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발해

서석천 2008. 9. 21. 20:08

*발해*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의 땅은 평양에 설치된 당나라의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나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였다. 7세기 말에 이르러 당나라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자,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조영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집단은 전쟁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던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 나라를 건국하였다. 건국할 당시 스스로 나라의 이름을 대신국(大辰國), 또는 대진국(大震國)이라 칭하였으나 이후 발해로 바꾸었다. 사료에 따르면 713년 당나라가 대조영을 발해의 국왕에 책봉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에서는 이 책봉 이후로 진국이 이름을 발해로 바꾸었다고 하며, 북조선 학계에서는 진국이 스스로 이름을 발해로 바꾸었는데 당나라가 이를 추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환단고기》에서는 대진국이라고만 기록돼 있고 발해로 국호를 바꾸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에 대해 환단고기를 주해한 임승국(林承國) 교수는 발해라는 이름은 외부에서 부르는 이름이었지, 발해인 스스로가 부른 국호는 대진국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발해는 일본과의 외교 문서에서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자처한 바 있으나 그 밖의 나라들과의 외교 관계에서는 고구려와의 계승 관계를 주장한 일이 없다.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 당나라, 말갈의 문화가 섞인 것이었으며, 당나라와 요나라의 역사서에 발해가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점을 들어 발해가 고급 문화를 향유했음을 시사한다. 발해인이 남긴 역사적 사료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의 사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져 있다. 남아 있는 발해에 대한 기록은 《구당서》와 《신당서》, 일연의 《삼국유사》, 유득공의 《발해고》 정도이다. 그러나 20세기 이후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발해의 건국으로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하는 남북국(南北國)의 형세를 이루게 되었다. 발해는 막강한 군사력과 발전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고구려의 계승을 명분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오늘의 북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에 걸친 옛 고구려의 영토를 대부분 차지하였다.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제  (0) 2008.09.21
신라  (0) 2008.09.21
후삼국시대  (0) 2008.09.21
한국사. 고려  (0) 2008.09.21
무로마치시대  (0) 2008.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