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핵'안보"

무엇이 全斗煥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나?

서석천 2009. 12. 14. 13:41

무엇이 全斗煥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나?
전두환의 정승화 연행은 절차적, 결과적, 상황적으로 적합
 
 

全斗煥 그룹이 국방장관과 대통령의 事前 재가 없이 당시 계엄사령관 鄭昇和 대장을 불법적으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군부의 流血 사태인 1979년의 12.12 사건은 金泳三 정부 때 대법원이 확정판결한대로 ‘군사반란’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全斗煥측이 자신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변호하는 것은 무리이다. 舊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憲政질서를 창출하는 혁명의 논리로 12.12 사건을 변호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들이 당시에 그런 혁명 선언을 하지 않았으므로 이 또한 불가능하다. 全斗煥 그룹이 鄭昇和 연행의 이유로 내세웠던 혐의들도 그들이 주도한 수사, 재판과정에서조차 증명되지 못하였다.
 
 12.12 사건 후 군부의 實勢가 된 全斗煥 그룹은 1980년 5.17 계엄확대 조치로써 정권까지 장악한 뒤 崔圭夏 대통령을 밀어내고 全 장군을 새 대통령으로 추대, 헌법을 개정하여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다. 5.17 계엄확대 조치 과정에서 新軍部는 국회를 군 병력으로 봉쇄하여 ‘계엄해제 결의’를 못하게 하였다. 이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主權기관을 무력화시킨 명백한 쿠데타이다.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는 또 全斗煥의 경쟁자가 될 만한 金泳三, 金大中, 金鍾泌을 강제로 政界에서 배제하였다.
 
 全斗煥 그룹은 혁명이나 쿠데타를 선언하고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合法을 가장하였다. 崔圭夏 대통령은 그런 合法위장을 위하여 필요한 장치이고 도구였다. 崔 대통령은 鄭昇和 연행을 不法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사태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事後 재가를 하였다. 그는 全斗煥 그룹이 군부를 앞세워 제기한 5.17 전국계엄확대조치, 정치인 숙청, 행정부를 무력화시킨 국보위 설치안도 裁可하여 형식적인 합법성을 부여하였다. 全斗煥 그룹은 崔圭夏 대통령의 효용 가치가 없어지자 金貞烈씨(全斗煥 시절에 총리 역임)를 통하여 사퇴를 권유하였다.
 
 10.26 사건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이 大勢였으므로 3金씨가 단합하여 민주화를 약속한 崔圭夏 대통령 체제를 뒷받침하고 改憲작업을 주도하면서 全斗煥 그룹의 등장에 대비하였더라면 신군부의 집권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金鍾泌은 朴正熙의 유신체제를 비판적으로 언급하면서 박정희 親衛세력인 신군부와 멀어졌다. 김영삼-김대중은 大權이 눈앞에 있다고 착각하여 서로 분열하였고, 김대중은 학생 및 在野와 손잡는 모습으로 군부를 자극하였다. 崔圭夏 대통령까지 과도 정부 역할을 넘어서는 過慾을 보이기도 하였다. 제2차 오일 쇼크로 경제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치불안과 사회불안이 동시에 덮치자 중산층의 民心은 민주화보다 안정을 더 優先하는 쪽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단결된 군부가 중산층과 분리된 민주화 운동 세력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全斗煥 장군은 10.26 사건으로 발생한 권력의 眞空상태에서 정규육사 출신 장교단, 그 핵심인 하나회, 그리고 국군보안사령관이란 직책의 전면적인 뒷받침을 받음으로써 집권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다. 全斗煥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었던 두 사람-鄭昇和와 崔圭夏는 10.26 사건 날의 애매한 행적과 행동으로 의혹과 불신을 샀고 全斗煥은 이 약점을 십분 활용하였다.
 
 12.12 사건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鄭昇和 연행이 계획대로 되지 않은 덕분으로 두 대통령이 생겼다는 점이다. 스무스하게 이뤄질 줄 알았던 連行작전이 全斗煥측 공수부대가 총을 쏘면서 국방부와 육군본부와 수경사를 점거하는 군사변란으로 변질되면서 그날 밤 전두환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던 것이다. 살기 위하여서라도 정권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인간은 살기 위하여 행동할 때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12.12 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流血사태를 거치면서 출범한 全斗煥 정부는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在任기간 한국경제는 연평균 성장률이 10%를 넘어 세계 1등이었다. 物價도 잡고 무역흑자도 기록하였다. 이런 경제발전이 소란스런 민주화 운동에 완충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6.29 선언을 결단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였다. 그가 퇴임할 때의 대한민국은 그가 취임할 때의 대한민국보다 훨씬 민주화되어 있었고, 경제도 튼튼해졌다. 그는 독재자로 취임하였으나 퇴임할 때는 민주화에 기여한 지도자로 변해 있었다. 집권과정의 不法性을 집권결과의 肯定性으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는지가 늘 역사평가의 쟁점인데, 정치는 결과를 重視하는 영역이다.
 
 1995년 金泳三 대통령이 소급입법을 통하여 12.12 사건과 5.17 및 5.18 사건을 재수사하고 全斗煥 그룹을 법정에 세운 것은 역사가 해야 할 일을 政治가 대신한 셈이었다. 계엄사령관 직책에서 연행되어 보안사 수사관들로부터 물고문을 당하였던 鄭昇和씨의 입장에선 속이 시원한 복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역사재판은 한국의 보수층을 분열시켜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길을 열었다.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자세는 평가가 아니다. 평가는 쉽고 간단하다. 역사는 이야기여야 한다. 역사를 實錄으로 정확하게 구성해놓으면 평가는 저절로 된다. 全斗煥이 옳았는가, 나빴는가의 논쟁보다는 왜 그가 집권할 수 있었느냐를 탐구하는 게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이다. 권력을 善惡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力學의 관점에서 들여다 볼 때 더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저해요인은 단순사고, 黑白사고, 그리고 지나친 명분론이다. 역사는 복잡하므로 종합적 시각에서 이해하여야 할 대상이다. 
 전두환이 역사를 만들었고, 그 역사는 전두환을 변화시켰다. 좋은 방향으로. [조갑제 대표]
  
전두환의 정승화 연행을 '군사반란'으로 보는 것은 좌익운동권의 주장처럼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전두환의 정승화 연행은 합법적이고 구국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재규 곁에 있던 정승화는 피묻은 손으로 계엄사령관이 되면 안 된다고 봅니다. 박정희 암살되던 바로 그날 밤중에 김재규 곁에 있던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으로 되는 것부터가 불법과 반란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 아닙니까? 정승화는 다중인격의 망국노로 판단됩니다. 전두환은 매우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최규하의 재가를 받아 수사에 비협조적인 정승화를 연행한 것이라고 봅니다. 노재현이 도피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사후 재가를 받았습니다.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 악용된 '5.18특별법'은 위헌적 소급입법으로서 대한민국의 법치를 파괴하고 역적을 민주화 공로자로 만들어주는 법치파괴의 시초가 아닙니까?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재판은 헌법에 정면으로 충돌되는 인민재판의 시초입니다. 김영삼과 정승화는 같은 종류의 기회주의자들로서 민주의 이름으로 국가의 비정상화에 깊이 공헌한 기운의 소유자들로 보입니다. 정승화와 김영삼은 군부세력을 죽인 장본인들로 판단됩니다. 정승화는 군인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권력자의 기생처럼 놀았던 게 확실합니다. 김영삼 또한 보수세력의 탈을 쓰고 좌익세력의 기생처럼 놀았고요. 김영삼과 정승화는 같은 종류의 다중인격자로 보입니다.

만약 위헌적 소급입법에 의한 김영삼의 1996년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이 합법적이라면, 전두환의 정권 수립에 적용된 모든 법률들도 합법성을 인정받아야 되는 게 공정한 판단이 아닌가요? 왜 전두환의 합법적 정권 쟁취는 '합법을 가장한 불법행위'라고 매도하고, 김영삼의 위헌적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이나 5.18특별법은 합법적으라고 평가하나요? 그것은 불공정한 판단으로 보입니다. 전두환 군부세력 심판을 위한 김영삼의 5.18특별법이 합법적이라고 인정된다면, 전두환이 만든 모든 법들도 합법성을 획득하는 게 공정이고 상식이 아닌가요? 지금까지 헌법파괴에 깊이 공헌한 정치인들 중에 김영삼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아닌가요?

그리고 박정희 시해범 김재규와 같이 있었던 정승화의 말을 100% 다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승화는 절대로 계엄사령관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정승화는 김재규와 인연이나 사건의 측면에 있어서 동지적 관계인데, 정승화가 처벌되지 않고 득세했다면, 대한민국의 법치는 박정희 시해와 더불어 무너진 것이 아닙니까? 정승화와 같은 정체불명의 기회주의자를 전두환 장권이 체포해서 처벌한 것이야 말로 쿠데타 세력에 대한 처벌로서 법치확립의 가장 좋은 표본이 아닌가요? 정승화의 주장들은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고 신뢰성이 매우 박약한 변명들로 보입니다. 정승화보다는 전두환을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판단으로 보입니다.

18년 장기집권자 박정희가 시해된 국가 위난의 상황에서 3김씨가 권력에 미쳐서 군중선동을 하는 상황에서 전두환은 출발도 구조적으로나 법적으로 정당하고, 성취도 좋았던 것으로 평가하는 게 더 공정한 게 아닌가요? 전두환이 마치 범죄자로 출범했다는 것은 좌익 민주투사들의 주장과 너무도 비슷하군요. 전두환이 어떤 부분이 법에 없는 행동인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정승화 연행에 대한 최규하의 재가도 마치 욱박해서 받은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고집불통 최규하는 숨어다니던 노재현 국방장관을 기다리다가 오자 말자 새벽 5시 지나서 정승화 연행을 재가했습니다. 그것으로서 전두환의 정승화 연행은 합법적이 됩니다. 마치 욱박당했다고 하는 것은 오해같습니다. 신현확씨의 법정 증언을 보면 최규하 대통령은 욱박당한 것으로 보기 힘듭니다.

전두환 측이 기습해서 정승화를 체포하는 것은 기능적으로 당연합니다.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인데 누가 미리 알려주고 연행하는 미친 짓을 합니까? 노재현의 도피행각을 고려한다면, 전두환의 정승화 연행 재가는 매우 합당하고 합법적이라 보입니다. 사후 재가도 이승만 때나 박정희 때의 관계상으로 봐서도 별 문제가 없고, 법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전두환의 집권을 너무 불법적인 것으로 매도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군요. 난 전두환의 집권은 시대적, 상황적, 구조적, 운명적, 법률적으로 매우 적합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결과도 그렇게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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