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0일 경기 연천군 임진강 일대에서 열린 한미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에서 천마가 도하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표 '선택적 모병제'는 현실성과 안보 필요성을 무시하고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택적 모병제' 공약을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군사 안보 전문가들은 표를 위해 안보를 희생하는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이 후보가 구상한 선택적 모병제는 현행 징병제를 유지하되 병역 대상자들이 단기 징집병(복무 10개월)과 장기 복무병(기술 집약형 전투부사관과 군무원 등 복무 36개월)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징병제를 유지하되 일정 조건을 갖춘 병역 대상자는 군 복무 대신 지원병으로 전환하거나 다른 형태의 복무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 17일 대전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수십만 청년을 병영에 가둬놓는 전통도 중요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효율적인가 생각한다"며 "그 시간에 복합무기체계에 대한 전문 지식을 익히거나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전역 뒤에도 그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필요하다"며 "선택적 모병제를 운용하는 게 맞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 후보는 제20대 대선 당시 징병제의 단점과 모병제의 장점을 섞었다며 선택적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징집병을 15만 명으로 줄이되 모병을 통해 기술집약형 전투부사관 5만 명, 행정·군수·교육 분야 전문 군무원 5만 명을 증원하고 징집병 복무 기간을 현행 18개월에서 10개월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을 스마트 강군으로 발전시키려면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 징집병 대신 기술집약형 전투부사관과 군무원을 배치하는 등 군 인력의 전문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징집병 18만 명 유지 가능한데 15만 명? … "견강부회로 국방력 훼손"
전문가들은 병역 자원 감소에 따른 병력 규모 축소는 향후 불가피하지만 대통령 임기 내 징집병을 15만 명 선으로 감축한다는 이 대표의 구상은 심각한 국방력 훼손을 초래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합동참모본부와 한미연합사령부 등에서 안보 전략과 군사 정책을 기획했던 송윤선 서울안보포럼 연구소장은 뉴데일리에 "2040년 병력 규모 축소의 충격 완화와 사전 대비를 위해 2040년을 목표 연도로 해서 지금부터 점진적 축소는 필요하지만 병역 자원 부족으로 5년이라는 단기간에 병사 수를 15만 명으로 줄인다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비판했다.
한국군은 인구추계상 2035년까지는 병력을 현재의 50만 명(이중 병사 30만 명) 규모로 유지할 수 있다. 2040년이 되면 현역병 입영 대상 인원은 약 12만 명인데 복무 기간을 현행 18개월로 유지하면 병사 18만 명을 유지할 수 있다. 굳이 3만 명이나 더 축소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복무 기간 10개월은 휴가 없이 훈련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병사 수를 현재 30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감축하고 복무 기간을 18개월에서 10개월로 단축하는 대신 5만 명의 전투부사관을 증원한다는 이 후보의 발상은 심각한 전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병사 복무 기간을 18개월에서 10개월로 줄이면 병사들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은 기초군사훈련과 특기훈련 2개월, 전역 전 1개월을 뺀 7~8개월에 불과하다. 현행 제도상 실제 활용 가능 기간의 절반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신병 교육부터 주특기 숙달(3~4개월), 분대 및 팀 훈련 준비와 숙달(1개월), 소대 훈련 준비 및 숙달(1개월), 중대 훈련 준비 및 숙달(2개월), 대대 훈련 준비 및 숙달(3개월) 등을 휴가 없이 준비하고 숙달하기까지 10개월이 걸린다. 이에 더해 여단·사단 등 상급부대 기동 훈련과 유격 훈련 등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훈련에 숙달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육군 교육사령부 사령관 출신인 한 예비역 장성은 "현재 18개월을 복무해도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데 10개월로 어떻게 훈련 숙달해 전투 준비를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야전의 실상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다. 이재명 캠프에서 이러한 안을 구상했는지 몰라도 아마 탁상행정만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을 것이 틀림없다"고 비판했다.
◆복무 기간 줄이되 5만 명 전투부사관 증원 … 아마추어 병사 비율 38%로 급상승
복무 기간 단축을 전투부사관 5만 명 증원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발상도 아마추어 병사 비율을 38%로 높여 전투력 발휘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송 소장은 "10개월 복무자 15만 명은 18개월 복무자 7~8만 명에 해당한다"며 "특히 병사 15만 명의 전투력을 중기 복무 부사관 5만 명이 발휘하기는 어렵다. 전투부사관을 5만 명을 증원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병사 수를 12~13만 명 정도로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짚었다.
이어 "4년 복무 부사관 5만 명과 10개월 복무 징집병 15만 명을 유지하려면 매년 18만5000명에서 19만5000명이 필요하다. 이는 2030년까지는 가까스로 가능하지만 그 이후로 병역 자원 급감으로 절대 불가능하다"며 "간부 25만 명에 10개월짜리 병사 15만 명의 병력 구조는 10개월짜리 아마추어 병사의 비율이 38%로 지나치게 높아 전투력 발휘가 제한된다"고 분석했다.
▲ 지난 1월 6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2025년 첫 현역병 입영 행사에서 입영장정들이 자신들을 배웅하러 와 준 가족 및 친지들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육군 제공
◆간부 이탈 원인 외면한 '선택적 모병제', 소요 목표 전력 달성 불가
초급·중견 간부들이 이탈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처우 개선 없는 모병제는 전면적이든 제한적이든 소요 목표 전력을 달성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선택적 자발적이라는 말은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누군가 자발적으로 모병제에 응할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실상은 모병이 안 된다. 군인들에게는 권한은 없이 책임만 많이 부여되고 복무 환경은 소방·경찰보다 훨씬 불리하다. 수당과 기본적인 복지 혜택은 훨씬 뒤떨어진다"며 "초급 간부들이 대거 이탈하는 현실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데 누가 선택적 모병제에 응하겠는가. 모병제를 통해 부사관이 되면 군에 더 오래 근무하게 되는데 과연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국군은 최근 간부의 처우를 일부 개선하고 있으나 미군과 비교할 때 급여와 의료, 교육, 주거, 연금 등 전반적인 지원이 여전히 크게 미흡하다. 이러한 열악한 처우가 초급·중견 간부들의 군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선택적 모병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소요 목표 전력을 달성하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미군조차 전반적으로 우수한 복지 혜택과 사회적 존중을 받고 있음에도 최근 몇 년간 전체 모집 목표의 약 25%를 충원하지 못하는 심각한 모병 위기를 겪었다. 미군은 인재 획득 전문가 양성, 민간 기술 접목, 입대 장벽 완화, 데이터 기반 모병 관리, 의료 면제 신속화, 모병관 훈련 강화, 지역사회와의 대면 접촉 확대 등 혁신적인 전략을 종합적으로 추진한 끝에 2024년 모병 위기를 극복했다.
◆이재명표 모병제, 전투에 대한 무지 드러나는 '총체적 난국'
전문가들은 "6·25 전쟁 당시 인해전술처럼 사람 숫자로 결판낸 시대에서 이제 완전히 무기 체제로 결판이 나는 시대가 된 것 같다"는 이 후보의 17일 발언에서도 드러나듯이 이재명표 선택적 모병제는 우리의 안보 현실과 전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기술집약형 전투부사관 보직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대전은 과학기술로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첨단 무기체계 운용을 위해서는 숙달된 전투 전문가가 필요한데 10개월 복무로는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 특히 공격과 달리 방어는 무기체계에 의존하기보다는 전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북한군 공격을 방어하려면 방어 충분성에 따르는 최소한의 병력 규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는 무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전투는 무기를 운용해서 폭격하면 되는 걸로 착각하고 있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으니 전투를 어떻게 하는지 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 무기 운용은 공군이나 포병이 할 수 있다. 아무리 현대전의 시대라지만 전장에 목숨 걸고 나가서 적과 직접 싸우는 보병이 훨씬 많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정치적인 힘은 적과 대면해 근접 전투를 하는 지상군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후보가 27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수도권·강원·제주 합동연설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서성진 기자
◆韓 전략적 상황 악화 국제 정세 무지 드러내 … "지도자로서 적절한 판단인가"
더 큰 문제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동맹으로 인해 한국의 전략적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2025년 글로벌파이어파워와 2023년 한국국방연구원 보고서 등의 내용을 종합하면 한국이 중국 북부전구(약 43만 명), 러시아 동부군관구(약 16만 명), 북한군(약 100만 명) 등 약 154만 명의 북중러 연합병력에 대응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방어 충분성 전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군이 보유한 비대칭 전력(장사정포 8000문·화학무기 5000톤)을 고려하면 북중러 연합 전력의 위협은 더욱 심각해진다.
한 군사 전문가는 "방어 충분성 전력은 현재 50만 명 정도인데 장차 전략적 상황을 평가해 가면서 병력 규모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며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고 향후 10년 내 러시아와 중국의 도움을 받아 재래식 무기의 질적 향상까지 이룰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점차 대만 문제에 몰두하는 지금 한국의 전략적 입지는 계속해서 좁아지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독자적 방어 능력을 강화하고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핵무장 수준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표심을 겨냥한 선택적 모병제 논의는 안보 현실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으로서 적절한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조문정 기자 202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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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말하는 '실용 외교', 들여다 보면 간판만 바꾼 '셰셰 외교'
이재명의 '실용 외교' … 사실상 안미경중 시즌2
'헤징 외교' 내세운 李, 文 '3불1한' 재현 우려
사드보다 먼저 배치한 中 DF-21 미사일엔 침묵
필리핀·우크라 친중·친러 헤징 실패서 배워야
이재명 'EU 따라하기', 한국에선 통하지 않아
기술도 무기화 … '안미경중'은 시대착오적
간첩법 막는 민주당·말 바꾸는 李 불신 확산
▲ 지난 2023년 6월 8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예방해 인사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중국에) 셰셰(謝謝·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 있죠."
중국을 향한 '셰셰'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외교·안보 기조로 제시했다. 이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연장선이며 동맹국인 미국과 '잠재적 위협국'인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전통적인 외교·안보 기조인 '균형 외교'의 간판만 바꾼 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5일 제3차 대선 경선 토론에서 자신의 실용외교 기조와 관련해 "대한민국 외교의 축은 한미동맹이지만 거기에 매일 수 없다"며 "현실적 강대국인 중국, 러시아, 지정학적으로 맞닿아 있는 북한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적대할 수 없다.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말했다.
▲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가 지난 2017년 7월 13일 오후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 배치돼 있는 모습. 이날 군은 지난 7월 9일 강원도 인제의 한 야산에서 발견된 북한군 소형 무인기에 대한 초기 분석 결과 "사드를 촬영한 사진 10여 장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뉴데일리DB
◆이재명 캠프, 文 정부 '3불1한' 실패에도 또 '헤징' 선택
이재명 캠프 측 조현 전 주유엔대표부 대사와 박선원 민주당 의원 등이 추천한 이 후보의 최신 외교·안보 정책 해설서인 '이재명의 외교·안보를 읽는다'에 따르면, '이재명표 국익 중심 실용외교'는 이념과 진영의 논리에 따른 구분과 배제를 거부하고 외교적 유용성과 실용성을 발휘하는 외교 전략으로서 평화, 공영, 연대를 3대 목표로 삼는다.
이 해설서는 한국이 미중 경쟁에서 "중립적이고 협력적인 다자주의적 접근을 지향하는 동시에 미중 양국 간 협력을 촉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에 대해서는 동맹, 헤징(hedging), 중재 등의 전략적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이재명표 실용 외교가 내세우는 '헤징'은 특정 국가가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을 겪는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편향되지 않음으로써 전략적 명확성이 초래할 위험을 회피하자는 전략을 뜻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분단국이자 중견국인 한국이 초강대국 사이에서 헤징을 추진해 외교적 성과를 보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고자 내린 주권적 결정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놓고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중국과 비밀리에 구두로 약속한 '3불1한'(三不一限)은 헤징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고강도 경제 보복을 시작한 중국에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 시스템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고, 이미 배치된 사드의 운용을 제한하겠다는 '3불1한'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결국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고강도 경제 보복 조치는 43가지에 달했고 이로 인해 한국 경제가 입은 피해 규모는 최대 22조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려다가 중국으로부터 주권 침해와 경제적 보복만 당하고 미국으로부터는 동맹국으로서 신뢰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이 후보는 한국의 주권적 결정인 사드가 미국 미사일 방어체제의 일부로서 대(對)중국 감시용이므로 철회돼야 한다는 중국 측 주장을 꾸준히 대변해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7년 '이재명의 굽은팔'에서 "사드에 어색해진 중국과의 관계는 어떤가"라는 자책성 서술을 하는가 하면, 오산 공군기지에 사드 미사일 발사대가 도착하기 하루 전에 중국 관영방송 CCTV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면 사드 배치를 철회할 건가'라는 CCTV 기자의 질문에 "네 그렇다"고 답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 해설서도 "중국은 무역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의 경제적 삶에 있어 중요하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중국이 취한 경제 보복 조치는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질 경우 한국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줬다"며 중국의 경제 보복을 상수로 기정사실화한다.
◆韓 위협하는 中 DF-21 미사일 배치엔 침묵 … 사드보다 먼저 배치
이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한국의 사드 배치 이전인 2015년 백두산 일대에 한반도를 감시·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인 둥펑(DF)-21을 배치한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크다.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은 DF-21 계열 미사일을 1000기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가운데 DF-21D는 세계 최초의 대함 탄도미사일로 항공모함을 비롯한 대형 해상 전력을 타격할 수 있는 위협적인 무기로 평가된다.
이러한 중국의 미사일 전력은 한반도 전역의 한국군 기지와 주한미군 기지, 주요 인프라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고, 유사시 북한을 지원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후보도 중국의 DF-21 배치에 대해서는 비판한 바도 없을뿐더러 사드 배치라는 한국의 주권적 결정에 대한 중국의 압박을 정당화한다고 해석될 수 있는 여지만을 남겼다.
중국에 대한 이재명 캠프의 낙관론은 국제 정치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그의 외교·안보 해설서는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생각이 없고 현존 국제 질서를 부정할 의사가 없고 기존 강대국인 미국과 신흥 강대국인 중국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고자 했다"며 중국공산당의 주장을 사실상 두둔했다.
중국은 기존 국제 질서를 미국 중심에서 미중 양국 중심의 질서로 변경하고자 하는 '현상 타파 국가'(revisionist state)라는 게 외교·안보가의 정론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미 2013년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신형 대국 관계를 만들어가자'면서 대등한 지위를 요구했다.
▲ 필리핀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11월 20일 말라카낭궁에 도착해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대통령과 환영 행사를 마친 뒤 취재진에 손을 흔드는 모습. ⓒAP/뉴시스
◆필리핀·우크라이나, '친중·친러 헤징'의 비극적 결말
이 후보는 또 2017년 저서인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에서 "특히 대륙 세력(중국·러시아)과 해양 세력(미국·일본)이 충돌하는 반도국가의 외교는 국익과 자주성을 높이면서 균형을 중시하는 외교여야 한다"며 "대륙과 해양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도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한쪽의 불리한 요구는 다른 쪽의 힘을 빌려 막고 다른 쪽에게서 필요한 자원은 반대쪽의 힘을 빌려 얻는 외교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미국 외교·안보 정책과의 분리'를 모범 사례로 소개했다.
이 후보의 평가와 달리 필리핀의 헤징 전략은 득보다 실이 훨씬 컸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집권 초인 2016년 10월 중국에 방문해 미국 외교·안보 정책과의 분리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데 이어 미국과의 연합훈련 축소 및 주둔군 협정 재검토 등을 통해 전략적 모호성을 키웠다.
국제기구인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소송에서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지만 중국은 두테르테 임기 내내 분쟁 해역에 군함과 해경선을 지속적으로 보냈고 필리핀 어민들을 계속해서 통제했다. 중국은 약 240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차관 약속도 임기 말까지 대부분 이행하지 않았다.
'안미경중' 논리대로라면 필리핀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해야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작은 국가가 큰 양보를 하면서 얻고자 했던 경제적 이익은 불확실했고 핵심 안보 이익만 침해받았다.
이에 필리핀 국내 여론은 반중으로 기울었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21년 7월 미국과의 '방문군 협정'(VFA) 종료 통보를 번복함으로써 원점으로 회귀했다. 이를 두고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은 필리핀이 미국과 멀어지는 모습을 보이자 더욱 과감히 해양 영유권을 밀어붙였고 미국은 필리핀이 중국에 기울자 지원을 줄이려는 조짐을 보였다면서 필리핀이 처한 안보 환경에서 줄타기는 애초에 지속할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사례도 마찬가지다. 2010~2013년에 집권했던 친(親)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EU와 러시아 사이에서 헤징 외교를 시도했지만 그 결과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2022년 전면 침공이었다.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할 때는 그 파장까지 예견해야 하지만 작은 국가는 그 상황을 통제하기 어렵다. 한국은 이 국가들보다 훨씬 중대한 북핵 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만큼 동맹 약화의 대가는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한미동맹에 균열이 가면 한국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군사적 압박에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는 교훈을 준다.
▲ 2023년 9월 중국이 2년 만에 또 다시 요소수 수출을 통제하면서 '제2의 요소수 대란'이 발생했다. 2023년 9월 17일 오전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게시돼 있는 모습. ⓒ뉴시스
◆기술마저 무기화된 '경제안보' 시대, 안미경중 위험성 증폭
특히 지금은 경제와 안보의 경계가 허물어진 '경제안보 시대'를 맞은 만큼 안미경중은 친중 외교를 합리화하는 레토릭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첨단기술이 군사와 민간 용도를 겸할 수 있게 되면서 전에는 비전략 분야로 간주되던 농업·에너지·통신·인공지능(AI)도 군사 전용 가능성만 있다면 전략물자로 취급되는 추세다.
실제로 '이중용도 품목'은 "민간 또는 군사적 목적이거나 군사적 잠재력 확대, 특히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등에 기여하는 상품·기술·서비스"를 의미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2023년 수출 통제 동향 자료에서 과거에는 무기나 첨단부품 위주였던 전략물자 통제 범위가 이제는 민간 기술 전반으로 확대돼 사실상 모든 것이 무기화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짚었다.
중국 정부는 안보를 명분으로 핵심 물자의 수출을 제약해 왔다. 중국은 국가 안보 수호를 명분으로 2023년 8월부터 반도체 핵심 원료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해외 수출을 제한했으며 2024년 12월에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에 대한 대응 조치로 이들 민간·군수 이중용도 품목의 대미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나아가 중국은 수출통제법을 근거로 중국산 기술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해외 생산품까지 규제하는 등 통제 범위를 역외로 확대하고 있고 수출 대상국의 안보 위협 평가 기준까지 마련해 국가별로 차등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결국 중국과의 어떠한 경제 협력도 중국의 안보 논리에서 자유롭기 어려우므로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안미경중 전략은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재명의 EU식 외교, 韓 현실에선 불가능
현재 경제안보 시대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도 이재명표 실용외교의 또 다른 특징인 기능주의(functionalism)는 한반도에서 실현되기 어렵다. 기능주의는 유럽연합(EU)의 사례처럼 경제·사회·문화·체육 등 비교적 갈등이 적은 비정치적·기술적 분야에서 협력을 시작해 정치·외교·안보와 같은 민감한 영역으로 확산한다는 접근법이다.
그는 '이재명의 굽은 팔'에서 "사드에 어색해진 중국과의 관계는 어떤가"라면서 "EU는 세계대전이라는 살육의 역사를 반성하며 무기 살 돈으로 경제협력체제를 만들었다. 그 중심에 우리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EU 회원국들과 달리 한국과 중국은 근본적으로 이념과 정치 체제가 다르고 안보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하므로 기능주의적 협력의 기본 전제조차 충족하지 못한다.
▲ 이재명 제21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분향하고 있다. ⓒ공동취재
◆간첩법 막는 민주당·말 바꾸는 이재명 … 한미동맹이 중심축?
전문가들은 이 후보와 민주당이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놓되 미중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겠다는 실용외교를 펼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민주당은 중국인들이 관광객과 유학생으로 위장하고 간첩 행위를 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북한)에서 중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확대하자는 간첩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으며 이 후보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말을 쉽게 바꾸는 성향을 보여왔다는 이유에서다.
이 후보는 2021년 12월 3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청년 토크콘서트에서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 하다 힘드실 때 대구 서문시장을 갔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가 나흘 뒤 서울대 강연에서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말을 바꿔 빈축을 샀다.
◆전문가들 "이재명표 실용외교는 자기부정이자 전술"
중국 전문가인 이지용 계명대 교수는 이재명표 실용외교는 선거를 위한 정치공학적 전술에 불과하며 사실상 '자기부정'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통화에서 "2024년 7월에 발표된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에 가장 부정적 시각을 가진 국가 1~2위(대만과 동률)를 차지한다. 한국의 부정적 인식은 전 연령대, 이념 성향을 막론하고 압도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후보가 또 '셰셰'하면 표를 잃을 수 있다"면서도 "진정한 의미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는 이 후보 본인과 민주당의 지지 기반, 나아가 민주당 자체를 부정해야 하므로 실제로 전개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문정 기자 2025-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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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9·19 군사합의 복원하나 … 이완용식 '가짜 평화론' 여전
'이긴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 이완용의 망령
北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 '안보 자살' 부른다
北 오판·주한미군 철수 부추길 위험한 평화협정
北核 위협 외면한 이재명의 '가짜 평화' 고집
北 기만 눈감은 文 9·19 합의 이재명이 계승
종전선언·평화협정 뒤 '경기동부연합' 그림자
▲ 민심을 청취하는 '경청 투어'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일 강원도 양양군 양양시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아무리 비싸고 더러운 평화도 이긴 전쟁보다는 낫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대북관에는 심각한 함정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반도 종전선언을 꾸준히 주장해 온 이 후보는 그간 '친북'(親北)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 조기 대선 국면에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양새다.
대신 이 후보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3600여 차례 위반한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을 카드로 들고나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후보가 제21대 대선에서 승리하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재명표 '더러운 평화론'의 위험성
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후보는 전쟁을 통해 얻는 승리보다 불완전하고 비용이 들더라도 평화 상태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7년 1월 저서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에서 "국방을 강화하는 것도 강력한 억지력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북한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는 게 1차 목적이 아니다. 대북 관계도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023년 7월 '정전 70주년 한반도 평화행동' 간담회에서 "대량 살상 후 승전하는 것이 지는 것보다 낫겠지만 그게 그리 좋은 일인가"라며 "강력한 국방력으로 이길 수 있는 동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평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北 오판 부르는 '이재명식 가짜 부전승'
'이재명표 평화론'은 손자병법의 '부전승'(不戰勝), 즉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최상의 승리라는 철학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격해 봐야 득보다 실이 크다는 인식을 상대에게 심어서 애초에 공격을 단념시키려면 충분한 능력은 물론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억제 의지를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는 이 후보의 발언은 억제력과 협상 지렛대의 상호작용을 간과하고 있고 한국은 억제 의지가 없다며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줌으로써 도발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바로 그러한 사례로 꼽힌다. 한국전쟁 발발 전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이른바 '애치슨라인' 연설에서 미국의 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을 잇는 선으로 설정했다. 이 연설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북한 김일성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미국이 남한을 지켜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인식을 심어 남침을 결행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이완용은 "전쟁보다는 평화가 낫다"고 주장하며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에 주권을 넘겼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완용의 '가짜 평화'·체임벌린의 '양보'가 남긴 교훈
이재명표 평화론은 '더러운 평화'를 택한 국가는 국가의 주권도 국민의 생명도 지키지도 못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외면하고 국민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이완용은 "전쟁보다는 평화가 낫다"고 주장하며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에 주권을 넘겼다.
1938년 당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일 총통의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란트 병합 요구를 수용하며 '평화를 위한 양보'를 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 평화는 히틀러의 오판을 불러와 제2차 세계대전의 길을 열고 말았다. 당시 영국 하원의원이던 윈스턴 처칠은 "양보는 전쟁을 유발했고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치렀다"고 평가했다.
이 후보의 평화론은 그간 북한이 한국의 평화적 제스처를 전략적 공백으로 간주하고 군사적 도발을 지속해 온 사실도 간과하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경고, 2018년부터 2019년의 대화 국면에도 핵전력 강화를 한결같이 추진해 왔다. 북한은 2023년 9월 헌법 개정을 통해 핵무력을 '북한의 존엄과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절대무기'로 규정했고 핵무기 선제 사용 권한을 명문화했다. 최근 북한은 사상 최대 규모인 5000톤급 신형 구축함 '최현함'을 진수하는 장면을 공개했으며 핵추진잠수함(SSN) 개발까지 계획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재명, 종전선언·평화협정 꾸준히 주장
이 후보는 정치 경력 전반에 걸쳐 종전선언이 '비핵화 협상의 입구'라며 평화 협정 체결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 그는 "한반도의 기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2017년 2월 16일), "어떠한 정치적 이유를 들어서라도 종전 선언 자체를 막을 수는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2021년 11월 25일),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의 출구가 아닌 입구"(2021년 11월 26일),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고 평화 체제로 가기 전에 반드시 정전 상태를 종전 상태로 바꿔야 한다"(2021년 12월),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으로 가야 한다"(2021년 12월 10일)고 말했다.
◆北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은 '안보 자살'
그러나 미리 종전을 선언한들 북한의 핵 능력이 그대로이고 군사적 적대 의지가 변하지 않는다면 선(先)평화선언 조치는 동맹 억제력 약화를 초래한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현재 정전협정과 주한미군에 의해 유지돼 온 억제 체제의 정당성이 약화하고 북한은 이를 빌미로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실제로 종전선언 논의가 무르익었던 문재인 정부 말기에 "섣부른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및 연합훈련 축소 압력으로 이어져 동맹 억제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평화협정으로 종이조각상의 평화가 선언되면 오히려 한미 억제 태세가 이완되고 북한의 오판 여지가 커져 안보 공백이 발생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법적으로는 전쟁 상태가 끝나 북한이 도발해도 이전처럼 즉각적 정전협정 위반으로 간주하기 어렵고 다자적 개입 근거도 희박해진다. 북한은 이를 노려 서해상 국지 충돌과 같은 저강도 도발을 일으킨 뒤 우리는 평화협정을 준수하고 있다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한편, 남한으로서는 이미 평화협정을 맺은 마당에 대대적인 군사 대비 태세를 지속하기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이재명표 '한반도 비핵화'의 위험성
또한 이 후보가 사용하는 비핵화 용어가 한미일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사용하는 '북한 비핵화'가 아닌 주한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한반도 비핵화'라는 사실도 우려를 자아낸다.
이에 대해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한반도 비핵화'라고 하면 미군의 핵 탑재 전략자산을 한반도 상시 배치는커녕 전개도 못 하고 한미연합연습도 '전쟁연습'이라며 못 하게 된다. 결국 주한미군도 철수하라는 논리까지 그대로 연결되기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은 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국방부는 2023년 11월 27일 '북한의 9·19 군사합의' 파기 선언 관련 입장문을 통해 북한이 지난 24일부터 일부 군사조치에 대한 복원 조치를 감행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북한군이 GP 내에 무반동총과 고사총 등 중화기를 반입한 모습. ⓒ국방부 제공
◆굴종적 9·19 합의가 신뢰 구축인가
종전선언·평화협정 대신 이 후보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9.19 군사합의 복원, 대북전단 살포와 대북 방송 중단,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과 소통 채널 복원 등을 남북 신뢰 구축 방안으로 제시했다. "지난 정부 동안 9.19 군사합의는 무력화됐고 남북 간 공식 대화는 끊겼으며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이재명표 신뢰 구축 방안은 군사적 긴장 완화, 신뢰 복원, 경제 활성화라는 단선적 인과관계를 전제한다. 그러나 북한이 9·19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수천 차례나 위반한 상황에서 이를 복원하는 것이 신뢰 구축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9·19 군사합의, 北 기만과 文 정부의 합작품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체결된 9·19 군사합의는 지상·해상·공중 모든 공간에서 적대 행위 전면 중지,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화, 감시초소(GP) 시범 철수,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해상 완충구역 설정, 공중 완충구역 설정, 군용기 비행 제한, 군사회담 정례화 등 군사적 신뢰구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은 2018년 남북·미북 대화 국면에서 일시적으로 도발을 줄이는 듯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결렬을 계기로 핵미사일 개발을 노골적으로 가속화했다. 북한은 2023년 11월 9·19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이후 지상시설만 폭파하고 남겨둔 지하시설을 기반으로 3개월 만에 GP를 재가동했다.
북한이 신속히 GP를 재가동할 수 있었던 비결은 GP 상호 검증 당시 북한 당국의 기만과 이를 알면서도 눈감아준 문재인 정부의 합작이었다. 당시 남측 검증단은 북측 GP 중 1곳에서 무장 병력 활동 흔적, 3곳에서 지하시설 연결 의심 공간을 발견했다. 그러나 합동참모본부는 최종 보고서에 '북한 GP 불능화 달성'이라고 수정했는데 불능화의 기준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한국은 완전히 폭파한 GP를 2033년까지 1500억 원을 들여 복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가 2017년 7월에 게시한 게시물.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 SNS 캡처
◆종전선언 추진 가능성 높은 이유는 '경기동부연합'일까
그러나 이 후보의 당선 시 종전선언·평화협정 재추진 가능성은 특히 그를 지지하는 '경기동부연합'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의 송봉선 전 회장의 2024년 언론 기고문에 따르면,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당시 정치권 인맥이 빈약했던 이 후보에게 종북세력인 '경기동부연합'은 든든한 배후 지원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성남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 후보는 김미희 민주노동당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 한나라당 후보를 물리치고 힘겹게 시장에 당선됐다. 이를 계기로 인수위원회에는 김미희, 남편 백승우, 윤원석, 한용진 등 다수 경기동부연합 인사가 영입됐다. 성남시는 2011년 신규 청소용역업체로 2010년 12월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설립한 신생 업체 '나눔환경'을 선정하고 56억 원 규모의 수의계약을 체결해 또 한 번 논란이 됐다.
이 후보는 2010년 성남 공동정부 시절부터 제기된 '종북 논란' 대해 '근거 없는 색깔공세'라고 일축해 왔다. 그러나 이 후보가 정치적으로 부상하면서 경기동부연합 계열 인사들이 2018년 경기도지사 인수위 등 이 후보의 조직이나 최측근으로 합류했으며 민주당 내에서도 이 세력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은 2022년부터 2023년 민주당 인재영입·공천 과정에서 공천을 받았다. 민주당은 2024년 총선에서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이자 경기동부연합 계열인 진보당에 당선권 비례대표 순번을 약속해 논란이 일었다.
또 다른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 후보가 최근 남북 관계나 종전선언 언급을 자제하는 건 선거 전략일 뿐 집권하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조문정 기자 202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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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연간 100조 재정적자에도 '농어촌 기본소득' … 정치는 히틀러, 경제는 차베스인가
李 "지역화폐 대량 발행해 지급하면 농촌인구 늘어나" 주장
매년 100조 안팎 재정적자 속 현금성 공약에 재정악화 우려
농어촌 기본소득 현실화 시 연 발행 규모 최대 5조원대 전망
전문가 "인기영합적 표퓰리즘 … 사회 양극화 심화시킬 것"
▲ 왼쪽부터 아돌프 히틀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독일 연방 문서보관소, 뉴시스, 뉴데일리DB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농어촌 기본소득를 또다시 띄웠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재량권을 늘려 인구소멸 지역 주민에게 지역화폐로 월 15만~20만원씩 지급해 인구 감소를 막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는 이를 통해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나, 사실상 현금성 공약으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 악화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후보는 7일 전북 진안군을 찾아 농어촌 기본소득 도입을 공약했다. 이 후보는 "지역 재량 예산을 늘려 지역화폐를 대규모로 발행하고 농어촌 기본소득도 지급하면 농촌인구가 늘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도와 중앙정부가 조금씩 지원해 1인당 월 15만~2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된다"며 "지자체 자율권이 적어 예산 용도가 제한되는 건 있지만 이제 그걸 정부에서 풀어주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기지사 시절 경기 연천군 청산면에서 추진했던 농촌 기본소득 사업을 언급했다. 그는 "도비 전액으로 1인당 15만원씩 농촌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했더니 동네에 미장원이 새로 생겼다"며 "동네 인구가 계속 줄다가 인구가 늘었고 예산도 약 60원 정도밖에 안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후보가 예시로 든 청산면은 농촌 기본소득 지급에도 지역 소멸 흐름을 멈춰세우지 못했다. 사실상 정책 효과는 기대에 못 미쳤던 셈이다.
경기도는 도내 농촌지역 인구소멸 위기를 차단하기 위해 청산면을 대상으로 농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2022년 3월부터 주민 모두에게 1인당 매달 15만원, 연 18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있다.
정책 목표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기준 청산면 인구는 4037명으로 사업 첫 해인 2022년 12월 4217명보다 오히려 4.2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연천군 전체 인구감소율(2.46%)보다도 높다. 이 후보 주장과는 달리 기본소득이 인구 증가를 견인하기는 커녕 인구 감소 추이가 지속된 셈으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농어촌 기본소득을 두고 퍼주기 지적도 잇따른다. 이를 두고 이 후보는 "이게 왜 퍼주기냐. 모두 국민이 낸 세금"이라며 "자기들이 도둑질하고 훔쳐 먹는 데 쓰면서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은 아까워한다"고 날을 세웠다.
▲ 경기도지사 시절 기본소득 박람회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기도
'현금성 복지'인 농어촌 기본소득은 국가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더욱이 국가재정은 농어촌 기본소득과 같은 퍼주기 포퓰리즘 정책을 감당하기에는 이미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지난해 대규모 세수 펑크 여파로 나라살림 적자 규모가 105조원에 달하는 등 코로나19 이후 매년 100조원 안팎의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농가와 어가의 인구는 각각 200만4000명, 8만4000명으로 이 후보의 농어촌 기본소득이 현실화하면 연간 최대 5조1112억원을 지역화폐로 발행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중 65세 이상 고령층으로 대상을 좁혀도 지급 대상만 116만5000명에 달할 전망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농촌 기본소득의 경우 청산면에 있는 주민 모두에게 줘 가장 기본소득에 가까운 사업이나 재원 문재와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에도 "기본소득은 헬리콥터 위에서 돈을 뿌리는 것보다 나쁘다"고 평가했다.
실제 농어촌 기본소득처럼 정부가 민간에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이전지출의 성장 유발 효과도 크지 않다. 한국은행이 2020년 발표한 '거시계량모형(BOK20) 구축 결과'에 따르면 정부 재정승수는 대부분 1을 밑돌았고 이전지출 재정승수가 0.2로 가장 낮았다.
재정승수는 정부 재정지출이 1단위로 증가할 때 GDP가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전지출 재정승수 0.2라는 것은 정부가 민간에 1조원을 지급해도 GDP는 2000억원 늘어나는데 그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가 투입한 예산만큼도 못 건진다는 의미다.
국민의힘에서도 포퓰리즘 정책을 비롯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대법관수를 30명 늘리는 법안 등을 발의한 민주당의 행보를 두고 거센 비판이 이어진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차베스식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더니 이제는 대법원을 장악하려는 독재적 발상까지 베끼고 있다"며 "국가 정상화가 필요한 시점에 국가 남미화를 획책하는 퇴행적 수구세력"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포퓰리즘 정책을 두고도 권 원내대표는 "정치는 히틀러처럼, 경제는 차베스처럼. 이게 바로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며 "미래 세대를 빚쟁이로 만든다는 심보인데, 자식의 밥그릇을 빼앗아 배 채우는 부모와 무엇이 다르냐. 그야말로 패륜 정치"라는 비판을 내놓은 바 있다.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 정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막대한 보조금을 남발하고 재정을 무상 복지 정책에 쏟아 붓던 이들 국가는 물가와 실업률이 빠르게 치솟으며 재정 위기에 시달리는 파국을 맞았다. 세계적 자원강국이었지만 베네수엘라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로 경제가 파탄 상태에 빠졌고 아르헨티나는 국가 부도만 9번 겪을 정도로 몰락했다. 이는 모두 나랏돈을 펑펑 쓰다 초래한 결과다.
전문가들도 농어촌 기본소득에 대해 형평성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과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를 제기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농어촌 기본소득 필요 재원 확보를 위한 채권 발행과 적자 재정 운영으로 재정건정성이 악화돼 정작 필요한 균형 예산을 집행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중장기적인 관점이나 필요한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 없이 일단 표부터 확보하고 보자는 인기영합적 표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기본소득은 말 그대로 평등의 가치 때문에 자원을 n분의 1로 쪼개는 경우가 많아, 효율적 자원 분배를 저해한다"며 "예산이 집중 투입돼야 할 곳에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져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고 국민적 합의 없이 진행되면 형평성 문제 등 사회적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