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독자 개발을 그만둬 주십시오. 포니 개발로 기술력은 증명했다지만, 한국의 조립생산업체 모두를 합쳐도 한 해 고작 30만대 수준인 생산능력으로는 현대자동차의 존속 자체가 위험합니다. 더욱이 지금 국민소득 수준으로는 한국인이 자동차를 사줄 리가 없고요. 정 회장께서는 수출을 염두에 두신 모양인데, 쟁쟁한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신생업체인 현대차가 얼마나 잘 팔릴지 의문입니다. 자, 한 가지 제안하지요. 독자모델 개발을 그만두신다면 포드든 GM이든 크라이슬러든, 현대가 원하는 조건대로 조립생산을 할 수 있게끔 여러 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한국 내수는 물론 아시아 시장 전체가 현대의 몫이 될 것입니다.”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현대차를 해외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의연했다. “조만간 한국의 1인당 GNP도 5000달러 시대를 맞이할 것입니다. 또한 몇 년 전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는 등 도로 여건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자동차산업은 기계·전자·화학 등 여타 산업 분야에 미치는 막대한 연관 효과나 고용창출 능력으로 볼 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 무렵 한국은 자동차산업 성공에 꼭 필요한 관련 기술과 소재·숙련공·자본·내수시장 기반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나 정주영은 그것을 큰 장애물로 여기지 않았다. “첨단산업을 쫓아가려면 날아가는 비행기에 뛰어올라가 동승해야 가능합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 가면 됩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선진국들은 자기들이 하고 남은 부분만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분야는 남는 것이 없거나 별 볼 일 없는 것들입니다.”
- 1984 LA 올림픽에 참석해 교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대한올림픽위원장 정주영. /주간조선
긍정적 사고와 무서운 행동력의 화신인 정주영 앞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들도 굴복하고 문을 열어 준 셈이었다. 정주영은 1977년 제13대 전경련 회장에 취임하여 1987년까지 10년 동안 회장직을 최장기 연임하며 한국 민간 경제계의 본산인 전경련을 이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전경련의 오랜 숙원이던 회관 건립을 위해 기금 출연에 스스로 앞장서서, 1977년에 착공하여 1979년에 완공시켰다. 재임기간 동안 그는 10월유신,10·26사건, 신군부 등장,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격동기를 거치며 그때마다 우리 사회와 경제에 거세게 불어닥쳤던 거센 풍파를 맨 앞에서 대응해야 했다.
“위험을 피하고, 편안하고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려운 일에 뛰어들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도태되는 길이다.” 정주영은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때마다 자신을 만류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이 말은 단지 건설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가 평생을 살며 도전했던 사업과 그의 행동 특성들을 한데 모아 요약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동 건설시장 진출이라는 일대의 모험은 그런 정신이 없이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중동은 지리적으로도 한국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문화·종교·인습·언어 면에서도 한국인에게 가장 생소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