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에서 폭발적인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충격과 슬픔이 잦아들면서 이 비극의 원천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소적인 정치 문화와 급증하는 자살. 이런 문제들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한국은 ‘부패 공화국’에 이어 ‘자살 공화국’으로도 낙인 찍힐지 모른다.
서구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이유로 가족들의 부패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주로 들었다. 많은 외국 기자들은 또 노 전 대통령에 앞선 4명의 전직 대통령 가족들 역시 부패 혐의로 단죄 받았음을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이러한 전철을 인식하지 않은 채 불법 자금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비슷한 운명에 처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부자였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어본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법 시스템은 공직자와 그 가족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수사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선별적인 법 집행에 있다. 슬프게도 한국 검찰은 정치 권력에 아양 떠는 애완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법을 악용한 정치 보복은 한국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노 전 대통령 자살 직후 검찰은 그에 대한 모든 수사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번 수사의 동기가 정치적이었다는 의혹만 강화시켰을 뿐이다. 앞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될 지 모를 미래의 부패 관료들에게 ‘자살`=`명예회복’이라는 그릇된 메시지를 안겨줄 가능성도 있다.
- 노 전 대통령은 분명 곤경에 처해 있었다. 형은 감옥에 갇혔고 부인과 아들은 검찰 수사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그의 전임자들 역시 비슷한 운명에 직면했었지만 자살을 택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노 전 대통령보다 상대적으로 덜 가혹한 상황이었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들은 살아있다.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의 경우 결과적으로 아무 위협도 되지 않는 나라를 침공한 대가로 4000명의 미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은 데 대해 여전히 조크만 던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가 자신을 판단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은 왜 ‘역사의 판단’에 맡기지 않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자살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 하나는 심리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환경적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그의 어린 시절 친구가 “노 전 대통령은 자살할 타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지만 노 전 대통령은 가족들의 범죄 혐의와 정치 보복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한나라당 지도자들의 조문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최선을 다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분열적인 리더였다. 하지만 죽어서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14줄짜리 유서에도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북한과의 화해는 아마 김정일과 그 측근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모든 정파와 지역이 화합함으로써 그의 유지를 완성하는 노력은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노 전 대통령의 고귀한 뜻에도 불구, 서구인의 눈에 자살은 이기적 행동으로 비친다.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과 딸이 고통스럽게 뭔가를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들과 같은 슬픔을 겪은 적이 있다.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던 내 삼촌은 사랑스런 아내와 딸 둘을 남겨놓고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던 내 친구 역시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들 둘을 남겨놓고 자살했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남산을 산책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 몇 주 뒤 나는 친구가 자살했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자살과 관련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이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도록 더 많은 도움을 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그들이 견뎌야 했을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그렇게 버렸음에 대해서는 화가 치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100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번째 지도자이다. (나머지 둘은 아돌프 히틀러와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이다. 아옌데는 1973년 쿠데타로 권좌에서 쫓겨났다.) 불행하게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심각하고 중대한 트렌드의 하나로 보인다. 한국은 여성 자살률이 세계 최고이고, 전체 자살률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미국의 두 배가 넘는다. 동시다발적인 자살도 일상적이다. 내가 좋아하던 최진실씨를 비롯해 10여명의 한국 배우들이 지난 몇 년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시아의 상당수 국가에는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택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그렇다고 자살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행동인가. 한국 언론들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서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 것은 그에 대한 존경과 동정심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용어 사용이 그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본다.
한국이 독소적인 정치 문화를 즉각 청산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부를 향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살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자살로 고민하는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 역시 자살 증가에 대처하고 있다. 6년간의 이라크 파병 이후 미군의 자살률이 급증했다. 올해 1월의 경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병사보다 더 많은 병사가 자살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것을 위기라고 깨닫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근래 한국에 있은 일련의 자살 신드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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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벡 |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UC버클리대 졸업. 캘리포니아대 국제관계 및 태평양연구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 실장, 국제위기감시기구(ICG) 서울사무소장,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역임. 현 아메리칸대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 - 펌글/주간조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