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7월 31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의 모습.
당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흥행 몰이를 하고 있었다. 사진=조선DB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사회 전반에 ‘적폐청산 바람’이 불면서 보수진영의 몰락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부 보수우파 인사들이 ‘진지 재건론’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등장’의 기저(基底)에 보수우파의 ‘문화전쟁 참패’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으로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현실이 벌어진 것도 보수우파가 문화전쟁에서 진보좌파에게 처절히 패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2017년 한 해를 뒤흔든 다양한 정치·사회적 사건들 중 하나인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을 단적인 예로 들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박근혜 정부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잡혀 갔다.
이른바 ‘지원배제 명단’이라 불리는 블랙리스트에 거명된 예술가들은 박근혜 정부는 물론 이명박 정부에까지 ‘원죄’를 묻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지시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변호인 측은 재판 과정에서 “실무진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방법상의 잘못이 있었을 뿐, 우파정권에서 천안함과 다이빙벨 등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지원을 받는 것은 정권 기조랑 맞지 않기에 관련 사안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지원배제 명단’이라 불리는 블랙리스트에 거명된 예술가들은 박근혜 정부는 물론 이명박 정부에까지 ‘원죄’를 묻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지시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변호인 측은 재판 과정에서 “실무진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방법상의 잘못이 있었을 뿐, 우파정권에서 천안함과 다이빙벨 등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지원을 받는 것은 정권 기조랑 맞지 않기에 관련 사안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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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2일 오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지시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사진=조선DB |
실제로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
〈피의자 김기춘 비서실장은 2013년 9월경부터 국정수행을 방해하고 국론을 분열시켜 국정 흔들기를 시도하는 세력에 찬동하는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고자 하였음.〉
〈2014년 10월경 피의자 김기춘 비서실장은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이념 편향적인 것, 너무 정치적인 것에 국민세금이 지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문체부 사업 중 그런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 청와대 지시사항이 문체부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고 질책함.〉
한편 ‘문화계 블랙리스트’ 행태는 진보정권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됐었다는 주장도 있다. 2017년 4월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영화 및 문화정책’ 간담회에서 “문화예술 분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독점하고 지배했다”며 “지금은 블랙리스트만 가지고 떠들지만 옛날 노무현 정부 때 우파들은 얼마나 좌파의 문화계 지배에 대해 원성과 비난이 많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문화전쟁은 총성 없는 이념전쟁”
당대의 권력자들은 파급력이 강한 문화를 통치수단의 일환으로 지배하려 했다. 권력자의 기호에 맞춰 그 시절의 문화, 문화인들은 또 하나의 권력 자체가 되기도 했다. 이른바 ‘문화권력’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다.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문화판은 어느덧 이념의 전쟁터가 돼 버렸다. 2017년 3월 29일 ‘문화안보의 시대를 열다’ 토론회에서 당시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결국 현실을 목적에 맞게 규정하려는 제 정파들 간에 정치적 헤게모니 투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일체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이러한 문화의 정치성을 탈이념적, 탈정치적으로 추구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결국 헤게모니를 향한 문화권력 의지를 가진 집단에 대항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고우성 한국문화안보연구원 자문위원장도 “문화예술계는 이념투쟁의 최대 격전지”라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국가보안법 철폐, 재벌개혁, 역사교과서 문제 등 그간에 노정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주요 쟁점들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말살시키려는 반 대한민국 문화전쟁이, 총성 없는 이념전쟁이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전쟁으로 함락된 보수우파의 진지(陣地)
‘문화 각축전’에서 밀려난 것은 보수우파 진영이었다. 이를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도 나왔다. 2015년 5월 발간된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ISSUE 4 ‘이문열 편-시대와 불화하다’》에서 이문열 소설가는 문화 진영에서 우파가 퇴조한 현상에 대해 “(좌파가) 진지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우리 진지가 다 파괴되어 버린 것”이라며 “이명박이 되고 박근혜가 되어서 진지를 탈환하려는데, 진지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령관만 똑똑한 우파 하나 보낸다. 그러니 안 쫓겨나면 다행(인 셈이 됐다)”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잡지에서 이문열은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좌파 진영이 견고한 문화진지를 구축해 왔다고 했다. 그는 “말 없는 다수는 사라지고 겁먹은 (보수의) 허수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러나 들여다보니 허수가 아니라 함락된 진지였다”고 했다.
2015년 당시 이 작가는 문화계에서의 좌우 진영 간 비율에 대해 “여전히 9대 1로 본다”며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우파나 보수 작가를 봤는가. 그거만 보면 일단 0%다”라고 진단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100일 동안 (현) 정권이 앞장서서 각을 세우기보다는, 각계에 포진해 있는 ‘자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형태로 사회 및 문화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라며 “소위 그람시의 진지전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칼럼을 통해 주장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건한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헤게모니 개념을 한 단계 발전시켜 기동전-진지전 이론을 창시했다. 진지전은 참호에 숨어서 싸우듯 장기전을 펼치는 투쟁전략이다. 그람시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적·문화적·이념적 헤게모니를 장악해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얻는 진지전이 적합하다고 봤다.
〈피의자 김기춘 비서실장은 2013년 9월경부터 국정수행을 방해하고 국론을 분열시켜 국정 흔들기를 시도하는 세력에 찬동하는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고자 하였음.〉
〈2014년 10월경 피의자 김기춘 비서실장은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이념 편향적인 것, 너무 정치적인 것에 국민세금이 지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문체부 사업 중 그런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 청와대 지시사항이 문체부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고 질책함.〉
한편 ‘문화계 블랙리스트’ 행태는 진보정권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됐었다는 주장도 있다. 2017년 4월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영화 및 문화정책’ 간담회에서 “문화예술 분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독점하고 지배했다”며 “지금은 블랙리스트만 가지고 떠들지만 옛날 노무현 정부 때 우파들은 얼마나 좌파의 문화계 지배에 대해 원성과 비난이 많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문화전쟁은 총성 없는 이념전쟁”
당대의 권력자들은 파급력이 강한 문화를 통치수단의 일환으로 지배하려 했다. 권력자의 기호에 맞춰 그 시절의 문화, 문화인들은 또 하나의 권력 자체가 되기도 했다. 이른바 ‘문화권력’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다.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문화판은 어느덧 이념의 전쟁터가 돼 버렸다. 2017년 3월 29일 ‘문화안보의 시대를 열다’ 토론회에서 당시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결국 현실을 목적에 맞게 규정하려는 제 정파들 간에 정치적 헤게모니 투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일체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이러한 문화의 정치성을 탈이념적, 탈정치적으로 추구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결국 헤게모니를 향한 문화권력 의지를 가진 집단에 대항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고우성 한국문화안보연구원 자문위원장도 “문화예술계는 이념투쟁의 최대 격전지”라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국가보안법 철폐, 재벌개혁, 역사교과서 문제 등 그간에 노정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주요 쟁점들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말살시키려는 반 대한민국 문화전쟁이, 총성 없는 이념전쟁이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전쟁으로 함락된 보수우파의 진지(陣地)
‘문화 각축전’에서 밀려난 것은 보수우파 진영이었다. 이를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도 나왔다. 2015년 5월 발간된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ISSUE 4 ‘이문열 편-시대와 불화하다’》에서 이문열 소설가는 문화 진영에서 우파가 퇴조한 현상에 대해 “(좌파가) 진지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우리 진지가 다 파괴되어 버린 것”이라며 “이명박이 되고 박근혜가 되어서 진지를 탈환하려는데, 진지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령관만 똑똑한 우파 하나 보낸다. 그러니 안 쫓겨나면 다행(인 셈이 됐다)”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잡지에서 이문열은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좌파 진영이 견고한 문화진지를 구축해 왔다고 했다. 그는 “말 없는 다수는 사라지고 겁먹은 (보수의) 허수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러나 들여다보니 허수가 아니라 함락된 진지였다”고 했다.
2015년 당시 이 작가는 문화계에서의 좌우 진영 간 비율에 대해 “여전히 9대 1로 본다”며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우파나 보수 작가를 봤는가. 그거만 보면 일단 0%다”라고 진단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100일 동안 (현) 정권이 앞장서서 각을 세우기보다는, 각계에 포진해 있는 ‘자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형태로 사회 및 문화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라며 “소위 그람시의 진지전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칼럼을 통해 주장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건한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헤게모니 개념을 한 단계 발전시켜 기동전-진지전 이론을 창시했다. 진지전은 참호에 숨어서 싸우듯 장기전을 펼치는 투쟁전략이다. 그람시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적·문화적·이념적 헤게모니를 장악해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얻는 진지전이 적합하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