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박영수와 김만배, 대장동 커넥션 시작의 전말

서석천 2023. 7. 15. 06:08

“전관 끝나 고문계약 업체 떨어져 나갈 때 대장동 참여 "

“로펌 드나들던 김만배로부터 월 1500만원 자문료”

  • 설석용 기자.  입력 2023.07.14 12:00
 
대장동 민간 개발사업자들을 돕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지난 6월 2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photo 뉴시스

시행업자들에게 수천억원의 이익을 안겨다준 대장동 프로젝트가 ‘일당’들에 의해 처음 기획된 것은 통상 2013년 12월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때부터 사업 구상을 정교하게 짠 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측과 공모해 거액의 돈을 손에 쥐었다. 

대장동 사건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이재명 시장이 업자들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고, 다른 하나는 거물 법조인들이 대장동 일당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전자에 대한 수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검찰은 대장동 일당과 각종 의혹으로 얽힌 인사 중 한 명인 박영수 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특별검사(특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 전 특검을 비롯해 대장동 의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법조인들이 왜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됐는지를 쫓다 보면 대장동 프로젝트가 기획될 무렵 박 전 특검이 처한 상황에 초점이 모아진다. 박 전 특검은 2010년 검사복을 벗고 직접 ‘산호’라는 이름의 로펌을 개업했는데 당시 산호에서 일했던 K변호사가 박 전 특검의 의뢰인과 했던 통화를 들어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 통화는 대장동 시행사 대표인 김만배가 2021년 11월 구속된 이후 이뤄진 것인데 통화에서 K변호사는 이런 얘기를 한다.

“당시 (박 전 특검이) 300만원에서 500만원씩 (자문료를) 받던 거래처 20군데 있던 게 다 떨어져 나간 상황이었다. ○○(법무법인 산호에서 박영수 비서로 근무한 여직원)도 (그렇게) 얘기했고, 나도 보고 있잖아. 그래서 쉬려고 했던 상황에서 (영수형은) 그걸(대장동 사업) 만들고 있었던 거야. 특검 되기 6개월 전에. 1500이면 엄청 센 거야. (김만배에게) 그걸 받으면서 뭔 짓 했다는 거는 뻔한 거 아니냐. 끈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이 통화 내용에 따르면 2016년 박영수가 특검으로 임명되기 전인 2014~ 2015년은 박 전 특검의 거래처들이 고정 자문료 지불을 중단한 시점이다.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돈이지만 박 전 특검 입장에서는 매월 들어오던 고정 수입이 끊겼기 때문에 새로운 수익 창출이 필요한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박 전 특검은 대장동 프로젝트의 주범인 김만배로부터 월 1500만원에 이르는 자문료를 받기 시작했고, 결국 대장동 프로젝트에 올라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박 전 특검의 경제적 상황을 추정할 수 있는 증언은 김만배의 진술에서도 확인된다. 박 전 특검의 딸은 화천대유에 근무하며 받은 임금 외에 김만배로부터 대여금 명목으로 11억원을 받았고 화천대유에서 분양받은 대장동 아파트로 8억~9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또 퇴직금으로 받기로 한 5억원 등 김만배로부터 약 25억원의 수익을 얻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만배는 검찰 진술에서 박 전 특검의 딸에게 11억원을 빌려준 이유에 대해 “제가 보니 이전에는 박영수에게 보조를 받아 생활을 하여 생활 수준이 꽤 높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박영수가 특검을 맡게 되면서 수입이 많이 줄어들어 더 이상 생활비를 보전해주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힘이 들어 돈을 차용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비단 김씨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박 전 특검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딸을 각별하게 챙겼다고 입을 모은다. 

대장동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영수·김만배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황들은 박 전 특검이 개인 로펌을 차린 시점부터 드러난다.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약 30년 동안 검찰에 몸담았던 박 영수 전 검사장은 개인 로펌을 차린 후 대법관이 된 박상옥 변호사,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낸 이재순 변호사 등을 영입하며 관공서에 버금가는 로펌으로 키웠다. 당시 산호는 서초동에서 가장 잘나가는 로펌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서초역 사거리 인근 빌딩 4층에 위치했던 산호를 제 집 드나들 듯 오갔던 인물 중 하나가 대장동 사건 주범인 ‘머니투데이’ 법조기자 김만배였다. 법조 출입기자들이 서초동 법원, 검찰청,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특정 로펌에 매일같이 얼굴을 비추는 건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친한 법조인들과 어울리는 것도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의 흔한 풍경이지만, 박 전 특검과 김만배의 관계는 유독 주변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박영수 전 특검은 2011년 시선RDI와 두산중공업의 민·형사 소송에서 시선RDI 측 대리인이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시선RDI가 상고한 우선수익자지위 부존재확인 사건에 대해 2014년 12월 11일 기각 판결을 내렸다.
박영수의 로펌 ‘산호’, 김만배 출입처였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부동산 시행업을 하며 박 전 특검과 막역하게 지내던 김대근 ‘시선RDI’ 대표는 지금도 두 사람의 관계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 대표는 주간조선에 “박영수가 김만배에게 법원 가서 누구 만나고 오라고 하거나 서류 심부름 같은 걸 자주 시켰다”면서 “박영수가 (검찰에) 전화하면 김만배가 가서 일을 보고 오곤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박 전 특검과 골프연습장을 자주 다녔는데 어느 날 박 전 특검이 김 대표의 골프채가 좋아 보인다는 말을 건네자 옆에서 그걸 듣고 있던 김만배가 다음 날 김 대표를 찾아와 “그 골프채 영수형 드리자”고 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별 생각 없이 골프채를 김만배에게 줬는데, 골프채에 각인돼 있던 내 이름까지 지워다가 박영수에게 그 골프채를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해당 골프채는 당시 300만원 상당이었다. 김 대표는 또 “박영수가 내 사건 변호인이라 2011년 5월 소송할 때부터 거의 매일 산호에 갔는데 김만배도 매일 왔다”면서 “박영수와 김만배가 비밀 얘기를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내가 소송을 하고 있을 때 판사한테 로비를 해주겠다고 돈을 달라고 해서 (김만배에게) 4000만원을 줬었다”면서 “박영수한테 (김만배에게 돈을) 줘도 되냐고 물어보면 ‘만배가 일 좀 할 거다. 소송 관련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니 도와주라’고 했다”고 말했다.


2010년 7월 7일 서울 서초동 바로세움3차 신축공사 상량식에 참석한 김대근(왼쪽 여섯째) 시선RDI 대표와 박영수(오른쪽 넷째) 전 특검. photo 시선RDI
박영수ㆍ권순일은 원팀이었나

김대근 대표는 그 무렵 자신이 직접 시행하고 100%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강남 바로세움3차(현 에이프로스퀘어) 빌딩의 소유권 분쟁으로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시행사 시선RDI와 시공사(두산중공업), 신탁사(한국자산신탁)가 10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소유권 다툼인데, 2014년 시행사의 패소로 일단락됐다가 재심을 거쳐 재재심까지 진행되고 있는 희대의 부동산 사건이다. 김 대표가 박 전 특검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바로 이 사건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당시 산호를 운영하던 박 전 특검이 “내 이름으로 처음으로 하는 법무법인이라 비용이 많이 필요한데 네가 자문료를 내주면 내가 너의 사업을 돕겠다”고 해 매달 300만원씩 자문료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또 박 전 특검이 즐겨 다니던 강남 술집 술값도 500만~1000만원씩 선불로 달아놓을 만큼 둘의 관계가 밀접했다고 설명했다. 술집 5곳 정도에 1억원 상당의 술값을 대신 지불했다고 한다. 박 전 특검은 2010년 7월 7일에 열린 바로세움3차 빌딩 상량식에 참석해 둘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김 대표는 방송과 유튜브 등에 출연해서도 박영수 스폰서 관련 내용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 전 특검은 바로세움3차 소유권 분쟁 관련 최초심에서 시행사 측 변호인을 맡았다. 김 대표와 막역한 사이였고, 바로세움3차 상량식에 참석할 만큼 이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박 전 특검이 소송을 맡는 조건으로 “딸에게 1층 상가 점포 하나 주라며 수임료 외 부동산을 요구했고, 성공보수로는 50억~100억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특검은 1심 패배 이후 항소도 하지 않고 갑자기 입장을 바꿔 민·형사 소송에서 손을 뗐다. 김 대표는 박 전 특검이 당시 “무시할 수 없는 후배들이 중립에 서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면서 더 이상 소송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고 했다. 김 대표에게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소극적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랬던 박 전 특검이 정작 자신의 로펌 변호사들에게는 ‘김 대표를 도와주지 말라’는 다소 강압적인 주문을 했던 정황도 있다. 산호에서 일했던 K변호사는 김 대표에게 “영수형이 대근이 사건(바로세움3차) 도와주지 말라고 해서 아무도 못 도와줬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 전 특검이 운영하던 산호는 내부 와해로 3년여 만에 폐업했다. 이후 박 전 특검은 2014년 2월부터 법무법인 ‘강남’으로 자리를 옮겨 대표변호사로서 고문 역할을 했다. 박 전 특검이 김대근 대표의 변호인을 사임한 이후 2014년 12월 시행사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는데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권순일 전 대법관이다. 당시 권 전 대법관이 대법원에 올라온 시행사 사건 주심이었다. 권 전 대법관 역시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대장동 시행사 고문을 맡아 매달 1500만원의 보수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 내용을 보면 2014년은 대장동 일당이 대장동 사업을 설계한 시점으로 알려졌는데, 공교롭게도 이해 박영수와 권순일이 이 시행사 사건에 함께 등장한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은 2012년 8월부터 2014년 8월까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재직한 뒤 2014년 9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2012년 12월부터 2년 동안 계류된 사건을 대법관 임명 3개월 만에 주심으로서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관 3개월 만에 특정 사건 주심이 된 것, 그리고 2년 동안 계류된 사건을 3개월 만에 파악해서 판결을 내렸다는 점 등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상고심의 경우 상고 사유가 타당하지 않으면 3개월 안에 심리불속행으로 기각 처리하는 게 통상적이다. 이 사건이 상고심에서 2년 동안 계류됐던 것 자체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한 이유다. 바로세움3차 사건은 시행사가 관련 법안(민사소송법 451조 제1항 제4호)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신청 제청을 한 상태로, 관련 내용은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세움3차 사건은 ‘대장동 축소판’

바로세움3차 사건은 대장동 사건의 축소판이라고도 불린다. 거물급 법조인들이 관련돼 있다는 의미에서다. 바로세움3차 사건은 시공사였던 두산중공업이 1200억원 상당의 시행사(시선RDI) 채무를 대위변제하고 1순위 우선수익자를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결국 주심이었던 권 대법관이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두산중공업의 손을 들어주며 2014년 시행사가 패소했지만, 2019년 재심이 열리기까지 다수의 핵심 증거들이 나왔다. 이후 재심도 기각됐지만 또다시 재재심이 열려 상고심 중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아직도 다투는 쟁점들을 여러 가지다. 상가 오피스 같은 집합건물의 소유권 이전 시 필수 요건인 관할 구청의 검인을 받지 않았고, 소유권 이전 등기가 처리된 시각이 공무원 퇴근 이후인 18시 43분인 점, 관할 구청이 해당 건물과 토지대장에서 원소유주의 이름을 삭제한 것, 건물의 대지권과 소유권이 동시에 처리되지 않아 거래를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등기 상황에서 공매 처분된 점 등이 핵심 쟁점이다.

한편 박 전 특검은 지난 7월 11일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 관련 사건 첫 재판에서 “특검은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청탁금지법 위반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김동현) 심리로 열린 자신의 청탁금지법 위반 재판 첫 공판에서 “특검은 공직자가 아니라 공공 업무를 위탁·위임받은 민간인인 ‘공무수행 사인(私人)’”이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에 대해 1회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 합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처벌하는데, 특검은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박 전 특검은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고급 외제차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박 전 특검은 일단 구속은 면했지만 앞으로 검찰 수사는 대장동 일당을 비롯한 민간업자들과의 ‘약속’에 따른 박 전 특검 딸의 금전적 이득에 집중될 전망이다. 검찰이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에 힘을 싣고 수사력을 쏟고 있는 가운데 박 전 특검 주장대로 사인 신분이 얼마나 인정될지 주목된다.

주간조선은 박 전 특검에게 김만배씨로부터 매월 자문료를 받은 경위와 시행사 대표로부터 술값 등을 받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마감 시간까지 답이 없었다. K변호사한테도 녹취록에 나오는 사실과 관련해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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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후배의 탄식 “박영수형이 너무 많이 해먹었어”

설석용 기자. 입력 2023.08.13. 

 
 
지난 8월 3일 구속된 박영수 전 특별검사. photo 뉴시스

최순실 국정농단을 진두지휘하며 ‘국민 특검’으로 명성을 얻었던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검찰의 재수사 끝에 지난 8월 3일 구속됐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을 구속 나흘 만에 불러 조사하며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에 대한 수사의 고삐를 죄고 있다. 박 전 특검이 받고 있는 주요 혐의는 수천억원이 오가는 민간 부동산 사업의 뒤를 봐주며 수백억원 상당의 대가를 요구하거나 일부 수수했다는 내용이다. 집안 대대로 주요 관직을 겸한 지역 유지 집안에서 태어난 박 전 특검은 유년 시절부터 다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직에서도 유례없는 출셋길을 걸으며 검찰계 맏형으로 통하던 그는 국민 영웅에서 피의자로 전락했다.

2016년 11월, 박 전 특검은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까지 이어지는 국가 비상사태를 초래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총지휘하는 특별검사로 임명되며 국민 영웅으로 등극한다. 박 전 특검의 개인 명예 역시 이때 정점을 찍는다. 국내 톱 대기업들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로 검찰 내외에서 강직한 검사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그가 국가적 사안을 맡아 국보급 검사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다. 당시 사건에 연루됐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기춘 비서실장,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을 구속하며 박 전 특검의 입지는 더 확실해졌다.

그가 특별검사 자리까지 간 경위는 어떻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박 전 특검의 ‘출세 가도’에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이름을 거론한다. 박 전 특검이 2001년 6월 김대중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됐을 때부터 박 전 국정원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 파다했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장을 지낸 박 전 특검의 부친 박창택 판사와 박 전 국정원장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박 전 특검을 잘 안다는 주변인들에 따르면 실제 그는 술자리에서 박 전 국정원장에게 전화가 오면 “예 선생님”이라고 하며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 통화를 하곤 했다고 한다.

한 때 ‘국민 영웅’ 박영수 특검

이어지는 노무현 정부에서 박 전 특검은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대검 중수부장에 올랐고 이후 서울고검장을 지내는 등 검찰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재벌개혁에 앞장서 당시 SK 최태원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삼성 이재용 부회장, 롯데 신동빈 회장 등 재벌 총수들에 대한 구속수사를 벌이며 ‘재계의 저승자사’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수산물 업자로부터 고급 외제차를 무상으로 대여받아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도덕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박 전 특검은 최근 변호사 시절 불법적·비윤리적 행적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며 한순간에 몰락했다.

앞서 주간조선이 보도한 박 전 특검 후배 변호사의 녹취록 내용에 따르면 박 전 특검이 대장동 사건에 개입된 시점은 2015년 즈음으로 보인다. 녹취록에서 K변호사는 박 전 특검이 특검 임명 6개월 전 대장동 프로젝트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내용을 언급한다.(주간조선 2767호 ‘박영수는 왜 대장동을 물었나?’ 참조) 박 전 특검이 ‘20곳의 거래처가 다 떨어지고 끈 떨어졌을 때 (대장동을) 만들고 있었다’는 구체적 정황도 나온다. 변호사가 된 박 전 특검에게 고정 자문료를 내던 업체들이 거래를 중단한 시점으로, 전관예우 기간이 끝난 상태라는 설명이다.

대장동 프로젝트가 설계된 시점인 2014년 정영학 회계사와 우리은행 관계자 등이 박 전 특검이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에서 2~3차례 컨소시엄 구성 관련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바도 있다. 박 전 특검의 딸이 2016년부터 화천대유에서 일하며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대출 11억원, 퇴직금 5억원,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총 25억원 상당의 이익을 얻은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는 박 전 특검이 그전부터 개입돼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014년 우리은행 통합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에 대장동 PF에 참여하겠다는 1500억원의 여신의향서를 요청하는 대가로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200억원 상당의 지분이나 건물을 약속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말 한마디로 수백억원을 손쉽게 챙길 수 있는 거래를 한 것이다.

 
이와 관련 박 전 특검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대장동 관계자들로부터 “양재식 변호사가 박 전 특검과 200억원가량의 지분·건물이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약속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보강수사 과정에서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2015년 3월 20일쯤 박영수가 화천대유에 (투자금 격으로) 계약 체결 보증금(5억원)을 낼 거라는 얘기를 김만배에게서 듣고 하나은행에 전달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도 알려졌다.박 전 특검이 받고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혐의는 ‘금융회사 임직원’일 때 적용되는데, 박 전 특검의 등기상 퇴임일인 2015년 4월 7일보다 앞선 시점에 모사가 이뤄진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의 주요 혐의 중 하나인 남욱 변호사로부터 받은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 자금의 구체적 정황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박 전 특검은 이미 자신이 만든 법무법인 산호의 대표 변호사로서 강남 ‘바로세움3차’ 사건에서 부당한 수익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당시 시행사 시선RDI와 시공사 두산에너빌리티(두산중공업) 간 민·형사 소송에서 박 전 특검은 시행사 측 변호를 맡으며 수임료 외 1층 상가 1호실과 50억원 이상의 성공보수를 요구했다. 김대근 시선RDI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박 전 특검은 김 대표에게 고가의 강남 술집 술값을 선불로 대신 지불하게 해 1억원가량의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도 드러났다.

성공한 검사가 왜 이렇게까지 부정한 돈을 탐했을지 그의 집안을 보면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박 전 특검의 부친은 목포 향판이었고, 조부 박명효씨는 초대 북제주군수와 제주읍장도 역임한 거물급 정치인이다. 광복 직후 제주도 내 우익진영의 대표적 인물로, 당시 도내 가장 영향력 있는 4명의 박씨를 일컫는 사박(4朴)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이 박씨 가문이 살았던 제주도 원도심의 한 초가집은 지금까지도 ‘박 판사네’로 통하며, 현재는 꽤나 유명한 관광 명소로 언급되기도 한다. 박 전 특검은 ‘박 판사네’ 막내아들이다.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도련님’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았고, 검찰 역사에서도 유례없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

“막내아들이라 욕심 많았다”

하지만 그는 끝없는 고공행진 뒤 추락 중이다. 박 전 특검을 잘 아는 주변인들은 “박 전 특검이 막내아들이라 욕심이 많다”고 입을 모으곤 했다. 대장동 사태를 본 박 전 특검의 한 후배 변호사는 “(영수형이) 너무 많이 해먹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줄줄이 수사하며 한때 별명이 ‘재계의 저승사자’였던 그는 검은 뒷돈에 눈이 멀어 결국 나락의 길을 걷게 됐다. 집안 대대로 주요 관직을 지낸 지역 유지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는 박 전 특검의 욕심은 국가적 오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검찰은 박 전 특검의 구속 기간인 오는 8월 22일까지 수사를 마치고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다음 타깃으로 권순일 전 대법관이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 출신 인사가 대거 거론된 ‘50억 클럽’ 수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