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을 만난 김영환이 고백한 운동권 | ||||
|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국제외교안보포럼 강연 | ||||
| "1991년 (북한 공작원이)북한을 방문했으면 해서 강화도 야산의 어느 쌍 묘가 있는 지점에서 밤 12시경 북한 연락책과 접선해 반 잠수복을 입고 강화도 갯벌로 나가 반 잠수정을 타고 북으로 향해 4시간 여만에 해주에 도착했습니다. 2주 동안 북한에 있으면서 묘향산에서 김일성을 만났는데, 첫날은 2시간 면담을 하고 난 뒤 다시 식사하면서 1시간을 만났고, 다음 날 2시간을 또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한국에서 지하당을 하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김일성을 면담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김일성은 항일빨치산활동을 한 사실에 대해 얘기를 해주면서 '이란의 라프산자니 대통령과 만나 이란 혁명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다'며 '그런 것이 남조선 혁명에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 운동권에서 지하활동을 하며 '강철서신'의 저자로도 유명한, 1989년 3월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하고 91년에는 이를 확대해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결성한 소위 사회주의 혁명가이기도 했던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그가 1989년 북한에서 남파된 공작원과 비밀리에 접선, 북한의 반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 해 김일성과 만나 5시간 여에 걸쳐 남한 혁명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사실을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지난 1999년 < 월간조선 > 6월호를 통해 전향하면서 북한을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현재의 시대정신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한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서울대 재학시절 '강철 시리즈'를 집필해 학생운동권에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전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영환 편집위원은 27일 아침 서울 가락동 가락관광호텔에서 열린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전 국회의원) 주최 정례 조찬 강연회에 초청 강사로 나와 '격동의 시대에 대한 체험과 안보의식 ,북한과 한국 좌파 운동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그가 80년대 대학 운동권을 주도하며 학생들을 이념적으로 무장케 한 사실에서 오늘 우리사회 좌파 성향에 이르기까지를 설명해 나갔다. 김 위원은 이 날 강연에서 1980년대 대학 내 운동권과 관련해, 그가 재학하던 서울대 법대의 이념 서클도 겉으로는 공자나 맹자의 사상을 공부하는 철학적 측면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운동권으로 대학 4년 동안 공자나 맹자 사상을 배운 적은 단 한번도 없고 좌파시각에서 쓰여진 '해방전후사 인식' 등을 교재로 학습하며 시위에도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앞장서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오늘의 학교와는 달리 공산주의나 김일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가르쳤지만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활동과 관련한 교육은 없어서 김일성 행적과 그의 빨치산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많은 책들을 섭렵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자신이 운동권으로 활동하게 된 데 대해 "고교시절부터 민주화투쟁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대학에서 다른 서적에 비해 맑스주의가 철학과 역사, 경제학이 유기적이고 정교하게 연결시켜 놓고 있어 매력적으로 다가와 '이런 학문세계가 있었구나' 하면서 심취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맑스-레닌이 직접 쓴 글을 원전(原典)으로 읽으면서도 문체 자체가 직설적이고 냉소적으로 되어 있어 그의 정서와는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도 처음에는 저자가 마르크스인 줄 몰랐다가 러시아 혁명사 등을 배우면서 스스로가 혁명가로 나아가게 되고 여기에 깊숙이 빠지면서 각종 학생활동에 몰입해 공장활동이나 농촌봉사활동 등을 하면서 지도적 위치에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주체사상에 심취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맑스-레닌 사상이나 종속이론 등 여러 가지를 봤지만 정치이론은 없고 산만한 경제학 이론만 있는 데다 이마저 운동권 이론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던 차에 원전으로 된 '주체사상'을 확보해 보게 되었다"며 "지금도 그렇지만 주체사상은 완전한 이론으로 된 것도 아니고 하나의 기초사상"이라고 말하고 "철학적인 면에서는 동양인 정서로 매력적이고 신비롭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었다. 수령으로 과도한 우상화가 있어 심리적 저항감도 있었지만 (당시에는)대략 합리화하면서 넘어갔다"고 말해 그 스스로가 김일성 주체사상에 매몰되어 있었음을 알게 했다. 이어 운동권에 주체사상을 주입하게 된데 대해서는 "그들 세대에서는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데다 그 정서에 어필한 게 주체사상이었다"며 교육 방법은 다른 내용을 얘기하면서 주체사상과 관련한 내용을 서서히 주입하게 했다며, 나중에는 '강철서신' 으로 쓴 글 5편이 이념 서클과 노동권 등 운동권에 70%를 점유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말했다.
[코나스 이현오 기자: holeekva@hanmail.net http://kona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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