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검찰 정치권 눈치보기

서석천 2009. 5. 22. 14:10

 

 盧武鉉(노무현) 前(전) 대통령 일가와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千信一(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여권 실세까지 연루된 박연차 게이트는 무차별 금품 로비 스타일부터 과거 金泳三(김영삼) 정권 시절 발생한 한보 비리 사건과 닮았다.
 
 당시 검찰은 정권과의 ‘조율’을 거쳐 鄭泰守(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진술한 리스트에서 뺄 것은 빼고, 처리할 순서를 정했다. 검찰은 당시 여당 실세였던 洪仁吉(홍인길) 신한국당 의원과 야당의 2인자였던 權魯甲(권노갑) 국민회의 의원의 수뢰 공개와 소환을 끝으로 수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검찰 내부 관계자의 폭로로 한보 비리 사건의 ‘몸통’을 밝히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검찰은 결국 수사진을 교체해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金賢哲(김현철)씨까지 구속했다.
 
 당시 온갖 外壓(외압)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댄 이가 沈在淪(심재륜·65) 전 부산고검장이다. 그는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역임하며 김현철씨를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해 ‘국민의 중수부장’으로 불렸다.
 
 
 항명 파동으로 면직
 
 그는 金大中(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1월 27일 대전 법조비리사건 때 이종기 변호사로부터 전별금과 향응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표를 강요받자 대검 기자실로 찾아와 ‘국민 앞에 사죄하며’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당시 金泰政(김태정) 검찰총장과 李源性(이원성) 대검차장 등 검찰 수뇌부의 先(선) 퇴진을 요구했다.
 
 그는 성명서에서 “그동안 검찰 총수와 수뇌부들은 권력만을 바라보고 권력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해 왔으며 심지어 권력이 먼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권력의 뜻을 파악해 侍女(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왔다”며 “검찰을 정치권력의 시녀로 만든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恥部(치부)를 숨긴 채 후배 검사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 전 고검장은 검찰 역사상 최초의 ‘抗命(항명) 파동’으로 1999년 2월 免職(면직)됐다가 2년6개월 만인 2001년 8월 검찰 사상 초유의 ‘無補職(무보직) 고검장’으로 검찰에 돌아왔다. 이후 부산고검장으로 근무하다 2002년 1월 퇴임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검찰이 인사 특혜와 권력 공유, 신분 상승을 위해 권력의 주변에 줄을 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권력의 입맛에 맞게 앞장서 충실한 시녀의 역할을 했다”며 “검찰상 회복을 위해서는 검찰의 중립과 독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 전 고검장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600만 달러 이상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대통령으로서도 세 번째고, 아들로서도 세 번째네요. 김현철, 김홍일, 노건호까지. ‘몸통’과 아들 모두 다 비리에 연루됐죠.”
 
 ―林采珍(임채진) 검찰총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에 대한 여론 수렴에 나서면서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임채진 총장이 전직 대통령 때 임명된 총장이라서 담당 검사들의 부담이 큰 것 같은데, 그런 것에 연연한다면 검사가 아니죠. 닉슨을 구속한 특별검사도 닉슨에 의해 임명됐지만 검사 본연의 자세로 닉슨에게 칼을 겨누었고, 결국 닉슨을 낙마시켰어요. 검사는 검사일 뿐 누가 임명했든지 간에 의리를 지킨다든가, 정권의 기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검사가 할 짓이 아니에요. 검찰이 국민의 지지도 받고, 집권층에도 잘보이는 묘수를 찾으려고 절치부심하는데 검사가 왜 그런 고민을 합니까. 고민하려면 사건에 대한 심증은 있는데 물증을 못 찾는 걸 고민해야죠.”
 
 임채진 총장은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말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임 총장이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하면 검찰 내부가 분열되고 큰일이 난다”고 말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불구속 기소는 결과적으로 정치권 등 外風(외풍)에 휩쓸리는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는데요.
 
 “검찰 수뇌부가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 같은데, 폭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서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검찰은 검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 되지 국론 분열이나 국가 위신 추락 등을 고려하면 안돼요. 전직 대통령이 부정이 있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검찰의 수사가 지연되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요.
 
 “지금 수사 진행 상황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600만 달러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당연히 구속이죠. 가중처벌이란 게 뭡니까. 엄중 처벌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집행유예도 안 나오는 범죄 가지고 여론을 물어요.”
 
 
 박연차 게이트에선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심 전 고검장의 비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박연차 게이트 사건이 일어난 건 부산·경남 쪽이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물론 한나라당도 피할 수 없죠. 그 지역 출신은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어요. 검찰도 자유롭지 못해요. 영남지역에 다녀온 검사도 전별금으로 몇천만 원씩 받았다는데 어떻게 자유롭습니까. 이미 검찰 수사가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여권의 목전까지 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야 아무도 검찰 수사를 원치 않는 거예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니까. 노 전 대통령에게 검찰이 초강경 수를 두면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어떤 카드를 제시할지도 모르고. ”
 
 ―임 총장이 노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는 게 현 정권과도 연관돼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게 아니라 수사 진행 행태를 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지금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신병처리 문제 하나 가지고 시간을 끌면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잖아요. 다른 게 더 이상 나오는 걸 원치 않는 거죠. 천신일 회장 수사도 (로비) 관련자 조사보다는 탈세 쪽으로 수사를 하고 있어요. 검찰이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노무현 측 하나, 실세 측 하나 희생양 잡아서 ‘수사했지만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식으로 하려는 거죠. 탈세는 국세청에서도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어요.”
 
 검찰은 지난 5월 6일 서울지방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의 원본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의 ‘특수부’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해 11월 韓相律(한상률·55) 당시 국세청장에게 모두 5개 항목으로 된 세무조사 결과보고서를 제출했으나 검찰에 제출한 것은 이 가운데 3개 항목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사4국은 박 회장이 여권 인사들과 검찰, 국정원, 경찰 등 司正(사정) 기관 관계자들과 두루 접촉했다는 단서를 포착했으며, 그 내용이 정리된 형태로 한 청장에게 보고됐다고 알려졌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지난해 11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5개 항목 전부에 대해 直報(직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회장으로부터 흘러나온 대선자금 관련 내역도 이 보고서에 들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여론조사는 검찰이 항용 쓰는 방법
 
 ―검찰이 천신일 회장을 대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당비 30억원 대납 의혹도 수사한다고 했는데요.
 
 “말은 그렇게 하죠. 그것이 현 정권의 로비 관련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사라면 이해가 되죠. 하지만 그건 잘 나오지 않잖아요.”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인 천 회장은 지난 3월 출국금지됐다. 지난 대선 때 고대 교우회장을 지내고 있던 천 회장은 각종 인맥을 통해 이명박 후보를 지원했고, 이 후보는 고비 때마다 천 회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천 회장은 이명박 정권의 원로급 실세들과 두루 가까운 사이다. 때문에 여권에서는 “천 회장보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은 이 정권에 없다”며 “천 회장이 수사 대상이라면 그 자체로 정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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