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와 5'18

'5.18의 실상'을 공론화하여 재조명하자

서석천 2009. 12. 14. 12:49

'5.18의 실상'을 공론화하여 재조명하자
광주사태의 본질을 다시 조사하고 정립하는 운동해야
 
 

아래에 작년 프리존뉴스에 게재되었던 김필재 기자의 '광주사태 북한군 개입' 관련 기사를 다시 게재한다. 북한군이 광주사태에 개입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진위의 논란이 심하다. 하지만, 당시 폭력적 시위대의 조직력, 지향성, 과격성 등을 30여년이 지난 오늘날 살펴보면, 좌익폭도들이 조직적으로 광주사태를 유발시키고 개입하지 않았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지난 15년 동안 민주화세력이 집권을 하면서, 광주사태는 좌파 선동세력의 절대선과 우파 진압세력의 적대악으로 이분법적으로 재단되었다. 지난 15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질서와 결과를 강조한 박정희와 전두환은 악의 상징으로 매도되었고, 자유와 명분을 중시한 김영삼과 김대중은 선의 상징으로 찬양받았다. 그러나 그런 이분법은 이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산업화세력의 공헌이 민주화세력의 공헌에 비해 호평받게 되었다. 해방 후 신생국가들이 전통사회에서 민주사회로 변동되는 과정에서 변혁세력과 보수세력 간에 갈등은 필연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질서 있는 점진적 변화를 주장한 보수세력은 수구적 억압자들로 매도되었고, 사회적 무질서를 감수하고서라도 급격한 변혁을 요구한 변혁세력은 선구자들로 찬양되었다. 선과 악에 대한 이러한 이분법적 판단기준은 변동사회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을 도외시한 좌파세력의 무지와 선동에 의한 부산물이었다. 민주화 투사는 무조건 정의롭고, 이를 탄압한 산업화 전사들은 무조건 불의하다고 선전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이분법적 시각은 착각에 의한 편견에 불과하다.
 
해방 후 변동사회로서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과잉민주주의로 흐를 수 있는 방자한 자기주장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존중되는 성숙된 민주주의로 도약하기 위한 책임적인 자기절제였다. 해방 후 권력을 잡고 부와 지위를 남용한 기득세력의 악덕도 간과할 수 없지만,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 몽상하고 파괴적인 선동을 일삼은 변혁세력의 위선은 더 위험한 사회악이었다. 광주사태는 질서 있는 정치발전을 강조한 군부 현실주의자들과 무책임한 과잉민주주의를 강요한 이상주의자들 간의 충돌일 수도 있다. 민주투사들이 밍주주의의 이상을 선전했다면, 군부세력의 강압적 질서유지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양대 축인 질서(책임)와 자유(권리) 중에 질서와 책임을 무시한 과잉민주주의자들이 민주화의 화신으로 등장하여 거짓예언자처럼 유토피아를 팔아먹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타는 목마름으로 목숨을 바치라고 한 정치적 몽상가들이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에서 득세하면서, 민주화세력의 정치욕으로 얼룩진 광주사태는 절대무오의 정치적 이상으로 선전되었다. 광주5.18묘지가 성역화된다는 것은 정치권력욕을 위해서 정치를 우상화한 김대중 추종세력의 탐욕과 무지를 상징하는 변동사회의 정치적 병리현상이었다. 오늘(3월 8일) 조선일보에서 김지하의 '민주주의를 위해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를 대대적으로 소개했지만, 그것은 시대착오적 편집일 뿐이다.
 
이제 민주화운동의 한계는 민주화세력의 집권으로 충분히 검증되었다. 민주화세력은 군부세력에 비해 조금도 더 우월한 능력과 도덕을 가진 집단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광주사태도 재평가되어야 한다. 군부의 질서유지세력에게는 죄악을 뒤집어씌오고 김대중의 선동세력에겐 영광만 덧씌운 광주사태에 재평가가 필요하다. 변동사회에서 가장 나쁜 정치악은 현존질서만 뒤엎으면 완전한 유토피아가 금방 도래한다고 선동하는 거짓예언자의 위선과 기만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의 선동과 위선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피를 흘리게 한 더 깊은 원인이다. 전두환의 질서유지 노력은 김대중의 질서파괴적 선동에 비해 국익에 엄청나게 유익한 것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변동사회에서 유토피아를 선전하는 거짓예언자로 김대중은 재평가될 것이다.
 
머지 않아 좌파세력의 광기와 무지가 퇴출되는 날, 김대중을 반역자로 규정한 군부세력의 판단이 전두환을 쿠데타로 규정한 좌파세력의 선동을 제압할 날이 올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좌파세력의 무책임한 선동 구호는 모두 몽상하거나 허구적임이 드러났다. 이제 이명박 실용정부가 자리를 잡으면, 지난 15년 동안 좌파이념에 근거해서 왜곡되고 조작되게 평가된 지난 60년의 한국역사는 실리주의의 잣대에 의해서 다시 교정되어 재평가될 것이다. 김대중을 민주화 영웅으로 평가하고 전두환을 살인마로 규정한 좌파세력의 편향적 역사해석은 균형을 잡아 재교정될 것이다. 다음 기사는 탈북자들의 기자회견내용으로, 5.18에 대한 판단에 참조하기 바란다.

 [조영환 편집인] 
 

참고:  5.18의 실상을 공론화하여 재조명합시다 (자유통일 프리존 논객)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 모임인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전 교도지도국 19여단 2대대· 계급 상위)은 2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80년 발생한 5.18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개입의 실상을 낱낱이 공개했다. 아래는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임천용 씨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프리존뉴스 편집자 주>

김일성, 김정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심복들에게 “연방제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남조선 혁명은 폭력적 방법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평화적 방법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남한 내 친북세력들이 미군 기지를 공격하며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집회나 4.19나 광주봉기처럼 민주·평화·자주를 외치는 격렬한 시위가 전국을 뒤 덮을 때 민주·애국투사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무력 개입한다는 전략이다. 역대 남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들에는 빠짐없이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다.

“북한군 특수부대 광주사태 개입 공공연한 비밀”

다른 것은 접어 두고라도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5.18광주민중항쟁의 경우에도 현역 북한군 출신들, 특히 특수부대 출신들은 북한군 정예 특수부대가 투입됐다는 정도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음은 김일성이 76년 8월, 그리고 80년 5월 대남공작원들에게 내린 비밀지령의 전문이다.

[비밀지령1]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 투쟁을 조직 전개해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비밀지령2]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북한군 특수부대 5.18 당시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

김일성의 이 같은 비밀지령과 80년 5월을 전후한 북한군의 움직임 등 제반 상황은 광주사태에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음을 보여준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또 북한군 4군단 70정찰대대 전투원으로 복무했던 이덕선 씨로부터 당시 정찰국 소속 정찰대대원들의 광주 침투 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수부대 1개 대대 해상 통해 남파, 3분의 2가 희생”

이덕선 씨에 따르면 광주봉기 당시 2군단 정찰대대를 모토(motto)로 하고 각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덕선 씨가 알고 있는 광주봉기 침투자는 조장이었던 4군단 70정찰대대 상좌 황종인, 부조장이었던 4군단 33사단 중좌, 조원으로 침투했던 4군단 정찰대대 작전집체조의 홍씨 성을 가진 참모였다고 한다.

통상 북한 당국은 남파돼서 임무를 수행하고 귀대하거나 임무수행 중 사망한 공작원 또는 전투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와 함께 각종 훈장을 수여하는데 그 수는 1년에 불과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도였다.

이덕선 씨에 따르면 80년에 2군단 75정찰대대에서만 41명의 공화국 영웅이 배출됐고 타 부대들에서 21명, 도합 62명의 영웅이 나왔다고 한다. 북한의 경우 평화시기에는 남파간첩이나 전투원이 아니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일이 거의 없음을 감안할 때 한 해 동안에 62명의 전투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은 대남침투관련 거대 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군 광주사태 개입 확신, 진상 반드시 밝혀야”

이외에도 당시에는 국군에 없었던 카빈 소총이나 M1 소총에 맞은 시신이 수십 여구라던가, 봉기자(시민군)들이 정부군의 탱크와 장갑차를 탈취해 진압군을 공격했다든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이 있는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북한에서의 체험과 이상의 근거들만 가지고도 광주민주항쟁에는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다고 확신한다. 대남적화통일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신성한 민주시위를 유혈 폭동으로 몰아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제물로 바쳐졌을지도 모르는 5.18광주 민주화 영령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광주 사태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 김필재 프리존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