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기간에 이명박 후보와 친인척 11명의 재산 상태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조사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던 국세청의 ‘이명박 재산 내사’는 노무현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에 파견 근무했던 간부와 부산상고 출신 간부가 지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권력형 공작정치’로 규정한 한나라당의 고발에 의해 작년 7월부터 수사해온 검찰은 “정보를 수집한 곳은 국세청 조사국 세원정보과였고, 이를 받아 분석한 곳은 조사1과였다”며 “분석 결과는 보고서로 작성돼 국세청 최고위직에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검찰 수사 내용은 당시의 ‘이명박 주변 내사’가 국세청이 주장했던 대로 ‘정상적인 탈세 여부 조사’가 아니라 ‘권력기관의 조직적 사찰’이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검찰은 조사국의 세원정보과 라인과, 조사1과 라인 등 2개 라인에서 ‘이명박 재산 내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수집을 지휘한 것으로 파악된 당시 세원정보과장은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2년간 근무하며 노 정권과 관계를 맺은 인물이다. 또 분석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조사1과장은 부산상고 출신으로 노 전 대통령의 후배다. 이들은 내사 이후 약 2년간 3~4차례에 걸쳐 승진과 영전을 거듭, 현재 국장급 간부로 근무하고 있다. 내사 실무진 역시 전원 국세청 요직을 맡고 있다.
검찰은 대선 당시 내사 논란을 일으켰던 국세청과 국정원으로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개인정보 열람 내역과 자체감찰 결과를 넘겨받아 조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이 자료를 토대로 ‘국세청과 국정원이 정당한 업무 목적을 벗어나 불법적으로 정보를 취득하고 활용했는지’와 함께, 당시 ‘권력층이 배후에서 역할을 했는지’를 규명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늦어도 연말까지는 이 사건에 대해 결론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찰이냐 탈세조사냐
국세청 “단순 탈세조사 차원에서 재산 열람했을 뿐”
한나라당 “법인담당 부서에서 왜 개인을 조사했나”
국세청 조사국은 전국 법인 및 개인 납세자의 동향을 살피고 탈세 여부와 세무조사 필요성을 판단하는 핵심기구다. 조사국 조사1과는 법인을, 조사2과는 개인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후보와 친인척에 대한 조사는 개인 담당인 조사2과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재산 조사는 법인 담당인 조사1과가 맡았었다.
국세청을 잘 아는 인사들은 이 점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정상적 탈세 조사가 아니라 특별한 목적 때문에 변칙 운영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당시 ‘이명박 자료’를 분석한 조사1과장이 부산상고 출신으로 노 전 대통령의 고등학교 후배이며, 자료를 수집한 세원정보과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2년간 장기 파견 근무를 했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원래 직제상의 업무 분장 구조를 외면한 채 특정 연고자들을 모아 특정한 일을 시키는 것은 사정기관에서 불법을 행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이라며 “야당 후보를 흠집 낼 목적에서 은밀히 진행된 사찰”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통상적인 탈세조사 업무 차원에서 이명박 후보의 재산 상태를 열람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정권 차원의 조직적 사찰이었나
국세청과 유사 시기에 국정원도 내사 나서
한나라당 “그랜드 마스터의 지휘 없인 불가능”
검찰에 따르면 내사는 2006년 9월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는 국정원 부패척결 태스크포스(TF)팀의 5급 직원이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전산망에 접속해 이명박 예비후보 친인척의 부동산 내역을 조회한 시점(2006년 8월)과 유사하다. 그 직원은 현재 내근 부서로 좌천돼 행정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한 직원이 2006년 10월까지 자신이 조회한 자료를 근거로 (이명박 예비후보에 대한) 검증작업을 벌였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내사와 관련해)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국가의 대표적 ‘권력기관’ 2곳이 중첩된 시기에 야당 예비후보의 재산 조사에 나선 것이 단순히 우연이라고만 보기는 힘든 것 아니냐는 논리다. 국세청 근무 경력이 있는 이종구 의원은 “내가 공무원을 해봐서 안다”며 “이런 일은 ‘그랜드 마스터’의 지휘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 의원은 “국세청이 수집한 정보를 보고서로 작성해 유출했다면 그건 국세기본법 위반 행위”라고 말했다.
어디까지 조사했나
소득·증여·토지세, 주식·골프장·주택 등 전방위 분석
“이 후보 실 재산 1000억원대… 대부분 처남 앞 명의신탁”
이명박 후보에 대한 내사는 ‘전방위적’이었다. 국세청 조사국은 이 후보와 부인 김윤옥씨 등 가족 6명, 처남 김재정씨와 그 부인 등 가족 4명, 큰형 이상은씨 등 총 11명을 대상으로 소득세, 증여세, 부가가치세 신고내역, 주식 보유 및 거래 내역, 골프장·헬스클럽 회원권 소유 현황, 자동차 보유 현황, 주택 보유 현황, 건물·택지 등 부동산 취득 현황 및 양도 내역, 종합토지세 자료 등에 걸쳐 대대적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이 조사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해 최고위직에게 전달했다.
보고서엔 당시 여론의 관심을 끌었던 ㈜다스에 대해 “실소유자가 이명박 후보라는 의심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는 것과 함께 “서울시장 재임 시절 300억원대로 신고한 이 후보의 재산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산정된 것으로 보이고, 이를 시가로 환산할 경우 실제 재산은 1000억원대로 보이며, 대부분 처남(김재정씨) 앞으로 명의신탁 돼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이 조사한 소득세 등 과세자료와 부동산 보유 및 거래 내역, 주식·자동차 보유 내역 등은 차명 재산 규명에 필요한 자료들이다.
국세청 직원들은 검찰에서 “이 후보가 1970~1980년대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 투기를 했으며, 이를 처남에게 명의신탁했다는 내용의 의혹이 나와 재산 검증을 시작했다”며 “상급자가 이 후보 재산 관련 의혹이 담긴 서류를 들고 와 분석을 지시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사 실무자들은 그 뒤 어떻게
2년간 3~4차례 파격 승진해 내부서도 구설 올라
국세청 “일부 간부가 반대했지만 결국은 관철돼”
정보 분석을 지휘한 것으로 파악된 조사1과장은 이명박 예비후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 직전인 2006년 6월 발령받아 온 뒤 2개월 만에 부이사관으로 승진했으며, 이듬해인 2007년 7월 지방청 국장으로 영전됐다. 또 올 4월엔 서울청 고위직으로 다시 영전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3번이나 승진·영전한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정보 수집을 지휘한 세원정보과장은 2004년 7월부터 2년간 노무현 청와대 민정수석실 장기파견 근무를 마치고 복귀했다. 2006년 6월 복귀 직후부터 정보 수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06년 10월 국장급으로 영전했으며, 2개월 뒤인 2006년 12월 또 다른 국장급으로 자리를 옮긴 뒤, 3개월 만인 2007년 3월 국장으로 정식 승진했다. 현재는 워싱턴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정보 수집 실무를 맡았던 세원정보과의 직원 역시 승진했다. 그는 정보분석이 끝난 뒤인 2006년 11월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이후 심층세무조사(특별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4국으로 영전됐다가 2008년 9월 세원정보과 실무 책임자 중 하나로 돌아왔다.
이같은 인사와 관련해 국세청 관계자는 “일부 간부들이 ‘대통령 재산을 조사했던 사람을 요직인 세원정보과로 복귀시키면 여론이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고위층이 강력하게 주장해 관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명박 경선 출마 선언 5일 전 조사 착수
고건 부상해 “정권 연장 가능” 전망 돌 때
이명박 예비후보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것은 2006년 10월 1일이다. 그가 서울시장을 사퇴한 것은 2006년 6월 30일로, 이 후보는 2006년 7월 1일~9월 30일까지 3개월간 ‘자연인’ 신분으로 있었다. 국세청이 이 후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것은 그가 자연인으로 지내던 2006년 9월 25일로, 경선 출마를 선언하기 5일 전이었다.
이 시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되기 전으로, 고건 전 서울시장이 당시 여권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면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권이 향후 10년간 더 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던 때였다. 이명박 예비 후보와 관련해 ‘청계천 복원공사 관련 비리설’ ‘숨겨놓은 아들설’ 등 각종 루머가 나돌았던 것도 이 시기였다.
판세에 변화가 생긴 것은 이명박 후보가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2006년 10월 1일 이후다. 고건·박근혜 후보에 밀려 여론조사 3위를 차지하던 이 후보는 추석(10월 6일)을 싸늘하게 만든 ‘북한 핵실험’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그해 10월 25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를 처음 앞질렀다. 국세청 조사는 대선 판도가 요동치던 격동기의 한복판에서 실시된 것이다.
2006년 6월 6일
한국일보 여론조사
고건(26.2%) 박근혜(25.8%) 이명박(20.2%)
6월 30일
이명박 서울시장 퇴임
7월 3일
이명박 후보, 개인 사무실 ‘안국포럼’에 첫 출근
8월 13일
정두언 의원, 이명박 후보 관련 음해설 유포 경계
8월 18일
이명박, 내륙운하 탐사 투어 시작
10월 1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선언
10월 23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
박근혜(37.0%) 이명박(35.0%), 2%포인트 차 접전
10월 25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
이명박(39.5%) 박근혜(36.9%), 이명박 첫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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