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核무기를 쓰고 남을 만큼 만들어뒀다. 이것은 그들이 자주 얘기하는 것이다...(중략) 93년 核사찰 문제가 나오기 전 김정일이 나한테 ‘核무기 제조에 성공했다’고 얘기했다. 김정일이가 당시 核무기 제조를 지휘한 박송봉 당시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에 대한 표창문제를 나에게 상의했다” (2006년10월11일, 황장엽 前노동당 비서)
■ 북한의 核개발은 역사가 매우 길고, 舊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으며, 이들 국가의 核협력 관계는 非공식적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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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110㎞ 떨어진 드브나 시(市)에 세워진 이 과학기지에는 소련 최대 核실험실이 있었다. 1964년 중국 최초의 核실험을 성공시켜 ‘중국 核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核물리학자 왕감창(王淦昌) 등 중국의 주요 核과학자들도 이곳에서 길러졌다.
1956년 연구소의 설립 이후 1990년 북한과 러시아의 과학연구 협력이 중단될 때까지 30여년 동안 모두 250여명의 북한 과학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이후 1960년대부터 북한은 核物理學 연구진을 자체적으로 길러냈다.
1962년 평북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세운 데 이어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에 核物理학원을 설립해 核과학자와 기술자를 양성했다. 1965년에는 영변에 소련의 도움으로 IRT-2000 연구용 핵반응로를 건설했다.
이때부터 북한의 核연구는 일정한 규모를 갖추게 된다. 1979년에는 자체 기술로 실험용 核반응로 건설에 착수해 1986년 정식 운전을 시작했다. 1985년에는 영변 核시설에 사용한 核 연료봉을 써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실험실 건설에 착수했다.
북한은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영변 核시설 내부의 모래밭에서 核武器 개발에 필요한 고폭 실험을 130여 차례 실시했다.
■ 북한의 초기 核 연구는 도상록(都相錄), 한인석(韓仁錫), 이승기(李升基) 등 越北 과학자들이 주도했다.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理論물리학을 전공한 도상록(1903~1990)은 해방 후 서울대 교수를 지내다 1946년 5월 월북,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과 주임을 맡았다.
한인석은 해방 후 연세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월북한 뒤 김일성종합대학 고급 교사를 맡았으며, 모스크바에서 장기간 첨단 물리학을 배우고 돌아와 1960년대 대량의 核物理學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전남 담양 출신인 이승기는 1939년 교토대학에서 응용화학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공과대학장으로 재직 중 6.25 때 월북했다. 1940년대 초반 석탄으로부터 합성섬유 1호를 개발한 그는 1961년 비날론 생산을 주도했고 영변원자력연구소장(1967)과 과학원 함흥분원장(1987)을 지내는 등 북한 과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북한은 현재 核개발 핵심고급인력 200명을 포함, 전문 인력 3,000명, 기술인력 6,000명 등 총 9천여 명의 核과학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核物理學 분야의 핵심 교육기관은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성이과대학이다. 평성이과대학은 核物理學, 化學, 數學 등 다섯 개 학과로만 구성된 특수대학이다. 이외에도 평양고등물리학교, 김일성고등물리학교 등도 물리학 연구 인력을 배출하는 주요 교육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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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현재 해저에 설치한 비밀 핵시설에서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다. 북한이 해저 핵시설 활동으로 어느 정도의 고농축우라늄을 획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없다./출처: 위키리크스 원문자료 |
■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한이 정말 核武器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核武器 기술은 첨단기술이 아니라 50년대 이미 모든 원리가 밝혀진 기술이다.
원자로 기술과 核武器 기술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동일한 분열 핵물질을 사용해 원자로는 3년 정도의 장기간에 걸쳐 核分裂이 일어나도록 작동시키는 반면, 核武器는 짧은 시간에 核分裂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분열시간의 조절기술에 불과한 것이다.
과거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의한 核武器 개발 시 설계된 모형에 대한 核계산을 현대와 같은 대용량의 슈퍼컴퓨터로 계산하지 않고 수기식 계산으로 개략적인 계산을 하여 설계했으나 특이한 문제점은 없었다.
북한도 이미 1980년대부터 자체 기술로 영변의 5MWe 원자로를 설계했다. 그러므로 어떠한 모형의 핵물질에 대해서도 정확히 묘사, 계산 가능한 核계산 코드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核武器 개발에 필요한 기술상의 문제점은 없다고 봐야 한다.
여러 가지 이설(異說)들이 있을 수 있으나, 컴퓨터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核실험의 필요성은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감소됐으며,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을 가지고도 核무기를 유지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 적지 않은 核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김필재-
[참고]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10년 동안 남한이 김정일 정권에 준 현금은 29억 달러(3조6000억 원-환율 1240원 적용)에 달하며 현금과 현물을 더한 對北지원 및 경협(經協)의 총규모는 69억5950만 달러(8조6800억 원)로 알려져 있다. 이 규모는 같은 기간 중국의 對北지원액 19억 달러의 3.7배, 북한의 전체 수출액 77억 달러의 90%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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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itcase nuclear bomb |
2002년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알렉산더 레베드 장군은 구(舊)소련 붕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핵물질과 미사일 기술이 북한-이란-중국 등으로 유입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푸틴의 정적(政敵)으로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레베드는 사고 발생 전 미(美)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舊)소련이 보유했던 소형 핵무기 가운데 100여기 가량이 분실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소형 핵가방은 미국과 러시아만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수년 전 부터 미국의 군사안보관계 전문가들은 ‘제2의 9.11테러가 핵 테러가 될 것’이라고 예견해왔다.
테러의 목표가 미국의 워싱턴이 될지 뉴욕이 될지, 아니면 서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얼마 전 핵무기 위협 대상으로 테러리스트 단체를 비롯, 북한-이란 등을 ‘최대의 핵 위협국’으로 지목하고, 이들 국가에‘서류 가방 크기의 핵무기’(a suitcase-size nuclear bomb)가 유입됐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클린턴 장관은“지금은 핵 정보와 기술 전문가들이 (핵정보 및 기술을) 시장에서 판매를 할 수가 있으며, 핵기술 이전을 차단하기가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미국은 북한을 비롯, 여러 국가에 핵기술을 판매한 파키스탄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4월 워싱턴 핵 안보정상회의에서 많은 핵 밀거래 차단 사례들이 논의됐다”고 언급하면서 “특히 구(舊소)련으로부터 흘러나온 핵물질 유출-거래 시도가 있었고 여러 구매자들이 있었다. (이는) 심각한 우려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서류가방 크기 핵무기는 킬로톤(kt) 규모의 충격으로 수만 명의 인명을 사망시키지는 않더라도 해당 지역 일대를 오염시키고, 테러공포에 휩싸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최고의 테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클린턴 장관은 우려를 표명했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은 핵 정보, 기술을 지난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핵실험을 실시했고, 지금도 무기 역량 증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장관의 발언은 북한 핵문제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기자는 아주 가까운 장래에 북한의 미(未)공개 군사력이 속속 ‘오픈-클로즈 트랙’(open-close track)을 통해 공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북한의 핵배낭 보유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90년대 소련에서는 정권붕괴가 임박해지자 우크라이나, 카자크스탄, 벨로루시 등에 배치했던 소련의 전술 및 전략핵무기(SS-18, SS-19, SS-24, SS-25) 가운데 80 내지 100여기가 무정부상태 혼란 속에서 분실되거나 도난당했다.
김정일이 핵물질과 탄도 미사일 기술을 헐값 획득할 수 있는 이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쳤을 리가 없다. 즉 북한에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핵물질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장차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며, 군(軍)대북작전 계획이 전면 수정되어야 함을 뜻한다.
북한과 같은 신생 핵보유국의 경우 핵물질에 대한 안전관리가 허술하다.
만에 하나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해 북한 전역이 무정부상태가 되면 핵무기 및 핵물질에 관한 정부통제가 와해될 것이다. 이 혼란 중에 핵무기와 핵물질의 일부가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에 팔리거나 그들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경제가 파탄난 북한은 재정조달과 정정권유지 차원에서 중-단거리 미사일을 밀수해왔으며, 사정이 급박해지면 핵물질과 핵무기마저 내다 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이판사판식 정권안보를 고수하려는 북한지도부는 핵을 가진 위협은 물론 핵무기 장사까지 마다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 북한의 핵전략을 ‘한(恨)의 핵전략’이라고 했다. 3백만의 북한 동포들을 굶겨 죽여 만든 핵무기란 뜻이다. 북한 독재정권은 김정일이 죽어도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통일이 늦어지면 연방제 적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같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위협에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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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북핵 전문가인 D씨는 1990년대 북한 핵 관련 보고서를 통해 2010년 북한 핵탄두가 최소 2백60여기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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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전술 핵무기를 관찰하고 있는 미국의 핵과학자들. |
이는 수치로만 보면 이스라엘과 인도를 맞먹는 엄청난 양이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핵군축(核軍縮)을 주장하는 이유는 핵무기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의 국방백서는 북한 핵탄두를 12기 정도로 보고 있으나, 이는 북핵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황장엽 前 북한 노동당 비서는 2006년 10월11일 모 강좌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쓰고 남을 만큼 만들어뒀다'면서
'(이것은) 그들이(노동당 간부들이) 자주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북한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핵무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는 지하 핵시설을 통해 엄청난 양의 핵폭탄을 제조 하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은 부시 행정부 말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고, 수세적 대북정책으로 전환해 여태껏 비공식 루트를 통해
한국 정부를 배제하고 북한 당국자들과 대화를 지속해온 것이다.
북한은 다양한 형태의 핵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왔는데, 특히 소형 핵무기에 큰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국내 대다수 북핵 전문가를 비롯, 대다수 언론이 북한의 핵능력을 과소평가 하고 있으나 이는 조국의 장래를 위해 옳은 일이 아니다.
2006년 10월 실시된 북한 핵실험 당시 로이터 통신은 “(북한의) 핵실험에 사용된 무기가 중성자탄”이라고 보도하면서 “북한이 중성자탄을
실험한 것이라면 장차 미군이나 한국군과 전쟁 시 전술핵무기로 배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영국 왕립 <합동군사연구소(RUSI)>의 군사전문가인 리 윌렛은 “핵탄두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재래식 미사일과 핵탄두를 서로 맞추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면서 이런 점에서 북한의 핵실험 무기가 ‘중성자탄’이라는 가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홍콩 군사전문가인 차우훙(昭鴻)은 <홍콩 명보>와의 인터뷰에서 “핵실험의 성공 여부를 폭발 규모로 가늠할 수 없다”며 “북한이 더 정밀한 핵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폭발규모로 핵실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관념”이라며 “북한의 핵기술은 크게 저평가돼 있고 이미 제3세대 핵무기인 중성자탄을 개발 중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들이 한결같이 중성자탄을 언급한 이유는 1998년 파키스탄에서 수폭실험을 목격했고, 2004년 9월8일 밤11시와 9월9일 새벽1시에 실시한 중성자탄 실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는 이제 공공연한 사실로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이와 함께 핵실험 당시 작은 지진파가 감지됐는데, 핵폭탄 실험의 지진파치고는 매우 약한 파동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국내외 언론은 북한 핵실험이 실패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일제히 게재했다. 그러나 기자는 이들과 의견을 달리했다.
김정일이 한반도에서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는 ‘소형 핵무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동안의 북한 핵 실험은 실패작이 아니라 '소형 핵실험'을 해온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북한은 현재 야포와 미사일에도 쉽게 장착-사용 할 수 있는 소형의 핵무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장래에 사단-군단급도 아닌 대대-연대단위의 부대에서도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사망한 김정일은 언론에서 종종 ‘무모한 미치광이’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핵개발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이성적인 과정’을 추구해왔다고 여겨진다. 북한은 가까운 장래에 엄청난 양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북핵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사활이 걸린 치명적이고 불안정한 위협이다.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 간의 보다 적극적인 군사협력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북한의 3대 세습이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甲論乙駁)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사수를 위한‘자체 핵무장’을 논해야 할 때이다.(2011년 5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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