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여행

김천 황악산

서석천 2010. 2. 24. 21:49

 

 

오늘은 경상북도 금릉군과 충청북도 영동군의 경계를 이루고, 산자락엔 유명한 직지사를 품고있는 김천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고 대간길인 황악산으로 간다. 옛날엔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표기한 때도 있었으나 현재는 황악산(嶽)으로

표기하고 있고...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신선봉, 형제봉.백운봉.운수봉으로 이루어져 직지사를 감싸안고 있는 형국으로 산세가 이루어져 있어며
주능선은 백두대간으로 거대한 산맥이 북으로는 충청도와 남쪽으로는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면서 남서쪽으로 우두령,삼도봉,

덕유산으로 이어지고, 북동쪽으로는 천덕산,여시골산,가성산,추풍령으로 이어진다.

오래전 백두대간을 한답시고 다녀온지 20연년이 지나도록 밟아보지 못했는데... 오늘도 혼자서. 참 오랫만에... 천하일봉에 얹혀서... 08:00에 출발하여 대동I/C 들어서-대구-경부고속도로-김천I/C 빠져나와 우회전 하여 4번국도로 대항면 소재지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977번국도로 가면 경북과 충북의경계지점인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계방령에(10:55)에 도착한다.

 이곳이 조선시대 영남의 유생들이 과거보러 한양으로 갈 때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는 속설 때문에 마음 약한
유생들은 추풍령 대신 이 고개를 넘었다는 계방령이다. 괘방령은 백두 대간 제13구간으로 이곳은 경북과 충북의 경계지점이다.
도로가에 괘방령 안내판이 크게 세워져 있고 돌탑과 산장이 있다.
돌탑에는 매곡면 동이름이 새겨져 있고 백두대간상의 산이름이 세겨진 돌들이 세워져 있어 대간종주자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날씨는 포근하고 바람은 살랑살랑 기분좋게 불어주니 산행하기 딱 좋은날씨다.
주위에는 쉼터가 마련되어있고. 계방령 안내판에는 "이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다.

괘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던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써 추풍령 못지않은 큰 길이었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때 박이룡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엉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다시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감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이요.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곳에서 산행준비와 상견례하고 바로입산이다.(11:00) 오늘의 코스는 이곳 계방령에서 여시골산-운수봉-백운산-비로봉-형제봉-신선봉-망봉-직지사로. 직지사를 좌측에 끼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 코스다.  해발 220m에서 좌측 나무계단으로 오르면서 산행은 시작되고...

시작부터 된비알로 이어지고 등로에는 잔설이 남아있고 땅은 얼어 스틱이 박히지않는 등로를 20여분 오르니 첫능선에 올라선다.(11:22) 잠시 숨돌리며 아이젠도 착용하고 능선길 이어간다. 능선길에 오르니 시원한바람이 불어와 땀을 앗아가고... 연무와 잡목으로 조망은 별로다. 땅아래 군데 군데 얼음이 있어서 미끄럽고 조심스럽다. 태양광 자동방송시스템 시설물을 지나 10여분을 오르니 백두간길 여시골산에 닿는다.(11:33)"백두대간 여시골산 620m"이라 적힌 자그마한 정상석이 반긴다. 산행시작 30여분만에 선두그룹, 후미그룹의 소속은 정해졌고... 선두에는 신용섭씨 성도님. 나, 고은님 사부님도 분기탱천한다.

여시골산에서 두개의작은 봉우리를 넘어 10여분만에 등로우측에 수직동굴도 지나고 600m급 능선봉우리 5개를 넘어 30여분만에
운수봉에 닿는다.(12:03) 조금만한 정상석에"운수봉, 백두대간, 680m"라 표기되어 있다. 아직 북사면에는 하얀눈이 쌓여있고...
발아래 운수암이 보일까 까치발을 해 보지만 키큰 잡목과 옅은안개 땜에 조망이 되지 않는다. 잠시후 운수봉삼거리에 닿는다.(12:07) 좌측으로 운수암 거쳐 직지사로 가는길이고 산객들 쉬어가라고 벤취도 만들어 두었다. "황악산 2260m, 쉬었다가세요" 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119 구조요청지점, 황악산 2번 지점" 이라는 푯말도 보인다. 

 산길을따라 둥그스럼하고 후덕한 육산 북사면 등로에는 아직도 눈이쌓여 미끄러워 조심을 요한다. 한참후 눈쌓인 안부에 도착
(12:30)하니 여기도 쉬어가라고 4개의 벤취를 만들어 두었다. 잠시 물 한모금 하고 백운봉에 올라서니 연무도 걷히고 드디어 조망이
이루어진다. 멀리 김천시가지 가 보이고 김천시 뒤로 금오산도 보이고, 그 앞으로 영암산 덕대산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언제 저 앞의 망봉까지 갈까나. 백운봉에는 정상석도 없고 표지판이 없어 지나치기 쉽겠다.
등로는 후덕하기 이럴때 없는 육산으로 능선은 원만하고 잔설은 남았으나 그리 미끄럽지는 않다. 양지쪽은 녹은땅으로 질퍽거릴뿐... 헬기장지나 바로 정상 비로봉에(13:10)(1,111m,) 닿는다.

두개의 정상석과 돌무덤, 백두대간 해설판 옆에는 삼각점도 보인다. 삼각점에는 영동 23, 1981재설로 되어있다 
이곳에서의 파노라마는 일대 장관이다. 정상에서 북쪽으로는 백화산 너머로 속리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금오산이 뚜렷하다.
금오산 방면에서 동남쪽 멀리로는 가야산 단지봉 수도산 줄기가 거센 파도처럼 시야에 들어오고...

정상에서의 조망 중 으뜸은 남서쪽이다.

가까이는 서쪽으로 삼도봉과 민주지산이,

멀리로는 대덕산과 덕유산 산그리메가 너울거린다. 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정상에서

형제봉쪽으로 조금내려와 2개의 의자가 놓인곳에서 재충전하고 따끈한 커피한잔에다

구름과자 한입뿜고 일어선다. 잠시후 좌측 능여계곡 직지사로 내려가는 갈림길 만나지만 너무 위험한 급경사라 후미에 이길은 피하라고 무전연락하고 조금더 가면 형제봉에서

내려가는 길이있으니 그 등로를 이용하라

하고 이어간다. 10여분만에 형제봉에(13:47)
닿고, 형제봉엔 표지석은 없고 정상에서 0.9km지점이고 바람재가1.3km거리고, 해발1,040m라 적힌 이정목만 서 있다.
잠시후 형제봉에서 직지사로 내려가는 등로를 만나지만 이곳도 쌓인눈으로 산객의 발자국을 볼 수 없다. 위험하다.
뒤 일행에 알려주고 이어간다. 잠시후 의자2개가 놓여있는 쉼터 신선봉 갈림길(13:57)이정목에는 형제봉에서 0.5km 지점이고 신선봉이1.4km거리다.
여기서 우측으로 꺽어 바람재 방향으로 가면 백두 대간길이고, 곧장 신선봉으로 직진한다. 괘방령에서 이곳까지는 경북과 충북의
도 경계선을 타고왔어나 지금부터 경북땅으로 들어선다. 미끄러운 경사면을 내리고 오르면 의자2개를 설치하여 쉼터를 만들어놓은 신선봉(14:22)에 선다.  다시 한번 방향을 직지사 쪽으로 감아돌며 망봉으로 향한다.
내려오는 눈덮힌 계단길이 급경사라 조심조심 내려와 안부(14:55)에서 단숨에 원목계단을 치고올라 서니 망봉 이정목이 반긴다.
(15:00)망봉에서 좌로 꺾어 직지사쪽 원목계단으로 내려선다. 여기도 얼어붙은 눈때문에 조심 조심 엉금엉금 20여분을 내려오니

(15:20)포장된 꼬부랑 임도다. 잠시후 황악산 동쪽 품에 안긴 천년고찰 직지사에 닿는다. 418년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세웠다니까
대충 1,600여년의 내력을 갖고 있으며, 그후 태조 19년(939년) 능여대사가 중건했고. 임진왜란 때 거의 다 불에 탄 후 400년 가까이
폐허로 있다가 1970년대에 녹원 스님의 30년간에 걸친 불사로 지금의 직지사로 거듭 태어나게 되었다. 중창불사에 앞장선 녹원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을 지낸 분이다.

 

직지사라는 이름도 좀 독특한데, 아도스님이 신라에 불도를 전하러 왔다가 손가락으로 황악산을 가리키며 좋은 절터라고 한데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고...
또는 나중에 이 절을 중건할때 능여대사가 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전해오나..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즉 사람이 갖고 있는 참된 마음을 직관하면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는 뜻으로 
마음속의 부처를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의 뜻으로 절이름을 짓지않았나 싶다. 

직지사는 깊은 유래만큼 역사적 사연도 많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대구 팔공산 전투를 벌이던 중 포위되었다가

부하장수 신숭겸의 도움으로 탈출했을 때 이곳으로 피신했고. 능여가 직지사를 중건할 때 고려 태조의 도움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겠고... 임진왜란때 구국 영웅인 사명대사의 출가처로도 인연이 깊다. 사명대사는 15세에 양친을 여의자 인생무상을 느끼고

직지사에서 머리를 깎았고 나이 서른 즈음엔 직지사 주지를 맡기도 하여 사명각엔 사명당의 영탱(영정으로 된 탱화)이 봉안돼 있는데, 사명각을 복원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현판 글씨를 쓰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직지사와 인연이 깊다. 명부전엔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그리고 박대통령 부모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명부전은 죽은 사람의 넋을 인도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법당인데. 어찌해서 박대통령 내외가 이곳에 모셔져 있을까.

 사연인즉 김천과 이웃한 구미 출신인 박대통령은 불교를 믿었던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에 직지사를 자주 다녀갔다고 한다.
박대통령 자신도 구미보통학교 시절 직지사로 소풍을 오곤 했고. 그런 인연으로 1974년 7월 직지사를 찾은 그는 주지 스님에게
부모님 영가를 모시고 천도재를 지내달라고 부탁했는데.. 한 달 뒤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자 직지사측에서는 육여사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했고, 1979년 박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역시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서거일에 맞춰 기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또 절을 감싸고 있는 황악산 산높이도 재미있다. 바로 곧은 작대기 4개를 가지런히 세워 놓은 듯한 1,111m인 것이 옛 산동무들은
"와리바시산" 이라 불렀지... 직지사는 여러번 다녀간 곳이라 대충둘러보고 잘 꾸며놓은 무궁화공원을 지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장에(16:00) 도착하니 아직 도착한 일행은 없고 직지사와 운수암 탐방온 최덕수씨 혼자 반가워한다.
먼저온 일행은 후미일행모두 도착하기까지 따끈한 떡국과 하산주 한잔으로 피로를 달래며 2시간 후 에야 귀가출발한다.

2010/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