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경재

동북공정·사이버 여론전·문화 공작까지

서석천 2025. 7. 3. 04:20

  시진핑 실각해도 '한국 영향력 키우기' 전략 계속될 것

중국 공산당, 개인 아닌 체제로 움직여
中 미소 외교 이면의 함정과 양면성 조심해야
2002년 시작 對韓 영향력 공작 계속될 것
美와 패권 경쟁도 포스트 시진핑 후에도 계속
  •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7일(현지 시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2차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뉴시스
    최근 소셜미디어와 반중 매체를 중심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실각설'이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시진핑 체제가 실제로 무너지더라도 베이징 권력의 핵심, 즉 '중난하이'(中南海)가 있는 한, 중국 공산당의 장기 전략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난하이는 덩샤오핑 사후(1997년)부터 장기간 구축된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 체제를 뜻한다. 이에 따라 미국·중국 간 대립과 중국의 동북아 패권 경쟁도 지금과 같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 등 최고 지도부가 2024년 7월 18일 중국 베이징의 징시호텔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20기 3중전회) 결의안을 거수로 통과시키고 있다. 당시 3중전회에서 발표된 사안들은 현존 정책에 대한 조정에 불과해 경제 살리기 대안이 제시될 것이라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뉴시스
    ◆시진핑 개인과 무관한 집단지도 체제의 지속성
     
    중국 공산당의 권력 구조상, 시진핑이 실각하더라도 중난하이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은 작다. 1997년 덩샤오핑 사망 후 중국 권력 엘리트들은 집단지도 체제를 공고히 하며 내부 안정을 지켜왔다. 마오쩌둥 시대 후 덩샤오핑부터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까지 중국 공산당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중심으로 집단지도 체제를 구축해 왔다.
     
    다시 말해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세대교체를 통해 중국 정치는 공식 기구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로 발전했다. 2000년대 후진타오 주석 집권기에는 상하이방·태자당 등 파벌 간 권력이 적절히 분산돼 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012년 시진핑 주석으로의 교체는 공산당 권력 승계 메커니즘이 제도화한 안정 궤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물론 일각에서는 시진핑 집권 후 '1인 권위 체제 회귀'를 우려하지만, 중국 전문가들은 시진핑의 권력 공고화도 결국 집단 지배의 틀 안에서 이뤄진 변화라고 분석한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19년 저서 '중국의 엘리트 정치'에서 "시진핑의 권력 공고화 과정은 집단 지배의 틀 안에서 분권형에서 집권형으로 바뀌었을 뿐 장쩌민, 후진타오와 다르지 않다"며 "현재의 집권형 집단지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시진핑이 '3연임'을 강행하고 파벌 균형·임기제 등 핵심 규범이 약화하며 권력 집중을 강화한 측면은 있지만, 덩샤오핑이 설계한 집단지도 원칙은 장쩌민·후진타오 시절 그대로 계승돼 파벌 간 견제와 권력 균형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즉, '흔들리는 시진핑'이라는 외부의 기대와 달리, 덩샤오핑 이후 다져진 중국 공산당의 권력 안정성은 시진핑 개인의 부침과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으며 장기 전략 기조도 변함이 없다.
     
    ◆김일성 사망 때와 유사한 착각 … 中 분열 가능성 작아
     
    전문가들은 시진핑의 실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중국 정치 전문가는 통화에서 "일각에서는 시진핑의 실각으로 중국이 몇 개 국가로 분열될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이는 현실과 괴리된 주장이다. 김일성의 사망으로 한반도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가"라며 "이처럼 중국 공산당도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기에 공산당 지도부가 바뀐다고 해도 대외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2023년 시진핑은 '전랑(戰狼) 외교'의 수위를 낮추고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미중 간 사법 공조 채널을 재가동하여 불법 체류자 송환과 펜타닐 단속에 협력하고, 2023년 말 시진핑-바이든 정상회담도 성사시키는 등 전략적 긴장 완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이는 시진핑 정부가 내부 안정을 위해 일시적으로 대외환경을 관리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 ▲ 한중 양국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서해 잠정조치수역에 중국이 2022년 일방적으로 관리시설이라며 설치한 석유 시추설비 형태의 구조물 사진을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24일 공개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中의 단기적 유화 제스처 … 장기적 전략은 불변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유화적 제스처일 뿐, 안보와 첨단기술 자립, 글로벌 영향력 확대라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 노선은 변하지 않았고, 미중 패권 경쟁의 구조적 본질은 큰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비공식적으로 지원하고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서해에서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내부 어려움으로 외교적 어조는 유연해졌어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려는 중국의 장기 전략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진핑 체제의 약화 가능성이 단기적으로 미중 간 긴장 관리 국면을 가져올 수 있으나 중장기 전략 경쟁 구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향후 시진핑 이후 집단지도 체제가 등장하거나 중국 외교 노선에 변화가 생긴다면 미중 경쟁의 속도와 전술에는 일부 조정이 있을 수 있다.
     
    익명의 전문가는 "시 주석이 실각한다고 해도 중국의 외교적 표현이나 태도가 조금 더 부드러워질 뿐 한국을 향한 동북공정 같은 영향력 공작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후진타오 시기에도 한국을 대상으로 한 영향력 공작이 이미 시작됐다. 따라서 시진핑 이후에도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공작이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지금처럼 노골적이고 공격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공산당의 장기 전략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결정에 의해 수립되며, 전략 자체가 아닌 실행의 정도와 강도에만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韓 겨냥한 中의 통일전선 공작, 이미 수십 년째 진행 중
     
    이처럼 중국 공산당은 대내적으로 권력을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공작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특히 한국은 중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여론전과 통일전선 공작을 펼쳐온 주요 표적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한국 사회와 역사 담론에 간섭하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감행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동북공정이다. 2002년 시작된 중국 사회과학원의 동북변강역사연구(일명 동북공정) 프로젝트에서 중국 학자들은 고대 고구려 왕조의 역사를 중국 지방정권사로 편입시키는 역사 공정을 시도했다.
     
    고구려는 '본래 중국 영토 안의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고, 심지어 중국 정부는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고 외교부 웹사이트에서 한국 역사에서 고구려를 삭제하는 등 공세를 폈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대한(對韓) 영향력 공작이 문화·학술 외피를 쓰고 벌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사건이었다.
     
    이후로도 중국은 한국을 상대로 여론 조작과 정보 공작을 시도해 왔다. 2017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시 중국은 노골적인 경제 보복과 함께 국내 여론 분열을 부추기는 프로파간다를 전개했다.
     
    중국 당국은 자국 관광객의 한국 방문을 막고 한류 콘텐츠를 금지하는 한편 '한국이 중국을 자극했다'는 내용을 친중 성향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뜨려 한국 내 반미·반정부 정서를 자극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中의 '가짜 한국 언론' 정보 공작 공식 확인
     
    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2024년 2월 발표한 보고서(South Korea Must Counter Chinese Influence Operations—and the U.S. Should Provide Support)에 따르면, 중국은 해외에서 허위 정보 유포와 갈등 증폭 전략을 활용해 동맹 약화를 꾀해 왔는데 한국도 그 표적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연구기관·학자를 회유해 친중 논리를 펼치게 하고, 방문 비자나 정보 접근 등을 미끼로 학계 로비를 전개한다. 또 친중 성향의 해외 한인 단체나 재중 한국기업 네트워크 등을 통해 한국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시도한 정황도 있다.
     
    2020년에는 서울중앙지검이 중국 측 사이버 여론 조작 의혹을 수사한 바 있는데, 중국 공작원들이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 댓글에 개입해 여론을 왜곡했다는 첩보가 그 계기였다.
     
    이에 더해 2023년 국가정보원은 중국이 국내 정치와 여론 형성에 개입하기 위해 한국 언론을 사칭한 가짜 인터넷 매체 200여 개를 운영하고 있고, 이 매체들이 한국어로 친중 성향의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은밀한 정보전은 그 특성상 표면화되기 어렵지만, 중국이 한국 내부 정치와 대중 정서에 보이지 않는 손을 지속적으로 뻗쳐왔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통일전선 공작은 때로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중국은 해외 반체제 인사 감시·협박을 목적으로 서울에도 비밀 경찰서를 설치했는데, 이는 '동방명주'라는 중식당 형태로 운영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됐다.
     
    중국은 한국의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한국 땅에서 중국인들을 통제하려 한 것으로, 한국의 주권과 법체계를 침해한 전형적인 불법 영향력 행사다. 또 하나 주목할 움직임은 '공자학원'을 통한 문화 침투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공자학원을 유치(2004년)한 나라로, 현재도 여러 대학에 공자학원이 운영 중이다. 표면상 중국어와 문화를 전파하는 기관이지만 사실상 친중 인맥 형성 및 여론 관리 거점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퇴출 움직임이 일어난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실태 조사만 이루어졌을 뿐 퇴출은 없었다.
     
    중국은 동북공정부터 사이버 여론전과 문화 공작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대한국 영향력 행사를 펼쳐왔다. 이는 한국의 여론과 정책을 친중 방향으로 유도해 한미동맹 등 한국의 전략적 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국 사회로서는 이러한 중국발 정보전의 실체를 직시하고, 개방성과 민주성을 지키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 ▲ 지난 2017년 3월30일 중국 지린시 쟝난 롯데마트 앞에서 '롯데 중국은 떠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모습. 당시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관련 보복을 강화하자 중국 내 롯데그룹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한국산 차량이 파손되는 등 폭력 조짐까지 나타났다. ⓒ뉴시스
    ◆친분 강조하던 中 '미소 외교', 사드 사태 때 돌변
     
    중국은 한때 '미소 외교'로 불리는 우호 공세를 펼치며 주변국을 끌어당긴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미소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과의 관계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역사 문제에서 일본을 견제하며 한국에 접근하는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를 펼쳤다. 시 주석은 이례적으로 평양이 아닌 서울을 먼저 방문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귀빈으로 세우는 등 각별히 예우했다.
     
    베이징은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세우고 시안·충칭에 한국 광복군 기념비를 세워주는 등 상징적 선물도 제공했다. 중국은 한국과 '운명공동체'라고 강조하며 경제협력과 '한반도 비핵화' 협력 등 공동 의제를 부각시켰다. 겉보기에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화해 무드이자 한국 입장에서도 중국을 활용해 북핵 문제를 푸는 돌파구가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 달콤한 미소 외교의 허상은 곧 드러났다. 2016~2017년 사드 보복 국면에서 중국은 앞서 쌓은 친분과 정서를 무기 삼아 '한국이 배은망덕하다'는 여론을 조성하고 대규모 경제 제재를 퍼부었다.
     
    돌이켜보면 중국의 호의는 조건부였고, 자국 이익과 충돌할 땐 언제든 함정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 시절 중국에 기울였던 저울추는 결국 한국의 안보 이익을 위협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매력 공세는 가치가 아닌 이해관계에 기반한 것이어서,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역사 문제에서 한국과 공조하자던 제안도 정작 중국 자신이 동북공정으로 한국 역사를 왜곡하는 한계에 부딪혔고, 한중 경제 공동체론도 사드 보복 앞에선 무색해졌다. 결국 중국의 매력 공세는 전략적 목표를 위한 전술에 불과했고, 한국은 값비싼 외교적 학습 비용을 치렀다.
     
    ◆스리랑카·그리스 등 中 '부채 함정' 외교의 현실
     
    중국의 이러한 함정 외교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차관 공세 역시 초기엔 달콤했지만 이후 '부채 함정'으로 목을 죄는 사례가 빈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이다. 중국은 일대일로(BRI) 명목으로 스리랑카에 막대한 차관을 안겨 항만을 건설하게 했으나 정작 경제성이 낮아 부채만 남겼다. 결국 2017년 스리랑카는 빚을 갚지 못해 99년간 항만 운영권을 중국에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고, 이 사건은 중국식 부채 함정 외교의 교과서적 사례가 됐다. 중국이 경제 협력의 미소로 접근해 전략 거점을 얻어낸 전형적인 함정이었다.
     
    그리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 국영기업 COSCO가 재정 위기에 처한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 지분 51%를 인수하자 이후 그리스 정부는 2017년 EU의 중국 인권 탄압 규탄 성명을 전례 없이 거부하며 중국 편에 섰다.
     
    이렇듯 중국의 투자·원조형 미소 외교는 때론 수원국으로 하여금 자신의 입지를 갉아먹는 선택을 하게 만들며 국제 질서에 분열과 균열을 야기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장기 전략, 시진핑 흔들려도 변하지 않는다
     
    결국 중국 공산당의 장기 전략은 주는 척하면서 빼앗는 고전을 답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는 매력과 미소로 상대를 끌어들이지만, 이해가 충돌할 때는 군사 위협과 경제 제재 등으로 돌변하는 양면성을 보인다.
     
    중국의 미소 외교 함정을 피하려면 그 이면의 전략적 계산을 간파할 냉철함과 장기적 국가 이익을 지킬 균형감이 요구된다. 중국의 장기 전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시진핑 개인의 위상 변화가 중국 공산당의 장기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중국 외교 전략의 실질적 변화 여부를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조문정 기자 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