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핵'안보"

손충무 언론인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별세

서석천 2015. 8. 18. 20:51

손충무 'US 인사이드월드' 발행인 별세
 
 

 


 
대표적인 재미(在美) 애국우익언론인인 손충무 인사이드월드(http://usinsideworld.com/) 발행인이 미국 동부시간 2010/10/19일 오전 8시쯤 심장마비로 별세했다고 인사이드월드가 공지를 통해 전했다. 남한 좌익세력의 실체와 해악에 대해서 치열하게 폭로하고 투쟁했던 위대한 우익애국전사 손충무 발행인의 명복을 빈다. 미국에 망명 중인 손충무 발행인은 최근 백혈암으로 장기 입원 치료를 받아오는 등 투병해 왔습니다고 한다. 장례식은 22일 美 현지에서 진행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차후 인사이드월드에서 다시 공지할 것이라고 한다. 
 
손충무 발행인은 일생 김대중을 3번 살려주었다는 설도 있다. 첫째,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 때 김대중을 절대 당선 안 되게 비밀지시를 내렸는데 그 자료를 손충무가 김대중에게 제공해서 결국 김대중이 목포에서 당선되게 도왔고, 둘째로 일본 납치사건 때에도 모든 자료를 터트려서 살려줬고, 셋째로 광주사태 연루로 전두환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에 손충무가 카터, 레이건, 전두환과 담판지어 김대중을 미국으로 망명하게 도왔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손충무 발행인은 결국 김대중의 정치적 위선을 비판하며 김대중과 적대적 관계로써 생을 마감했다.
 
손충무 발행인은 김대중에 의해 구속되었다가 2년 감옥살이 후 2000년 6월 30일 석방될 정도로 김대중과 악연을 유지하면서 고난당하기도 했다. 그는 <김일성의 꿈은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이포)>라는 책을 통하여 "한국 신문쟁이 가운데 박지원이 돈 안 먹은 놈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김대중이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달러를 전한 것을 폭로하고, 김대중의 미국 비자금을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좌익세력에 의해 교란당하는 한국정치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다가 이제 서거했다.
 
손충무 발행인의 장례에 관한 연락은 이종일 서울 특파원( 017-405-1417)에게 하면 된다고 인사이드월드 측은 전했다. 가족이라는 네티즌(손*영)의 주장에 의하면, "22일 장례식 이후 미국에서 수순을 밟아 한국에 묻히신다고 하는데, 그 일정이 좀 오래 걸린다. 한국에 들어오실 수 있는 날이 10월 말이나 11월 초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인사이드월드에서 밝힌 한국장례위원회(위원장 이정승 관리이사, 최정국 취재본부장 등 본사직원)는 고 손충무 발행인의 강고한 애국심을 한국에서도 기린다고 한다. 다시 한번 위대한 우익애국언론인이었던 손충무 인사이드월드 발행인의 명복을 빈다. [허우 올인코리아 기자: hursuaby1@hanmail.net]

 


 
김대중 자서전에서도 숨겨진 그 진실과 김대중의 거짓말을 대한민국 국민들과 전 세계인들에게 공개한다! 또한 이 책에는 박정희 군사정권, 제5공화국의 탄생 등 정치실화의 진실이 기록되어 있어 한국 현대정치가 총망라되어 있다.
 
추천의 글
- 김동길, 이주천 박사 / 이 땅에 좌파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제 1 장
김대중은 대한민국의 애국자인가?반역자인가?


김대중, 그는 한 시대의 정치 거목(巨木) 임에는 틀림없다.
호남 사람들과 '김대중 종교' 광신도들, 친북 좌파세력들 사이에는 '호남 벌에서 태어난 영웅', '백제에서 천년 만에 태어난 영웅'이라고 불리며, 또 '군사 독재 정권에 맨몸으로 맞서 싸운 민주주의 투사', '인권 운동가' 이며 '남북 평화의 시대의 문을 연 큰 정치가' 라고도 칭찬한다. 그러나 김대중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 '부정축재 정치인', '배신을 잘하는 인간', '빨갱이'라고 말하는데….

호남벌 영웅? 남한 공산당 두목? / 김일성 ? 20만 달러 김대중에게 보내 /
10월 유신과 10·26 김재규의 총탄 / "한국 신문쟁이 가운데 박지원이 돈 안 먹은 놈 있는가?" / "박지원이 돈 안 먹은 놈 한 놈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 손충무 없는 김대중은 존재할 수 없었다 / 김대중 국장 취소, 현충원 안장 취소 행정소송 제기 / 햇볕정책은 실패 ? 개 값으로 만든 노벨상의 가치 /
김대중 ? 그는 金大中인가? 尹大中인가? 諸葛大中인가? / 염라대왕의 김대중 심판 / 이명박 대통령이 실수한 네 가지

제 2 장
DJ는 무슨 색깔이었나?


“김대중은 색깔이 붉게 물들어 있다.” “김대중은 공산당 당원이었는데 사상적인 전향을 하지 않은 인물이다.”“김대중은 우파(右派)가 아니라 좌익(左翼) 공산당이다.”

한국 민주화의 거목(巨木)? 김일성이 가장 믿는 형제? / 네 번째 넘어야 할 산(山) /
DJ를 위해서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 김대중은 우파(右派)가 아니라 좌익(左翼)

제 3 장
경상도 놈이 하필이면 전라도 놈을 도와줘


박정희 독재 정권의 충견(忠犬) 노릇을 하던 김형욱에게 끌려가 세종호텔 방에서 구둣발로 차이던 일들이 글을 쓰는 순간 영화 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필자에게 물고문, 몽둥이 고문, 잠 안 재우기 등을 자행하던 고문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 새끼… 경상도 놈이 하필이면 왜 전라도 놈을 밀어서 말썽이야… 네놈은 경상도 정권에 붙으면 잘 먹고 잘 살 터인데…,”하면서 구타하고 때로는 회유했다.

백범 김구와 같은 DJ를 원했는데 / 박정희, 김대중, 손충무 운명의 세 사람 /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김대중은 낙선시켜라 / 백범 김구 암살범 김병삼 루머 등장 / 박정희를 분노시킨 언론인의 힘 / 당직 장교도 모르는 비상소집 / 생명을 건 탈출 작전 / 박정희와 KCIA를 놀라게 만든 손충무의 지혜 / 여섯 번이나 체포, 끝까지 손충무 이름 안 불어

제 4 장
김대중은 전향하지 않은 공산주의자


“김대중, 그가 국민 앞에 내세우는 이상은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은 문제가 많았다. 거기다 그는 과거 공산당 활동을 했으며, 6·25 때는 총살자로 분류되어 있었고, 전향하지 않은 공산당으로서 한국 대통령감은 될 수 없다.”

김대중은 전향하지 않은 공산주의자 / 김재규로부터 넘겨받은 박근혜 - 최태민 자료 / 박정희 대통령, 생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 검은 까마귀 다섯 마리가 박정희 얼굴을 / 지미 카터는 박정희를 타도 대상으로 생각 / 3년 전 일을 사과합니다. 아이들이 잘못 판단하여 / 미스터 손, 유고(有故)가 무슨 소리입니까? / 박정희와 박태준 사이의 비밀 장부 / 워싱턴에 빠르게 전달된 박정희의 죽음 / 박정희는 미국이 싫어한 인물 / 군부 강경파들의 불만이 서서히 / 김대중은 한때 공산주의자 / 미국의 김대중 접근에 분노한 전두환 / 12?· 12 정승화 불법체포, 미국 충격

제 5 장
전두환과 김대중의 대결 - 김대중 목숨 전두환 손에


신민당 점령에 실패하고 결별함으로써 독자적 집권의 길을 걷기로 한 김대중은 대통령 집권 욕에 불탄 나머지 객관적인 정세 판단이 환상, 과신, 착각에 의해 완전히 흐려져 자신을초조하게 만들었고, 결국 비극의 광주사태를 불러오게 만든 것이다

12·12 쿠데타와 4인방 / 8군 골프장에서 쫓겨난 전두환 / 10년 만에 만난 김대중 / 위컴 장군, 전두환에게 발목 잡혀 / 그러면 손 동지가 문화공보부를 맡아 주시오 / 허문도에 대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 박정희 스위스에 1억 달러 빼돌려 / 최태민을 처벌해 주세요 - 여성계 호소 / 박근혜, 전두환 방문 - 최태민 석방 /
최태민과 끈질긴 인연 - 세 번째 구속시켜 / 생일 카드 때문에 전두환과 화해한 위컴 / YS에게 밀린 김대중, 비극의 강을 향해 / 김대중이 불러온 5 · 18 광주의 비극 / 김대중과 김영삼의 갈림길 / 한국 정치인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장님들

제 6 장
올림픽 유치하고 남북 정상회담 발표하시오


“나보고 대통령이 되라는 뜻입니까?”“그렇습니다. 장군께서 정권을 잡지 못하시면 결국은 광주사건의 책임자로 처벌 받거나 죽습니다. 죄송합니다. 과격한 표현을 사용해서.”“아닙니다. 나보고 정권을 잡아 대통령이 되라고 했는데…, 손 선생께서 두 번째 건의한 사람입니다.”“다행입니다. 나는 나 혼자 생각인줄 알았는데 먼저 건의한 사람이 있다고 하니…”“개인이 아니고 군부입니다. 나보고 대통령에 나서라는 결의문을 가지고 주영복 국방장관이 대표로 왔었습니다.”

지미 카터 정권은 전두환을 반대했다 / 광주지역 학생들 데모하면서 경찰 무기고 탈취 / 지미 카터 김대중 살리기에 나서다 / 신군부 소장파 장군들 김대중 처형 원해 / 전두환이 보여준 김대중 X - 파일 / 올림픽을 유치한다고 하십시오 /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 하십시오 / 정치인들 중에 깨끗한 사람을 추천해 주시오 /
이기택을 만났다. 그러나 술상을 뒤엎는 바람에 / 박동선이 어떤 인물입니까? /
청와대 집주인은 없다. 가까이 있는 사람 전두환 / 너희들끼리 다 해먹어라 - 이기택 노여움

제 7 장
전두환, 김일성 정상회담 앞두고 올림픽 때문에 깨져


전두환 - 김일성의 만남이 거의 이루여 갈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다. 서울이 88올림픽 개최지가 됨에 따라 김일성이 북한에 올림픽 몇 개 종목을 넘겨 평양에서 개최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만남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평양의 고집 때문에 1년 반 이상 노력한 남북 정상회담 개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장세동이 중앙정보부장으로 발령이 나고….

김대중은 일본의 친북파들을 통해 평양과 연락해 / 박종규 실장과 올림픽 유치운동 /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에게 권총을 들이댄 피스톨 박 / 박종규가 경남대학교를 설립한 꿈은 무엇이었나? / 강변로 정인숙 사건의 진상 / 레이건 당선자 지시, “손충무를 찾아라!” / 전두환과 김일성 만나게 만들자 - 워싱턴 남북 비밀 조직 가동 / 진짜 빨갱이와 가짜 빨갱이 / X-파일 추적 16년의 세월 / 김대중이 정승화 장군 비난 강연

제 8 장
김일성은 김대중을 가장 믿었다


북한 김일성 주석은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남북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미국은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고 김대중 같은 진보적 인물에게 권력을 넘겨주어야 한다”는 점을 미국에서 보내온 특사에게 말했다는 비밀보고서 ‘X -파일’은 1974년 8월 9일과 10일 사이 평양에서 작성된 기록이다.

가깝고도 먼 곳에서 잠자던 X - 파일 / 도쿄와 평양에 보관되어 있던 김대중 X - 파일 / 김일성, 김대중에게 큰 기대 고백 / 김대중은 믿을 수 없는 인물인데

제 9 장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들라고 미국에 요구


한반도를 피바다로 만든 6·25전쟁을 일으킨 원흉 김일성 전 북한 주석, 그는 한국 정치인들 가운데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과 일본 정부 및 주요 정치가들에게 편지와 특사를 보내 “남조선이 진보적인 김대중을 선택하면 스파이도 보내지 않고 침략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대중을 구출해 달라, 김일성의 당부 /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 남북 대화의 경과와 현황/ 남북 합작의 세 가지 제안 / 박정희는 통일할 의지가 없다 / 김대중의 대북정책 김일성 적극지지 / 군비가 북한 경제 압박 / 북은 도발하지 않는다 / 방법이 없는 대미(對美) 교섭 / 포드 대통령, 김일성 특사 만나고 편지 받아 / 긴급히 군축을 / 어쩔 수 없이 된 미국의 디스컬레이션 / 대미(對美) 평화 협정에 대하여 / 이범석(전 외무부 잔관) 가족 북에 있다 / 남북의 교류를

제 10 장
김대중을 미국이나 일본으로 보내 달라 - 김일성의 호소


김일성이 초특급 북한의 국가기밀사항까지 털어놓고 전용 비행기까지 제공해주는 우스노미야 도쿠마 의원의 정체는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진보적인 정치인’, ‘사회주의 국가 전문 정치인’으로, 북한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가 가장 믿는 동지’, ‘북조선의 가장 큰 손님’으로 불리며, 한국에서는 ‘친북한 일본 정치인’, ‘김일성의 앞잡이’, ‘조선침략자 일본군 사령관의 아들’로 불린다. 그러나 재야 김대중 추종 세력들 사이에서는 ‘김대중 씨의 큰 형’, ‘김대중을 살려준 은인’으로 불린다.

김대중이 남조선 대통령이 되면 침략하지 않겠다 / 확대되는 외교관계 / 일본 - 북한 국교 개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 / 김대중을 일본으로 보내면 돕겠다 /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 김일성 부탁받고 김대중 구출에 앞장 /
우스노미야 아버지 조선군 사령관 지내 / 우스노미야 대학 때 좌익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