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핵'안보"

主敵의 核개발 도운 자들을 색출, 처단해야

서석천 2009. 12. 7. 19:22

국정원, 검찰, 기무사, 경찰이 합동수사본부 만들어 돈과 정보를 댄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색출, 의법처단해야.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심지어 핵실험을 한 뒤에도 좌파정권은 돈줄을 끊지 않은 것은 물론 거액의 달러가 계속적으로 북한정권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이 돈이 핵개발에 쓰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상식이다. 핵을 개발하는 主敵에게 돈을 대주는 것보다 더한 반역과 利敵행위는 있을 수 없다. 2003년 국방부 산하의 한 국책 연구소도 북한으로 들어가는 현금이 군사비로 전용될 가능성을 제기하는 논문을 발표했었다(아래 자료). 모르고 돈을 보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북한이 핵실험의 성공을 믿고 남한을 상대로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지금 그 핵개발을 지원한 자들을 색출하여 斷罪하는 것은 국가 생존차원의 自衛的 행동이다. 국정원, 검찰, 기무사, 경찰이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어 내부의 敵을 찾아내어야 한다. 국가가 살아남기 위하여 대응 조치인데, 조사대상에 지위고하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敵에게 돈과 정보를 대어준 내부의 敵을 등 뒤에 두고 핵무장한 敵을 상대하여 이길 순 없다. 소련의 핵개발에 정보를 제공하였던 로젠버그 부부를 사형에 처한 미국의 예가 있다. 아래 참고 자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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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산하 한국 한국 국방연구원의 성채기, 박주현, 백재옥, 권오봉 연구원이 2003년 8월에 발표한 논문 [북한경제위기 10년과 군비증강 능력]에서도 금강산 관광 代價로 지급되는 달러가 군사비나 對南공작비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연구자들은 이 논문에서 금강산 관광 代價로 現代측이 제공하는 달러는 김정일이 직접 관리하는 '궁정경제'의 관할로 들어가 군사비나 對南공작비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꼭 필요로 하는 국가전략적 사업이 발생하는 유사시기에는 이 자금이 군사적 목적으로 투입될 중요한 자금원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여진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자들은 이어서 金正日이 매년 6000-7000만 달러의 비자금을 축적하고 있으며 해외에서 관리되는 규모는 20-40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가기관이 명시적으로 금강산 관광 자금의 군사비 轉用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이 논문이 유일하다. 이하는 발췌문이다.
 
 
  <북한은 금강산 일부를 개방한 것만으로 정권수립 이후 ‘최대의 달러벌이’를 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금강산 관광 및 개발 대가로 1998년말부터 2005년 2월까지 6년3개월 동안 북한에 주기로 한 현금은 무려 9억4,200만 달러(약 1조 1,300억원)에 이르고 있다.
  관광대가는 북한으로서는 거의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6년여 동안 매년 1.5억 달러씩의 ‘금싸라기’를 확보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달러는 앞서 본 바와 같은 당-국방위원회가 지배하는 북한체제의 속성상 당연히 궁정경제의 금고로 들어가는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궁정경제는 특히 모든 경화와 금, 은을 집중관리하고 있으며 이의 사용은 모두 궁정경제의 승인과 배정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광대가가 궁정경제의 금고로 들어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곧 군사비로의 전용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궁정경제는 유입되는 모든 자원을 무기뿐 아니라 對南 통일전선 사업이나 기타 김정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사업에는 어디든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정경제의 금고로 들어가는 것이 사실인 이상 이것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도 너무 단순한 판단이다. 직접 군사용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한 주머니’ 돈인 이상 그 役을 충분히 확보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성적 외화조달 능력과 김정일 비자금
 
  김정일은 연간 약 6천만~7천만 달러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최소 20억 달러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각 기관의 헌납금, 2.16 충성자금, 재정경리부 산하 조선 우표사에서 벌어들이는 50만~60만 달러, 인민무력성에서 헌납하는 금 100~200kg, 각 기관의 창립절 충성자금 등이 포함되며 이들을 합쳐 연간 6천만~7천만 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은 제3국에서 신용장이나 송금결제 등을 통해 오스트리아 등지에 있는 ‘금별은행’ 등 궁정경제 관할 은행에 입금되어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1회 700만~800만 달러 정도 인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첩보에도 불구하고 비자금의 정확한 규모는 현재 파악이 곤란한 실정이며, 여러 정보를 종합할 때 비자금의 존재 자체는 명백하다. 그 규모는 대략 20억 달러에서 미국 CIA가 추정하는 43억 달러 사이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비자금이 곧 군비증강을 위한 자금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다. 단지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업, 예를 들면 미사일이나 핵무기의 개발과 관련한 사업의 비용 중 상당한 부분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비자금에서 충당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예를 들면, 1993년 5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개발과 관련한 북한 내각기관지 「민주조선」의 다음과 같은 회고성 보도는 이를 잘 보여 준다.
 
  “김정일 총비서가 주재한 인민군 지휘관 회의에서 새로운 장비를 만드는 회의가 열렸는데, 그 장비는 세계적으로 아직 몇몇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곳으로 엄청난 자금이 요구되었다. 이 장비를 개발한 시기는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이르는 제3차 7개년 계획의 후반기 과업을 수행하던 때라서 한 푼의 자금도 쪼개 써야 할 상황이었으나 김정일 총비서가 직접 자금을 풀어주어 짧은 기간에 위력 있는 전투기술기재를 완성했다.”
 
  이렇게 볼 때, 정확한 규모야 파악할 수 없지만 적지 않은 외화자금과 금과 같은 자원이 김정일 처분을 기다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고, 따라서 궁정경제-군사경제로 이어지는 독특한 경제운용체제를 고려할 때, 꼭 필요로 하는 국가전략적 사업이 발생하는 유사시기에는 이 자금이 군사적 목적으로 투입될 중요한 자금원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극히 필요한 사업이나 시기가 아닌 상황하에서는 이 자금이 쉽게 군사 목적으로 상시적으로 전용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경제위기 하에서 과연 '지속적 군비증강'을 추진해온 것이 사실인가.
 
  군사력 증강은 일부 지속되어 왔으나 80년대 후반의 정상적 추세와 비교할 때 공군 87%, 육군 45%, 해군 29% 등 전체적으로 증강 속도가 57%나 둔화되었다. 핵 및 미사일, 포병화력 등 일부 첨단의 경쟁우위 및 다목적 무기의 생산배치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거나 지속되어 왔다.
 
  *경제난 하에서 군비증강 능력이 상당한 정도 영향을 받아 왔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對北지원의 역할은 무엇이며, 군비전용 가능성은?
 
  전체적 군비증강 능력은 위기직전 대비 약 50~60%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나 민수부문보다는 훨씬 적게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군사 경제 부문도 위기의 영향에서 예외가 되지는 못하였다.
 
  은폐부분을 적출, 구매력으로 환산한 실제군사비는 통상적 공표 군사비의 3배 이상 수준으로 1980년대의 최고 60~70억 달러 수준에서 위기 기간 동안 40~50억 달러로 약 1/3이 감소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군비증강의 재정적 기반인 총재정은 위기개시 후에도 일정 기간 지속 증가하여 왔으며, 경상운영비도 총재정과 동일한 추세를 보임으로써 군사비 중 경직성 경비임을 보여 왔다. 그러나 장비획득비는 위기 조짐 때부터 급락함으로써 군비증강은 경제여건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여 급락하였다.
 
  북한 군사투자비 중 외화예산은 20%~30%로서 1980년대 후반과 같은 군비증강을 위한 ‘정상적’ 외화소요는 약 10억 달러 전후이다. 또 무기수입은 거의 무기수출 자금에 의존해 왔고, 따라서 최근의 무기수입 급감은 무기수출 급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북한은 무기수출의 기술적 능력은 갖추고 있으나, 외교적 압력과 수출시장 확보에서 한계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추후 무기수입은 이들 요인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금강산 관광 등 對北 경화지불은 북한의 자원관리체계상의 속성상 거의 궁정경제 관리하에 유입되고 있음이 확인되었으며, 이는 상당한 규모로 추정되는 각종 음성적 외화수입과 함께 무기구입 등 전략사업이나 김정일의 비자금화되어 축적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對北 경화지원은 긴급한 군사적 소요발생시 직접, 간접적으로 군사비로의 전용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곧바로 군비로 전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 여타의 국제원조는 직접적인 군사전용은 어려우나, 간접적으로는 군비증강 능력 향상 등의 효과를 불가피하게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안보증진’ 효과와 비교하면 부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북한의 군수생산 능력은 최고 약 40~50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되나 1980년대 후반에는 23억 달러 정도의 ‘정상적’ 수준의 생산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위기하에서는 10억$ 이하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며, 군수산업 가동율은 20%를 약간 상회하는 저조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군수산업은 기술노후화, 노동자 이탈, 에너지 부족, 수요부족 등 경제난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음으로써 전반적 능력이 위축되어 왔다. 그러나 先軍주의에 따른 우선적 자원배분 정책에 따라 전체적으로는 민수부문보다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대부분의 재래식 무기의 기본적 개발 능력은 과다할 정도로 완비하고 있으나, 첨단의 기술부품 개발 능력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미사일(특히 발사체) 및 핵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의 개발능력은 제3세계 최고, 세계 유수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력의 시장과 군비증강은 어느 정도 양립 가능할 것인가?
 
  현상황하에서 경제성장과 과거 80년대 중후반과 같은 '정상적' 군비증강은, 급진적 개혁의 성공이나 무기수출의 급증, 비자금 방출, 외부원조, 비대한 군사부문 재편 등이 있을 경우에만 양립이 가능할 것이나, 이들은 단기간내에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개혁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성공하고 일본의 배상금과 같은 대규모 외부 지원이 있을 경우에는 일정한 경제성장을 누리면서 상당한 군비증강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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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不法이라도, 군사비로 쓰이더라도 보내라"
 
 
  간첩사령관에게 國庫를 털어 비자금을 보내준 자들이 평화주의자라고 큰 소리 치는 세상을 끝장내어야.
 趙甲濟
 
  검사의 問: 돈을 직접 주는 것에 대한 문제점은 있지 아니한가요.
 
  김보현 국정원 對北담당 차장의 답 : 돈을 직접 주는 것은 첫째 국민적 비판여론을 감내하기가 어렵고 둘째 혹시 북측이 군사비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1억불 정도를 주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을 열어서 해빙무드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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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의 問 : 진술인이 직접 현대의 남북정상회담 대북송금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측 인사에게 협조를 요청한 사실이 있는가요.
 
  김보현 對北담당 차장 답 : 이기호에게 남북사업을 하는 현대를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은 있습니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없으나 현대가 잠정합의서에 따라 4억불을 송금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되나 대북송금 때문에 자금지원을 부탁한 것은 아니고 일반론적으로 현대를 위하여 부탁을 한 것입니다.
 
 
  문 : 2000. 4. 이전에도 이기호에게 현대의 자금지원을 부탁한 적이 있었나요.
 
  답 : 없었습니다.
 
 
  문 : 국정원의 5국장의 위치에서 경제수석에게 자금지원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답 : 국정원법에서도 직권남용을 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도 있고 해서도 안되는 줄을 알지만, 김윤규로부터 도와달라는 말을 들어서 제 스스로 판단하여 자발적으로 한 것입니다.
 
  문 : 이기호는 그 당시에 현대를 구조조정하는 방침을 세운 사람으로서 현대에 지원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부담을 가졌을 텐데요.
 
  답 : 부담을 가졌으리라고 예상은 되지만 저로서는 그 이상 대북사업이 중요하였습니다.
 
  문 : 정상회담 이후 현대건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이기호 수석에게 부탁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현대건설이라고 특정한 것은 아니지만 정상회담 이후에 현대의 금강산관광사업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적은 있습니다.
 
  문 : 이기호 수석의 진술에 의하며, 6. 15. 정상회담 이후 같은 달 20. 사이에 국정원에서 회담후속조치 관련 회의를 2~3회 정도 하였다고 하는데, 당시에 참석자는 어떠한 사람들인가요.
 
  답 : 저는 기억에 없습니다.
 
 
  문 : 위 회의의 주 안건은 무엇이고 토의한 내용은 무엇인가요.
 
  답 : 마찬가지로 지금으로서는 기억에 없습니다.
 
 
  문 : 위 회의석상에서 진술인은 국정원의 입장이 현대건설이 남북정상회담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는데, 지금 현대건설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현대건설에 지원을 해줘야 앞으로 대북사업이 원활히 추진되고 대북사업이 원활이 추진되어야 남북정상회담 이(한 줄 보이지 않음)요하다 라는 것을 강조했고, 이기호도 이에 동조하여 산업은행 총재에게 대출 요청하였다고 하는데, 어떠한가요.
 
  답 :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문 : 정상회담 이후에도 위와 같은 모임에서 박지원 전 장관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이기호를 볼 때마다 현대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고, 현대가 일등공신이니 지원을 꼭 해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강조, 그런 와중에서 진술인을 통하여 강력하게 현대지원을 요청하였던 것이고, 그래서 진술인이 그러한 내용을 강조할 때는 그것이 국정원의 뜻이고, 박지원 특사도 같은 뜻이고, 이러한 것들이 대북라인의 대체적인 입장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어떠한가요.
 
  답 : 그런 적은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전 산업은행 총재였던 엄낙용을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금과 관련하여 만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만난 적은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언제, 어디서 어떠한 경위로 위 엄낙용을 만났나요.
 
  답 : 2000. 8. 하순경인지 9. 하순경인지 봉은사 앞에 있는 코엑스인터콘티넨탈 호텔 950호 객실에서 만났습니다. 엄낙용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 : (한 줄 보이지 않음)
 
  답 : 가끔 사용한 장소라서 기억합니다.
 
 
  문 : 위 엄낙용을 만나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였나요.
 
  답 : 산은총재로 부임을 해서 인사차 만났고 남북관계, 금강산관광 등이 잘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였고 약 1시간 정도 만났습니다.
 
 
  문 : 전에도 엄낙용을 만난 적이 있는가요.
 
  답 : 2000. 7. 하순경에 남북장관급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는데 그 10일전 모의회담을 하면서 당시 재경부 차관인 엄낙용을 처음 만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문 : 엄낙용의 진술에 의하면, 김충식으로부터 위 4,000억원은 정부에서 쓴 돈이기 때문에 갚지 못하겠다는 말을 듣고, 위 사실에 대해서 확인하기 위해서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만나자고 하자, 임동원 원장이 진술인을 만나라고 하여 진술인을 만났다고 하는데, 어떠한가요.
 
  답 :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사실은 없고 엄낙용이 제기한 현대상선 대출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바가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문 : 또한 엄낙용의 진술에 의하면 진술인에게 김충식 사장이 현대상선의 대출금 4,000억원은 정부에서 사용한 돈이기에 갚지 않는다(한 줄 보이지 않음)치하겠다. 걱정하지 말아라 로 말을 하였다는데, 어떠한가요.
 
  답 : 그런 말을 제가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김충식도 모르는 사이고, 현대상선의 산은대출을 몰랐기 때문에 제가 조치하겠다고 말한 바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걱정스러운 문제라고 말한 것은 기억납니다.
 
 
  문 : 그러면 신임 산은총재인 엄낙용이 국정원 당시 3차장을 업무상 관련이 없음에도 특별히 만난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요.
 
  답 : 저는 인사차 만난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은 엄낙용의 위와 같은 말을 듣고 어떠한 조치를 취했나요.
 
  답 : 특별한 조치를 위하거나 임동원 원장에게 보고를 한 바도 없습니다. 그날 이후에는 엄낙용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은 바 없습니다.
 
 
  문 : 위 이후 현대상선 김충식은 위 대출금을 갚겠다고 종전의 입장과 다른 태도를 취하였는데, 진술인이 김충식 사장이나 현대 관계자에게 어떠한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닌가요.
 
  답 :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2000년 하반기경 현대 정몽헌 회장을 만난 사실이 있는 (한 줄 보이지 않음)
 
  답 : 현재로서는 기억에 없습니다만, 혹시 정상회담에 함께간 일행들의 모임(주암회, 정상회담시 남측인사들이 묵었던 북측의 주암초대소를 따서 만든 모임, 회원 약 30여명)에서 만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김충식 사장의 진술에 의하면, 2000. 6. 7.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원을 대출받은 이후에 이를 변제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정몽헌 회장에게 거의 매일 같이 가서 돈을 돌려받기 위해 당시 국정원장 임동원과 만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스케줄을 잡으라고 종용하였으며, 임동원 국정원장측에서 3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진술인을 만나라고 하여서 정몽헌 회장이 진술인을 만나고 왔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 점은 모르고 정몽헌을 만난 사실이 없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진술인을 만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재정문제이므로 이기호 수석과 이야기해보라 고 했었다고 하였다는데 어떤가요.
 
  답 : 그 점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문 : 진술인은 특검수사가 시작된 이후에 사건 관련자들을 만난 적이 있는가요.
 
  답 : (한 줄 보이지 않음)를 1회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문 : 구체적으로 나눈 말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답 : 2003. 4. 하순경 봉은사 앞에 있는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 1250호에서 제가 연락하여 저녁식사 후에 박지원을 만나서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1억불에 관해서는 조사를 받더라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점이 알려지면 정상회담을 돈주고 샀다는 오명을 들을 것이고 남북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3. 5. 중순경 저녁에 임동원, 박지원씨에게 제가 연락을 하여 같은 장소에서 만나서 걱정을 함께 하고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2003. 5. 하순경 저녁에 같은 장소에서 임동원을 만나서 같은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
  2003. 5. 24경 이기호로부터 연락을 받고 저녁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 하나(1억불)는 없다고 다짐을 한 바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말하기 어려운 점을 오늘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첫째는 특검에 나와보니 더 이상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둘째는 제가 진술을 하지 아니하면 제 부하직원들이 나와서 (한 줄 보이지 않음)고 생각하였습니다.그러나 이런 말을 한 것에 대하여 자책감을 가집니다. 다만 특검에서 남북관계를 고려하셔서 지혜로운 판단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문 : 이상 진술이 모두 사실인가요.
 
  답 : 예, 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습니다.
 
 
  위 조서를 진술자에게 보여준 후 변경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므로 간인한 후 서명날(무)인케하다.
 
  진술자 : 김 보 현
 
  2003. 6. 11.남북정상회담관련대북비밀송금의혹사건등의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사무소
 
  특별검사보 : 박 광 빈
  검찰주사보 : 김 행 식
  [ 2003-12-01, 14:14 ] 조회수 : 4 
  출처 :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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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정권의 신세대 특권층 연구
 
  김정일 정권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중견간부들은 김일성 시대의 지배층과는 많이 다른 30~40대의 야심만만한 세대이다. 김일성 대학 출신이 특히 많다고 한다. 이들은 우선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높고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도 상당하다. 이들중엔 이런 저런 방법으로 부자가 된 이들도 많다. 1990년대의 大饑饉(대기근 사태) 이후 시장이 생기고 무역이나 상업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신흥부자들이 많이 생겼다. 100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평양에서만 수천 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인민들은 김정일을 미워해도 이 엘리트층은 김정일에 충성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북한노동당 재정경리실 산하 선물課의 역할이다. 이 선물과는 김정일 접견자를 비롯한 북한의 엘리트층을 관리한다. 직위에 따라 벤츠차, 고급 양주, 외제 양복과 속옷, 그리고 달러현찰 등을 준다. 黨과 軍의 간부들은 수시로 2000~5000달러가 든 봉투를 김정일로부터 받는다. 김정일 접견자는 평생 취직, 승진이 보장됨으로 김정일 체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이들 특권층은 반역을 기도하지 않는 한 좀처럼 숙청되지 않는다. 자리와 대우가 보장되니 생활이 편한 것이다. 한국으로 가라고 해도 갈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김대중 정권이 목숨 걸고 탈출한 黃長燁 전 노동당 비서를 탄압하는 것을 지켜보고는 더욱 한국行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 30~40대 실무층은 체제관리를 수행하면서 외부 동향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지만 그 뜻을 펼 수는 없다. 김정일이 퇴진해야 이들이 나설 수 있다. 외부에서는 김정일이 사망, 쿠데타 등으로 물러나면 북한체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예단하지만 필자가 만나 본 고위 탈북자들은 이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었다. 30~40대의 신세대 엘리트층이 김정일 다음 정권을 이어받아 중국의 엄호 하에서 체제를 꾸려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정일이 못했던 개혁 개방을 이들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도 진보라면 진보이다. 다만 이들이 핵무기와 對南적화를 포기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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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이 核개발 자금을 댔다는 정황
 
  對北불법송금 特檢의 수사자료를 보면, 송금용 외화의 환전과 송금업무는 국정원이 全擔(전담)했다. 간첩을 잡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국정원이 간첩을 내려보내는 김정일의 對南공작기관 비밀계좌로 불법자금을 보냈다는 이 반역적 행위로 해서 국정원은 넋(魂)이 나간 조직이 되었다. 외경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국정원이 지금처럼 경멸의 대상이 된 것도 이 사건에 기인한다. 수사기록을 읽어본다.
  <(金保鉉 국정원 3차장) 김윤규가 액수까지 부탁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다만 頂上회담 전에 보내야 한다고 다급하게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문(특검 박광빈 특검보) 임동원 원장은 당시 제5국장이었던 진술인으로부터 『현대 측으로부터 2억 불을 북한으로 보내려고 하는 과정에서 환전편의 제공요청이 왔었다』면서 자신에게 『실무부서에 가능여부를 하문해 달라』는 건의가 있었으며, 최규백 실장으로부터 가능하다는 보고와 함께 실무자의 연락처를 받아서 진술에게 건네준 기억이 있다고 하던데 어떤가요.
  답(金保鉉) 임원장에게 2억 불이라고 보고를 했는지 기억이 없으나 위와 같이 보고를 하여 임원장으로부터 실무자인 김○○, 김△△의 전화번호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윤규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은 송금방법에 대하여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2000년 6월7일 (4000억원을) 대출받은 이후 6월8일 김윤규 사장을 따라 나가서 국정원 직원을 만났으나 별다른 이야기도 없어 얼굴 정도만 확인한 채 돌아갔고,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김윤규로부터 북한 측 돈자리(계좌번호)를 건네서, 국정원 직원을 만나서 자기앞 수표 2240억원을 건네주니까 국정원 직원이 송금을 마치고서 영수증을 건네주기에 가져온 것이 전부라고 한다> (특검 검사의 심문)
  돈을 보낼 북한측 「돈자리(계좌번호)」는 2000년 5월23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 부두 기공식에 참석한 鄭夢憲 회장에게 직접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2000년 6월9일 북한 對南공작기구 대성은행의 계좌(중국은행 마카오 지점)로 송금되고,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이 조성한 2억5000만 달러는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는 金正日의 비밀계좌로 송금됐다는 기술을 발견했다.
  현대상선이 조성한 2억 달러 가운데 국정원 직원 김○○의 명의로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 계좌주 「DAESUNG BANK」로 송금한 4500만 달러가 실제 계좌주인 「DAESUNG BANK-2」와 일치하지 않아 송금처리되지 않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대전자의 미국 및 현지 법인은 현대건설 런던지사가 팩스를 통해 알려준 영국 홍콩상하이 은행의 현대건설 명의 계좌로 2000년 6월9일 1억 달러를 송금했다. 현대건설은 같은 날 2000만 달러, 6월12일 8000만 달러 등 모두 1억 달러를 북한측 계좌로 송금했다.
  현대건설이 조성한 1억500만 달러는 이승렬 현대건설 금융재경본부 금융재정담당 상무이사, 임종익 당시 현대건설 재무기획부장이 실무를 담당하여, 2000년 5월 말경 외환은행 홍콩 지점 등 10개 계좌를 이용하여 홍콩 및 싱가포르에 있는 金正日 비밀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특검조사에서 확인됐다.
  金保鉉 당시 국정원 5국장은 북한에 넘어간 5억 달러의 금품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특검에서 밝혔다. 金大中 대통령은 林東源 국정원장으로부터 『頂上회담 합의의 대가로 정부가 지불하기로 한 1억 달러를 현대에 부담시키기로 했다』는 보고와 함께 對北송금의 실정법상의 문제점을 보고받고,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對北 송금을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을 직접 주는 것은 국민적 비판여론을 감내하기 어렵고 둘째 혹시 북측이 군사비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1억불 정도를 주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을 열어서 해빙무드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金保鉉 진술>
  <2000년 5월 초순경 현대가 부담하기로 하는 박지원 특사와 임동원 원장의 제안에 대해서 저도 동의를 하고, 곧바로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렸는데 보고시 임동원 국정원장은 대통령께 정부가 부담해야 할 1억 불을 현대가 맡기로 했다고 보고를 드렸고, 보고를 받은 대통령께서는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고 하셨고, 그러면서 『정부가 떳떳하게 해야 하는데』라고 하시며, 서운해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李起浩 진술)
  <문(특검 이병석 검사) 임동원 국정원장의 진술에 의하면, 진술인(박지원)과 이기호 수석이 현대의 북측에 5억 불 대가 지급에 대한 보고를 드리면서 5억 불 송금에 대한 실정법상의 문제점과 그에 반해서 현대 측이 취할 수 있는 이익 등에 대한 논의결과를 보고드리자, 보고를 받으신 대통령께서는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현대의 사업을 장기적으로 볼 때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사실상 묵인하는 쪽으로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사업의 대가로 5억 불을 지급키로 했다는 내용의 잠정 합의서가 작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으셨지만 5억 불 지급에 대하여 승인하시는 그런 말씀은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朴智元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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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의 對국민사기극 과정 
  

1. 남북한의 정상배들이 만나 정상회담의 대가로 김정일 비자금 계좌로 5억달러를 보내기로 합의한다. 김정일측은 어름장을 놓는다. 1달러라도 약속에 미달되면 평양 땅을 밟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2. 2000년6월9일 김정일 계좌로 송금할 때 계좌 이름을 잘못 써 수천만 달러가 들어가지 않는다. 김정일은 10일 한국측에 정상회담 날짜를 12일에서 13일로 연기한다고 일방 통보한다. 김대중측은 질겁을 한다.
  3. 6월12일 저녁 마지막 돈이 북한측으로 들어간다.
  4 .김대중은 위축된 심리에서 평양에 내린다. 김정일은 그런 김대중을 자기 차에 태운다. 우리 경호원이 없는 이 차중에서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 모르지만 김대중은 守勢에 있었을 것이다. 이 순간까지 그가 국민들을 속이고 저지른 범죄행위가 드러나면 망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돈을 받은 김정일은 큰 소리 치고 돈을 준 김대중은 주눅 든다.
  5. 김정일측은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김대중의 김일성 시신 참배를 강력히 요구했다. 6월13일 順安비행장에서 백화원 초대소까지 김대중이 오는 데 20분이 더 걸린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참배를 하지 않았을까. 두고 보자.
  6. 다음날 1차 정상회담 때 김정일은 김대중씨를 갖고 놀려고 한다. 開口一聲이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어제 환영받은 것을 기념으로 하고 그만 돌아가시지요. 오늘 남조선 텔레비전을 보니 대학가에서 인공기를 올렸다고 검사가 학생을 구속한다는데 이런 분위기 아래에선 회담 못합니다"이다.
  7. 김대중측은 이런 일격에 놀라 변명에 급급한다. 돈을 다 받아먹은 김정일은 이런 식으로 영악한 선제공격을 한 다음 김대중씨와 회담을 하니 김정일 페이스대로 합의를 본다.
  8. 6.15 선언의 핵심은 김정일의 대남적화통일전략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김대중씨가 인정한 2항이다. 남한에서 친북세력이 날뛰는 근거를 만들어준 셈이다. 내북의 적에게 대한민국을 파괴할 자유를 준 셈이다.
  9. 서울로 돌아온 김대중씨는 김정일과 전쟁을 안하기로 합의했다, 김정일이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주둔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고 선전한다. 국제사회에서 그는 김정일의 대변자로 전락한다.
  10. 그 뒤 김대중씨는 김정일에게 굴종에 굴종을 거듭한다. 장충식 韓赤 총재를 해임시키라면 해임시키고, 선박을 보내 우리 영해 침범을 강행해도 나가주십시오라고 애걸하고, 친북인사의 평양방문은 허용하면서 황장엽의 방미를 막고, 남북 축구장에선 태극기를 압수하고, 서해도발을 당해서도 응징도 하지 못하고, 부시와 김정일의 대결에선 동맹국 편을 들지 않고...
  11. 이제 거의 모든 미스터리가 밝혀졌다. 김대중씨는 왜 그토록 김정일에 굴종했던가. 김정일에 돈을 주고 약점이 잡혔기 때문이다. 조폭에 약점 잡혀 집안에 있는 재물을 갖다 바치는 家長이 된 것이다. 그 집안의 아들들이 "이거 어디 자존심이 상해서 살겠습니까. 경찰에 신고합시다"라고 해도 家長은 자신의 약점이 들통날까봐 묵묵히 굴종하면서 집안의 이익과 체면과 자존심을 팔아먹은 꼴이다.
  12. 더구나 돈으로 산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니 김대중씨는 김정일에게 약점을 잡힘과 동시에 신세까지 진 셈이 되었다. 김정일에 대해서 한번도 할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 김정일을 비판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적대시하여 죽이려 들었다. 그동안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서 한 일들을 놓고 한 인간으로서, 국군최고사령관으로서, 국가원수로서, 소위 민주투사로서 어떻게 이토록 비굴하고 거짓되며 애국심이 없을 수 있느냐고 의아해 했던 부분의 상당수는 해명이 가능하다. 자신의 허영심으로 하여 김정일에게 약점 잡힌 바 되었으니 정상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황장엽씨의 말대로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었고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던 것이다.
  13. 김대중의 對국민사기극과 對국가 배신 행위는 헌법에 따라 가장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반역의 허가를 내주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대한민국이 살기 위해선 김대중과 그 심부름꾼들을 법정에 세워 헌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글/조갑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