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재판' 뜻 뒤집은 고법, 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골목골목 경청투어:국토종주편'에 나선 7일 전북 전주시 풍남문 앞 광장에서 지지자가 든 공판 연기 환영 팻말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고등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6·3 대선 후인 6월 18일 오전 10시로 연기한다고 7일 밝혔다. 지난 2일 이 후보 1차 공판을 오는 15일 열겠다고 공지한 지 닷새 만이자, 이 후보가 이날 기일변경신청서를 낸 지 1시간 만이다. 이 후보는 “법원이 헌법 정신에 따라 당연히 해야 될 합당한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고법, 신속 의지 보이다 5일 만에 연기…“선거운동 기회 보장”
이 후보 사건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 7부(부장판사 이재권)는 이날 오후 12시4분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재판기일을 대선 후로 변경한다. 재판부는 법원 내·외부의 어떠한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하여 공정하게 재판한다는 자세를 견지해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공지했다.
재판부의 전격적 기일 변경은 이 후보 측이 이날 오전 11시쯤 공판기일변경 신청서를 낸 지 1시간 만에 이뤄졌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지 하루 만인 지난 2일 ▶재판부 지정 ▶첫 기일 지정 ▶피고인 소환장 발송 등 이례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대선 전 선고 가능성”까지 거론됐으나 결국 선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파기환송심이 대선 전 선고 나더라도 이 후보 대선 출마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선 대법원과 서울고법의 속도전에 강한 경계를 표했었다. 파기환송심 유죄에 대한 부담과 함께 대선 후 대법원의 재판 강행 가능성을 의심하며 “15일 출석하지 않을 때 16일이나 그 다음 주 월요일(19일)을 (2차 기일로) 잡아서 궐석재판으로 선고하는 상황이 오면 큰일”(박균택 의원)이라는 식이었다.
나아가 진보 진영 일각에선 실현 불가능함에도 파기환송심이 빨리 날 경우 대법원이 대선 전 선고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현행법상 재상고는 선고 후 7일 내, 재상고 이유서는 소송 기록 접수 후 20일 이내에 하게 돼 있는데, 대법원이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이유서 제출을 기다리지 않고 7일 만에 판결할 것(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라는 주장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기재위·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출마 후보들의 선거운동 기간 중 잡혀있는 모든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로 미룰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의 줄탄핵 압박 때문이었나
결과적으로 법조계에선 “고법이 당초 뜻을 뒤집고 이 후보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재판부가 피고인의 요청으로 기일을 변경하는 것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의 경우 재판부 스스로 이례적인 속도로 신속 재판 의지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연기 신청을 받자마자 한 달 후로 미룬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그간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파기환송하자마자 “사법 쿠데타” “조희대 대법원장의 3차 내란” 같은 거친 언사와 함께 탄핵·청문회·입법 등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방위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고법이 연기를 결정한 후인 이날에도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과 대법관 9인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겠다고 예고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이 후보 측이 주장해온 ‘후보자의 균등한 선거운동 기회’(헌법 제116조)와 ‘대선 후보자의 선거운동 기간 중 체포·구속 금지’(공직선거법 제11조)라는 법조항을 충실히 받아들인 배경에는 법 논리도 법 논리지만, ‘사법부 힘빼기’에 당력을 쏟는 민주당을 고법 재판부가 무시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며 입술을 다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李 당선 시 모든 재판 5년 정지?…선거법은 면소될 수도
이날 서울 고법 판단에 따라 이 후보가 재판받는 다른 4개 사건 향배에도 이목이 쏠린다. 우선 선거법 사건과 마찬가지로 대선 전 재판이 예정됐던 대장동 사건 1심(5월 13일, 5월 27일)과 위증교사 사건 항소심(5월 20일)에 대해서도 이 후보는 기일 변경을 신청했다. 대장동 재판부는 당일 신청을 받아들여 대선 후(6월 24일)로 미룬 가운데, 위증교사 재판부도 추후 받아들일 경우 대선 전 재판 일정은 모두 사라진다.
이 후보가 당선할 경우 형사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에 의해 재판도 정지되는지에 대한 해석은 일단 각 고법과 지법이 맡게 됐지만, 헌법과 무관하게 재판이 모두 정지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진행 중인 재판을 임기 종료까지 정지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추진했고,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에서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법안이 당장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대통령(권한대행)이 거부하면 그만이지만,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선 후 취임(6월 4일)하는 순간 입법 권력과 행정 권력이 한 몸이 되기 때문이다. 선거법의 경우 6·3·3법(선거사범은 기소 후 6개월 내, 2·3심은 전심 후 3개월 내 선고)에 따라 1년 내 확정판결을 마쳐야 하는데, 이미 기소(2022년 9월) 후 2년 8개월 지난 이 후보 사건은 장장 7년 9개월 걸릴 수 있게 된다.
선거법 사건이 아예 면소 처리가 될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조항(250조 1항)에서 ‘행위’ 부분을 삭제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대통령이 공포할 경우다. “김문기 몰랐다” “국토부로부터 협박받았다”는 말로 이 후보에게 적용된 법 조항을 수정함으로써 면소(법 조항 폐지로 처벌 불가) 판결을 받게 될 수 있다.
김준영 기자 2025-05-07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이어 대장동 사건도 대선 이후로 재판이 미뤄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7일 이 후보의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다음 공판기일을 오는 6월 24일로 연기했다.
당초 이 사건 재판은 오는 13일과 27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이날 이 후보 측에서 기일변경 신청을 한 이후 재판부가 변경한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이 후보 측은 선거운동 기간이라며 기일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지난달 8일 "구체적 일정이 정해지면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으라"며 일단 기일을 지정한 바 있다.
대선일과 선거운동 기간이 확정되고 지난달 27일 이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재판부가 정식으로 접수된 이 후보 측 기일연기 신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서 이날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도 오는 15일 예정됐던 첫 재판을 대선 이후인 6월 18일로 한 달 연기했다.
이 후보 측은 '후보자의 균등한 선거운동 기회'를 보장한 헌법 제116조와 '대선 후보자의 선거운동 기간 중 체포·구속 금지'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11조를 사유로 들어 선거일 이후로 기일변경을 신청했다.
고법 형사7부는 신청서 접수 직후 기일변경 사실을 알리며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재판기일을 대통령 선거일 후로 변경한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 측은 위증교사 사건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3부(이승한 부장판사)에도 기일변경 신청서를 냈으나 오는 20일 예정된 이 사건 첫 공판기일은 이날 오후 기준으로 아직 변경되지 않았다.
- 장인수 기자 2025.05.07
- *****************************
李재판 연기에도…민주, 방탄 입법에 조희대 청문회·고발도 강행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신정훈 위원장이 공직선거법 개정안 단독 처리에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 행안위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이재명 대선 후보의 사법리스크를 무력화하기 위한 법안들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이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라는 이유를 들어 이 후보의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 연기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민주당은 기존에 추진하던 ‘방탄 입법’을 그대로 강행한 것이다.
조승래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장은 이와 관련해 “재판 기일 연기와 무관하게 대법원에 의한 대선개입, 정치개입에 대해서는 그 과정을 면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후보자가 ‘행위’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하더라도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 후보는 지난 1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후보자 ‘행위’에 대해 허위 사실을 처벌한다는 조항이 전세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고 이후 항소심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바로 그 조항(공직선거법 250조 1항)에서 ‘행위’라는 단어를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되면 대법원이 유죄라고 본 이 후보의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과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서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라는 혐의에 대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면소(免訴) 판결을 내려야 한다. 면소는 검찰 기소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사라졌을 때 내리는 판결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회의장 입장 전부터 복도에서 ‘이재명 면죄 입법 즉각 중지’, ‘피의자 이재명 방탄 입법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골목골목 경청투어:국토종주편'에 나선 7일 전북 전주시 풍남문 앞 광장에서 지지자가 든 공판 연기 환영 팻말을 지나고 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은 오는 15일 예정됐던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오는 6월 18일로 연기했다. 연합뉴스
6선의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속기록에 남기기도 부끄럽다. 삼권분립 법치주의는 판단 권한을 사법부에 주고 그 판단을 다 따르자는 것”이라며 “국회 의석 수가 많다고 그 판단이 잘됐니 잘못됐니 하는 자체가 법 취지 훼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 신정훈 행안위원장은 의결을 강행했다.
신 위원장은 회의 전 기자들에게 “(이 후보 재판) 상황이 아직 정리가 완전히 안 돼 있다. 그래서 사전에 준비한 대로 한다”며 “선거법의 이 부분이 개정돼야 한다는 여론이 오랫동안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행안위원들도 이날 “서울고법은 재판을 연기했지만 여전히 22일간의 선거운동 기간 중 총 4일의 재판 일정이 잡혀있다”며“이는 선거운동을 원천 봉쇄하려는 노골적인 사법 개입”이라고 기자회견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에서 이 후보가 피고인인 5개 재판 모두에 적용되는 또 한 건의 방탄 입법을 감행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어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재임 기간 동안 정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피고인이 선거 후보자로 등록한 때부터 개표 종료 시까지 공판 절차를 정지’하는 규정이 포함됐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는 공판 정지 대상에서 제외한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장 복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20250507
민주당은 이날 ‘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의 대선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 실시계획서’도 채택을 의결했다. 사법부 청문회도 예고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이재명 재판 중단법”(유상범 의원)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민주당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이 “원하지 않는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이걸 범죄의 시선으로 보고, 청문회를 한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위원들은 의결 전 집단 퇴장해 권성동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함께 회의장 밖에서 농성했다. 그러는 사이 서울중앙지법도 이 후보의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공판 기일 연기를 결정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판단한 조 대법원장 등 대법관 10명을 직권남용 및 부정선거운동,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고발했다. 법사위에서 민주당은 ▶순직해병 특검법 ▶내란특검법 ▶김건희-명태균 특검법 등도 일사천리로 단독 의결했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3개 특검을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상임위를 통과한 공직선거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본회의 처리 시점과 관련해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5월 중 본회의를 한 번 열어서 처리할지, 대선 후에 처리할지 여부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당초 5월 중 본회의 처리가 유력했지만, 법원이 이 후보의 재판 기일을 연기해 시급성이 사라진 데다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이 막판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어 선대위 내부에선 “대선 전 본회의 통과는 실익이 없다”(민주당 3선 의원)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청래 법사위 위원장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위원들만 참석한 채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20250507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두 개정안에 대해 “형식적으로만 법치주의 틀을 유지하고 있을 뿐, 실질적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사실상 인치(人治) 주의로 만드는 입법”이라고 평가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나머지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위인설법(爲人設法)이다. 그 자체로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심새롬·윤지원 기자 2025-05-07
***************************************
"지지율 99% 정치인이라도 법 어기면 처벌하는 게 판사의 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재판이 대선 이후로 미뤄졌는데도, 민주당의 사법부 공격은 멈추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8일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을 밝히겠다며 특검법 발의를 예고했고, 오는 14일엔 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국회로 불러 청문회를 연다고 한다. 대놓고 “사퇴하라”는 논평도 냈다. 지난 1일 이 후보에게 유죄 취지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모양새다.
전례 없는 ‘사법부 압박 사태’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법조윤리협의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대광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의 김익현 변호사, 한국형사법학회장을 지낸 한상훈 연세대 교수는 우려를 표하면서도 미묘하게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놨다.

◇김대광 변호사 “민주당의 사법부 공격, 법조인이라면 본능적 두려움 느낄 것”
민주당은 ‘왜 하필 대선을 앞둔 지금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후보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느냐’고 문제 삼는다. 질문 자체가 틀렸다. 3년 전 대선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를 받는 정치인 사건이 왜 아직도 결론 나지 않았는지부터 따져야 하는 것이다. 대법관들은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재판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는 사건을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민주당이 대법원장·판사 탄핵과 대법원장 상대 청문회, 특검 등으로 사법부를 협박하는 건 매우 우려스럽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유죄 판결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청문회에 불려가거나 특검 수사를 받아 고초를 겪는다면 어떻게 될까. 상식적인 판사와 변호사라면 ‘입법권을 장악한 거대 야당이 재판과 판결이라는 룰을 흔드는구나’ ‘피고인이 권력자라면 독립된 재판이 불가능하구나’ 하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재판을 미루기로 한 판단은 존중하지만, 민주당의 공세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후보에 대한 유죄 판결과 신속 재판이 마음에 안 든다고 대법원장과 판사를 탄핵하겠다는 것, 청문회에 불러 모욕 주겠다는 것 아닌가. 사법 시스템 자체를 뒤흔들고 재판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이다.
민주당은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을 정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이 후보가 기소된 허위 사실 공표죄의 ‘행위’ 부분을 삭제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 등을 밀어붙이며 ‘사법 개혁’이라고 말한다. 이 후보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어도 개혁을 말했을까 싶다.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에 손을 대는 것은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서휘에서 김익현 변호사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고운호 기자
◇김익현 변호사 “유죄 준 대법관들만 탄핵... 대법원 마비로 큰 혼란 빚을 듯”
사법부의 독립성 침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에 대한 특검은 사건 기록을 언제부터 봤는지, 6만쪽 기록을 다 읽었는지를 조사하겠다는 것인데 판사의 재판 과정을 수사하는 일은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대법관은 이른바 최고 법관이다. 재판연구관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에도 20건씩을 처리한다. 이재명 후보 사건은 이미 사실관계가 다 파악돼 있어서 법리 해석에 대한 판단만 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이 후보에게 유죄를 선고한 대법관들(10명)에 대해서만 고발 또는 탄핵 이야기를 한다. 수사기관이나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또 직무 정지 등 대법원 마비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대법관 직무는 대행할 수도 없다. 중범죄자에 대한 재판을 구속 기간 안에 못 마쳐서 풀어줘야 할 수도, 심리 불속행(심리 없이 곧바로 상고를 기각하는 절차)도 기간 안에 못 해 큰 혼란을 빚을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는 대법원 판례 등으로 볼 때 타당했다. 그런데도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여론 압박에 못 이겨 재판 일정을 대선 이후로 미룬 것은 아쉽다. 이 후보 측이 기일 변경 신청서에 ‘이 후보가 사법 리스크에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보이는 것은 국민이 피선거권을 박탈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수긍하기 어렵다. 설사 국민 지지율이 99%라고 해도 법을 어긴 정치인을 처벌하는 것은 법원과 판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대법원의 사건 처리가 이례적이었던 것은 맞는다. 하지만 애초에 1·2심이 법정 기한(6·3·3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곧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이전 대선 때 사건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한상훈 연세대 교수 “대법원 졸속 재판, 국회 압박 자초”
국회의 사법부 압박은 대법원이 자초한 일이다.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졸속 판결이 없었다면 국회가 법관 탄핵 같은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 일도 없었을 것이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선고는 절차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잘못됐다. 상고심은 하급심 판단에 법리적 문제가 있는지 따지는 법률심인데, 이번 판결에선 직접 사실 판단을 해 이 후보의 발언이 허위라고 단정했다.
이례적으로 빨리 선고한 것도 문제다. 법을 지킨다고 해도 대법원은 항소심 선고(3월 26일) 3개월 뒤인 6월 25일까지만 결론 내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비정상적인 심리 속도로 이를 50일 넘게 앞당겼다.
정치 개입 의도가 다분하다. 유력한 야당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 있었고, 이는 비상계엄으로 군사 쿠데타를 시도했던 세력의 정권을 연장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법 쿠데타’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국회가 사법부의 정치 개입으로 국민 주권이 침해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게 되자, 삼권분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수단까지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이 대선 전 파기환송심 재판을 강행하려고 했다면 탄핵을 통해 이를 정지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법관 탄핵이나 대법원장 특검 등은 신중해야 한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가치 수호를 위해서는 국회도 절제가 필요하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대선 이후로 재판을 미룬 것은 적절했다. 헌법 116조는 균등한 선거운동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에 대선 후보를 재판에 나오라는 건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 후에 재판을 계속할지는 나중에 판단할 문제이고, 아직 선거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예단해서 선거운동 기회를 뺏는 건 잘못이다.
'시사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힘, 김문수 대선 후보 자격 취소 (1) | 2025.05.10 |
---|---|
브레이크 풀린 '입법 쿠데타'② (1) | 2025.05.10 |
김문수 對 권영세-권성동 (0) | 2025.05.07 |
판사 출신 野의원들이 대법관 탄핵 주도 (0) | 2025.05.07 |
이재명 출마 강행과 '헌법 84조'에 대한 법조계 시각 (1) | 2025.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