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2000년 6월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김대중-김정일 회담을 앞두고 현대그룹을 앞세워 북한정권측으로 불법송금했던 4억5000만 달러가 김정일의 혁명자금으로 분류되어 핵무기 개발, 군 장비 현대화 등에 쓰였다는 주장이 그 자금의 일부를 관리했다는 북한 금융인 출신 탈북자 김광진(金光進)씨에 의하여 제기되었었다<기사 전문(全文)은 월간조선 2008년 3월호 게재>.
金씨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받은 석사 논문 ‘북한 외화 관리 시스템의 변화 연구’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성택)에 1억 달러의 현금이 할당되었으며 이는 김정일의 6월11일 ‘말씀’에 따라 당 조직지도부 행정부문 소속 은행인 동북아시아 은행에서 혁명자금으로 관리되었다. 혁명자금 이용에 대한 보고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김정일에게 이루어졌으며 자금관리는 ‘611계좌’를 통하여 내가 단독으로 맡아 하였다”고 썼다. 김씨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 1억 달러는 2000년 6월11일 중국은행(Bank of China) 마카오 지점에서 동북아시아 은행의 싱가포르 계좌로 송금되었다”고 말했다. 이 증언은 2003년 對北불법송금 사건 수사로 밝혀진 사실과 부합된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 6월9~12일 사이 현대그룹을 통해서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으로 보낼 때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중국은행(Bank of China) 마카오 지점에 개설된 ‘DAESUNG BANK-2' 명의의 계좌로 송금되었다.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 산하 대성총국의 마카오 지점인 조광무역상사 총지배인 박자병은 입금상황을 평양의 중앙당 서기실로 보고했고, 그 전화를 한국의 정보기관에서 감청했다. 김정일은 남한에서 들어온 4억5000만 달러중 1억 달러를 동북아은행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 김광진(金光進)씨는 “북한측은 송금 받은 돈을 혁명자금으로 분류하여 당(黨)과 군(軍)에 나눠주었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혁명자금’은 김정일이 당과 군에 특별히 나눠주는 자금으로서 관리를 엄격하게 한다고 한다. 동북아시아은행을 통해 관리된 1억 달러는 김정일의 매제(妹弟)인 張成澤 당시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행정담당 부부장이 집행을 감독했는데 대동강 맥주공장 건설과 평양시내 닭 공장(養鷄場-양계장) 현대화에 쓰였다고 한다. 나머지 자금에 대해서 김광진씨는 “우리 은행 총재한테서 ‘큰 거 두 개(2억 달러)는 창광 쪽으로 갔다, 한 개(1억 달러) 정도는 군 쪽에 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창광은행은 노동당 군수공업부 소속으로서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생산에 쓰이는 돈을 관리한다. 군으로 들어간 돈은 장비 및 시설 관리에 주로 쓰였을 것이라고 김(金)씨는 말했다. 노무현 정권 때 입국하였던 金씨는 이런 증언을 국정원 신문관에게도 하였다고 한다. 國情院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다. 김대중 정권과 현대그룹이 작당하여 만든 4억5000만 달러를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 등으로 보낸 것은 국정원이었다. 간첩 잡는 국정원이 간첩 두목에게 비자금을 보냈으니 그날부터 이 국가정보기관은 혼이 빠져 버린 것이다. 한해 무역액이 30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 북한에서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이란 굉장한 액수이다. 김광진씨는 "나는 611 자금이 김대중 정권이 보낸 것인지는 몰랐다. 한국에 와서 對北송금 사건 기록을 읽어보고는 거기에서 나온 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전에 1억 달러가 한꺼번에 들어온 예는 없었다"고 말하였다.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4억5000만 달러의 용처를 추정해본다면 북한동포의 생활 향상에는 1억 달러가 쓰이고 나머지 3억 달러 이상은 우리가 예상하였던대로 핵무기 개발이나 군사력 증강에 쓰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가 主敵의 군사력 증강 등에 쓰일 것이 뻔한 돈을 그렇게 많이 건네주고도(그것도 국민들을 속이고, 불법으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이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그 전직 대통령은 입만 열면 反정부투쟁을 선동하고 아직도 主敵의 입장을 편든다. ************************* 1988년 盧泰愚 정부가 들어서자 全斗煥 전 대통령과 측근 친인척들의 非理에 대한 검찰 수사와 국회청문회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全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자진해서 귀양을 갔지만 張世東 전 안기부장 등 수많은 측근과 친인척이 구속되었다. 全 전 대통령이 "집안 제사를 지낼 사람도 없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1993년 金泳三 정부가 들어서자 盧泰愚 전 대통령과 측근들에 대한 수사가 있었다. 朴哲彦씨 등 많은 전 정권의 要人들이 구속되었다. 주로 부패혐의였다. 급기야는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비자금 조성과 12.12 군사변란 주동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1998년 金大中 정부도 金泳三 전 대통령 측근들을 소위 北風 및 換亂혐의로 수사했다. 權寧海 전 안기부장과 姜慶植 전 부총리 및 金仁浩 전 경제수석이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金泳三 정권 실세들이 안기부 자금 1000억원을 빼돌려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혐의의 이른바 安風 사건 수사도 있었다. 2003년에 들어선 노무현 정부도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들을 수사했다. 對北불법송금 사건 수사로 박지원 전 비서실장, 권노갑 씨 등 김대중 측근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현대그룹 鄭夢憲 회장이 이 와중에 투신자살했다. 2년 뒤엔 국정원 不法도청 사건으로 김대중 시절의 두 국정원장이 구속되었다. 2008년에 들어선 李明博 정부는 아직도 전 정권의 반역 및 비리혐의에 대해서 본격적인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개별적으로 전 정권의 주요인사와 관련된 수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정권 차원의 기획 아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치보복적인 면이 있으나 불가피한 면도 있다. 대통령 중심제下에서 검찰은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의 인사권을 쥔 대통령과 측근 실세에 대해선 수사를 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통령 주변에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聖域이 만들어진다. 이런 곳에선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부분에 대해선 정권이 교체된 다음에 수사를 하게 된다. 事後的인 수사라는 점에 문제가 있으나 이렇게라도 正義를 세우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명박 정부는 따라서 노무현, 김대중 좌파정권 10년간 이뤄졌던 권력형 비리와 반역혐의에 대해서 과감하게 수사할 필요가 있다.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민주당이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해도 신경을 쓸 일이 아니다. 그들도 김대중, 노무현 시절 그런 수사를 한 사람들이다. 이왕 수사를 시작할려면 대규모 수사본부를 차려서 장기간 끈질기게,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의 核개발을 도운 자들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 반역에 준하여 斷罪해야 한다. 핵개발에 쓰일 줄 알면서도 달러를 북한정권에 보내준 자가 있으면 이들을 찾아내어 極刑으로 처단해야 한다. 북한정권이 核실험을 해도 남한정부가 對北제재를 하지 않을 것이란 고급정보를 제공해준 자가 있다면 이런 자도 처단해야 한다. 미국은 1953년에 율리우스 로젠버그 부부를 간첩죄로 사형집행했다. 두 부부는 공산당원이었다. 과학자인 율리우스 로젠버그는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 정보를 수집하여 소련 정보기관에 제공했다.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한 카우프만 판사는 준엄하게 논고했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나는 피고인들의 범죄가 살인보다 더 악질이라고 간주한다. 당신들은 러시아가 과학자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1년 먼저 핵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침략전쟁을 벌여 5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생겼고, 백만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피고인들의 반역으로 피해를 볼지 모른다. 피고인들의 반역은 역사의 흐름을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바꾸놓았다. 우리가 핵무기 공격에 대비한 민방위 훈련을 매일 하고 있다는 것이 피고인들의 반역에 대한 증거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북한이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김정일 정권 손에 약100억 달러의 금품이 남한에서 들어가는 것을 막기는커녕 이를 지시 또는 방조했다. 미국과 유엔이 핵개발을 하는 김정일 정권을 제재하려고 할 때 사실상 방해한 것도 노무현이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김대중은 "미국이 북한을 못살게 굴어 핵개발을 하도록 했다"는 요지의 막말을 했다. 노무현은 핵실험을 한 북한정권에 대해서 실질적인 제재조치를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도 중단시키지 않아 달러가 계속해서 들어가도록 했다. 재작년 10월4일엔 김정일을 찾아가서 만나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對北퍼주기를 약속하고 서해의 생명선인 NLL에 구멍을 내는 합의를 하고 왔다. 북한의 핵개발을 도운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국가생존 차원에서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남한이 아무리 경제력과 재래식 무기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고 해도 북한이 핵폭탄을 갖고 있는 비대칭적 상황에선 전략적으로 절대로 불리하다. 아무리 잘 드는 칼이 있어도 상대가 소총을 가졌을 때는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자, 즉 核개발을 도운 자를 알면서도 처단하지 못하는 국가가 갈 길은 자살뿐이다. 많은 월급을 받는 검찰 공안부 검사들, 보안 경찰들, 국정원 對共수사관들, 국군 機務司의 전문가들이 정보가 없을 리 없다. 핵개발을 도운 자들을 처단할 법률이 없을 리 없다. 부족한 것은 斷罪의 의지이다. 국군통수권자인 李明博 대통령은,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결과를 부른 북한 핵개발에 자금과 정보를 댄 반역자들을 색출하여 법정에 세울 헌법상 의무가 있다. 그것이 國基를 수호하는 일이다.
********************************************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내는 申相玉 감독의 공개장 (월간조선 2001년 10월호) 『대통령의 햇볕은 북한의 억압받는 동포들에게는 비추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狂信집단 지배층의 지배시간을 조금 더 벌어 줄 뿐입니다. 대통령의 숭고한 이상은 金正日에게는 어떤 변화도 줄 수 없습니다. 통일대업을 위해 內政을 저버리지 말고 지금부터는 작고 구체적인 일부터 시작하시라고 권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그가 변하는 것은 그의 죽음을 의미 저는 1978년 金正日의 지시로 북한에 피랍되었다가 8년 만인 1986년 북한을 탈출하여 자유세계로 넘어왔습니다. 1987년에는 북한 체제와 권력집단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인 「내레 김정일입네다」를 출판하였고, 金日成이 사망한 1995년에는 북한 지도자 金正日에게 우상숭배를 통해 북한 사회를 지옥으로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개방과 개혁으로 문명사회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적으로 출판한 일이 있습니다. 비록 저와 제 아내 최은희를 납치했던 파렴치범이지만 그의 결단 하나로 민족의 명운이 갈라질 수도 있는 중요한 위상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허망한 꿈이었습니다. 金正日은 변할 수 없고, 그가 변하는 것은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북한 사회의 속성 때문에 더 이상 기대를 접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우리의 대통령이 그러한 金正日을 상대로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겠다며 평양을 찾아가고, 그 반대급부로 金正日의 서울 답방에 모든 국력을 싣는 한편 南南(남남) 갈등을 조장하여 나라가 두 쪽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대상을 바꾸어 대통령에게 고언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왜 당신이냐, 하고 대통령과 대통령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영화 감독이 아니냐, 시쳇말로 영화감독은 영화로 말하면 그만이지 언감생심 웬 정치적인 참견이냐고 삿대질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9월11일 발생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폭파 테러와 펜타곤 공격 등 일련의 테러 공격은 세계 평화가 결코 공상적인 꿈과 기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는 냉엄한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 눈에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63빌딩으로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대통령이 「민족의 운명을 바꾸는 작업의 파트너」로 삼아 햇볕을 쏟아붓고 있는 北의 金正日이 바로 그같은 예측 불가능의 테러집단임을 상기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더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 金正日은 지금도 마찬가지 지난해 6월15일 金正日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北韓으로 초대하여 「6·15 선언」을 만들어내고, 격의 없는 환영과 연장자에 대한 빈틈없는 예의를 보임으로써 귀하의 입에서 『金위원장은 똑똑하고 트인 사람이다』는 칭찬과 신뢰가 담긴 찬사가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실례의 말입니다만 저와 아내는 대통령이 북한行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金正日 위원장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그 시나리오를 읽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金正日이 비행장에 나와 金대통령을 끌어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과연 그대로였습니다. 崔銀姬를 홍콩에서 납치하여 끌어다 놓고 자신은 남포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격의 없이 따뜻한 환영」을 해 준 사람이 바로 金正日이었습니다. 한 차에 타고 평양 구경도 시켜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金正日이 남북 頂上회담 동안에 어떤 행사를 준비하고 어떤 언동으로 남북한의 국민들과 세계 언론에 얼굴을 내비칠 것인지 예견해 보았는데 대부분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우리가 뭘 볼 줄 아는 사람임을 자랑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닙니다. 金正日의 생각, 金正日의 행동양식, 金正日의 이상과 한계, 金正日의 속셈, 그리고 金正日이 스스로 만들어 그 속에 빠져 있는 우상화의 깊은 늪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1978년부터 1986년까지 8년 동안 우리가 옆에서 지켜보았을 때에 비하여 金正日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귀하에게 전해 주고 싶은 것, 이것이 이 편지를 쓰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金正日과 北韓 사회의 실상, 그리고 北韓 체제의 힘과 한계 등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잘못되었습니다. 혹시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원대한 역사적인 시각에서 이른바 「햇볕정책」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면 그것 역시 잘못되었습니다.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 땅에 자유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7000만 민족 구성원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라고 해도 역시 아귀가 안 맞는 얘깁니다. 그러한 정책과 신념의 밑바탕인 北韓 사회와 金正日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 위에 지은 집들이 모두 곧 허물어질 부실공사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대통령의 판단과 정책이 잘못되었으면 그것을 지적하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책임과 권리가 있는 많은 사람과 기구가 대한민국에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둑이 들려면 온 동네 개가 조용하다」는 속담대로 작금 이 나라의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입에 재갈이 물린 듯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라기보다 그들도 판단이 쉽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대통령뿐만 아니라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일부 지식인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남쪽 하늘에 침을 뱉어라 金대통령이 平壤을 방문했을 때 연도에서 열렬하게 환영하며 눈물까지 흘리던 北韓 주민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헤아려 본 일이 있습니까? 그들의 내면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통령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北韓 전제왕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상징으로 대통령을 환영했던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든 그보다 더 무서운 무엇이 일어나든 변화가 있어야만 살겠다는, 그래야 숨을 쉬겠다는 생존을 향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년이 지난 지금 어떻습니까? 金대통령은 그들의 고통을 연장시켜 놓았습니다. 화해라는 이름으로 北韓 주민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시간을 주었고,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전제왕국의 정당성과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金正日이 대통령을 北韓에 초청해 놓고 全세계를 향하여 연출한 한 마당의 연극이 품고 있는 진정한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시간을 벌었고, 대내적으로 허물어지려던 정당성의 입지를 확보했습니다. 아니, 대통령이 그에게 그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결과 대통령은 북쪽의 제한된 지배계급의 연명을 도와 주는 代價로 2200만명의 주민들을 먼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의 구덩이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북쪽 주민들이 『남쪽 하늘을 향해 침을 뱉고 싶다』고 하는 말의 진정한 뜻을 이제는 헤아릴 때가 되었습니다. 잊혀진 노벨상 남과 북의 언어가 담고 있는 내용이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통일이라는 말, 평화라는 말, 자주라는 말을 해도 그 말이 지닌 역사성과 내용물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金正日과 만나 『통일을 위해 노력합시다』, 『평화롭게 공존의 길을 모색합시다』, 『자주적으로 해결합시다』 하고 나눈 대화들은 그 의미가 남쪽과 북쪽에서는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어떤 언어는 그 의미가 전혀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남쪽 지도자와 북쪽 지도자의 사용하는 언어의 내용이 다를 뿐 아니라 사고의 틀과 행동의 양태 또한 너무나 다릅니다. 金正日은 아무리 「통이 큰」 말과 행동을 보여도 그가 자란 우물 안의 욕망과 우물 안의 질서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그에게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습니다. 崔銀姬는 평양 근교의 동북리 초대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웃 초대소에 감금되어 있는 미스 홍이라는 마카오 출신 젊은 여인을 만나 서로의 처지를 얘기하고 同病相憐의 우정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미스 홍이라는 여인도 우리처럼 납치되어 온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쓴 책 「내레 김정일입네다」에서 미스 홍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東亞日報 기자 한 사람이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직접 마카오로 가서 미스 홍의 부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미스 홍의 부모들은 딸의 신변을 걱정하여 무척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어쨌든 미스 홍이 북한으로 납치되어 간 사실은 확인된 바가 있습니다. 미스 홍의 경우 말고도 일본에서 납치돼 온 이은혜(가명)를 비롯하여 수많은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북한에 납치되어 악용되고 있었고, 초대소를 거쳐간 간첩들의 숫자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崔銀姬는 직접 확인한 나머지 지금도 한국 사회에 북한의 간첩들이 적어도 수만명은 득시글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는 것, 그 모든 도구는 金왕조의 계승 유지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金正日의 사고의 틀이며 그는 이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평양에 가서 6·15 선언이라는 것을 해놓고 크게 만족하여 돌아와서는 그 실현에 기대를 걸고 있겠지만 그 선언에 담긴 내용은 南과 北이 하늘과 땅의 차이로 다른 것은 물론, 그것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면에서도 南과 北이 일치성이 전혀 없을 정도로 딴 세상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그 만남, 그 선언을 통하여 金正日은 뭔가를 조금 얻었으나 대통령은 얻은 것이 없습니다. 얻은 것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국민의 여론을 두 갈래로 분열시켜놓은 극단적인 피해만 가지고 왔을 뿐입니다. 노벨평화상 받은 것이 가장 큰 실익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국민들 중에 이미 누구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사실을 기억하거나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노벨상도 분야와 수상 경위에 따라 그 가치는 여러 가지입니다만, 특히 평화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측면도 많습니다. 월맹의 평화 공세에 속아 베트남을 亡國(망국)으로 이끌었던 미국의 키신저가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지금 그가 받은 노벨상은 어떤 가치로 세계인들에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노벨 平和賞에 대한 存廢 문제를 놓고 국제적인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金正日과 함께 그 상을 받지 못한 것을 미안스럽게 생각했다는 것도 인정상 그럴 수는 있겠지만 노벨상의 권위에는 도움이 안 되는 발언이었다는 평입니다. 어쨌든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윈윈 게임이었다는 생각은 남쪽의 我田引水, 自家撞着(자가당착)이라고 나는 봅니다. 南과 北에서 각각 정부가 수립되고 공산정권과의 「대화」가 시작된 이래 우리는 줄곧 한 가지 의문에 시달려 왔습니다. 왜 저들은 입만 열면 평화와 正義, 역사를 말하면서도 정작 하는 행동은 反평화, 불의, 反역사적인가. 왜 저들이 입으로 하는 말과 행동으로 보이는 내용은 언제나 다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같은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남북 간의 대화는 언제나 절름발이의 걸음처럼 부조화, 불균형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필생의 신념으로 불을 지핀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그 실효성을 믿을 수 없게 된 현상이 여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남북의 지도자는 서로 다른 時空에 살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南北韓의 시간과 공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1978년 金正日은 먼저 저의 아내인 崔銀姬를 끌어다 놓고, 6개월 후에는 똑 같은 방법으로 저를 저들의 소굴로 납치해 갔습니다. 저는 거기서 두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前後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저들의 감옥에서 인간의 한계를 오가며 곰의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동안 저들은 崔銀姬를 극진하게 대우하고 회유하면서 제가 수령과 지도자의 하해 같은 「은혜」에 감복, 전향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세월이 5년이나 걸렸습니다. 영화 감독 한 사람을 끌어다 놓고 그를 회유하여 써먹기 위하여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을 참을성 있게 공을 들이며(?) 기다려 준 것입니다. 대통령의 정부 같으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에게는 어떤 한 인간을 대상으로 5년이라는 긴 시간을 소모하여 공을 들일 여유가 없습니다. 5년 임기를 통하여 처음 1년은 정신없이 보내고 나머지 1년 반은 레임덕과 차기에 대한 불안 때문에 더욱 정신이 없는 상황인데 임기 전체와 맞먹는 세월이 걸리는 일을 계획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끈기를 낼래야 낼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金正日은 다릅니다. 그가 지닌 시간은 40~50년입니다. 그보다 더 길게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번 일본에 밀입국했다가 쫓겨난 그의 아들 김정남의 얼굴에 묻어 있는 세습왕조의 거친 때를 보니 적어도 한 세기는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가진 사람과 단 5년의 시간밖에 없는 사람이 벌이는 게임에서 누가 더 유리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믿음을 주고 뭔가 「통했다」고 바라보며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과, 그런 만남조차 지나간 반 세기와 앞으로 올 한 세기 동안의 권력 유지에 필요한 단막극의 무대장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정말 「대화」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아직도 생각하십니까? 가장 큰 문제는 北의 무슨 위원장이라는 사람과 그 참모들이 남쪽 시간의 촉박성, 남쪽 지도자들이 시간에 볼모 잡혀 있다는 사실을 훤히 꿰뚫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南과 北의 지도자가 전혀 다른 時空(시공)에 살고 있다는 또 한 가지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벌써 짐작하시겠지만 지난 여름 金正日의 러시아 행차가 그것입니다. 서울에서는 北의 국방위원장이 언제 올 것이냐, 오기는 올 것인지 말 것인지를 나라 전체의 에너지를 실어 논란하느라 날이 새는데 정작 당사자인 金正日 자신은 대륙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또는 스탈린이 그랬던 것처럼 유장하게 한 달 동안이나 「황제식」 여행을 즐겼던 것입니다. 秦始皇(진시황)이 마차에 올라 통일 제국을 순시했던 것처럼 그는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유럽까지 행차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손에 쥔 지도자가 편도 보름이 걸리는 열차 여행을 하면서 그 열차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을까, 도대체 나라를 그렇게 오래 비워놓고도 안전한 것일까, 하고 호기심 반, 걱정 반의 추측들이 난무했습니다. 한 마디로 삼류 주간지의 토픽감이었지요. 일부에서는 金正日이 혹시라도 반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인물 150여 명을 모조리 열차에 함께 싣고 다녔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金正日은 서울에 오지 못합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유장한 행차를 즐기고 있는 金正日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대통령의 입장은 도대체 뭡니까? 창피하다는 생각에 앞서 인간의 본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불행하게도 대통령은 아직도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金正日은 올 것이다. 와야 한다』 고. 金正日은 서울에 못 옵니다. 언젠가 올지도 모르지만 대통령이 기다리는 때에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는 선물을 가지고 오지는 못합니다. 혹시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는 때에 온다고 하더라도 기대했던 통일무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무드가 일어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통일과 대통령과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통일 사이에는 태평양보다 넓은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통일은 구실이고 金正日의 정말 목적은 권력의 유지, 강화입니다. 北은 그렇다 치더라도 南에서조차 통일이 그런 藥方文(약방문)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통일을 논하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초청해놓고 그에게 모든 열쇠를 맡겨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金正日은 오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명백하고도 간단합니다. 金正日이 귀하를 平壤에 초청해놓고 연출한 일련의 연극들은 對內(대내), 對外(대외)의 이중적인 용도에 의한 것입니다. 대외용으로는 美國, 日本을 비롯한 서방세계를 향해 자신의 유화적인 모습을 알리는 용도가 있고,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자신의 추종세력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용도 등 복잡한 계산을 깔고 있는 연출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美國이나 西方세계를 향한 제스처는 한 마디로 실패였습니다. 西方에도 金正日이나 카다피, 카스트로 같은 이상한 지도자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정신 바른 사람들은 자기 국민들을 깔고 앉아 만용을 부리는 전제적인 지도자들의 본질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金正日이 무슨 연극을 하더라도 그의 본질에 대해 오해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南韓에 대해서만은 귀하를 초대해놓고 벌인 金正日의 연출은 기대했던 이상의 효과를 거둔 것이 확실합니다. 그 일 이후 우리 사회는 깍듯이 「국방위원장」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에서는 인공기와 한반도기가 펄럭입니다. 그것은 작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마치 해방공간의 어리석은 이념투쟁을 재연해 놓은 것처럼 左右의 편가르기가 위험수위에 이를 정도로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귀하의 추종세력들은 金正日의 서울 답방을 정권 再창출의 부적처럼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그것을 위하여 언론 탄압이라는 극약을 쓰고도 그것이 극약인 줄도 모르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金正日이 이 정도까지 내다보고 기대했는지, 아니면 자신도 기대하지 않았던 현상이 남한 내부에서 저절로 무르익고 있는 것인지 속단하기 어려우나 짐작컨대 후자일 듯싶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국론을 분열시켜 놓은 것입니까? 金正日입니까? 아니면 대통령입니까? 金正日이 정말 무서워하는 것 金正日이 노렸던 대내적인 목표의 달성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金正日은 귀하를 초청해놓고 그것을 철저하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대통령이 北을 방문한 것은 「로동신문」을 비롯한 北韓 방송의 표현을 따르자면 「위대한 위원장 동지의 은혜」이며, 北이 주장해 온 연방제 통일안에 대한 승복의 의미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빌미로 폭발 직전인 주민들의 원성을 가라앉히고 탄압의 족쇄를 죄는 구실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독재자들이 다 그랬듯이 北의 독재자도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자신이 다스리는 주민들입니다. 그 주민들이 변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金正日도 알고 있습니다. 변화는 작은 둑이 무너지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소한 구멍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갖은 힘을 다 쓰고 있는 北의 지도자가 서울에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서울 시민들이 平壤 시민들처럼 한반도기를 흔들며 한복을 떨쳐입고 연도에 나가 눈물을 흘리면서 깡총깡총 뛰면서 환영하겠습니까? 그런 그림을 北에 있는 자신의 인민들에게 보여 주지 못하면 金正日의 지도자적인 위상은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가 김포공항에 내리는 순간 KAL기 사건과 아웅산 사건을 지휘한 주모자로서 당장 체포해야 한다는 시위대가 그를 맞이할 것입니다. 대통령은 자기 국민들의 너무나 정당한 의사표시를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北과 南을 통틀어서 유일한 지도자로, 全인민들의 숭앙을 받는 존재로 신격화되어 있던 인물이 초라한 살인마로 부각되는 그 순간 추락하는 위상을 무엇으로 붙들겠습니까. 저 자신으로 말하자면 한창 일할 나이이던 저와 아내를 폭력으로 끌고 가서 장장 8년 동안이나 그 지옥 속에 가두어 두었던 일을 어떤 형식으로든 보상받아야 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金正日이 서울에 온다면 저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 아니겠습니까? 金正日이 서울에 오지 못할 이유는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대통령이 平壤에 갔다 와서 나라의 국론이 분열되었듯이 그 또한 서울에 왔다가 돌아가는 그 순간 자기 인민들이 옛날의 인민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金正日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美 제국주의자」도 아니고 「남조선 괴뢰」도 아닌 자기 인민들입니다. 그 점에서 자꾸 『답방하라』고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북쪽의 저 가엾은 독재자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가만 있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1999년 현재 韓國의 GDP가 6257억 달러인 데 비하여 北韓은 226억 달러로 韓國의 27.5분의 1에 못 미쳤습니다. 이처럼 체제상의 우위 경쟁이 사실상 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기묘한 일은 우리 한국 내에서의 北韓 인식이 그 동안 너무나 非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물론, 北韓의 존재로 인해 심각한 내부분열과 正體性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같은 정체성의 혼란은 아시는 바와 같이 대통령의 집권 이후, 즉 民主黨 정권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래 갑자기 심화되고 확대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우리 사회의 일부 불만세력 또는 좌파 경향의 학자와 운동권에 국한되어 있던 北韓 편향의 사고와 행동이 갑자기 우리 사회의 한쪽을 차지하는 정치적 입장으로 부각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같은 입장이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1) 北韓 정권이 한반도를 대표하는 정권이다. (2) 北韓은 사회주의 이상국가이며 南韓은 제국주의의 식민지이다. (3) 6·25는 美 제국주의자가 도발했거나 유도하여 발생한 전쟁이다. 설혹 北韓이 도발했다 하더라도 조국통일전쟁이므로 도덕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4)주체사상은 한민족을 이끌어갈 가장 완벽한 사상이다. (5)美軍은 하루 빨리 철수해야 하고 南北문제는 민족 내부의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 (6)통일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연방제이다. 이런 입장이 우리 사회의 일부 지식인, 운동권, 학생들 사회에 광범하고도 깊게 확산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확인하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이들이 「운동」의 차원을 넘어서서 정부의 햇볕정책과 보조를 함께 하며 통일운동의 전면에 나선 현상은 2001년 8월15일 平壤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남측 대표단의 일부로 참여한 범민련 등 이적단체들의 행위에서 명백하게 밝혀진 바와 같습니다. 이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의문이 발생합니다. 이 의문에 대하여 대통령께서는 명쾌한 대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런 식의 통일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범민련 등 일련의 親北 단체들의 주장과 목적을 대통령은 모르고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직무유기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과 목적을 알고 있었습니까?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통일의 전위로 平壤에 보내어 햇볕의 생명력을 유지코자 했습니까? 그렇다면 대통령의 진정한 통일의 밑그림은 과연 무엇입니까? 좀더 분명하게 질문을 드리자면 대통령은 平壤에 모여 「축제」를 벌인 북측과 남측의 「통일역군」들이 의기투합하여 외쳐댔던 그런 방식의 통일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불투명하다는 것, 바로 여기에 오늘날 韓國 사회 갈등의 불씨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급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대답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韓國에서 北韓을 연구해 온 학자들, 그리하여 주로 北韓의 시각에서 한반도의 역사와 미래를 내다보려는 편향된 시각을 가진 학자들의 저술을 살펴보면 그들이 논리의 근거로 삼은 자료들이 대부분 北韓에서 발행된 문헌들이라는 데에 놀라움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北韓에서 발행된 각종 역사 자료와 문헌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노동당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조작되고 날조된 허위투성이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애석하게도 한국의 이른바 親北 지식인들이 北韓을 바라보는 시각은 바로 北韓이 만들어놓은 한정된 창구를 통해서이며, 그 창구를 통해 내놓은 이론과 주장이라는 것들은 북쪽이 골라서 먹여 주는 지식의 먹이를 소화하지도 못한 채 배설해놓은 생경하고도 환상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난 날 北에 대한 모든 자료가 차단되고 北이 넘을 수 없는 장벽 저쪽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은 시대였다면 이같은 학문적인 오류가 나름대로 용납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오류를 「자료 부족」이라는 어리광으로 얼버무릴 처지가 아닙니다. 이런 탁상공론의 白面書生(백면서생)들이 생산해놓은 몽환적인 北韓觀과는 달리 온몸으로 그쪽 체제를 실감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 南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알 수 없는 것은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정부가 진정한 北韓 전문가들의 입을 틀어막아 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알고 있을 줄 압니다. 黃長燁씨를 비롯하여 목숨을 걸고 北韓을 탈출하여 넘어 온 수많은 탈북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崔銀姬와 저, 굳이 우리 두 사람을 숫자에 넣지 않고도 「살아 있는 자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은 지구 전체보다 무겁다』 黃長燁씨가 그토록 껄끄러운 존재라면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脫北한 다른 인사들로 하여금 北韓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게 하고, 그로 인해 우리 내부의 합의를 도출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통일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北韓 주민들을 하루라도 빨리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내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가, 또는 정부라는 이름의 단체가 해야 할 첫째 가는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北韓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전하는 非인간적인 수용소의 실태, 굶어 죽어가는 생생한 현장의 소리들을 사실이라고 믿으십니까? 믿지 않는다면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려 민족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는 무리들을 응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약 그들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그에 대해 남쪽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기껏해야 묵살하고 방관하는 정도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언제인가 일본 총리가 한 말 한 마디가 새삼 생각이 납니다. 외국 여객기에서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속에 일본인 한 사람이 끼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 승객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범인들과 협상을 벌이며 범인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들어 주는 협상을 벌였습니다. 일부 언론들이 비난하자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人間 한 사람의 목숨은 지구 전체보다도 더 무겁다』 지금 일본과 北韓이 국교정상화가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여 명의 日本人이 납치된 것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수십만의 탈북자가 낯선 타국에서 갖은 수모와 고생을 겪으면서 生死之間을 헤매고 있는 데도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습니까. 기껏 중국과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 정도라면 그것을 감히 국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미국이 자국 국민 한 사람이라도 적지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경우 대통령부터 발벗고 나서 그 일이 해결될 때까지 나라의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부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낍니다. 비록 선전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북한마저도 非전향 장기수들을 데려가기 위하여 그토록 끈질긴 노력을 하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의 입을 막고, 그들의 입에서 북한 지도층이 달가워하지 않을 이야기가 나올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몽환적인 이상주의에 빠져 北을 민족의 정통성이 있는 정부로 생각하고 광분하는 사람들에게는 북측과 어울려 춤추고 떠들며 소리 지를 기회를 주고 멍석을 깔아 주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햇볕은 북쪽 땅에는 비치지 않는, 남쪽의 용공세력들에게만 따뜻하게 내리쪼인 이상한 햇볕이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지금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의 內訌(내홍)을 앓고 있습니다. 이것이 햇볕정책이 노리는 바였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허심탄회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적에게 원조를 해주면서 간첩신고를 하라는 광고를 볼 때마다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北韓의 당초 계획으로는 現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南韓의 언론과 보수세력을 거세하고 서울 하늘에 인공기를 나부끼며 金正日이 당당하게 서울에 입성한다는 것이었으나, 美國의 對北정책 강경선회와 南韓 내의 자유주의적인 언론 및 다수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쳐 현재로서는 그같은 꿈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러나 親北 세력의 활동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억제하기 힘든 운동원리 위에 올라탔으며, 필요하면 지하로 들어가서라도 「500만 혁명역량」 구축에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지난 6월15일 남북 頂上회담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벌이면서 몇 개의 대학에 걸린 인공기와 공공연한 北韓 찬양, 그리고 平壤에서 열린 8·15 통일축전에 참가한 남쪽 인사들의, 金왕조에 대해 격정적으로 털어놓은 드높은 충성심, 그들을 북쪽에 보내놓고 『나는 책임 없다』고 돌아앉아 딴소리하는 정부의 이중성, 처음에는 「8·15 平壤소동」에 대한 국민들의 규탄의 목소리가 높자 잠시 숨을 죽이고 있던 그 사람들이 곧바로 무리지어 입을 열고 나서면서 『8·15 행사 참여의 성과를 폄하하고 일부 인사들의 행동을 빌미삼아 이 행사 참가 자체를 정치적 목적으로 비방하고 있다』는 등의 궤변을 늘어놓는 뻔뻔스러운 태도들, 그런 궤변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주는 공영방송…. 이런 것들을 지켜보는 우리 사회의 침묵하고 있는 양심이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결산을 보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北韓의 전략은 전면전쟁과 게릴라戰, 1·21 청와대 습격과 아웅산 테러 등 두 차례에 걸쳐 행해진 남쪽 대통령 암살기도, 민중봉기 선동 등을 통해 일관되게 추진해 왔지만 그 어느 것도 성공한 것은 없었습니다. 親共 정부를 이용한 통일전략도 지금으로서는 한마당 꿈이 되고 말 기세입니다. 남쪽 사람들이 그토록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고, 지난 반세기 동안 익혀온 자유의 소중한 가치가 北의 지배계급과 南의 편향적인 몽상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높고도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마지막 카드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월남화」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金日成은 생전에 『對南사업에서 우리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월남전을 따라 배워라』고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한 일이 있습니다. 월남전의 특징은 전선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선이 없다는 것은 월남의 모든 국토가 적의 전선이었다는 뜻이지요. 「500만 혁명역량」을 기르려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일부 야당의원이 가세하여 보안법 개정 및 철폐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수십만 동포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정권을 찬양하고 도와 주고 고무하고 작당하여 선전하는 권리가 그토록 보호해야 마땅한 인권이라는 것입니까? 광신도 집단의 종말은 집단 자살 北韓의 실체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요즘 남쪽의 일부 「北韓신도」들이 「주체 조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단 제쳐놓고라도 여러 각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고 분석하고 정의한 것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하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北韓은 결단코, 절대로 공산주의국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北에 가서 보면(나는 8년 동안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그림자도 없습니다. 저들이 자랑하는 인민문화궁전의 그 많은 장서 목록 속에서도 마르크스에 대한 서적은 눈을 닦고 보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주체사상이라는 새로운 종교의 복음이었고, 그것에 옷을 입힌 온갖 교시와 예언과 이론서적들이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무릇 모든 종교에는 신화가 따르는 법인데 北韓의 創宗神話(창종신화)는 세계 어느 종교의 그것보다 비대한 신화의 체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자랑하는 역사서인 「조선전사」 全 24권 중 3분의 1이 金日成과 그 가계에 대한 신화로 채워져 있습니다. 소설가, 詩人, 극작가 등 창작예술인의 집체창작단체인 「4·15 창작단」과 우상화 영화만 제작하는 「백두산 창작단」의 임무는 오로지 金日成과 그 가계의 우상화 작업을 위해 복무하는 곳입니다. 北에는 이런 단체들이 얼마든지 더 있습니다. 근대 이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나라는 아직 없었습니다. 굳이 유사한 형태를 찾자면 광신도 집단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北韓과 같은 광신도 집단이 위기에 처했을 때의 행동양식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자살입니다. 이미 우리는 南美 인민사원의 집단자살 말고도 국내에서만 여러 번의 집단자살, 자폭을 경험한 일이 있습니다. 위기에 처하면 빠져나갈 안전장치가 없는 집단, 이것이 광신도 집단의 특색입니다. 스스로를 구원의 신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위기에 처하면 누구도 구원해 줄 대상이 없는 집단, 이것이 광신도 집단의 함정이며, 北韓은 그 함정에 너무 깊이 빠져 있고, 지금이 바로 위기가 코앞에 와 있는 때입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그런 집단에게 손을 내밀어 구원의 천사가 되려고 합니다. 北韓은 필연적으로 붕괴합니다. 이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백한 역사의 귀결입니다. 어떤 식으로 붕괴할 것인가. 자폭입니다. 이에 대한 「예감」을 金日成 父子는 일찍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92년 4월21일 金日成이 軍에도 가지 않았던 아들에게 「원수」 계급장을 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빛나는 계급장을 어깨에 달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어깨에 달린 왕별을 보고 싶었던 거지요. 金正日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나는 조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여 내 옷자락에 硝煙(초연)이 번질 때까지는 이 계급장을 달지 않겠습니다』 이는 결국 武力(무력)에 의해 살 길(또는 죽을 길)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운명에 대한 예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그들 父子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언제나 武力통일의 꿈입니다. 국가 보안법을 없애고, 휴전선을 허물어 평화공원으로 만들자는 꿈을 꾸고 있는 남쪽의 몽상가들도 이 일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의 속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대통령께서는 1998년 초 취임을 하면서 지역감정 해소와 민족 大화합을 통한 통일의 초석 놓기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은 또한 대통령께서 선거기간에 가장 역점을 두었던 선거공약이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난 지금, 기묘하게도 세상은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취임 때의 약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지역갈등은 심화되었고, 민족大화합의 길도 더욱 멀어진 느낌입니다. 오히려 이를 빌미로 우리 사회에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 갈등이 재연하여 일부에서는 「심리적 내전상태」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통령께서 이 모든 현상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특히 대통령께서는 南北문제에 관한 한 자신이 최고의 전문가라는 명망을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강박관념을 가지고 서두른 나머지 단순하고 명확했던 南北문제의 구도를 복잡하고 불투명하게 꼬이게 한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이 대통령의 北韓 및 北韓 지도자 金正日에 대한 인식 부족이나 잘못에 있다는 전제 아래 지금까지 긴 편지를 써내려 왔습니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부분에서 저는 몇 가지 떠오르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하여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공개적으로 질문했기 때문에 대통령께서도 공개적인 방법으로 대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첫째, 野黨 총재 시절부터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대통령께서는 단 한 번도 北韓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한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北韓 정권에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정말로 한반도의 절반인 北韓 땅에 그런 정권이 존재해도 좋다는 생각이었습니까? 이런 의문은 일본의 「文藝春秋」(2000. 12)에 게재된 「金正日 간부회의 육성을 세계 최초 공개」라는 제하의 기사 내용으로 더욱 커졌습니다. 이 기사는 1999년 2월4일 간부회의 석상에서 金正日이 행한 연설 중 대통령과 직접 관련된 부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金大中은 야당 시절의 먼 옛일은 잊어버리고, 美帝의 등에 올라타 反사회주의 책동에 음양으로 혈안이 되어 있다. 수령님은 「金大中은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애국주의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대하여, 그리고 수령님의 사랑과 배려, 동지적 신뢰에 대하여 오늘의 金大中은 배신으로써 답하고 있다. …(중략)… 金大中은 야당시절에 민주화를 외치고 우리에게 접근해 왔었는데, 신뢰나 의리를 모두 버리고 反사회주의와 反통일책동에 미친 듯이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金正日이 자신의 신하들 앞에서 자만심과 거짓 및 어느 정도의 책략을 섞어 행한 연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대통령과 北韓 정권의 「관계」를 의심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의 위험한 발상일 것입니다. 자칫하면 北의 계책에 말려드는 어리석은 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 대통령의 확실한 속마음을 알고 싶은 기대마저 꺾어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특히 北韓의 용어구사 전술로는 「민족주의자」는 곧 공산주의자이며, 「애국주의자」는 용공친북인사를 뜻한다는 점에서 그냥 들어 넘기기 어려운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金正日의 이 연설은 대통령이 야당으로 고생하던 시절 『우리에게 접근해 왔다』 하고, 그에 대해 金日成은 『사랑과 배려, 동지적인 신뢰』를 주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金正日이 이런 연설을 한 시점은 두 사람이 平壤에서 만나 「역사적 남북頂上회담」을 하기 1년 전의 일입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두 사람이 平壤에서 만난 것도 죽은 金日成의 「배려」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이 기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우리 국민은 이 연설에 대한 대통령의 허심탄회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金正日에게서 들은 말 제가 직접 확인한 일만 가지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지난 유신 말기 朴正熙 정권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영화사의 간판을 강제로 내리고 더 이상 한국 땅에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상황일 때 망명이라도 할 심정으로 외국을 떠돈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金大中 납치사건」을 영화化할 계획을 세우고 日本을 내왕한 적이 있습니다. 전에 조총련에서 활동하다가 그 무렵 조총련과 손을 뗐다는 배동호라는 사람이 흔쾌하게 영화 찍는 일에 찬동하고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배동호라는 사람을 따라 대통령께서도 관련을 맺었던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의 한민통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여기서 한민통이 바로 말하면 「빨갱이 소굴」이며, 점잖게 표현하면 平壤 정권의 하수인 조직임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때 저의 생각으로는 「朴正熙가 金大中을 납치해 간 것은 金大中을 위해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다. 만약 金大中이 계속 한민통과 연계를 가졌다면 그는 틀림없이 북쪽에 끌려갔거나 최소한 北의 영향 아래 들었을 것이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후 저는 北韓에 납치되어 끌려가면서 저와 저의 아내 崔銀姬를 北으로 납치하는 데 전위역할을 한 사람이 그 동안 申필름의 영화를 東南亞에 수출하는 창구 역할을 해 온 이영생과 홍콩 교포 이상희였으며 이들이 모두 北韓의 하수인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다시 한 번 대통령을 생각한 일이 있습니다. 北韓은 남쪽의 영화 감독 한 사람을 끌어가기 위해 수년 간에 걸쳐 수십만 달러의 자금을 들이면서 치밀하게 공작을 해 왔던 것입니다. 제가 홍콩에서 영화를 만들 때 제게 돈을 댄 物主는 알고 보니 北韓 공작원들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金正日의 돈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었던 셈이지요. 영화감독 한 사람에게 이토록 오랜 세월 뒤에서 모르는 사이에 지원해 온 저들이 야당의 리더로 역시 해외에서 나돌고 있는 金大中에게는 오죽했겠느냐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결국 영화감독은 당장 저들의 「통일전선」에 써먹기 위하여 거친 방법으로 北으로 데려갔으나 野黨 지도자는 먼 훗날을 기약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투자를 하고 있겠구나 하는 추측도 했습니다. 이처럼 북쪽 정권은 오랫동안 대통령에게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고 기대해 왔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은 제가 北에 납치되어 金正日의 신임(?)을 받고 있을 때 金正日이 저와 제 아내 崔銀姬에게 속을 털어놓고 한 말 가운데에도 여러 군데 유사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궁금한 것은 北이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들인 과거의 정성이 오늘날 南의 햇볕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혹은 없는지 우리 국민들은 명확히 해두고 싶은 것입니다. 대답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의 신념을 國論으로 포장하여…』 두 번째 질문은 통일 방안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 국민 누구도 민족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통일역군이 따로 있고 통일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따로 있는 것처럼 편가름이 된 것은 순전히 대통령이 「어떤 통일을 하느냐」는 목표의 설정 없이 그냥 덮어놓고 통일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어떤 통일을 목표로 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므로 질문을 드립니다. 대통령께서는 어떤 통일을 원하십니까? 통일만 된다면 어떤 세상이 오든 상관이 없습니까? 아니면 자본주의 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체제 아래서의 통일을 원합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北韓式 체제로 통일이 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 아래 통일을 하는 것이 목표라면 대통령과 대통령을 추종하는 現 집권층의 통일방안과 통일관은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으므로 대대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여태까지 장황하게 말씀드린 가운데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통일 추진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직 통일을 위한 실천단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합의를 이룬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오랜 세월 갈고 닦아온 3단계통일방안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는 대통령 개인의 신념을 國論으로 포장하여 平壤에 가지고 가서는 덜컥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동질선상에 놓아버렸습니다. 이 일은 당연히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再검토되고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야 한다고 봅니다만 그 전에라도 최소한 국회에서라도 진지하게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질문 한 가지를 더 드리겠습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이든 국가연합이든 단순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아전인수격의 말장난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우리는 통일의 초보단계로서 각각 독립된 정부와 체제를 갖춘 두 체제의 연합 또는 연방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러한 체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그에 따른 부작용은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있다면 국민들도 알 수 있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통일 방안을 실천하면 內戰이 일어납니다』 만약 섣부른 연방제 또는 국가연합의 부작용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이 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생각하기로는 서로 다른 두 체제, 또는 두 정부의 연합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패권 다툼을 불러옵니다. 인간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연구해 본 사람이면 이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일인데 어찌하여 金왕조의 사람들과 대통령께서는 이 점을 간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낮은 단계이든 높은 단계이든, 또는 국가연합이든 정부연합이든 상충하는 두 집단이 한 울타리에 들어가게 되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인간이 밥을 먹어야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진리입니다. 만약 그런 연합 또는 연방 체제가 성공하여 다음의 높은 단계로 이행하려면 南北의 지배권력은 물론이고 주민들 모두 사심과 개인적 욕망을 모두 버리고, 개인적 취향과 물질적 추구도 모두 희생하면서 성인군자가 되고, 요새 유행하는 말대로 「통일역군」이 되어야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이같은 도덕적 이상주의라는 바탕 위에서 설계하고도 그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우길 수 있겠습니까? 공산주의가 소멸한 가장 큰 이유가 인간의 속성을 간과한 이상주의적인 목표 설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배우고 알면서도 그보다 더한 시행착오를 저지르려고 하는 南北의 지배권력에 대해 양식 있는 사람들은 깊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좀더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도대체 北의 연방제이든,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이든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복잡한 통일방안은 속임수입니다』 통일은 단순한 산수문제입니다. 즉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우월한 체제가 열등한 체제를 흡수하여 통일하고, 그 체제가 오래 굴러가다가 내부적 모순과 외부적 환경 때문에 분열하고 다시 통일되면서 역사는 흐릅니다. 대통령께서도 지금 통일하자는 게 아니라 20~30년 후의 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당장 통일이 되는 일도 아닌데 20~30년 후면 역사의 물줄기가 북한을 삼켜버릴 확률이 더 큽니다. 무슨 이론이 통일을 주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한 문제를 복잡한 수학으로 만들어놓고 보통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채 통일문제를 일부 제한된 사람들의 知的인 전유물로 만드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3단계 통일방안과 연방제 통일방안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보통 생각입니다. 이제 이 긴 편지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대통령의 햇볕은 북쪽의 억압받는 동포들에게는 비추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광신도 집단 지배층의 지배시간을 조금 더 벌어 줄 뿐입니다. 대통령의 숭고한 이상은 金正日에게는 어떤 변화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통일대업이라는 엄청난 가치에 가위 눌려 內政을 모두 저버리는 愚(우)를 범하지 말고 지금부터는 좀더 작고 구체적인 일부터 시작하시라고 권하려는 것이 이 글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그 작은 일이란 실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민족통일이라는 너무 거창한 일에 매달려 간과하고 방관해 왔던 일, 억압에서 견디다 못해 국경을 넘어 탈출해 나온 中國 땅의 30만 동포들을 따뜻한 민족의 품 안으로 맞아들이는 일입니다. 그와 함께 국제적으로 여론을 환기시켜 북녘 땅에도 진정한 햇볕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런 우리의 노력이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이 더 강해야 하고 우리의 정신무장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여 우리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親共, 용공의 표현을 서슴없이 뇌까리고, 몇몇 자칭 「통일쟁이」들이 北에 들어가 어버이 동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신문이 주체사상을 선동해도 그냥 묵인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정부 아래서는 북쪽의 억압받는 동포들에게 진정한 햇볕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거덜난 경제를 회복하는 구원투수로서의 기회, 통일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기회 등 참으로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기회들이 주어졌습니다. 정말 역사에 남고 싶으시면 그 많은 기회 위에서 스스로를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지 마십시오. 보다 넓게 시야를 열어 역사를 내다보시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설정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야만 대통령 자신과 가족의 안위는 물론이고, 나아가 우리 국민과 北韓 동포들을 포함한 민족의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혼란과 비극을 예방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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