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한 모습. 뉴스1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 결과와 관련해 “막판에 기각에서 인용으로 결정이 뒤바뀐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10일 이철우 경북지사가 전했다.
전날 윤 전 대통령을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만났다는 이 지사는 이날 통화에서 “윤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상당한 아쉬움을 토로했다”며 “윤 전 대통령이 구체적인 날짜까지 언급하며 ‘여러 분석을 봤지만 몇몇 헌법재판관이 막판에 결정을 바꾼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결정이 바뀌었다”고 언급한 건 헌재 결정이 지연되면서 퍼졌던 ‘5 대 3 데드락설’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진영에선 기각 또는 각하를 기대하며 “재판관 입장이 인용 5명, 기각·각하 3명으로 갈린 상황에서 헌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가설을 마치 사실로 여겼었다. 이러한 믿음의 연장선에서 보면, 지난 4일 헌재가 8명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 인용 결정을 한 건 일부 재판관이 기각·각하에서 인용으로 마음을 바꾼 게 된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게 중론이다.
탄핵 인용 결정 이후 윤 전 대통령의 속내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 결정 뒤 구체적 승복 메시지 없이 “저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왔지만,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 안타깝고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 지사는 또한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을 하며 배신을 너무 많이 당했다. 사람은 충성심을 보고 써야 한다’는 말도 했다”고도 전했다.
정치권에선 윤 전 대통령이 배신자를 언급한 것을 두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겨냥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이 지사는 “윤 전 대통령이 특정 인물을 언급하진 않았다”고 했다. 이 지사는 이날 채널 A유튜브에 출연해 “윤 전 대통령이 여러 가지 뜻에서 배신자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며 “헌법재판관 중에도 배신자가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고, 한동훈부터 시작해서 탄핵 (국회 표결에) 들어갔던 사람들, 공직을 맡겼는데 자기를 수사하러 오는 사람들에 대한 윤 전 대통령의 상처가 깊은 것 같다”고 했다.
이 지사는 윤 전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청년 등을 언급하며 “이번 선거에서 우리 당이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도 전했다고 밝혔다. 향후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한남동 관저에서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로 이동할 예정인 윤 전 대통령은 관저 퇴거와 함께 지지자를 향한 메시지도 발표할 예정이다.
▲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를 인용한 결정에 대해 헌법학자인 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이 "헌재 결정문이 법리적 허점과 논리적 모순으로 점철돼 있다"고 비판을 제기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교수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헌재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 중 '내란죄 철회'와 관련해 국회 재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중대한 문제"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단 48자로 이 주장을 배척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27일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1차 변론준비기일에서 국회 측은 "탄핵소추 의결서에 포함된 '내란죄 부분'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탄핵 소추 사유에서 내란죄 전체를 덜어내기 위해선 국회 재의결이 필요하다"며 "탄핵소추안 의결한 것과 동일성이 없기에 국회에서 재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헌재는 "국회에서 재의결해야 한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결정문은 "피청구인은 이 사건 탄핵소추안의 소추사유 중 형법상 내란죄 관련 부분이 없었다면 나머지 소추사유인 비상계엄의 선포 부분만으로는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 찬성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 명백하므로, 이 사건 탄핵소추의결이 정족수에 미달되어 이 사건 탄핵심판청구가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이 사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재적의원 300인 중 204인의 찬성으로 가결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위 주장은 피청구인의 가정적 주장에 불과하며 이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근거도 없으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라고 구성돼 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말은 거꾸로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근거가 있다면' 국회에서 재의결했어야 한다는 말"이라며 "5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확인서라도 써서 헌재에 냈다면 그 때는 국회의 재의결을 거치도록 심리를 중단하거나 각하했었다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재가 국회 재의결을 거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를 사실상 전제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국회의원들 몇 명의 의사표명에 따라 국회에서의 재의결 여부가 결정되는가"라고 반문하며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은 개인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사적 권리나 권한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또 "헌재 자신이 이 결정문 곳곳에서 '가정적 주장'으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며 "피청구인의 주장은 '가정'이어서 안되고, 헌재의 판단은 '가정'이어도 된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내란죄가 빠진 탄핵소추서를 다시 만들어 국회에서 탄핵결의절차를 밟도록 했을 때도 여전히 최소한 200석 이상은 확보될 것이라고 헌재의 8명 재판관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믿었다는 것을 국민보고 믿어달라는 말인가"라며 "해당 결정문의 48자 분량 판단이 막판에 급조된 것 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