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폭파사건의 주인공 金賢姬(김현희)씨가 2008년 10월 李東馥(이동복) 교수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적힌 내용이다. 편지는 MBC·SBS 등 방송제작진들이 그의 집을 ‘습격’해 그가 사는 곳을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에 노출시켰고, 김현희씨를 보호해야 할 국정원과 경찰은 김씨와 그의 가족을 살던 곳에서 ‘추방’했다고 전한다. 김씨는 국정원과 방송 제작진들이 “방송화면 뒤에서 시청자들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면서 “역사는 이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흘렀지만, ‘그들’의 역사는 여전히 김현희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그녀를 여전히 가짜라고 주장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辛成國 신부
“全斗煥 정권이 KAL기 사건 일으켰다고 확신”
![]() |
신성국 신부.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으로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를 주도했다. |
辛成國(신성국·47) 신부는 1961년 충북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서울 성신고를 졸업한 후 광주가톨릭신학대에 입학했다. 신학대학 1학년 재학 시절 광주에서 목격한 5·18의 충격이 그를 ‘행동하는 司祭(사제)’로 변화시켰다. 그는 2004년 3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항쟁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사실이 평생의 부채로 남았다”고 말했다.
2000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공동대표를 맡은 신성국 신부는 같은 해 3월 충북 청원의 청소년수련관을 ‘안중근 학교’로 바꾼 후 교장으로 취임했다. 이 학교를 2004년 2월까지 운영하며 안중근 추모예술관, 뤼순(旅順) 감옥 체험실을 설치하는 등 안중근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2000년 8월 신 신부는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을 주도했다. 주민을 상대로 사실상의 ‘조선일보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2005년 8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안 보기 운동을 시작한 옥천은 언론 개혁의 성지가 됐다”고 말했다. 신 신부는 조선일보를 ‘사탄’이라고 부른다. 그는 ‘안티조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조선일보 폐간이 ‘예수의 명령’이라고 주장했다.
신 신부는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KAL기 사건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03년 사건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는 ‘성서를 통해 본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운동’이란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全斗煥(전두환) 정권이 1980년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잔학하게 학살하여 정권을 잡더니, 정권 말기에는 KAL 858기 사건을 일으켜 수많은 노동자 가족과 승무원 가족들을 희생시켰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그는 “盧泰愚(노태우) 정권 당시 안기부가 가족들을 협박, 회유하면서 진상규명 운동에 대해 철저한 방해공작으로 일관했다”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족들에게 안기부의 협박은 강압이었고, 공포 그 자체였다”고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