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방

장성택 숙청의 전말

서석천 2014. 1. 14. 20:17

권력지도부에 이상기류

“김정은 잘못 보좌한 책임 물어, 장성택 경질될 수도”

⊙ 개성공단 사태와 UN제재 책임 물어 김격식 경질
⊙ ‌김경희 생전에 권력기반 잡으려, 김정은 주변에 속속 자리 잡는 김경희의 사람들
⊙ ‌“김창선은 김경희 사람”, 김정은 비서실장 김창선의 처가는 김일성 집안과 대를 이어 친한 집안
2013년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김씨 일가. 왼쪽부터 김경희,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리설주, 김정은, 장성택.
  전 세계에 유례없이 가장 많은 이목이 쏠려 있는 집안이지만, 가장 폐쇄적인 일족이기도 한 김씨 일가. 2013년 5월 현재 그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2013년 4월 박봉주(朴鳳柱) 내각 총리 재취임, 20대 교통지도원 리경심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 수여, 2013년 5월 인민무력부장 교체…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평양발(發) 뉴스가 며칠 간격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초, 22세의 젊은 여성 리경심이 북한 공화국 영웅이 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살아서는 받기 힘든 공화국 영웅 칭호를 교통지도원에게 준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일각에서 ‘김정은(金正恩) 암살 시도설’을 제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리경심이 평양시 네거리 한복판에서 김정은 암살 시도를 막는 데 큰 공을 세운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며칠 뒤, 리경심이 김정은 암살을 막은 것이 아니라 김정은 선전물에 난 화재를 진압해 영웅 칭호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정일 생전에도 교통지도원이 영웅 칭호를 받은 일이 있긴 했다. 2명이 받았다. 한 명은 버스가 후진하는 걸 막으려다 본인이 버스에 깔려 숨진 뒤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한 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교통정리를 열심히 한다’며 김정일이 직접 지시해 인민 영웅 칭호를 받았다.
  
  
  “김격식은 개성공단, UN제재 책임 물어 바뀐 것”
 
2002년 10월, 장성택은 북한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직함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지난 5월 13일, 인민무력부장 교체 사실이 알려졌다. 김격식이 물러나고 50대의 장정남이 우리나라로 치면 국방부장관 자리에 올랐다. 김격식이 고령으로 인해 은퇴한 건지, 경질된 것인지 교체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김격식은 경질된 것이라고 한다. 김격식에게 개성공단 조업중단, 그 이전에 3차 핵폭탄 실험으로 UN의 추가 제재를 받게 된 책임을 지운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기자는 첩보를 입수했다. 김씨 일가 내부의 일이면서 북한 지도층의 향방과 긴밀히 연결된 소식이었다. 장성택. 오랫동안 최고권력층 곁을 지켜온 ‘곁가지(직계가족이 아니라는 의미의 북한용어)’, 유일한 김일성 직계 혈육 김경희(金敬姬)의 남편, 나이 어린 조카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장성택을 북한 당국이 경질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었다.
 
  당 간부들 사이에는 김정은이 정치를 잘못한 게 장성택이 잘못 보좌한 탓이라는 여론이 퍼져 있다고 한다.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김경희가 만약 죽게 된다면, 그 후에는 장성택이 지금의 위치를 보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얘기였다.
  
  전문가들은 북한뉴스만큼 오보가 많은 뉴스도 없다고 말한다. 사실 여부가 단시간에 확인되는 것도 아니고, 오보를 낸다고 북한이 이의제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과 루머가 난무한다.
 
  기자는 ‘장성택이 김정은 실정의 책임을 물어 경질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김경희 사후에는 존재 자체가 불안하다’는 북한 내부 소식 또한 개연성 없는 거짓 정보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김경희가 장성택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지 여부가 의문이라는 부분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고위 탈북자와 북한 관련 전문가들에게 현실성 여부를 확인해 본 것도 그 때문이다. 확인 결과 이들은 하나같이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김경희는 버릇이 없다”
 
2009년 3월 김정일이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수영장을 둘러보고 있다. 눈에 띄게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다. 현재 김경희의 모습이 이 시기 김정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북한전문가들은 말했다.
오른쪽 사진은 2012년 2월 15일 열린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한 김경희.
  그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김경희가 현재 북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다. 현재 북에서 김경희의 위치는 단순히 ‘선왕’의 여동생이자 왕의 고모가 아닌 그 이상이다. 역사 속 인물과 비교하자면 조선시대 인수대비(仁粹大妃)와 문정왕후(文定王后)를 합쳐놓은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장성택이 없어도 김경희 혼자 충분히 김정은을 보좌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생전에 김경희를 얼마나 아꼈는지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특히 김정일은 ‘엄마 없이 자란 김경희가 불쌍하다’며 무슨 일을 해도 보아넘겼다고 한다. 김경희가 술에 취하면 김정일에게 뽀뽀를 할 정도로 두 남매는 허물없는 사이였다.
 
  김정일이 2008년 두 달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을 때, 정권의 내부 문고리를 다잡고 있던 것도 김경희였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정권이 이양되는 과정도 김경희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김경희가 당 내부에서 허울뿐인 ‘바지저고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해 주는 일화가 있다. 지난 2009년 4월 5일 북한이 광명성 2호를 발사했을 때의 일이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10월 17일 연구소 산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찾아 발사 전 과정을 지켜봤다. 발사가 성공하자 김정일은 “실패할 줄 알았는데 성공시켰다”며 연구사들을 칭찬했다. 이틀 뒤인 4월 7일 이번에는 김경희가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찾아 성공을 축하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김경희가 뒤로 물러서 있지 않고, 활발히 움직이며 당의 핵심 사안을 챙기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성품은 어떨까. 김경희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고위 탈북자 A씨는 김경희에 대해 묻자 ‘김경희는 버릇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상대가 몇 살이고 관계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거리낌없이 행동하며 생활도 무척 불규칙했다고 한다. 관련 일화도 있다. 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가 만수대 의사당에서 열렸는데 그때 김경희가 그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김경희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김경희 살아 있을 때 권력 다져야 하는 김정은
  
  김경희 사후 운운하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은 김경희의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느 정도일까. 김경희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김경희를 만나고 온 B씨의 전언을 빌리면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이 더 까매졌다’고 한다. 김경희는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마셨다. 이때 간이 나빠진 데다, 김일성 집안의 3대 가족력, 심혈관질환·고혈압·당뇨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신문》 등에 공개된 김경희의 사진을 보면 병색이 완연하다.
 
  현재 마약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있다. 어차피 의학적으로 가망이 없으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깨어나면, 회의 등 공식 자리에 참가하기 위해 반짝 기운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경희는 4·15 태양절 행사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지난 5월 13일 조선인민내무군 협주단 공연 관람에는 참석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북소식통들 사이에서는 김경희가 두 달 안에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분석부터 2년 정도는 살 것이라는 예측까지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나이 어리고, 해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정은을 뒤에서 받쳐주고 있는 김경희가 죽으면 김정일 사망 시보다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김정은 정권이 짧은 시간 안에 ‘애프터 김경희’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북한 내부에 김정은 조롱도
 
《노동신문》 5월 7일자에 실린 사진이다. 미림 승마구락부를 방문한 김정은이 장성들을 세워놓고 훈계를 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시기에는 이런 장면이 외부에 공개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3차 핵실험 사태와 개성공단 잠정 폐쇄 등 여러 일이 있던 지난 4월, 평양 간부들 사이에서는 ‘어린놈이 오냐오냐했더니 이마빡에 올라앉으려고 한다’는 조롱이 유행했다고 한다.
 
  김정은의 행보 자체도 전례 없이 괴상하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1주기 추모식 때는 최춘식 제2자연과학원장의 모습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했다. 무기 생산 기관인 제2자연과학원장의 현직 원장이 공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군부대 현지 시찰을 간 김정은이 장성들을 세워놓고 혼내는 장면이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단 한번도 없던 일이다. 김정은 또는 김정은 정권이 과시욕과 불안이 뒤섞인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짐작된다.
  
  리경심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내린 것도 그렇다. 김정은 암살 시도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전제 아래, 교통지도원 리경심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준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최고 존엄인 김정은은 장성 등의 간부에게는 엄하게 대하고 교통지도원 같은 일반인은 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는 것일 수 있다.
 
  김정은이 공화국 영웅 지정을 남발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은하 3호 발사가 성공하자 미사일 연구사 101명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최춘식 원장도 이때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일종의 ‘포상 정치를 이용한 인민 다독이기’인 셈이다.
  
  
  곁가지 장성택
 
2005년 9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과 만나 악수를 나누는 총리였던 박봉주(왼쪽). 올해 4월 총리에 재취임한 박봉주는 김경희의 후임으로 경공업부장을 맡기도 했던 ‘김경희 사람’이다.
  김경희와 장성택은 잘 알려졌듯, 북한판 ‘세기의 사랑’을 한 부부다. 김일성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했다. 김정일의 부인이었던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씨가 쓴 책에 이 부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경희는 1960년대 후반 김일성대학교 정치경제학부에서 장성택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 사이를 반대한 김일성은 장성택을 강원도 원산의 농과대학으로 내쫓았다. 김경희는 주말마다 벤츠를 끌고 원산으로 가 장성택을 만나고 왔다고 한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무남독녀 외딸 장금송은 2006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면제 과다복용이었다.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이루고 40여 년 후, 김경희는 왜 남편 장성택 경질 여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애프터 김경희 시대에 장성택은 왜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걸까.
 
  근본적인 이유는 장성택은 김씨 집안에서 ‘곁가지’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냥 곁가지가 아니다. 오랜 기간 권력의 핵심부를 지켜본 ‘슈퍼 곁가지’다. 곁가지가 무성하면 본 가지가 쬐어야 할 햇빛을 가릴 수 있다. 게다가 장성택은 2004년 3월 ‘종파행위’와 권력남용 혐의를 받아, 그 후 2년간 좌천된 전력이 있다.
 
  2006년 9월에는 평양 모란봉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장성택이 타고 있던 S600 벤츠를 트럭이 뒤에서 받았다. 트럭의 종류는 사파리였다. 장성택은 허리를 다쳐 보름간 입원했다.
  
  사고의 원인은 장성택의 차가 신호를 위반해서였다. 그렇지만 단순 사고로만은 볼 수 없다. 북한에서 교통사고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평양 시내에 차를 몰고 나가면 도로에 차가 10대도 없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북한뿐 아니라 다른 독재국가에서도 교통사고는 최고권력자의 정적을 죽이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김정은 정권 초기, ‘김정은은 허수아비고 장성택이 진짜 실세’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사실일까.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은 ‘남한에서 장성택의 위상이 부풀려졌다’고 말한다. 탈북자 A씨의 말이다.
 
  “장성택이 개혁개방주의자고 북한에 측근 세력이 많은 것으로 남한에서는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간부 중 누가 지금 어디서 누굴 만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곳입니다. 장성택이 개혁개방주의자라 해도 그걸 누구한테 내놓고 표출하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감시 아래에서 장성택의 측근 세력이 평양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장성택을 한마디로 말하면 직위는 있지만 중요한 권한은 없는 사람입니다.”
  
  
  김정은 비서실장 김창선은 김경희 사람
 
북한 김정일이 2010년 4월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장을 찾았을 때 동행한 장성택(왼쪽 두 번째).
  다른 탈북자 C씨도 김정은 주변인들이 장성택 측근으로 채워졌다는 보도는 잘못된 분석이라고 했다. 지난해 초 국방위원회 서기실장으로 임명된 김창선과, 지난 5월 김격식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부장이 된 장정남이 장성택의 측근이라는 주장이 나왔는데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는 설명이다.
 
  국방위원회 서기실장은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김정은의 지근자리를 지난해부터 지켜온 김창선은 처가 덕을 톡톡히 본 경우다.
  
  김창선의 부인이었던 류춘옥의 집안은 대를 이어 김씨 일가와 친분이 깊었다. 류춘옥의 부모인 류경수와 황순희는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였다. 류경수는 6·25 당시에는 북한의 탱크사단 사단장을 맡았다. 황순희는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을 지냈다.
 
  김창선의 부인 류춘옥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생전에 김경희와 매우 친했다고 한다. 김창선을 장성택 사람이 아니라 김경희 사람으로 분류해야 하는 이유다. 김창선의 아들 김광일은 현재 총정치국 근로단체부 책임부원으로 있다.
 
  장정남 또한 장성택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장성택의 조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장정남이 장성택의 조카라면 나이를 고려할 때 장성택의 큰형인 장성우 차수의 아들이어야 한다. 장성우의 아들들은 군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근무 중이다. 첫째 아들은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근무 중이고, 둘째 아들 장용철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다.
  
  장정남은 인민무력부장에 오르기 전, 1군단장이었다. 당시 상장(한국군의 중장)이었다. 대장이 아닌 상장으로 군단장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사롭지 않다.
 
  장정남은 액운도 피했다. 지난해 ‘노크 귀순’한 북한 병사가 1군단 예하 부대 소속이었다. 부하가 떠들썩하게 탈북했지만 장정남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오히려 영전을 했다. 장정남이 장성택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이유에선지 김정은에게 총애를 받아온 인물로 보는 게 더 논리적이다.
 
  장정남은 북한의 인사 관행에 비춰봤을 때, 국방부장관을 하기에는 상당히 젊다. 70대의 김격식에서 20여 년을 뛰어넘어 50대의 장정남을 앉힌 것은, 김정은이 자신에게 충성할 만하고 다루기 쉬운 사람을 앉혀 군을 장악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봐야 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언제든 예측불허의 사태 맞을 수도
  
  그렇다면 장성택은 아무 힘도 없는 허수아비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표현이다. 북한체제는 엄격한 유일체제다. 후계자가 아닌 이상 2인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장성택은 아무 힘도 없다.
 
  이론과 현실 사이엔 항상 틈이 있다. 아무리 유일체제라도 ‘측근 권력, 문고리 권력’까지 없앨 수는 없다. 오랫동안 최고권력자 곁을 지켜온 장성택을 북의 간부 중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김정은, 김경희가 없는 곳에서는 장성택이 최고권력자인 셈이다.
 
  북에 있을 때, 장성택을 여러 번 만난 탈북자 C씨는 장성택을 ‘겸손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장성택은 나이와 지위가 한참 차이 나는 아랫사람에게도 꼭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물어보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점이 인상적이라는 평가다. 곁가지이면서 북한 정권의 중요한 고비마다 핵심에 있었던 그만의 비결이자, 처세술인지도 모른다.
  
  장성택은 자신의 경질 소문을 알고 있을까.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대한민국과 같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인터넷만 뒤지면 국가기밀부터 하다못해 대통령이 무슨 브랜드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까지 나오지만, 북한은 인터넷은커녕 제대로 된 언론매체도 없다. 게다가 당간부 사이에는 내부 비밀 엄수가 철칙이다. 당내 비밀을 누설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군 비밀보다 중요한 게 당내 비밀이라고 한다.
 
  탈북자 C씨는 “대한민국 사람 다 알아도 장성택은 모를 수 있다. 설사 경질을 결정하는 회의에 누군가 참석한다 해도 당사자 장성택에게는 절대 말 못 한다. 장성택을 심문하면 누구에게 들었는지가 금방 발각되지 않나. 누가 말하겠는가. 그게 북한이다”라고 했다.
 
  언젠가는 닥칠 김경희의 부재와 장성택의 운명, 북한 정권에 닥칠 혼란, 한반도의 앞날은 예측 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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黨 조직지도부 조연준·민병철이 숙청 주도

⊙ 中, 김정은 비자금 계좌 동결했다
⊙ 장성택 숙청은 北 전형적 권력투쟁 결과물… ‘왕당파’ 독주체제 전망
⊙ 국정원의 張 실각정보 공개 직전, 중국은 김정은 비자금 동결, 푸틴은 對北 제재 철저 이행 지시
⊙ 김정은 비자금 수십억 달러 추산, 중국의 계좌 동결로 내부 통치에 상당한 타격 받을 것
⊙ 김경희 예상 수명 1년 남짓, 유일사상 10대 원칙 개정 직접 주도
2013년 12월 9일 북한 조선중앙TV는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의 체포 장면을 공개했다. (조선중앙TV)
  장성택(張成澤)이 처형당했다. 2013년 12월 3일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 정보를 공개하자 북한 조선노동당과 《조선중앙TV》는 12월 9일 장성택의 체포 장면을 공개하며 숙청을 공식화했다. 이른바 ‘1호 사진’에서 그의 얼굴이 사라졌고, 북한 전(全) 주민은 반향문(소감문)을 써야 했다. 12월 13일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이 특별군사재판 후 즉각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金正恩)의 고모와 결혼한 1972년부터 40년 이상 권력 핵심이었던 그의 숙청으로 북한 권력 구도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왜 숙청됐을까. 북한이 내세운 숙청 이유는 ‘반당(反黨)·반혁명적 종파행위’다. 이는 북한의 최고(最高) 강령인 ‘당의 유일(唯一)사상 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유일사상 10대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 가장 무거운 ‘범죄’다. 북한은 장성택의 경제적 부정부패와 문란한 사생활도 적시했다.
 
  하지만 북한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조선중앙통신》이 12월 13일 공개한 ‘처형 발표문’은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입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됐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유동열(柳東烈)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장성택 숙청·처형을 배후에서 주도한 세력으로 김정은의 친위세력인 당 조직지도부와 호위총국, 그리고 국가안전보위부를 꼽았다. 유 연구관은 “각 기관에 포진된 장성택 세력에게 정보가 새는 걸 막기 위해 극소수가 이를 추진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광인(金光仁) 북한전략센터 소장은 “장성택 숙청은 북한 내 전형적인 권력투쟁의 결과물”이라며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내 세력 간의 반복된 충돌이 거물급 처형까지 이어진 셈”이라고 분석했다.
 
  정보 당국의 한 대북(對北) 전문가는 “장성택 제거는 김정은 주도(主導)라기보단 노동당과 군, 그리고 보안기관의 강경파가 주도하고 동조(同調)해 김정은의 허가를 받아 이뤄진 것”이라며 “이들이 여러 기관을 동원해 장성택의 각종 ‘혐의’를 들추어 내 김정은에게 들이밀면 김정은도 장성택을 더 이상 감쌀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왕당파’ 리제강 對 ‘실용파’ 장성택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조직지도부는 북한 노동당의 핵심부서다. 김정은을 제외한 모든 당원의 인사를 결정하며, 정치동향과 사생활까지 보고받는다. 외부에서 북한 권력서열의 잣대로 삼는 의전서열도 그들이 결정한다. 조직지도부원들은 다른 부서의 부장급이나 군 장성급 인사들에게 반말을 쓸 만큼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노동당 간부 출신의 한 탈북 인사는 “조직지도부 부원들은 자신의 직위보다는 ‘장군님의 심부름꾼’, 즉 최고 지도자의 대리인으로서 어명(御命)과 같은 방침을 전하기 때문에 최고위급 인사들도 그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경우가 잦다”며 “김정은을 빼면 북한 내 가장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 북한 인명 자료 등에 따르면 김정일(金正日) 시대부터 조직지도부 부장은 특정 시기를 제외하곤 대부분 공석(空席)이었다. 부장 직책의 권한과 영향력이 지나치게 막강하기 때문이다. 현재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김경옥과 조연준이며, 부부장은 김인걸, 황병서, 민병철로 알려졌다. 조연준과 민병철이 이번 장성택 숙청과 처형을 배후에서 주도한 장본인이라는 것이 한 대북전문가의 설명이다.
 
  조직지도부와 장성택의 권력투쟁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황장엽(黃長燁) 전(前) 노동당 비서가 김정일 유고(有故) 뒤 차기 지도자로 장성택을 지목하자, 북한에서 장성택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조직지도부는 장성택이 2004년 초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한 것을 발각했다. 장성택은 ‘분파 조장’ 혐의로 실각했고, 측근들까지 좌천됐다. 이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조직지도부의 리제강(李濟剛) 제1부부장이다.
 
  한 고위 탈북자는 《월간조선》 2010년 8월호에서 “장성택의 측근 중 한 명이 호화 결혼식을 올린 것이 꼬투리가 돼 ‘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장성택과 측근들이 모조리 숙청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리제강은 30년 넘게 당 기강과 인사를 주물러 온 굉장히 노련한 사람으로, 장성택을 조사하면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김정일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성택은 2006년경 권력에 복귀했다. 리제강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조직지도부 산하에 있던 행정부를 따로 떼어내 부장직(職)을 맡았다고 한다. 리제강의 입장에선 김정일의 후계자로 장성택이 지목될 경우, 대규모 보복과 숙청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그간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정부 당국자들의 증언과 다수 대북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일 정권 말기 세습 문제를 두고 조직지도부와 장성택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2008년경 리제강을 중심으로 이른바 ‘왕당파’가 형성됐다. 리제강은 김정일에게 3대 세습을 건의해 왔지만, 김정일은 승계에 대한 언급을 마땅치 않아 했다고 한다. 그해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지도자 유고 상황이 발생하자 북한 내·외부의 관심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성택에게 쏠렸다. 오랜 기간 남편 장성택과 사이가 멀었던 것으로 알려진 김경희(金敬姬)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성택은 이때 자신의 영향력을 크게 넓혀 간 것으로 보인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은 “김정일 통치의 실패를 직접 지켜본 장성택은 북한이 제대로 서기 위해선 선군(先軍)정치보다 당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장성택과 그의 세력을 ‘왕당파’와 대적하는 이른바 ‘실용파’로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말 김정일이 회복하자 ‘왕당파’ 세력은 3대 세습을 다시 추진했다. 장성택도 자신의 행보를 계속 넓혀 나갔다.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장성택에게 야심이 있어서라기보단 엉망이 된 북한의 국가시스템을 ‘정상화’하려는 의도였다”며 “장성택 나름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은 개점휴업 상태인 당을 우선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제강 사망에 장성택 개입
 
  2010년이 되자 ‘왕당파’는 본격적으로 김정은 세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김정은이 대장 칭호를 받고 후계구도가 공식화한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왕당파’의 핵심은 조직지도부의 리제강과 리용철(李勇哲)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2010년 4월과 6월 잇따라 사망하면서 그 배후로 장성택이 지목됐다. 리용철이 먼저 심장마비로, 리제강은 2개월 만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은 2010년 8월 해외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리제강은 장성택 일당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북한은 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발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교통사고는 북한에서 정적을 제거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1976년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승계를 반대했던 남일(南一) 북한 부총리를 대형트럭 교통사고로 위장해 암살했다. 2006년 김용순(金容淳) 전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도 권력투쟁 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고 발생지인 평양~원산 고속도로가 상당히 한산하다는 점은 타살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특히 당시 사고차량이 버스였으며 탑승자 중 사망자가 리제강 단 한 명이었던 사실이 최근 《월간조선》 취재 결과 밝혀졌다. 상당수 대북 전문가는 리제강 사망에 장성택이 깊숙이 개입했다고 판단한다.
 
  다수 언론 보도와 다수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리제강과 리용철 사망 후 조직지도부를 장악한 이는 조연준 제1부부장과 민병철 부부장이다. 북한 내부 정보에 정통한 대북 전문가는 “2011년 겨울 김정일이 사망하자 조연준과 민병철을 중심으로 한 조직지도부가 장성택 뒷조사를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개인비리와 비자금 조성을 중심으로 진행했으며, 북한 매체들이 최근 발표한 ‘죄목’ 상당수를 이때 수집했다. 도박이나 여성문제와 같은 개인비리는 북한 최고위층에게 흔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장성택이 당 자금 일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이었다. 왕당파는 장성택 제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김정은 세습에 성공한 왕당파들은 힘 빠진 장성택에게 경제회생 문제를 맡겼다. 개혁개방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한 북한 경제구조에서 경제회생 임무는 말 그대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당시 장성택의 격에 맞지도 않은 임무였다.
 
  김정은의 ‘2012년 강성대국’ 약속이 실패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씌울 대상으로 장성택을 선택했다. 2009년 화폐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남기 전 노동당 재정계획부장을 처형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이 이번에 발표한 장성택 처형 판결문은 2009년 이래 북한 경제정책 실패 대부분을 장성택에게 돌렸다.
 
  2012년 8월 장성택이 50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방중(訪中)했을 때 중국은 장성택을 국가원수급으로 대우했다. 중국 매체들은 그를 두고 ‘섭정왕’이라고 표현했는데, 김정은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성택, 3대 세습·핵실험 반대
 
김정은 공식 등장 이전인 2010년 6월 사망한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생전에 김정은과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한 모습. (조선중앙TV)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모두 면담한 장성택은 황금평·위화도 특구와 나선(나진·선봉) 특구 등 경협에 추가 합의했다. 2011년 김정일 방중을 계기로 본격화한 후 자신이 진두지휘해 온 사업이었다. 하지만 당 조직지도부의 방해로 사업은 계속 지지부진했다. 중국 정보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북 경협 이행을 위해 방북(訪北)한 중국 실무진이 협의 후 후속조치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2012년 11월 장성택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라는 특별 기구의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기남(金基南), 최태복(崔泰福), 박도춘(朴道春), 김양건(金養建), 조연준 등 쟁쟁한 인사가 위원으로 포함돼 실세기구로 보이나, 사실은 빈껍데기에 불과한 조직이란 게 다수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히려 실세에 가까운 당 행정부장직(職)을 이때 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장성택의 경제회생 임무는 성과가 없었다. 2013년 7월 방북한 리위안차오(李源潮)는 개혁개방 요구와 핵 문제에 대한 답을 요구하며, 연말까지 성과가 있으면 김정은 방중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같은 해 10월 박길연(朴吉淵) 외무성 부상을 통해 미국에 “핵 군축을 협상하자”며 뜬금없는 유엔(UN) 연설을 내놓았다. 중국의 핵 폐기 요구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평양 내부정보에 정통한 한 탈북 인사는 “장성택은 김정은을 인간적으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뜻과 달리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했을 때 길어야 1~2년밖에 못 버틸 것이라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장성택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해 국제관계를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2년 만에 오히려 힘을 잃은 건 장성택이었다. 준비를 마친 조직지도부 세력은 김정일 사망 2주년 시점에 맞춰 장성택 숙청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리제강 사망에 대한 왕당파의 반격이자 선수(先手)인 셈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매체 보도를 통해 공개된 장성택의 ‘죄목’ 외에도 김정은을 자극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며 ▲장성택 측근의 김정남(金正男) 접촉설 ▲장성택-리설주 관련설 ▲장성택 측근 해외 망명 및 기밀 유출설 등을 제기했다. 현재까지 진위(眞僞)가 확인된 사항은 없지만,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정보 보고가 김정은을 크게 자극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장성택은 대표적 친중(親中)·친러(親露) 인사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국제적 보호망이 있어 김정은이 자신만은 못 건드릴 거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당·반혁명’이란 이른바 ‘가장 무거운 죄목’으로 숙청된 후 그의 처형을 막을 유일한 변수는 중국의 개입이었다.
 
  북한은 보란 듯이 장성택을 처형하며 중국에 대한 ‘매국(賣國) 행위’를 적시했다. 판결문은 “장성택이 석탄 등 지하자원을 팔아먹어 빚을 지게 만들고, 그 빚을 갚는다며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은 중국이다.
 
 
  김정은 비자금 동결
 
  대표적인 친중 인사가 중국에 대한 매국 혐의로 처형을 당했는데 중국의 반응은 상당히 의외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장성택 처형 문제는) 북한의 내부 문제”라며 “중국은 앞으로도 북한과 경제협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내정불간섭’ 원칙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김정은 정권의 극단적 잔인함(extreme brutality)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비난한 미국에 비해 ‘지나치게 신중한 입장’이란 분석이다.
 
  중국의 대북 카드는 김정은의 비자금이었다. 중국과 북한 정보에 정통한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은 장성택의 측근인 리용하와 장수길의 공개처형 즈음에 김정은의 비자금이 포함된 자국 계좌 일체를 동결했다. 상하이(上海) 등지 은행에 보관된 김정은의 비자금 규모는 수십억 달러로 추산된다. 김정일은 생전에 미국 정부가 스위스나 리히텐슈타인 은행의 비밀주의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자 해당 은행권에 예치된 비자금을 중국 등으로 옮겼다.
 
  김씨 일가의 비자금은 크게 노동당 38·39호실이 관리하는 당 자금과 김정일-김정은의 개인 비자금으로 나뉜다. 당 자금은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통치를 위해 재량껏 쓰는 돈을 말하며, 장성택이 이 해당 자금 중 일부를 장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인 비자금은 북한 정권 붕괴 시 김씨 일가의 해외도피 자금 등으로 사용되며, 세계 각국에 분산돼 추적이 상당히 어렵다.
 
  중국은 장성택이 장악한 일부 자금과 함께 김정은 비자금 상당 액수에 대한 동결 조치를 내렸다. 장성택이 별도로 운영한 비자금도 동결 대상에 포함됐다. 중국의 동결 조치는 김정은 권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의 씀씀이는 아버지보다 더하다. 북한은 내부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해 측근들에게 수입 사치품을 뿌리는데, 김정일 체제 당시 3억 달러 수준이었던 사치품 수입액이 김정은 체제 이후 6억50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김씨 일가가 비밀 보관 중인 금괴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러시아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2013년 12월 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10개월 만에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094호의 이행에 전격 동참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경제제재를 규정한 대통령령에 서명했으며, 각 유관 부문이 이를 철저히 집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한국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과 측근 처형 사실을 알리기 하루 전에 일어난 일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신속하게 북한 내부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장성택 숙청에 대한 즉각적 대응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중국의 경우 대북 정보력과 영향력을 강화하고 국익과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선 쿠데타 불가능한 구조
 
장성택 숙청으로 북한 내 최고 실세로 떠오른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조선중앙TV)
  북한의 대중(對中) 관계는 장성택 처형으로 악화 기로에 들어섰다. 중국의 계좌 동결로 통치 역량에 타격을 받은 김정은은 자신의 자금줄 확보를 위해 군항(軍港) 사용권이나 자원·인프라 개발권과 같은 대형 이권을 중국에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김정일은 생전에 중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사망 직전 김정은에게 “절대 중국을 믿지 말라”고 유언했을 것이란 소문도 무성하다. 일부 중국 매체와 소식통에 따르면,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중국이 대북 원유공급을 차단하자 김정은이 중국에 대해 “미 제국주의의 개”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난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북한 국방위원회는 UN 안보리 대북 제재에 반발하면서 “세계의 공정한 질서를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할 큰 나라들까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중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장성택 숙청 직후 다수의 매체가 최룡해를 장성택의 정적(政敵)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평소 두 사람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라이벌을 내쳐 봐야 득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최룡해가 잘 알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김정은이 양강도 삼지연 회동에서 장성택 숙청을 결정했으며 이른바 ‘삼지연(三池淵) 그룹’으로 불리는 박태성·황병서·김병호·홍영칠·마원춘 부부장 등이 신(新)실세로 부각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거리가 멀 가능성이 크다. ‘삼지연 시찰’은 11월 30일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는데, 장성택 실각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결정됐기 때문이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기고문을 통해 “11월 23일경 쿠바와 말레이시아의 장성택 친인척들이 평양으로 소환됐으며, 측근인 리용하·장수길은 이미 처형된 이후”라며 “오히려 장성택 숙청을 결정하는 정치국확대회의를 앞두고서 김정은을 먼 북방의 삼지연까지 보낸 배후세력이 의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장성택은 처형됐고, 그 세력은 분명 힘을 잃었다. 북한 권력 중심 곳곳에 장성택 세력이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지만, 이들이 저항을 모의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북한은 쿠데타가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군 지휘관이 총 한 발을 쏘려 해도 당이 파견한 정치위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 북한 전문가는 “장성택 세력이 반전을 꾀하려면 조직적 쿠데타가 아닌 김정은 저격 작전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희, 1년 못 넘겨”
 

  향후 조연준과 민병철을 중심으로 한 ‘왕당파’의 독주체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조직지도부에 대항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장성택 제거에 성공해 김정은 정권의 실세 자리를 굳혔다. 박도춘 당 군수비서도 실세로 거론되지만, 조직지도부와 같이 권력을 장악하기엔 무리라는 분석이다. 최룡해는 라이벌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장성택을 견제하기 위해 힘을 얻었지만, 이제 그 시효가 끝난 셈이다.
 
  유동열 선임연구관은 “당·군·정에 포진된 간부들은 장성택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에 김정은에 대한 충성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북한의 공포정치가 단기적으론 체제를 안정시키는 모양새를 보이겠지만, 잇따른 망명 시도 등 조직 내부의 불안정 요소는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2월 9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조직지도부에 의해 철저히 연출된 장면이었다. 박봉주(朴鳳柱) 내각 총리가 울먹이면서 장성택을 비판하는 모습이나, 양형섭(楊亨燮)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발언권을 요청하며 손을 드는 행동 모두 미리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한 간부들 대다수는 당일 예정된 장성택의 체포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의 아내인 김경희는 김씨 일가의 가장 큰 어른임에도 이번 장성택 처형 사건에 크게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최근 김책(金策)의 장남인 김국태(金國泰) 검열위원장의 장의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현재 건강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과 중국 정보에 정통한 전문가에 따르면, 김경희는 2013년 초 중국에서 안과 진료를 받았으며, 이때 중국 측이 실시한 비밀검진 결과 예상 수명이 1년 남짓한 것으로 예측됐다. 중국 당국과 김경희 측 모두 해당 사실을 알고 있으며, 북한으로 돌아온 김경희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개정을 추진했다고 한다.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김일성(金日成)이 1974년 김정일 후계자 지목을 위해 만든 후,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39년 만인 2013년 6월 전격 개정되면서 이른바 ‘백두혈통’ 김정은 일가의 세습을 명문화했다. 이때 개정된 일부 핵심 내용이 이번에 숙청된 장성택의 ‘죄목’에 적용됐다.
 
 
  ‘운구차의 저주’
 
  정보 당국의 한 대북 전문가는 장성택을 제거한 김정은이 ‘브레이크 없는 하강(下降)질주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에게 직언(直言)할 사람이 사라지고 강경파와 아부꾼만 모인 상황에서 지배층의 내부 동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장성택 사형 판결문에 노출된 북한 정권의 약점과 치부(恥部)는 김정은에게 간언(諫言)할 사람이 현재 없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북한 인권운동가 출신인 하태경(河泰慶) 새누리당 의원은 “장성택 처형은 개인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인권 수준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며 “북한도 정보의 자유로운 취득과 전파 및 의사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가입국으로, 장성택 즉결처형은 명백히 규약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장성택뿐 아니라 그의 측근인 리용하와 장수길, 그리고 은하수관현악단 단원까지 최근 총살당한 데다 전 지역에서 측근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솎아내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구타, 고문, 처형, 감금 등 행위가 1990년대 말 대규모 숙청이 발생한 ‘심화조 사건’ 때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하 의원은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란 말 자체만 봐도 공정재판일 수 없다”며 “국제기준은 물론 북한 내부 기준으로 봐도 공정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평화와 인권의 메시지를 남기고 타계한 넬슨 만델라(Mandela)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 행렬이 전 세계에서 이어지는 동안, 지구 반대편 북한에선 무자비한 총살과 폭정이 재현됐다. 40년간 실세였던 ‘2인자 고모부’를 체포한 지 나흘 만에 처형한 것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폭력성이 아버지 김정일 시대보다 결코 약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2011년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를 호위했던 8명 중 왼쪽을 맡은 군부 4인방은 이미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당시 승승장구가 예상됐던 리영호(李英浩) 군 총참모장, 김영춘(金永春) 인민무력부장, 김정각(金正閣)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禹東測)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은 모두 숙청 또는 실각했다. 이른바 ‘운구차의 저주’로 불린다. 80대 고령의 당 인사인 김기남과 최태복을 빼면 군사 칭호를 받은 6명 중 5명이 숙청된 셈이다. 군사 칭호를 받은 이 가운데 남은 사람은 단 한 명, 김정은뿐이다.⊙

 

     -月刊朝鮮 2014년 1월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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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숙청 이후 2014년의 안보전략

北에 투입할 신속대응군 양성하라

우리는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개념과 복안 수준을 넘는 구체적 계획, 부서별 책임, 준비태세 수준, 정부와 군의 결심을 위한 기구와 절차 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완벽한 점검이 필요한 때다.

글 : 金秉寬 예비역 육군대장  
⊙ 北의 정치군인 득세로 군사도발 위험 높아져
⊙ 북한 내 군사정변 가능성 배제 못해
⊙ 중국軍 북한 內 무단진입시 交戰 각오해야 
⊙ 66세. 육사 28기.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경기대 군사정치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소
    (APARC) 펠로십.
⊙ 육군대학 전술 교관, 육군대학 교수부장, 합참 전력기획부장, 제2사단장, 제7군단장(중장),
    제1군사령관(대장), 연합사 부사령관 겸 지상군사령관 역임.
⊙ 〈How to Make War(James F. Dunnigan 著)〉 번역, <손자병법해설(팸플릿, CD집)> 제작 및 강의.

북한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며 공포정치를 펴고 있다. 장성택 처형은 북한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다.
  우리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려 했으나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954년 갑오년에는 6·25전쟁으로 황폐화한 국토를 재건하고 발전시키는 60년 주기의 시동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제3의 갑오년 2014년,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실시간으로 급변하는 북한발(發) 뉴스를 접하고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권력의 최고 핵심이었던 장성택이 사형을 당했다. 이로 인해 북한 리스크는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권력장악력이 더욱 강해져 체제가 안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볼 때 북한 위험성은 훨씬 고조되고 있다.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청와대가 다음과 같은 백악관의 전화를 받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대한민국 대통령님, 북한에 매우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중국, 일본 등 관련국과는 미국이 협의를 진행할 것입니다. 한국의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조치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조치를 하시겠습니까? 미국이 즉각적으로 지원할 사항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자신 있게 단호히 결심하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개념과 복안 수준을 넘는 구체적 계획, 부서별 책임, 준비태세 수준, 그리고 정부와 군의 결심을 위한 기구와 절차 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완벽한 점검이 필요한 때다.
  
  2014년은 이러한 점에 대비태세를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5년 이내, 어쩌면 내년에 북한 내부에서 중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제사회에서 볼 때, 미·일(美日) 등 자유진영 국가들은 북핵(北核) 문제에 국한해 북한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 붕괴 시(時) 전략적 이점을 미리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내부적 위기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소련 붕괴 후였다. 1995년 이후 3년간 100만명 이상의 아사자를 내는 큰 위기를 겪었다. 비록 1998년부터 한국의 햇볕정책으로 한숨을 돌렸지만 그 햇볕을 정치·경제 발전으로 활용하는 데는 실패했다. 외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는 한 북한은 자력 갱생이 불가능한 상황에 도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절망 속의 숙명론’과 집권층의 ‘남한 적화에 대한 최후의 기대’ 때문이다. 그 기대마저 사라질 경우 당과 군의 충성이 유지될지, 여전히 주민통제가 가능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현재 북한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정치권력 구조의 변화를 초래할 요인이 적지 않다. 중대한 요인들로서는 ▲권력투쟁(새로운 권력자 대두, 군부 집권 또는 내부 분열 지속, 군부 분열) ▲천재지변(화산 폭발, 지진이나 기상재해로 정부의 통제력 상실) ▲외부개입(핵위협 또는 무정부 상태 시 다국적군이나 인접 국군 등의 개입) ▲주민소요(동시 다발적 대형 소요 또는 대량 탈북사태로 정부통제 붕괴, 독자적 발생보다 다른 유형 발생시 부수적으로 동반될 가능성) 등을 들 수 있다.
 
  2012년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직후 단행된 인사 조치는 군부 강성 세력의 퇴조와 장성택계 인물들의 대두로 요약할 수 있다. 장성택의 위상 강화로 북한 정치의 합리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사건으로 장성택계는 대거 숙청, 몰락할 것이다. 이는 합리성의 위축과 ‘선군(先軍)정치’로의 회귀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주도그룹이 군사적 식견보다 정치성이 강한 정치군인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군사도발 위험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북의 도발 대비에 경각심을 높이고, 도발 시에는 확실한 응징을 통해 북으로 하여금 결코 이익이 없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
 
  장성택 처형과 관련 인물 대거 숙청으로 북한 내부의 군사정변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 본다. 북한 군부대들에 대한 실제 지휘를 담당하고 있는 야전 전문 군인들이 사실상 주도그룹에서 배제되고 오히려 감시만 강화되는 데 대한 반발로 모종의 군사적 충돌이 야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간에 최근 권력구도 변화는 북한 내부에 상당한 수준의 정치불안을 예고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북한 내부 불안정이 반가운 징조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무단개입 시 심각한 상황 발생
  
  북한의 내부사정으로 야기된 사태에 대해 우리는 군사적 대비는 물론 인도적 지원과 치안유지 지원도 준비해야 한다. 북한을 둘러싼 국가들 간에 예기치 못한 대립 또는 경쟁으로 국제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교전행위가 벌어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 내 구호대상 주민이나 대량 탈북자에 대한 구호활동은 그곳의 질서유지 상황에 맞게 구호방법을 달리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면 무질서 상황에 빠져 버린 경우라면, 최초에는 구호부대의 안전을 위해 구호물자를 공중 투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에 대해 사전에 시행 주무부서와 협조부서, 인원제공 책임, 장비·시설·물자의 제공 및 수송 책임, 수송수단 등에 관해 정부부처 간 책임과 권한을 명시해 둬야 구호활동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중국 변수다. 중국이 사전협의 없이 북한 땅에 무단 개입하는 일만 없다면 북한 급변사태는 무난히 해결될 것이다. 중국이 무단 개입한다면 문제는 훨씬 복잡하고 심각해진다.
 
  중국군은 북한 국경선 북부 지역에 10만명 이상을 배치해 놓고 있다.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중에는 선양군구 소속의 ‘쾌속대응군’ 1개 병단도 포함되어 있다. 이 병단은 기동성이 높은 정예군으로 유사시 즉각 투입 가능하며, 북한군을 쉽게 압도해 5~10시간이면 평양 일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평양 일대에 진출하면 중국의 대(對)북한 영향력은 절대적인 상황으로 변한다. 이는 중국에 의한 북한 정부의 위성정권화를 의미한다.
  
  북한 정부가 중국의 ‘위성정부화’가 되면 그 후 진척될 북한의 중국화를 막기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북한의 중국화는 동해안에 중국 해군함대기지를, 내륙에는 공군기지를 둘 수 있게 되어 동북아에서 중국의 전략적 입지를 획기적으로 강화시켜 준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요소가 돼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다. 일본, 러시아, 미국 등도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 지역으로 무단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면, 주변국들은 공조 노력을 통해 억제해야 한다. 만일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은 독자적으로라도 이에 적극 맞서야 할 것이다. 일부 교전(交戰)을 통해서라도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면서 국제적 관심과 개입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인명손실 등의 우려가 예상되지만 북한 지역을 영구적으로 상실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한다. 그러한 각오는 중국을 억제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중국 쾌속대응군 병단의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2013년 12월 초 장백산(백두산) 일대에서 그들의 훈련 모습이 일부 중국 언론에 노출됐다. 북한 국경 바로 북쪽에서 이 시점에 훈련 모습을 보인 것은 북한과 주변국(미·일·러·한국)에 존재를 과시할 필요성, 그리고 최근 북한 사태에 대비한 긴박성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韓美 관계에서 중국 변수 염두에 둬야
  
  북한 급변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미국이 상호간의 오해로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국제분쟁으로의 확대를 의미하며 우리도 그 분쟁에 휘말려 들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의 중국화는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되며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중국의 영토확장 야욕과 호전성에 대해 우리는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중국으로 하여금 세계 각국(수출 대상 국가)의 비방을 받고 싶지 않다면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도록 깨닫게 해야 한다.
 
  중국에 군사력 투입이 불가피했다는 명분을 주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혼란과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할 책임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회피하고 주저해서는 안 된다. 급박한 상황에서 적시에 의사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국이 ‘대량 탈북을 억제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군사력을 투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50만명 減軍 지원 프로젝트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부위원장.
  물론 우리는 한미(韓美) 관계에서 중국 변수를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의 대미(對美) 협력사항이 중국에 명백한 위해(危害)를 가하는 수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한국에 대한 징벌로서 북한을 장악해야 한다는 명분을 중국에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북한 변화의 관리를 위해서는 냉철한 통찰을 통해 대책을 준비해야 하고, 실제 상황이 발생할 때는 정확하고 단호한 결단들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치와 군사 측면에서 역동적인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북한의 체제는 극심한 경제난과 지도층의 부적절한 통치행태 때문에 그 지탱능력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 우리는 그들을 잘 관리해 부정적 행위들은 억제하면서 국민통합 차원에서 평화통일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추진해야 할 과제들을 큰 틀에서 열거해 본다.
 
  첫째, 북한이 현실개선과 미래발전에 맞는 개혁을 추진할 때는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한다는 원칙을 대북(對北)정책 기조로 국내외에 선포하고 이행해 나가야 한다. 이는 인도주의적 원칙과 남북한 신뢰프로세스 구축 원칙을 하나로 묶어 대북정책의 기조로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선언은 미국, 중국, 일본 등 관련국에게서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군 규모를 50만명 이하로 줄이는 ‘감군 지원 프로젝트(대북 불침 선언과 조기전역자 보상금 지원)’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한미동맹 강화와 중국 등 관련국의 이해와 동의하에 통일을 위한 대북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조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중국에는 우리의 통일정책을 지원하는 것이 동북아 안정과 한중 협력 강화, 세계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중국 국익에 유리하다는 점에 대한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
 
  셋째, 북한의 변화를 지원할 인재를 양성해 두어야 한다. 북한 변화와 발전에 소요될 인적 자원을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내의 탈북자들 중 인재를 선발해 이론과 실무를 가르치고 장차 북한지역 개혁 일선에서 업무를 수행할 역량을 길러 주어야 한다.
  
  
  신속대응군 지정하고 법과 예산 마련해야
  
  넷째, 평화통일 시기까지 필요한 각종 군사적 과제를 수행할 역량과 태세를 확보하고, 차질 없는 시행을 보장해야 한다. 크게 북한도발의 억제, 중국개입 억제, 북한질서 안정, 간부단 육성 등이 중요하다. ▲북한도발 억제: 현행 도발대비 태세의 재정립과 한미동맹하의 연합방위 태세 및 핵 억제력의 재확립을 통해 보장해야 한다. ▲중국개입 억제: 개입이 세계여론과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의 국익에 이롭지 않음을 인지하도록 한다. 아울러 중국의 무단개입에 대해 범국민적 배격의지를 높이고 우리 군의 단독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사를 천명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개입대응에 필요한 신속대응군을 편성하고 준비태세를 향상시킨다. ▲북한질서 안정: 북한 급변사태에 대응할 태세와 역량을 사전에 확보하고 주민통제력 상실 상황을 대비해 북한 질서유지와 변화추진을 지원할 역량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실제상황 적응성 강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구된 사항을 창의성 있게 수행할 잠재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통찰력 있는 판단·결정·수행 능력을 갖춘 유능한 간부단을 발전시키고, 특히 투입예상 부대의 경우에는 모든 장병에 대해 임무 숙지와 훈련이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다섯째, 우리 군사력을 북한으로 투입해야 할 경우에 주도면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북한 급변사태 개입’ 여부를 둘러싸고 좌우논쟁이 치열해져 거리에서 연일 투입반대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국회에서 찬반논쟁이 거듭된다면, 우리는 결정적 타이밍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중국에 독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역사적 대사건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천추의 한이 될 수 있는 ‘정치적 무능력’ ‘무책임의 대표적 사례’를 남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군투입 절차상의 어려움을 사전에 해결해 두는 지혜도 필요하다. 신속대응군의 지정과 준비태세 및 훈련상태 개선은 매우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 중 하나이다.
 
  21세기에 우리의 핵심 과제는 선진화와 평화통일이다. 특히 통일은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소할 블루오션이다. 요컨대, 대북 정책 기조의 선언을 통해 국론을 확립하고, 미국과 중국의 지원을 획득하며, 군사적 대비태세를 확보하고, 북한 급변사태 시 투입할 실무 인재들과 신속대응군을 즉시 양성해야 한다.⊙

 --月刊朝鮮 2014년 1월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