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경재

평양 가는 盧武鉉 대통령에게

서석천 2009. 8. 9. 12:07

[金東吉 直說] 평양 가는 盧武鉉 대통령에게
 
평양의 金씨를 만나 별로 할 말도 없으면서 왜 험한 길을 가나?
 

 

『나도 金正日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한 줄 써 넣기 위해 평양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金東吉 연세大 명예교수
1928년 평남 맹산 출생. 평양고보·연희大 영문과 졸업. 연세大 사학과 교수·부총장, 통일국민당 최고위원, 제14代 국회의원 역임. 現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뒷돈 주고 실현된 제1차 남북頂上회담
 金大中(김대중)씨의 1차 訪北(방북)이 2000년 6월13일의 일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金大中씨가 평양에 가서 金正日과 頂上회담을 한다」는 뉴스는 한국뿐 아니라 全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때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명은 없었다. 다만 「분단을 넘어 화해로」라는 막연한 구호가 있었을 뿐이다. 그저 모든 한국인이 속으로 의아스럽게는 생각하면서 「南北 간에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에 가슴이 부풀었던 한때였다.
 
  그해 6월13일에 北으로 떠나기로 예정되었던 한국 대통령의 출발일자가 왜 하루 늦어졌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평양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순안 비행장에 내려서 두 金씨는 같은 차를 타고 상당한 시간 동행했다는데, 차 중에서 그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의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金大中씨가 평양에 체류하면서 金日成 시신이 있는 곳을 찾아가 경의를 표했다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 확인된 바는 없다.
 
  그뿐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이 金正日에게 액수가 얼마나 되는 美貨(미화)를 건네주었는지 잘 모른다. 정식으로 5억 달러는 金正日에게 보냈다는 말이 있고, 그 액수가 5억을 넘어 7억 달러는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확인할 바는 전혀 없는 것 아닌가. 金大中씨는 줄곧 北에 간 돈에 대해 자기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잘라서 말했다.
 
  2005년 6월15일, 南北정상회담 공동성명서가 발표된 지 5주년이 되던 그날 金大中씨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잘사는 형이 못사는 동생을 찾아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어서 1억 달러를 가져다 주었소』
 
  「北으로 간 돈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잡아 떼기만 하던 그가 왜 1억 달러를 金正日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시인했을까. 아마 자기가 세운 16代 대통령의 자리가 비교적 안정이 되고, 국회를 발판으로 하는 여당의 정치력이 그만하면 안심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金大中이 건넨 달러와 北의 核무기
 
  「국민의 정부」니 「참여정부」니 하는 정권들은 한결같이 『南北정상회담 때문에 北이 南侵(남침)을 감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간에 한반도 평화가 가능했다』고 어거지를 쓰지만, 그것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가.
 
  金正日이 그 달러를 가지고 무슨 일을 했는지 무엇에 썼는지 우리는 전혀 아는 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그 돈이 들어가고 나서 北은 核무기를 만들고, 核실험을 감행했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金大中씨가 金正日에게 건넨 달러와 核무기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일단 의심을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는가.
 
  核실험을 끝낸 北의 인민공화국과 金正日은 마치 수류탄을 들고 항공기의 승객들을 협박하는 테러범처럼 미국과 대등하게 협상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나섰다. 알 카에다 못지않은 폭력집단이 한반도 북반부에서 큰소리치며 남반부뿐만 아니라 全세계를 협박하고 나서자, 北의 인민공화국을 서슴지 않고 「惡(악)의 軸(축)」이라고 부르던 美 합중국도 이제 와선 『核만 완전포기하면 손 잡겠다』고 공언하게 되었다.
 
  이 모든 불상사의 발단이 2000년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金大中씨가 그해 6월15일 서울로 돌아오면서 던진 첫마디를 기억하는가.
 
  『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식견 있는 믿을 만한 지도자』라고 한 그 말을….
 
  그 말을 믿고 당시 美 국무장관 올브라이트가 金正日을 찾아갔고, 당시 일본 총리 고이즈미가 평양의 金씨를 찾아가 악수를 청했다. 일이 순조롭게 굴러갔다면 미국 대통령 클린턴도 평양에 가서 金正日을 만나거나, 아니면 정중하게 워싱턴으로 그를 초청했을 것이다.
 
 
  뭐하러 평양에 가나?
 
  2007년 10월 초순에 盧武鉉씨가 또다시 평양을 방문하여 金正日과 두 번째 頂上회담을 하게 된다고 한다. 원래 9월 초에 北을 방문한다고 보도된 바 있었는데, 北에서 『水害(수해)가 심해서 만날 수 없으니 한 달쯤 뒤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盧武鉉씨의 訪北 목적이 관광이 아니라면, 아무리 수해가 심하다 하여도 南北 간에 중요한 현안의 문제가 있다면 더욱 빨리 만나야 정상인데 한 달씩 미룬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盧씨가 金씨를 만나 별로 할 말도 없으면서 이 험한 길을 가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頂上회담에 정해진 의제가 없다」는 말은 먼저 청와대에서 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관광이 목적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왜 이런 때에 盧武鉉씨는 굳이 北을 찾아가 金正日을 만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그가 이끌던 여당인 열린당이 그의 눈앞에서 그리고 국민의 눈앞에서 와르르 무너진 사실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그 여당과 與圈(여권)의 재건을 위하여 金正日로부터 무슨 충고나 지침이라도 받겠다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보아도 여권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 같다. 여권이 大選(대선) 승리를 위해 金正日의 힘을 빌리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라가 3國통일을 위해 제 힘이 부족했기 때문에 唐(당)나라에 군사원조를 요청한 것보다 더 事大主義的(사대주의적)인 망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盧武鉉씨의 이번 訪北 목적은 정말 모르겠다. 金大中씨야 北에 1001마리 소를 보내고, 돈을 보내고, 스스로 예방까지 하여 노벨평화상 심사위원들을 감동 시킬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몇 달 뒤에는 대통령 자리를 물러나야 할 盧武鉉씨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盧씨가 평양의 金씨를 만나 『무슨 정치를 이따위로 해서 北에 사는 2000만 우리 동포를 이렇게 헐벗고 굶주리게 만드는가』라고 따진다면 몰라도 자신의 이력서에 『나도 金正日을 만난 적이 있다』라고 한 줄 써 넣기 위해 평양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2000년 南北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金大中씨는 『연내에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답방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金正日은 지난 6년 동안 서울에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올 생각도 안 하고 있다. 盧武鉉씨는 왜 金正日에게 『이번엔 서울에서 만납시다』 라고 한마디 못 하는가.
 
  내가 보기에 盧武鉉씨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걸머지고 金正日을 만나 담판을 벌일 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金正日로 하여금 核무기 생산을 단념하게 하는 일이 盧武鉉씨의 몫은 아니다. 盧씨가 해서 될 일도 아니고. 그에게 그런 큰일을 기대할 사람도 없다.
 
 
  대한민국만 똑똑하게 굴었어도…
 
  盧씨가 평양의 金씨를 만나 할 수 있는 말은 어쩌면 광복 후 한국인들 사이에 흔히 나돌던 이야기,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게 속지 말라』는 한마디밖에 없을지 모른다.
 
  소련에 속은 나라들은 많다. 그중에 하나가 金日成의 인민공화국이었다는 사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요새 미국이 대한민국을 대하는 것을 보면 한때 유행했던 그 속담이 생각난다. 앞으로 미국이 金正日과 손잡고 대한민국을 못살게 굴어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 미국을 믿다가 대한민국은 또 망하게 되는지 모른다.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못살게 될지 모른다.
 
  나는 미국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다. 미국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미국은 저 살기 위하여 남을 능히 희생시킬 수 있는 나라다. 대한민국만 똑똑하게 굴었어도 우리가 오늘과 같은 곤경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쭙잖게 「反美(반미)」니 「親北(친북)」이니 떠들어 대다가 오늘 우리가 이 꼴이 되었는데, 미국은 대한민국을 아예 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일단 金正日의 세상이 되고 말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金東吉만 못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盧武鉉도 못살게 되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金大中도 못살게 된다.
 
  조국이 그런 위기에 처해 있는 사실을 명심하고 盧武鉉씨는 金正日을 만나러 가는가? 아니면 혹시 이번 訪北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아무런 소득이 없지만, 다만 다 무너진 與圈(여권) 재건에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가는가?
 
  그 착각은 버리고 평양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대동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는지, 모란봉 을밀대는 여전한지, 그리고 평양의 냉면 맛은 변하지 않았는지… 다녀와서 그런 일이라도 우리에게 들려 준다면, 鄕愁(향수)에 젖은 失鄕民(실향민)의 마음을 조금은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에 속는 하나의 과정으로 金正日이 核을 포기한다고 하자. 그러나 100만 군대와 재래식 무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한반도의 평화는 있을 수 없다. 혹시 盧武鉉씨 생각에 미국과는 손을 끊고 北의 인민공화국과 손을 잡고 중국에 붙어야 우리의 살길이 열릴 것이라고 착각했던 때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젠 그런 꿈이 허망하게 되었으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金正日을 다시 찾아간다는 일이 민망하기조차 느껴진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꿈꾸며
 
  이번 訪北時에는 金正日에게 가져다 줄 선물이 전혀 없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南北 간의 군비축소나 심지어 무장해제를 제의해도 北이 들을 리 없다.
 
  金正日을 만나 혹시 이런 제의를 해보면 어떨까. 그저 막연하게 주체성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1948년 유엔감시下에 총선거를 北이 거부했기 때문에 남한이 단독정부를 세울 수밖에 없어서 민족의 진로가 이토록 험난했음을 시인하면서 그런 선거를 60년 뒤가 되는 2008년에 한번 실시해 봄이 어떨까」 하는 뜻을 밝히는 것이다. 민족의 장래에 해로울 것은 없지 않은가.
 
  고려연방제니 등등 되지도 않을 복잡한 이야기만 늘어놓지 말고 명실공히 민족의 주체성을 살려 南北韓의 군대와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반기문 유엔총장이 지휘하는 유엔 감시下에 南北한 총선거를 실시할 의사가 없는지 한번 타진해 주기를 바란다.
 
  詩人 김기림이 광복되고 난 어느 8·15에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라는 제목의 詩(시)를 한 首(수) 발표한 적이 있었다. 3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일본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탄압을 받고 살아온 이 겨레에게 8·15는 진정 감격의 날이었다.
 
  나는 盧武鉉씨에게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라고 권면할 처지는 못 된다. 다만 내 기억에 그 날에는 모든 조선인이, 모든 한국인이 「겨레를 섬기는 종이 되면 족하다」고 믿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큰돈 벌겠다는 놈도 많아지고, 한 자리 하겠다는 놈도 많아지고, 민족의 순수한 감정과 포부는 사라지고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들만이 한반도에 우글우글하게 되었다.
 
  이번에 평양에 가서 盧武鉉씨는 金正日을 만나 「어떻게 하면 이 겨레가 良心(양심)의 原點(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한번 논의해 주길 바란다.
 
  꿈같은 이야기라고 一笑(일소)에 부칠지 모르지만, 나는 미국에 살던 의사 손원태씨가 매우 어렸을 때의 친분 때문에 金日成의 초대를 받아 北에 여러 번 가서 厚待(후대)를 받았다고 들었다.
 
  내가 손원태씨에게서 직접 들은 말인데 孫씨가 초대를 받고 金日成을 찾아갔더니, 50~60년의 세월이 흐른 뒤라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 金日成이 말하기를 『야, 너 원태 아니냐. 우리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 좀 자주 찾아오라』 하더라는 것이다.
 
  영어에는 「불가능의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라는 말이 있다. 詩人 박목월의 詩 중에 「내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詩 한 수가 있었다. 盧武鉉씨 訪北에 내가 무슨 큰 기대를 걸겠는가마는 혹시 하늘이 도와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뿐이다.●
 
金東吉 연세大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