뢰 후 한강시네폴리스(1조8000억원)·감정4지구(2200억원) 수사 착수
⊙ “초과이익 환수 방안 마련해야 한다고 했던 공사 실무자 퇴사 권고 받아”
⊙ 정하영 전 시장(민주당) ‘감정 4지구’ 특혜 혐의로 검찰 수사 중
2009년 촬영한 김포시 고촌읍 걸포동과 향산리 일대 시네폴리스 부지 전경. 사진=조선DB
 
  감사원이 최근 김포시 ‘민관 합동개발’ 사업지 2곳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김포 한강시네폴리스와 감정4지구다. 각각 사업비 1조8000억원, 2200억원으로 합하면 2조원이 넘는 규모다. 수사요청 대상에는 전임 시장을 비롯해 김포도시관리공사 임직원 및 민간 개발업체 관계자 등이 포함됐다.
 
  대장동 개발사업 이후 민관 합동개발사업을 조사해온 감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김포시 등 경기도 기초자치단체 6곳과 사업투자사 등을 상대로 부동산개발사업 추진 실태를 집중 점검했다.
 
  한강시네폴리스, 감정4지구는 민주당 출신 시장 시절인 민선 5기(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 사업이다. 시(市)는 두 사업 모두 민선 7기(2018~2022년) 당시 민관 합동개발 방식으로 전환했으며, 출자자 변경 공모를 통해 기존 민간 사업자를 대체했다. 감사원은 두 사업 모두 새롭게 선정한 특정 민간 사업자에 특혜가 돌아가는 구조라고 판단했다.
 
 
  민주당 시장 시절 ‘민관 합동개발’로 전환
 
김포 한강시네폴리스 조감도. 112만1000㎡(34만 평) 크기 부지에 들어서는 방송·영상·미디어단지다. 사진=조선DB
  감사원은 최근 ‘김포 한강시네폴리스’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김포도시공사 관련자들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수사 요청 대상에는 공사 임직원들과 민간 개발업체 관계자 등이 포함됐으며 현재 인천지검 특수6부에 배당된 상태다.
 
  총 사업비 약 1조8000억원 규모인 김포 한강시네폴리스는 고촌읍 향산리, 걸포동 일원 112만1000㎡(34만 평) 크기 부지에 들어서는 방송·영상·미디어단지다. 산업시설·지원시설에 더해 주거시설용지에는 대규모 아파트도 들어선다. 내년 준공을 앞두고 있다.
 
  김포시는 민주당 시장이 재직한 민선 5기부터 이 사업을 주요 시책 사업으로 추진했다. 2011년 일반산업단지계획 승인 고시 후 2014년 12월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Project Financing Vehicle)인 ㈜한강시네폴리스개발을 설립했다. 당시 민간 사업자(시행사)가 보상비 등 자금 확보를 하지 못해 2018년 좌초 위기를 겪었지만 민선 7기 정하영 시장 취임 이후 반전을 맞았다.
 
 

  2019년 중순 김포시는 출자자 변경 공모를 통해 기존 민간 사업자를 S사(社)로 대체하고, 건설·금융 출자자로 참여한 ‘IBK-협성 컨소시엄’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 여기에 김포도시관리공사가 공공출자자로 참여해 공사와 민간이 공동 출자하는 민관 합동개발사업 방식을 따랐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S사가 특혜와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며, ‘제3자’에게도 부당한 이득이 돌아갔다고 보고, 이와 관련해 PFV인 (주)한강시네폴리스개발 이사회에서 관련 안건에 찬성 의결을 한 김포도시공사 또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공사는 PFV를 지도·감독할 의무가 있다.
 
 
  소규모 신생업체가 지분 49% 보유
 
  ‘2023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S사는 출자자 변경 공모 무렵인 2019년 3월 25일 설립된 소규모 신생업체로, PFV 지분 48%를 갖고 있다. 공사의 PFV 지분은 20%다.
 
  감사원은 한강시네폴리스 사업의 실질적 대표사는 S사인데, 형식적 대표사인 ‘IBK-협성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부터 공모지침서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분 구조상 실질적 지배사이지만, 소규모 신생업체라 우선협상대상자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IBK-협성 컨소시엄’을 형식적으로 내세웠다는 의미다.
 
  감사원은 또 S사가 분양대행계약을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와 체결하고 PM(Project Management·개발사업관리)용역 계약 대상자 또한 자사(自社)로 정하는 ‘자기거래’를 통해 부당이득을 챙겼다고도 봤다. 이때 계약금액도 원가 계산 없이 자의적으로 결정했다.
 
  계약상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2020년 12월까지 사업토지 100% 확보 및 부지조성공사 착공’ 등 지급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부속합의서 체결의 형태로 계약서를 변경, 두 차례 막대한 금액의 인센티브를 수급한 정황도 파악했다.
 
  S사는 또한 한강시네폴리스 개발사업과 관련 없는 기존 민간 사업자와의 소송대금 또한 PFV 비용으로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감사원은 PFV 이사회에서 이 모든 안건에 찬성 의결을 한 김포도시공사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포도시공사 측은 “감사원의 판단 중 공사의 입장과 상충되는 부분들이 있어 답변 자료를 제출한 상태”라면서 “구체적 사항은 언급하기 어려우며,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터질 게 터졌다”
 
  공사 안팎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말이 나온다. 김포도시공사 전 관계자는 “30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을 하면서 김포시에서 가져가는 게 하나도 없는 사업”이라면서 “결국 민간업체에 모두 몰아주는 구조”라고 했다. 해당 업체의 부당한 인센티브, 자기거래, 사적 소송비 등을 PFV 비용으로 소진했기 때문에, 준공 후 PFV가 청산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또 “공사 지분 20%도 조성사업만으로 받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공사의 실질적 수익은 없다”면서 “특히 ‘민관 합동개발’임에도 30만 평 부지 중 공공기여, 즉 시에서 가져가는 필지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게 가장 의아한 부분”이라고 했다.
 
  김포 한강시네폴리스 사업은 당초 시 업무보고와 달리 수천억원의 개발 이득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공사 전 관계자는 “당시 PFV에 초과이익이 날 경우 기부채납 등의 조건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던 공사 실무자가 퇴사 권고를 받은 일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공사 내부 복수의 개발 사업담당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도 했다.
 
  김포시 전 관계자는 “주요 시책 사업의 경우 최종적으로 시장의 결정에 따라 추진된다”면서 “지난 12년 동안 민주당 텃밭이었던 김포시 개발사업들의 비리가 정권 교체 이후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인천지검 측은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檢, ‘개발 부당개입’ 전임 김포시장도 수사
 
22만1248㎡(약 6만6000평)에 임대주택을 포함해 3600여 가구의 공동주택 등을 공급하는 사업인 김포 감정4지구 조감도. 사진=조선DB
  김포시 출자출연기관인 김포도시공사가 감사원 감사를 받은 건 지난 2007년 출범 이래 처음이다. 현재 공사가 추진하는 민관 합동개발사업은 약 10여 개다. 이들 사업에 투입되는 총 사업비는 22조원에 달한다. 이 중 감사원은 한강시네폴리스, 풍무역세권개발사업, 감정4지구와 걸포4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다.
 
  그 결과 한강시네폴리스 외에 감정4지구 또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감정4지구와 관련해 전임 시장인 정하영 전 시장을 검찰에 수사 요청한 상태다.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로 정 전 시장을 수사 중이다. 개발사업에 부적절하게 개입했다는 요지다. 정 전 시장 외 공사관계자, 민간 개발업체 관계자 등 3인은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받는다.
 
  감정4지구 개발사업은 감정동 598-11번지 일원 22만1248㎡(약 6만6000평)에 임대주택을 포함해 3600여 가구의 공동주택 등을 공급하는 사업이다. 사업비는 약 2200억원이다.
 
  이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 개발업체는 김포도시관리공사의 내규에 따라 사업 면적 3분의 2가 넘는 민간인 토지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공사가 사업 지구 내 공공토지를 ‘동의율에 포함한다’라는 지침을 새로 만들면서, 민간업체가 수월하게 동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공사가 민간 개발업체에 유리한 지침을 만들어 일종의 ‘특혜’를 줬다는 거다. 또 민간 개발업체의 경우 토지주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등기’ 등 필수서류를 누락하거나 토지주의 동의를 제대로 받지 않는 등의 문제점도 발견됐다. 감사원은 최종적으로 정하영 전 김포시장이 이런 문제점을 알고서도 사업을 강행한 것으로 봤다.
 
 
  부실 심의 논란 가운데 SPC 설립
 
  그간 감정4지구 특혜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김포시는 지난 2013년 민간개발 방식으로 추진하던 감정4지구를 2018년 민관 합동개발로 사업방식을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민간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이 뒤따랐다. 당초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더해 2018년 중순 교통영향평가 통과, 건축경관심의 통과 등 대부분의 인허가 절차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는 도심공동화와 지역주택조합의 폐해를 이유로 사업방식 전환을 강행했다.
 
  정하영 전 시장은 2019년 10월, 김포도시공사와 새롭게 선정한 민간 사업자가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 출자 동의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당시 김포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는 “김포도시공사의 감정4지구 사업 추진의 필요성, 시급성, 민간 사업자 특혜 시비 등 끊이지 않는 논란에 대해 명백하게 규명한 후 다시 보고하길 바란다”며 두 차례에 걸쳐 심의를 보류했다.
 
 

  한종우 김포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전문기관에 사업타당성 용역을 거친 후 민간 사업자 공모를 해야 하는데 (모두 생략돼) 특정 민간 사업자에 특혜를 주는 상황이다. (사업권을 둘러싼 기존 민간 사업자와의 소송으로) 대상 토지의 권리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공사가 이 사업을 하겠다는 부분에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동의안은 2020년 2월 본회의에서 원안대로 통과됐으며, SPC는 부실 심의라는 논란 가운데 그해 8월 25일 설립됐다. 공사와 민간 사업자가 각각 50.1%와 49.9%의 지분으로 출자하는 구조다.
 
  정 전 시장은 당시 시의회 등을 통해 “해당 지역이 낙후돼 서둘러 개발하려고 했을 뿐 절차상 문제는 없으며, 민간 개발업체 또한 절차에 맞게 사업을 해왔다”고 했다.
 
  한강시네폴리스 및 감정4지구 특혜 의혹과 관련, 정하영 전 시장에게 사실관계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후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정 전 시장의 당시 비서실장은 “정 전 시장 본인에게 확인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대장동 개발 방식과 이렇게 닮았다
 
  김포 한강시네폴리스·감정4지구 모두 대장동 개발 방식과 유사하다. 우선 민주당 시장이 사업을 ‘민관 합동개발’ 방식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사업비 1조5000억원 규모의 대장동 개발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96만㎡(29만 평)에 5684가구를 지어 분양하는 사업이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2012년 대장동 개발 방식을 민관 합동개발로 전환했다.
 
  ‘민관합동’임에도 민간업체에 과도한 이익을 몰아주는 구조라는 점 또한 같다. 한강시네폴리스의 경우 30만 평의 사업부지 중 김포시가 가져가는 필지가 단 하나도 없으며, 아파트 분양이 아닌 (택지) 조성사업만으로 수익을 배분받는 구조다. 대장동 또한 1조2283억원의 민간 이익 중 아파트 분양에서 성남시는 한 푼의 공공이익도 얻지 못했다. 성남시는 택지 분양에만 참여하고 아파트 분양사업에서는 스스로 빠졌다. 민간에서 난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제안했던 도시공사 직원이 질책을 받거나(대장동), 퇴직 권고를 받은(김포) 것도 흡사하다.
 
  대장동 사업은 2015년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간업체와 공동으로 특수목적법인(SPC) ‘성남의뜰’을 설립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성남의뜰 전체 지분의 50%는 성남도시개발공사(성남시)가 보유했는데, 지분보유율 50%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3년간 1830억원(30%)을 배당받은 반면, 고작 7%의 지분을 보유한 민간주주(화천대유 1%, SK증권 6%)가 같은 기간 4040억원(70%)을 가져갔다는 게 사건의 핵심이다. 화천대유는 김만배가 지분 100%를 소유했던 자산관리회사고, SK증권은 김씨와 그가 모집한 투자자 6명으로 구성된 ‘특정금전신탁’이다. SK증권이 실제 소유주가 아니라 SK증권에 ‘성남의뜰에 투자해달라’고 돈을 맡긴 투자자 7명(천화동인)이 소유주라는 의미다.
 
  한강시네폴리스와 감정4지구 또한 대장동 ‘성남의뜰’에 해당하는 법인을 설립해 공사와 민간업체가 지분을 나눠가졌다. 특히 감정4지구는 대장동과 마찬가지로 자산관리회사를 만들고 비욘드감정제1차부터 7차까지 투자자 법인을 만들었다. 비욘드 투자자가 누군지, 배당금이 얼마인지와 한강시네폴리스의 세부 배당 구조 등은 현재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희대의 전세사기 남모씨와 송영길 측근 연루 의혹 추적기 

‘강원도 대장동’ 망상지구 개발사업, 송영길 측근이 밀고 최문순이 당겼다?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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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 인천시장 시절 손발 맞춘 투자유치본부장, 강원도로 넘어가 ‘전세사기’ 남씨와 손잡아
영세한 규모에도 강원도서 승승장구, “최문순 만난 후 망상지구 개발 사업자 됐다” 주장도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년 정치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대표로 당선된 2021년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캠프 주도로 민주당 고위직 인사들에게 돈봉투를 살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천광역시장(2010년 7월~2014년 6월) 재임 시절 함께 손발을 맞췄던 투자유치 담당자 이모씨가 인천 지역 사업가 남모(61·구속 수감 중)씨와 결탁해 ‘강원도의 대장동’으로 불리는 망상지구 개발사업을 기획했다는 의혹이 더해지며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송 전 대표의 측근들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향후 수사기관이 송 전 대표에 대한 직접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씨는 송 전 시장 재직 시기에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인자청)에서 일했던 인사다. 송 전 시장의 2011년 2월 25일자 ‘시정일기’에는 “(인자청) 투자유치 본부에 담당과장 이씨와 김모 팀장이 20여 차례나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사무실을 방문해 치열한 협상 끝에 결국 삼성전자가 송도에 최종 투자하기로 결정을 했다. 1%의 가능성을 100%로 만든 것”이라고 이씨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씨를 잘 아는 인천 지역의 한 사업가는 “인자청 소속이던 시절 어마어마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송 전 시장과 손발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인천 지역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씨는 이러한 송 전 시장의 신임과 자신의 능력을 발판으로 2012년 4월 20일 인자청 투자유치본부장으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송영길의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걸까. 이씨는 송 전 대표가 인천시장에서 퇴임하자 곧바로 시련을 맞았다. 유정복 인천시장 체제에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것. 결국 이씨는 2015년 6월 인자청을 나왔다. 송 전 대표가 퇴임한 지 약 1년밖에 지나지 않아 이씨는 쫓겨나듯 인천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후 보란 듯이 재기했다. 2016년 7월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동자청) 투자유치본부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문제는 이씨가 동자청에 입사해 망상지구 개발을 위해 인천 지역 건설업자였던 남씨와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상진종합건설을 운영하는 남씨는 ‘인천 빌라왕’으로 불리며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전세사기범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남씨는 아파트·빌라·오피스텔 2700채가량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알려진 피해자만 800여 명, 피해액은 500억원 이상에 이른다.

주로 인천에서 활동하던 남씨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전혀 연고가 없는 강원도 망상지구 개발 사업에 뛰어들게 됐을까? 취재 결과 이씨가 비밀스럽게 남씨에게 접촉해온 정황이 포착된다. 남씨가 망상지구 개발 사업 선점을 위해 2017년 8월에 세운 특수 목적법인(SPC) 동해이씨티국제복합관광도시개발(동해이씨티)의 이사는 기자에게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사이 이씨가 ‘동해에 사업자를 구한다’면서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그 내용을 남씨에게 보고했는데, 남씨는 ‘거기까지 가서 그 일을 뭣 하려 합니까’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지만 이씨가 재차 연락해와 ‘나는 말재주가 없으니 직접 (인천으로) 와서 (남씨와) 같이 얘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씨가 관련 자료 2권과 지도 등을 들고 남씨와 만나 설명하니 그때서야 남씨가 긍정적으로 답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더라.”

송영길이 신임했던 이씨, 동자청 투자유치본부장으로

이 과정에서 이씨는 자신이 속한 동자청에 보고도 하지 않고 남씨와 만나온 사실이 최근 강원도감사위원회 감사 결과 드러났다. 동자청 관계자는 5월 12일 “기록상 동자청장과 이씨, 남씨가 첫 미팅을 가진 건 2017년 3월 31일 인천 쉐라톤 호텔에서다”라며 “투자 결정을 받기 전이더라도 동자청 직원이 잠재 투자자와 미팅을 가지면 간략하게라도 출장 보고서를 작성해 기록에 남는데, 이씨가 첫 미팅 이전에 남씨를 만났다면 독자적인 판단으로 움직였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종합하면 이씨는 동자청에 입사한 후 기록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남씨와 접촉했고, 애초 사업 의사가 없던 남씨를 설득해 사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보통의 공공기관 직원의 행동이라고는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씨가 당시 상급자인 동자청장의 지시로 남씨를 만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오랜 기간 망상지구 문제를 파헤쳐 온 강원도의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 측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20년 동자청장과 미팅을 가졌다는 대책위의 한 인사는 “청장은 상진종합건설이 어떤 회사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며 “상진종합건설이 시행만 하는지, 시공만 하는지, 분양만 하는지, 아니면 모두 하는 회사인지 청장에게 물었지만 답변을 못 했고, 이씨 등이 옆에서 대신 알려줬다”고 말했다. “상진종합건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던 당시 동자청장이 이씨에게 ‘남씨와 만나라’는 지시를 내렸을 리 만무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이씨 배후에 유력 정치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4월 19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정치인이) 영향력을 행사해서 ‘빌라 사기꾼(남씨)’이 사업자로 지정되게 만들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여의도 안팎에서는 송 전 대표와 함께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의 이름이 거론됐다.

“최문순 전 지사, 이씨 소개로 상진종합건설 남씨 만나”

망상지구 개발 사업은 2011년 4월부터 2022년 6월까지 강원도지사로 3선을 한 최문순 전 지사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다. 앞서 복수의 매체는 “최 전 지사가 2017년경 이씨의 소개로 인천에서 남씨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동해이씨티 이사 역시 “최 전 지사와 몇 번 함께 자리한 적이 있다. ‘강원도에 투자를 해주면 자기네들도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는 형식적인 얘기만 오간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씨가 망상지구 개발사업자로 최종 선정되는 과정은 석연찮은 일의 연속이었다. 망상지구 신규 사업시행자 모집은 동자청과 남씨 측이 만난 2017년 3월 31일 직후인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진행됐다. 이 기간 남씨의 회사 상진종합건설을 비롯해 국내외 4개사가 모집에 참여했다.

경제자유구역법상 민간기업이 개발사업자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사업지구 토지 50%’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동해이씨티가 확보한 부지는 전체 사업면적(193만 평)의 28%(54만 평)에 불과했다. 2018년 4월 동자청은 산업통상자원부에 개발 계획 변경을 신청해 그해 10월 망상지구 전체 개발 면적을 3.91㎢(119만 평)로 줄였다. 그런데도 동해 이씨티 보유 토지는 46%로 여전히 50%를 넘지 못했다. 동자청은 단일 지구였던 망상지구를 3개 지구(약 103만 평, 7만 평, 9만 평)로 분할했고, 결국 동해이씨티는 망상1지구 토지의 52%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해 11월 동자청은 남씨의 SPC인 동해 이씨티를 망상1지구 개발사업자로 최종 선정했다.

상진종합건설이 2017년 6월 19일 동자청에 제출한 최초의 사업계획서(투자의향서)를 보면, 사업 면적에 ‘106만 평 개발’이라고 적시했다. 당시는 망상지구가 분할되기 전으로, 2018년 10월 동자청 신청으로 산업부는 망상1지구 면적을 103만 평으로 최종 확정했다. 이를 두고 망상지구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 측은 ‘특혜’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 상진종합건설을 미리 낙점해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최문순 “인천 전세사기와 망상지구 개발사업 무관” 해명

상진종합건설과 함께 망상지구 신규 사업시행자 모집에 참여했던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5월 4일 “동자청이 사실상 상진종합건설을 위해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동자청 직원으로부터 ‘상진종합건설이 사업자로 선정되면 그 밑으로 들어와서 사업을 하라’는 식으로 회유하는 듯한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20년 말 건강상 이유로 동자청에 휴직계를 낸 후 지병이 악화돼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씨와 함께 인자청에서 동자청으로 함께 넘어온 망상사업부장도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던 지난해 12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월간중앙은 자세한 내막을 듣기 위해 당시 망상사업부장에게 수차례 전화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 전 지사 측은 이 같은 특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5월 12일 “경제자유구역 면적은 동자청에서 안을 마련해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경제자유구역 지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변경된다. 강원도가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씨의 소개로 남씨와 만났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투자 유치 목적으로 28개 이상의 회사와 만나왔으며, 비단 특정 사업가와만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전 지사는 앞서 민주당 강원도당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도 “인천 전세사기 사건과 망상지구 개발사업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해당 사업은 관련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재임 기간에 진행된 사업이라는 이유로 전세사기 사건과 마치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도가 되는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송 전 시장 법률대리인 측은 “남씨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남씨의 SPC인 동해이씨티 측도 “망상지구 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해서는 춘천지검 강릉지청이 2020년 12월 이미 무혐의로 결정 낸 사안”이라며 “관련법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진 사안으로 문제 될 게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남씨가 정치적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얘기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천을 무대로 활동하던 남씨가 전혀 연고가 없던 강원도로 옮겨서 대형 개발사업을 따낸 배경을 두고 강원도 현지에서는 논란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편 남씨의 전세사기 수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주범인 남씨 등 18명에게 범죄단체조직, 사기, 공인중개사법 위반,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전세사기와 관련해 범죄단체조직 혐의가 적용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남씨의 딸은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법원은 채권자들의 강제집행, 가압류, 경매 등을 중단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측은 즉시 “허가도 되지 않을 회생을 계획한다는 것은 시간 끌기 목적”이라며 회생신청을 기각해달라는 진정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딸은 아버지인 남씨에게 명의를 빌려주며 임대인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피해자들, 국회 앞에서 남씨 처벌과 사태 해결 촉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단톡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 남씨 등 전세사기로 기소된 사람들의 형량에 대한 예상, 피해 관련 기사, 대응 방안, 피해자 사연,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 등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현재 전세사기와 관련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은 총 4명으로, 이들을 위한 특별법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요?’라는 팻말을 들고 기자회견을 연 피해자 단체는 “지금 발의된 특별법으로는 모든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철빈 피해자대책위 공동위원장은 5월 12일 “특별법과 지원대책은 형편없는 상황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분들이 힘을 모아주셔야 한다”며 “대환대출이나 특별법상 피해자 요건, 구제방안 등 피해자들의 현실을 외면한 대책이 계속 나오고 있다. 시간을 내 대책위와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달라”고 피해자들을 독려했다.

현재 남씨는 재판을 받고 있다. 3일 열린 2차 공판에서 남씨의 변호인은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는 성립하지 않으며, 다만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는 인정한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들의 고소장, 고소인 진술 조서, 수사기관 수사 보고서의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