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사태’ 김봉현은 왜 갑자기 ‘검찰개혁’을 외쳤나
옵티머스와 이스타항공, 박 모 변호사의 상관관계
잠적한 박 변호사(前 이스타항공 사내이사)는 김재현(前 옵티머스 대표)을 왜 ‘惡意의 취득자’라고 했나?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 박 변호사 측 ‘사실확인서’ ‘주식인도 청구소송’ 판결문, 이혁진 ‘고소장’ 분석
⊙ 김재현, 박 변호사가 담보로 제공한 이스타항공 주식 20만 주의 성격 알고 있었나?
⊙ ‘펀드하자치유문건’에 등장하는 홍모씨, “김재현, 박 변호사에게 총 23억원 대여”
⊙ 이혁진이 김재현 고소한 이유 중 하나는 박 변호사가 경영에 관여하던 업체 ‘코디’ 때문
⊙ 박 변호사, 2001년 ‘아이러브스쿨’ 기업사냥했다는 의심받아
이스타항공 본사.
이스타항공 주식이 김재현(구속)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 대표에게 넘어간 사실이 알려지자, 그 과정에 개입한 김재현 대표의 지인이자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李相稷·전 민주당·현 무소속) 의원의 전주고(高) 동창 박 모 변호사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사재판에서 드러난 사건의 단면
옵티머스와 이스타항공, 그리고 박 변호사가 얽힌 주식 거래는 얼마 전 민사재판을 통해 그 단면이 드러났다.
지난 7월 17일 서울남부지법 민사 11부(이유형 부장판사)는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인 이스타홀딩스가 화장품 용기 제조 및 판매 업체 ‘코디’를 상대로 이스타항공 주식 40만 주를 돌려달라는 취지로 낸 ‘주식인도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敗訴) 판결했다. 박 변호사는 코디사(社)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에 대해 이스타홀딩스 측은 “박 변호사에게 주식을 매각할 권한이 없는 것을 코디가 알면서도 주식을 사들였고 다시 이를 매각한 것은 위법하다. 주식을 처분하고 얻은 약 41억원 중 2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코디가 주식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악의(惡意) 또는 중(重)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이스타홀딩스의 요구를 모두 기각했다. 박 변호사는 이스타항공 사내이사와 코디사의 사내이사·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여기엔 ‘숨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박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던 이스타항공 주식 20만 주를 김재현 전 옵티머스 대표에게 담보로 제공한 뒤, 김재현 대표가 박 변호사에게 15억원을 대여한 사실이다. 즉 박 변호사와 그와 관련 있는 회사가 이스타항공 주식을 담보로 돈을 대여한 것이다.
최근 사모펀드 사기 사건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옵티머스, 전 여당 의원이 실소유주였던 회사가 얽힌 소송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핵심적인 키(key)를 쥐고 있는 박 변호사는 현재 해외 도피 중이다.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가 된 과정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10%)를 담보로 ‘서래1호 조합’에서 80억원을 차용할 때 작성한 ‘금전 소비대차 계약서’. 이스타홀딩스는 이 돈에 20억원을 더 보태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가 됐다. |
기자는 이스타항공(이스타홀딩스)과 박 변호사, 그리고 옵티머스 간 주식 거래를 매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앞서 ‘주식인도 청구소송’ 판결문과 박 변호사 측이 이스타홀딩스에 제출한 ‘사실확인서’, 2017년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가 김재현 대표와 양호 전 나라은행장을 상대로 제출한 고소인 의견서 등을 통해 자세히 살펴봤다.
이 사건은 매우 복잡하다. 이를 최대한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타홀딩스의 설립 배경과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로 올라서는 과정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이스타홀딩스는 2015년 10월 30일 자본금 3000만원으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 이상직 의원의 아들과 딸이 각각 66.7%와 33.3%로, 이 의원 자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였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12월 31일,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의 최대 주주인 새만금관광개발과 아이엠에스씨로부터 522만여 주(지분 68%)를 100억원에 사들여 이스타항공의 최대 주주가 됐다. 참고로 이 시기 아이엠에스씨의 대표이사는 이상직 의원의 형인 이○○씨였다.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가 되는 과정엔 사모펀드 ‘서래1호 조합’의 역할이 있었다. 이스타홀딩스는 그해 11월 10일,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10%)를 담보로 ‘서래1호 조합’에서 80억원을 차용했고, 이 차용금을 담보로 매매예약을 체결했다. 또 이스타홀딩스는 다른 방법으로 20억원을 더 끌어왔다.
이렇게 두 회사(새만금관광개발, 아이엠에스씨)가 보유하고 있는 이스타항공 지분을 인수하기 위한 돈 100억원(80억원+20억원)을 마련했고,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와 별개로 2015년 11월 10일 있었던 이스타홀딩스와 ‘서래1호 조합’과의 거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타홀딩스는 ‘서래1호 조합’으로부터 80억원을 대여하면서 담보로 제공한 주식에 ▲동반매도 청구권(Tag-along) ▲사외이사 선임 청구권 ▲주식매수 청구권(Put-option) 등의 권리를 부여했다.
동시에 이스타홀딩스는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기존의 매매예약 대상 주식이 아닌 추가로 이스타항공의 주식 77만1000주를 ‘서래1호 조합’에 담보로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타홀딩스는 (매매예약 대상 주식이 아닌) 77만1000주에 에스크로(escrow·결제대금예치)를 걸었다.
에스크로란 A와 B의 거래에서 제3자인 C가 등장해 주식과 거래대금을 맡아주고, 거래 조건이 모두 충족된 뒤에야 서로에게 거래대금과 주식을 넘겨주는 걸 말한다.
구매자와 판매자 간 신용관계가 불확실할 때 서로가 직접 거래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제3자가 거래대금과 물건을 맡고 있다가 거래가 제대로 이뤄진 뒤에 구매자에게는 물건을, 판매자에게는 대금을 지급해주는 것이다. 일종의 ‘거래 사고’를 막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그동안 주식시장에서는 에스크로를 담당하는 변호사나 법무법인이 임의로 주식을 처분하는 사고가 종종 있었다. 이 거래에서 박 변호사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 중 일부를 김재현 전 옵티머스 대표에게 대여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박 변호사의 ‘사실확인서’에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수정액이 칠해져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은 ‘…’으로 처리함).
이스타항공 주식 담보로 48억원 빌린 박 변호사
박 변호사 측이 이스타홀딩스에 제출한 ‘사실확인서’. 이 문서엔 박 변호사가 자신이 보관 중이던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를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와 자신이 경영을 맡고 있던 코디사에 담보로 제공한 사실이 적혀 있다. |
〈(77만1000주 중) 200,000주에 대하여는 …자금에 상용하기 위하여(주식처분등기) 김재현에게 위 200,000주를 담보로 제공하고 15억원을 대여받았습니다. 위 김재현은 본인의 친한 후배로, 본인은 김재현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금전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하여(주식처분등기) 이에 김재현이 흔쾌히 응하였고, 위 김재현은 옵티머스 자산운용사의 대표로, 담보제공동의서도 없었기 때문에 200,000주가 위 1.항의 에스크로 주식임을 (정상적인 소유권을 지닌 주식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운뎃줄은 삭제를 위해 박 변호사 측이 그은 것이다. 괄호 안에 적힌 ‘정상적인 소유권을 지닌 주식이 아닌 것을’은 지운 부분(‘위 1.항의 에스크로 주식임을’)을 새롭게 보충한 내용이다.
요약하면, 박 변호사는 77만1000주 중 20만 주를 김재현 대표에게 담보로 제공한 뒤, 김대표는 박 변호사에게 15억원을 대여했고, 김재현 대표는 20만 주가 정상적인 주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김재현과 박 변호사가 비정상적인 주식 거래를 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박 변호사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 중, 40만 주를 담보로 제공해 33억원을 추가로 빌렸다. ‘사실확인서’의 관련 대목이다.
〈본인은 …자금을 대여받기 위하여 위 에스크로 주식 중 400,000주를 …로 명의개서한 다음 본인의 …이 실질적으로 경영하(면서 인장을 들고 보관하)고 있는(사실 관계확인 要) 주식회사 …를 채무자로 내세워 2차에 걸쳐 위 400,000주를 담보로 제공하고 3,300,000,000원을 대여받았습니다.〉
박 변호사가 40만 주를 담보로 제공한 회사는 앞서 언급한 ‘코디’였다. 박 변호사는 코디의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박 변호사가 이스타항공 주식 40만 주를 코디사에 담보로 제공할 때 그는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있었다. 결국 박 변호사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회사(코디)에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이스타항공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셈이다.
박 변호사는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 중 60만 주(20만 주 + 40만 주)를 김재현과 코디사에 담보로 제공해 총 48억원(15억원+33억원)을 챙겼다.
“김재현은 惡意의 취득자”
박 변호사의 ‘사실확인서’에는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박 변호사가 김재현 대표를 ‘악의의 취득자’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김재현(옵티머스)에게서 주식 담보 제공을 대가로 15억원을 받은 박 변호사가 김재현을 왜 ‘악의의 취득자’라고 표현한 걸까.
그 이유는 이스타홀딩스와 코디의 ‘주식인도 청구소송’ 판결문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악의는 우리가 관용적으로 말하는 악의(惡意)가 아닌 법률 용어로 해석해야 하는 ‘악의’다. 재판부는 해당 판결문에서 판례(대법원 2000.9.8 선고 99다58471 판결 등)를 근거로 ‘악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악의’란 교부 계약의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경우, 즉 종전 소지인이 무권리자 또는 무능력자라거나 대리인이 흠결되었다는 등의 사정을 알고 취득한 것을 말하고….〉
이 판결문에 옵티머스 관련 내용은 없지만, 이스타항공 주식 40만 주가 박 변호사에 의해 코디에 담보로 제공된 것처럼, 이스타항공 주식 20만 주 역시 박 변호사에 의해 김재현 대표에게 담보로 제공됐기에 서로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재판부의 이 같은 설명은 ‘박 변호사-김재현(옵티머스)’ 주식 거래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박 변호사가 담보로 제공한 이스타항공 주식 20만 주가 문제 있음을 알고도 (담보로) 제공받았다는 뜻이 된다. 앞서 본 대로 박 변호사 측이 작성한 ‘사실확인서’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박 변호사가 왜 어떤 이유로 김재현 대표를 ‘악의의 취득자’로 표현했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금전 문제로 어떤 갈등이 있지 않았나 추정해볼 뿐이다.
‘김재현, 박 변호사에게 23억원 대여했다’는 진술
김재현 전 대표와 박 변호사 간 거래는 이외에 또 있었다. 이는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등장하는 인물인 홍모씨의 ‘진술서’를 통해 드러났다. 홍씨는 이혁진(해외 도피) 전 옵티머스 대표의 고등학교 후배로, 자본시장에서 무자본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홍씨는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가 해외에서 농업을 하다 국내로 돌아왔을 때, 박 변호사를 김재현 대표에게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최근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무자본으로 인수합병을 하는 과정에서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2018년 9월 19일 김재현 대표가 금전 문제로 피소(被訴)된 어느 민사소송과 관련해 해당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했다.
홍씨 진술서를 보면 김 대표는 박 변호사에게 앞서 언급한 15억원을 포함해 네 차례에 걸쳐 총 23억원 이상 대여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진술서에서 홍씨는 “박 변호사는 2017년 8월 개인 자금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에 자금을 대여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박 변호사에게 김재현 대표를 소개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8월 3일 김재현 대표가 운영하던 옵티머스가 박 변호사에게 15억원을 빌려주면 D사의 공동경영권을 받기로 하는 내용의 공동경영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D사’는 코디를 말한다.
홍씨는 ‘박 변호사가 개인 자금이 부족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코디의 경영 상태가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7년 4월, 이스타항공은 코디에 자사(自社)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고 25억원을 빌렸다. 2015년까지 이스타항공 사내이사였던 박 변호사가 이때는 코디의 사내이사(2016년 11월 취임)로 재직하고 있었다.
박 변호사가 코디에 합류한 이후, 코디는 사업영역 확대라는 명목으로 ‘항공기’ 관련 사업목적이 대거 추가됐다. 자금 거래에 이어 관련 사업 목적의 추가까지 이어진 셈이다. 당시 코디는 이스타항공에 빌려준 25억원을 포함해 총 104억원의 대여금 및 채권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재현, 코디의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2017년 8월 11일, 코디는 ‘감사의견 거절’을 당해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감사의견을 거절한 영앤진회계법인은 코디에 대해 ‘선급금, 대여금 등에 대한 회수 가능성에 대해 충분하고 적합한 검토절차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때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가 경영 상태가 어려워진 코디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는다. 김재현 대표는 코디가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2017년 8월 25일, 자신이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인 ‘이피디벨로프먼트’를 앞세워 코디의 20억원대 유상증자 대상자로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김재현 대표가 이피디벨로프먼트를 통해 코디 경영에 나서려고 한 셈이다. 이보다 앞선 2017년 6월 18일, 김 대표는 이피디벨로프먼트를 통해 코디의 전환사채(CB) 1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같은 해 9월, 박 변호사는 코디 사내이사에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김재현 대표에게 박 변호사를 소개해준 홍모씨는 이피디벨로프먼트의 사내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이피디벨로프먼트의 유상증자는 납입일이 연기(2017년 10월)됐다.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이 25억원을 차입하면서 코디에 담보로 제공했던 이스타항공 발행 주식에 대한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코디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피디벨로프먼트를 통한 김재현 대표의 ‘코디 20억원 유상증자’ 계획은 계속 표류했다.
이혁진이 김재현 고소한 이유 중 하나는 코디社 때문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가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와 양호 옵티머스 사내이사(전 나라은행장)를 상대로 낸 고소장의 일부. 이혁진 측이 김재현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코디社였다. 이혁진 측은 코디에 대해 “경영이 악화되어 사채 원금 회수가 불확실한 부실 가능 채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그 와중에 김재현 대표가 소송에 휘말렸다. 2017년 12월 1일,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김재현 당시 옵티머스 대표와 양호 옵티머스 사내이사(전 나라은행장)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옵티머스 전·현직 대표가 송사(訟事)로 맞붙은 것이다.
이혁진 측이 김재현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코디였다. 이혁진 측은 ‘고소인 의견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고소인 김재현과 양호는 옵티머스자산운용 주식회사(이하 ‘회사’라고 합니다)의 대표이사와 이사로서… 2017. 9. 8. 회사 자금 357,000,000원을 피고소인 김재현이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회사 코디의 무보증 전환사채(이하 이 사건 ‘전환사채’라고 합니다)를 매입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피고소인 김재현이 대표이사이자 실제 사주로서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이피디벨로프먼트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이 사건 전환사채를 회사가 직접 매입하면 문제가 될 것으로 여겨, 회사 직원인 김○○(부장) 명의로 넘긴 뒤, 회사에서 김○○로부터 전환사채를 매입하는 것처럼 가장(假裝)하였으나 실질적으로 김재현이 보유하고 있는 전환사채를 회사가 매입해주고 그 대가를 김재현에게 지급한 것입니다.〉
코디, 담보로 받은 이스타 주식 처분
이혁진 측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김재현 대표는 자신이 실소유주인 ‘이피디벨로프먼트’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코디의 전환사채를 ‘제3자’(옵티머스 직원 김○○)에게 넘겨 옵티머스 자금을 이용해 매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즉 김재현 대표가 전환사채 매입 자금으로 자신이 대표로 있는 옵티머스 자금을 동원하는 건 ‘배임’에 해당한다는 게 이혁진 측 주장이다.
이혁진 측은 또 ‘고소장’에서 “최근 상장 회사 코디는 경영권 변동 및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되는 등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어 사채 원금 회수가 불확실한 부실 가능 채권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이혁진-김재현 간 소송의 또 다른 원인은 경영권 때문이었다. 2017년 6월 금융감독원은 옵티머스에 대한 검사에 돌입했다. 옵티머스는 적정 자본금 미달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금감원은 2017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옵티머스를 현장 실사(實査)했고, 그해 12월 20일 적기시정조치 유예 결정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 김재현 대표는 다른 사건으로 구속돼 있던 이혁진 전 대표와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이혁진 전 대표 측 주장에 따르면, “김재현 대표는 금감원 검사의 원만한 해결을 이유로 대표이사 사임 등을 요구하며, 이 전 대표를 과거 ‘가(假)지급금 과다’ 등을 이유로 고소하겠다며 압박했다”고 한다.
실제로 금감원은 검사에서 이혁진 전 대표의 ‘횡령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통보했다. 지난 7월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검사는 이혁진 대표 시절 자기자본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검사를 진행한 것”이라며 “이혁진의 횡령과 다른 제반 불법 사안에 대한 검사가 있었고, 검사 결과 횡령 위반으로 검찰에 통보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혁진 전 대표가 고소한 지 약 2개월 후인 2018년 2월 12일, 김재현 대표의 이피디벨로프먼트는 결국 코디의 유상증자에서 발을 빼 코디 인수는 무산됐다. 코디는 박 변호사가 코디의 대표이사를 사임한 2017년 12월 6일을 전후로 이스타항공으로부터 담보로 제공받은 주식을 처분했다. 코디가 처분한 주식의 행방은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분쟁 있었던 ‘아이러브스쿨’과 박 변호사
이쯤 되면 옵티머스와 이스타항공을 오가며 등장하는 박 모 변호사의 실체가 궁금해진다. 박 변호사는 전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이후 여러 법무법인에서 일했다.
박 변호사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건 2001년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벤처 회사와 관련해서다. 아이러브스쿨은 온라인상에서 초·중·고 동창생을 찾아주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가입자가 한때 300만명을 넘을 정도였다.
박 변호사가 아이러브스쿨과 얽힌 배경 역시 다소 복잡하므로, 간단히 요약하고자 한다.
벤처 사업가 김영삼씨 등 4명이 공동 설립한 아이러브스쿨은 2000년 8월, ‘야후(Yahoo)’로부터 500억원 인수 제의를 받았다. 이때 김영삼씨는 아이러브스쿨의 미래 가치와 경영권에 대한 미련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아이러브스쿨에 10억원을 투자했던 E사의 정 모 사장이 김영삼씨에게 ‘야후와 비슷한 (인수) 가격으로 경영권까지 보장해준다’는 약속을 했다. 그 말을 들은 김영삼씨는 정 사장에게 주식을 판매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E사는 김영삼씨 등 창업자 4명의 주식 16%를 81억원에 산 것으로만 보도됐다. ‘야후와 비슷한 수준으로 해준다’는 조건 치고는 가격이 너무 낮았다.
알고 보니 창업자들과 정 사장 사이에 ‘이면계약’이 있었다. 정 사장이 창업자들의 주식 32%를 개인 명의로 160억원에 사기로 따로 약속한 것이었다. 이때 정 사장은 매각 대금을 2001년 1월과 3월에 나눠 주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정 사장은 지급기일이 되자 시장 상황이 어렵다며 재계약을 요구했다. 또 다른 창업자 임모씨 등에게는 2001년 6월 말에, 김영삼씨에게는 2002년 6월 말에 대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또다시 만기일이 되자 정 사장은 1차 계약 만기대금 100억원 가운데 20억원만을 제시하면서 80억원을 2001년 10월 말로 지급일을 연기했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들은 E사의 50억원짜리 약속어음과 아이러브스쿨 지분을 질권(質權)으로 제공할 것을 제안했고, 정 사장 역시 그 제안을 수락했다.
2001년 11월 1일 정 사장이 또 돈을 갚지 않자 창업주들은 E사의 약속어음을 은행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인감 상이(相異)’라는 이유로 이들에게 지급을 거절했다. E사의 법인 인감이 아니라 정 사장의 사용(私用) 인감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미 정 사장은 아이러브스쿨 주식을 F사 등에 모두 매각한 뒤 홍콩으로 잠적한 상태였다. 아이러브스쿨의 경영권은 E사를 통해 F사로 넘어가버렸다.
‘아이러브스쿨’ 주식 사들인 F사의 대표이사는 박 변호사
김영삼(사진)씨를 비롯한 아이러브스쿨 공동 창업자들은 아이러브스쿨을 인수한 박 변호사 역시 E사의 정 모 사장과 공범(共犯)이란 취지의 주장을 했다. |
아이러브스쿨 주식을 사들인 F사의 대표이사가 바로 박 변호사였다. 아이러브스쿨 창업자들은 정 사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형사 고발하는 한편, 아이러브스쿨을 인수한 박 변호사 역시 정 사장과 공범(共犯)이란 취지의 주장을 했다.
김영삼씨는 그 근거로 F사가 인수한 아이러브스쿨 주식 가격을 예로 들었다. 박 변호사 아내가 대표로 있는 회사의 아이러브스쿨 주식을 다른 주식보다 3~4배 높은 주당 12만원에 인수했다는 것이다. 정 사장과 박 변호사의 공모(共謀) 없이는 불가능한 인수 가격이었다는 게 당시 김영삼씨의 주장이었다.
당시 증권 시장에서는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벤처 기업을 상대로 정 모 사장과 박 변호사가 기업사냥에 나섰다”는 의혹이 뒤따랐다. 박 변호사는 뚜렷한 범죄 혐의가 없어 별다른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았다. 참고로 박 변호사와 정 사장 역시 전주고 동창이다. 박 변호사는 2001년 6월까지 E사에서 정 사장과 공동 대표이사를 지냈다.
박 변호사는 앞서 ‘사실확인서’에서 확인한 대로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를 ‘친한 후배’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이상직 의원과는 고교 동창이다. 김재현 대표와 이상직 의원의 관계에 대해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이 의원은 김 대표라는 사람과 일면식도 없다. 이 사안은 박 변호사가 주식을 무단으로 팔아넘긴 횡령·사기 사건이며 이스타항공과 이스타홀딩스는 피해자일 뿐”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박 변호사는 해외로 도피해 ‘기소 중지’된 상태다. 48억원을 챙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는 옵티머스뿐 아니라 파산 직전에 몰린 이스타항공의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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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에게 ‘전자 保釋’ 약속한 세력 있을 것”(전관변호사 A씨)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 경찰 얼굴에 침 뱉던 건달(김봉현) 말에 ‘수사지휘권’ 발동한 추미애 장관
⊙ ‘민변’ 출신 새 변호인단 등에 업고 ‘총구’ 바꿔 겨눈 김봉현
⊙ 이수정 교수, “未決囚의 편지, 분석 필요도 없어… 의도 뻔해”
⊙ 김봉현은 雜犯… 政爭 치열해질수록 뒤에서 웃는 ‘베일의 主犯들’
지난 4월 검거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수원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조선DB
전세(戰勢)가 역전됐다. 지난 10월 16일 공개된 한 편지를 기해서다. 발신자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라임 돈’을 횡령한 혐의로 도주 끝에 지난 4월 구속된 인물이다.
그는 지난 6개월간 ‘여권 로비’가 있었음을 증언해왔다. 이와 관련 이상호 전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이 8000만원을,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가의 양복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라임이 ‘권력형 비리’로 비화된 배경이다.
김봉현은 10월 초까지만 해도 법정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돌연 태세를 바꿨다. 구치소에서 쓴 ‘폭로성 입장문’을 통해서다. 요약하면 이렇다.
“허위 증언이었다. 라임 사건에 여권 정치인은 1명도 연루되지 않았다. 검사가 회유한 것이다. 현직 검사 3명에 대한 접대도 있었다. 검사장 출신의 ‘야당’ 유력 정치인에게 수억원을 주면서 라임 사태 무마를 청탁한 적도 있다. 그런데 검찰에서는 비위 검사, 야당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은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찰개혁’도 언급한다. “검찰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마치 기다린 듯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0월 19일 “중앙·남부지검은 윤석열 총장 지휘를 받지 말고 결과만 보고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라임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또한 “라임 사건에서 술 접대 의혹이 불거진 검사와 수사관을 수사와 공판팀에서 배제하라”고도 했다. ‘권력형 비리’는 어느새 ‘검찰 게이트’로 탈바꿈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모양새다. 여당은 이참에 공수처 설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라임 사태 핵심인물이 옥중 서신을 통해 검찰이 검사 비위와 야당 정치인 로비 의혹을 알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며 “이제라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며 공수처 설치와 가동을 촉구했다.
며칠 뒤, 추 장관은 ‘굳히기 한 판’에 들어갔다. 10월 26일 국정감사에서 김봉현의 폭로를 ‘검사, 수사관들의 뇌물 게이트’라고 규정하고 “김봉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공익제보자로 추켜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범죄자는 말 한마디로 의인(義人)이 됐고, 검찰은 죄인이 됐다.
어딘가 절묘한 타이밍. 일각에서는 견강부회(牽强附會), 혹은 공작(工作)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검장 출신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입장문을 쓴 김봉현이 한 달도 안 돼 법정에 두 번 출석해 내용과 정반대되는 증언을 두 차례나 했다”면서 “이는 입장문을 누군가 대신 작성했거나, 혹은 입장문대로 진술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未決囚의 말, 분석할 필요도 없어
‘폭로문’의 신빙성이 검증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허점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의 말이다.
“재판에 목숨이 달려 있는 이의 이야기를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영화 〈암수살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우리가 미결수(未決囚) 연구를 안 하는 이유다. 미결 때 거짓말을 했던 사람들이 형이 확정되면 그때부터 진실을 얘기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춘재처럼 더 이상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자의 자백은 한번 들어볼 만하다. 라임 사태와 김봉현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원론적으로 그의 편지는 구절구절 분석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이의 주장만 가지고, 증거도 없이 어떻게 수사지휘권을 발휘할 수 있겠나.”
법조계에서 또한 김봉현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속셈이 보인다’며 관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년 경력의 검사 출신 변호사 C씨는 “대형 금융 사건의 경우, 궁지에 몰린 피의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로비 사건을 부각시키는 것”이라면서 “김봉현의 경우 또한 전세 역전을 위해 이 방법, 저 방법 써보며 방향을 트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잡범’ 수준의 김봉현
여기서 김봉현이라는 인물을 잠깐 짚어본다. 세간에 ‘라임 살릴 회장님’ 혹은 ‘라임의 전주(錢主)’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게 그런 별칭은 버거울 수도 있다. 범죄 행각을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횡령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로 남의 돈을 자기 기업으로 끌어와 횡령하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한 뒤 돈을 빼돌리는 식이다.
현재 구치소에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수원여객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린 혐의, 자신이 실소유한 상장사 스타모빌리티의 회사 자금 517억원을 횡령한 혐의, 재향군인회상조회를 인수했다가 300억원가량의 고객 예탁금을 빼돌린 혐의 등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편지에 언급한 ‘나는 곁가지’라는 말만큼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라임 사태와 관계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김봉현은 필드에서 뛰어준 선수일 뿐이다.”
김봉현의 과거 범죄 이력은 더욱 ‘잡범’ 수준이다. 경기 남부지방경찰청 관계자의 말이다.
“10여 년 전, (김봉현이) 만취 상태로 식당 종업원을 폭행한 일이 있다. 그때 출동한 경찰관에게 피우고 있던 담배를 던지고 얼굴에 침을 뱉어 공무집행방해죄로 끌려갔다. 그 밖에 투자 의사를 철회한 투자자를 폭행 및 감금한 전력도 있다. 공무집행방해, 상해, 감금, 공갈 등으로 몇 차례 기소됐었다.”
경찰 얼굴에 침을 뱉던 ‘건달’의 말에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휘한 셈이다.
알다시피 김봉현은 ‘도주 전력’도 있다. 2019년 12월 수원여객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직후 도망쳐 5개월간 도주 생활을 했다. 그때 김봉현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던 이가 바로 서신에서 언급된 ‘전관변호사 A’다. 김봉현은 A씨에 대해 이렇게 썼다.
“과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전관 출신 A 변호사를 통해 현직 검사 3명을 상대로 접대를 제공했다. (A 변호사는) ‘내가 전직 대통령도 뛰어내리게 했다’는 얘기도 했다. A 변호사가 ‘여당 정치인과 강 전 수석을 잡아 오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보고 후, 보석으로 재판받게 해주겠다’고 해서 거짓 증언을 했다.”
사실일까. A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 차분히 기다려보자”면서도 몇 가지 질문에 짤막하게 답했다.
― 김봉현을 언제 처음 알게 됐나.
“2007년도, 내가 중앙형사 1부에 있을 때다. 김봉현은 경찰에서 공갈 혐의로 구속돼 우리 방에 송치된 피의자였다. 당시 (김씨는) 어렸고, 변호인도 없는 상태였다. 죄는 있지만, 조금 억울한 측면도 있어 보였다. 검사 입장임에도 사건 정리를 해줬다. 이후 구속기소가 됐는데, 집행유예가 떨어졌다.”
A씨와 김봉현은 처음 ‘검사-피의자’ 사이로 만나, 몇 년 후 ‘변호인-의뢰인’ 사이가 됐다.
― 이후 김봉현의 변호를 맡게 된 배경은.
“검사를 그만두고 2018년도에 변호사사무실을 개업했는데, 2019년 2월에 느닷없이 김씨가 찾아왔다. 수년 만이었다. (예전에 집행유예가 떨어졌으니 고마워서) 나를 잊지 못했다고, 내 인사(人事)를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어떻게 부장님같이 훌륭한 분을 노무현 수사했다는 이유에서 사표를 쓰게 만드느냐’고 했다. 그러더니 본인은 상장사(스타모빌리티)를 하나 인수했고, 종교에 귀의해 교회도 열심히 다닌다며 근황을 얘기했다. 이후 수원여객 (횡령) 사건이 터졌고 ‘주범은 외국으로 도망갔고 나는 주범이 아니다. 억울하다’면서 변론을 부탁해왔다.”
― 그런데 어떤 계기로 사임하게 됐나.
“나는 계속 (횡령금을) 변제하라고 설득했는데, 끝까지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도망까지 가버렸지 않았나. 그래도 얼굴은 보고 사임해야겠다 싶어서 잡히자마자 지난 4월 찾아갔다. 그리고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상황에 놓인 김봉현. 그는 이때 “사임계를 내더라도 라임 수사팀에 누가 와 있는지만 알려달라”고 했고 A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이를 대략적으로 설명해주고 나왔다고 한다.
새로 꾸린 친여 성향 변호인단
현재 김봉현의 사건을 맡고 있는 로펌은 엘케이비앤파트너스(LKB)와 사람법률사무소 등이다. LKB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친문(親文) 핵심 인사를 변호하고 있는 로펌으로, ‘여권 구세주’로도 불리는 곳이다.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인 이광범 변호사가 2012년 설립했다. 이 변호사는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자주 거론되기도 한 인물이다.
한편 사람법률사무소는 규모가 아주 작은 곳이다. 한 부부 변호사가 개업한 곳인데, 둘 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다. 이 중 남편인 L 변호사가 김봉현의 이른바, ‘집사 변호사’ 역할을 하고 있다.
L 변호사와 동문인 K 변호사는 “L 변호사 부부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부부 모두 민변 출신으로 서로 잘 아는 사이”라면서 “L 변호사가 지난 2014년 민변에서 세월호 관련 변호 활동을 하면서 박주민 의원과 연이 닿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박주민 의원은 김봉현의 서신이 공개된 직후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봉현 전 회장은 추가 수사,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까지 각오하며 입장문을 냈다”면서 “김봉현의 자필 입장문만 가지고 (추 장관이) 수사지휘를 한 것 같지는 않고, 감찰 과정에서 뭐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입장문의 정치적 의도?
민변 출신 L 변호사는 1974년생으로 김봉현과 동갑이다. 옥중 입장문을 전달한 것도 그다. L 변호사는 로스쿨 1기 졸업생이다. 김봉현의 두 번째 서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검사들이 전관변호사들은 잘 챙기지만 로스쿨 출신은 아는 체도 안 한다.’
K 변호사는 “아무리 검사와 전관의 유착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이라지만, 이는 사족이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디테일하다”고 봤다. 입장문에 변호사 입김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다. 그는 이어 “김봉현이 자신의 호소문이라면서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윤 총장 일화를 쓴 것 또한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라임 사태의 또 다른 피의자에게 억대 사기를 당한 S씨는 과거 김봉현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옥중 서신을 모두 읽어봤다는 그는 “김봉현은 그런 (복잡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입장문이 공개된 시기도 묘하다. 1차 입장문이 작성된 건 9월 21일인데 언론을 통해 공개된 건 한 달 가까이 지난 10월 16일 금요일이다. 그 다음 주 월요일에는 라임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었다. 2차 입장문은 외부에 곧바로 공개됐다. 2차 입장문이 서울남부구치소 밖을 나간 시점은 10월 21일 낮 12시인데, 당일 바로 L 변호사를 통해 언론에 전달됐다. 이날은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편지에 찍힌 구치소 도장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보통 재소자가 외부로 바로 편지를 보낼 경우 도장이 찍히지 않는다. 도장이 찍혔다는 것은, 변호인 등 인편을 통해 ‘반출’됐다는 의미다.
‘전관변호사’ A씨는 “윤석열 총장과 (내가) 사이도 좋지 않은데, (입장문을 통해) 나를 윤 총장 라인, 나아가 한동훈 라인으로까지 만들었다면 뭔가 프레임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면서 “소설을 너무 많이 써놨다”고 말했다.
“김봉현에게 전자 보석 약속한 세력 있을 것”
특정 집단의 ‘입맛’에 맞게 입장문이 활용되는 가운데, 김봉현 또한 이를 통해 원하는 바를 확실히 했다. 그의 속내는 분명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전자 보석을 받으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봉현은 1차 옥중 편지에서 “전자 보석을 (재판부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2차 편지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해 “만들어놓고 활용도 못 할 거면 뭐 하려고 만들었냐”라고 했다. 지난 10월 남부지검 출정 조사에서도 “전자 보석으로 나가게 해주면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횡령액 피해 복구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수정 교수는 “이런 (재소자 등의) 편지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편지의 본질이 ‘본인에게 유리한 처분을 받기 위한 의도’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현을 오래 지켜본 ‘전관변호사’ A씨의 말이다.
“전자 보석. 딱 그 이유밖에 없다. 일반 보석은 도주 전력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 아마 김봉현에게 전자 보석을 약속해준 세력이 있을 거다. (검찰 수사를) 기다려보라. 법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전자 보석 결정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김봉현 성향에 만일 전자 보석이 거부되면 그걸 담보해준 세력이 누군지 또 폭로할 거다.”
政爭 치열해질수록 웃는 主犯
전자 보석은 피고인 도주 방지를 위해 전자 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하는 제도다. 추미애 장관이 지난 8월 도입했다. 법조계 한 소식통은 “김봉현은 A 변호사가 사임한 후 보석을 해주겠다는 변호사를 찾아 다녔고, 이를 위해 수억원의 수임료를 낼 의사를 비쳤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1월 6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전자 보석을 신청한 상태다. 심문 기일은 11월 27일이다.
라임은 1조6000억원대 규모의 사기사건이다. 등장인물도 많다. 큰 그림을 그리고 돈의 흐름을 좇다 보면 첫 도미노 조각이 어디서 어떻게 쓰러졌는지 알 수 있다. 그때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봤는지도 보인다. 이에 따르면 김봉현은 그의 말대로 ‘곁가지’가 맞다. 그런 그를 이용하는 자, 그리고 그 말에 들썩이는 동안 ‘주범’들은 점점 베일에 가려지고 있다.⊙
- 조선뉴스프레스 -
옵티머스 투자사기 변곡점마다 여권 인사 등장하는 까닭
“정관계 인맥 동원 흔적… 경영권 분쟁으로 자살골”
- 전혁수 뉴스플로우 기자 wjsgurtn@naver.com
입력2020-12-24 10:07:30
2020년 12월 3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부실장 이모 씨가 옵티머스자산운용(이하 옵티머스)으로부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종로 지역사무실 가구와 복합기, 보증금 등을 지원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옵티머스 사건 관련 여권 인사 중 첫 사망자가 나오자 민주당 의원들은 “별건수사·표적수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김종민 의원),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는 표적수사”(신동근 의원), “검찰이 하는 행태는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이낙연 대표의 부실장까지 똑같은 행태”(설훈 의원)라며 검찰을 비판하고 있다.
10월 26일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 출입구가 닫혀 있다. [뉴시스]
윤석열 검찰총장은 12월 4일 서울중앙지검에 이씨 수사 과정에서 인권보호수사규칙 위반 등 인권침해 여부를 철저히 진상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7일에는 전국 검찰청에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취지의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씨는 옵티머스 관련 여권 관계자 중 최근 조사가 시작된 인사다. 수사를 시작한 지 6개월 남짓 지났으나 아직도 옵티머스 사건 관련 여권 인물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옵티머스는 어쩌다 정치권 폭풍의 눈이 된 것일까.
옵티머스 펀드 사건은 안정적인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면서 1조5745억 원가량의 투자금을 끌어모았다가 5100억 원대의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사모펀드 사기 사건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옵티머스는 46개 펀드를 통해 5146억 원을 설정했고, 최종 투자처는 63개 3515억 원으로 파악됐다. 금감원은 이 가운데 401억~783억 원(7.8~16.7%)만 회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액 5100억 원 중 회수 가능성 10% 남짓”
전남 나주시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사옥. 전파진흥원은 2017년 6월 5일부터 2018년 3월 22일까지 1060억 원가량을 옵티머스에 투자했다. [뉴스1]
옵티머스가 실제 투자한 3515억 원은 ‘아트리파라다이스’ ‘대부디케이에이엠씨’ ‘씨피엔에스’ 등 옵티머스 경영진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회사에 1차 송금된 후 ‘비자금 저수지’로 의심받는 ‘트러스트올’ 등 2차 경유지로 이동했다. 2차 경유지를 거친 자금은 다시 비상장주식, 부동산개발업체 등으로 이동하거나 대여 형태로 빠져나갔다. 옵티머스가 투자한 돈은 부동산PF에 1277억 원, 주식에 1370억 원, 채권에 724억 원, 기타 자산에 145억 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옵티머스 사기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주민철)를 중심으로 ‘옵티머스자산운용 관련 비리사건 전담 수사팀’이 구성돼 검사 18명이 수사하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감찰을 지시했을까. 추 장관이 지시한 감찰 대상은 누구일까.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3년 전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와 김재현 현 옵티머스 대표(이하 직함 생략하고 이름만 표기)가 만나 동업하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옵티머스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인 현재, 이혁진과 김재현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이혁진은 김재현 등이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자신은 옵티머스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김재현은 이혁진이 고의로 회사를 망가뜨렸다고 토로한다.
옵티머스의 설립자는 이혁진이다. 이혁진은 1967년생으로 한양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신영증권,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의 구조화금융상품팀(SP팀장), 마이에셋자산운용 특별자산운용본부장을 지낸 증권맨으로, 2009년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전신인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을 설립했다.
이혁진은 증권가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민주당에서 서울시당 청년위원장서초갑 지역위원장정책위원회 부의장 등을 지냈고, 2012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같은 해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 경제특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영상제작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2016년에는 민주당의 더불어경제실천본부 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2대 이사장을 지내던 지난 2006년에는 경문협의 상임이사로 활동한 바 있다.
‘해외사업’ 하던 김재현이혁진에 비하면 김재현의 경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재현 대표는 1970년생으로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사업을 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외 농업 프로젝트를 약 8년간 진행하고 2017년 4월 국내 사업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혁진과 김재현은 2017년 4월 자본시장에서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진 홍동진 옵티머스 PEF본부장의 소개로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날 당시 이혁진은 자신이 운영하는 AV자산운용(현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자산운용사가 갖춰야 할 최소자본금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등 자금난을 겪고 있었고, 김 대표는 사모펀드(PEF) 설립을 고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인 2017년 5월, 정영제 전 옵티머스대체투자 대표가 이혁진과 김재현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한국전파진흥원(KCA)에서 투자금을 받아올 테니 함께 사업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정영제는 대우증권 출신으로 C&그룹 CFO, 동부증권 부사장 등을 지낸 증권맨이었으나 2010년 C&그룹 사건에서 불법대출을 중개하고 금전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면서 금융 브로커로 전락한 인물이다. 정 전 대표는 옵티머스 사건이 터지자 도주했다가 11월 27일 검찰에 붙잡혔다.
옵티머스 사건 투자자 목록에 따르면, 전파진흥원은 2017년 6월 5일부터 2018년 3월 22일까지 1060억 원가량을 옵티머스에 투자했다. 정영제가 이혁진과 김재현에게 동업을 제안하면서 제시한 ‘전파진흥원 투자’라는 조건이 성사된 셈이다. 전파진흥원은 매년 2조3000억 원 규모의 방송발전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을 맡아 운용하는데, 당시 전파진흥원의 투자책임자이던 최모 기금운용본부장과 정 전 대표가 함께 여행을 갈 만큼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파진흥원 투자와 동업 시작한 이혁진·김재현전파진흥원은 2017년 5월 4일 정보통신진흥기금 200억 원을 운용할 투자대상을 구한다는 공고를 냈고, 당일(5월 4일) 토러스투자증권(현 DS투자증권)을 운용사로 선정했다. 6월 23일 토러스는 전파진흥원에서 입금된 200억 원에 이자를 더해 총 200억2728만823원을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전신 AV자산운용이 만든 ‘베리타스레포연계BIG&SAFE2호’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자금거래를 성사시킨 인물은 정 전 대표다.
전파진흥원은 같은 해 6월 2일에도 방송통신발전기금 100억 원에 대한 투자 대상 관련 공고를 냈다. 3일 뒤인 6월 5일 전파진흥원은 AV자산운용을 운용사로 선정했다. 운용사가 선정되자마자 전파진흥원은 6월 5일 방송발전기금 100억 원을 AV자산운용의 ‘베리타스레포연계BIG&SAFE1호’에 투자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날짜는 2017년 6월 23일이다. 검찰 조사에서 옵티머스 관계자들은 “2017년 5월쯤 정영제가 김재현과 이혁진에게 전파진흥원 투자금을 유치해서 일단 작은 증권사 계좌 펀드에 넣어놨는데 이걸로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토러스에 미리 입금돼 있던 돈이 AV자산운용으로 6월 23일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이혁진과 김재현이 주식매매 및 주주 간 약정서를 체결한 날이다. 이혁진은 자신이 보유한 AV자산운용의 주식 19%를 6억4125만 원에 팔고, 김재현은 6월 29일 잔금을 지급한 후, 6월 30일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두 사람이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공동경영을 하는 계약이었다. 그 시기 이혁진과 김재현은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고 때마침 전파진흥원이라는 안정적인 투자자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정영제가 두 사람을 이어주면서 동업이 성사된 것이다.
이혁진의 횡령 혐의, 양호 전 나라은행장의 등장문제는 금융감독원 검사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혁진은 성폭행 혐의로 2017년 7월부터 9월까지 구속 수감됐다. 그사이 2017년 8월 금융감독원이 옵티머스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당시 금감원은 옵티머스의 자본적정성에 대한 검사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혁진이 AV자산운용 시절인 2017년 3~4월경 금융위원회에 허위 보고서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분기별 업무보고서와 월별 업무보고서에 한 회사의 제주도 토지 매각에 대한 자문을 제공했다며 19억2000만 원 상당의 금융자문서비스 수수료를 미수 수익으로 허위 계상한 것.
옵티머스는 이 허위 계상 금액을 정정하면서 최소영업자본 미달 상태에 빠졌고, 금감원으로부터 2017년 12월 ‘적기시정조치 유예’ 조치를 받았다. 이때부터 이혁진과 김재현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다.
지난 11월 11일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자본건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건 고유자산이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고유자산에 대주주가 돈을 넣든지 새로운 투자를 받든지 보완하라는 의미”라며 “자구계획을 받아 퇴출을 유예하거나 자구계획이 불명확하면 경영개선명령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2018년 4월 금감원은 추가 검사에서 이혁진의 횡령 혐의까지 찾아냈다. 이혁진은 2013년 2월 4일부터 2017년 3월 22일까지 이사회 결의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가지급금 등의 명목으로 423회에 걸쳐 법인 통장에서 개인계좌로 70억 원가량을 이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혁진이 개인 계좌로 이체한 70억 원이 옵티머스 자본금 미달의 근본 원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 결과 조치하고 검찰에 통보했다”며 “(옵티머스의) 자기자본 미달은 이혁진의 횡령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재현은 성폭행 혐의로 구속돼 있던 이혁진에게 주식을 팔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이혁진이 완강히 버티자, 그때 등장하는 인물이 양호 전 나라은행장이다. 양 전 행장은 이혁진의 주식에 설정된 근질권을 사들이며 옵티머스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옵티머스의 고문이 됐다.
경영권 빼앗긴 이혁진의 반격
이혁진 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서초갑 지역구에 출마한 이력이 있다. [뉴스1]
2017년 9월 구속에서 풀려난 직후 미국으로 떠났던 이혁진은 2017년 12월 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하며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전파진흥원으로부터 투자받은 돈의 용처를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이혁진은 고소장에서 전파진흥원 투자금이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닌 성지건설 무자본M&A에 쓰였다고 밝혔다.
옵티머스는 전파진흥원으로부터 투자받은 돈을 당초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성지건설을 지배하고 있는 MGB파트너스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 성지건설이 LH로부터 받은 매출채권은 타인에게 양도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옵티머스와 성지건설은 LH 측에 2017년 6월 5일 채권양도 가능 여부를 묻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7월 12일 LH는 채권양도 승인 불가를 통보했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대한 투자가 불가능해지자 투자 방식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옵티머스는 이후에도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전형적인 기망행위인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이 수사기관의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고소사건은 강남경찰서가 수사를 담당했는데, 이혁진과 함께 고소인으로 이름을 올린 그의 사촌동생 A씨가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이혁진은 2018년 3월 18일 귀국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19일) 금감원이 검찰에 통보한 횡령 혐의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는다. 옵티머스는 3월 21일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었고, 이혁진은 이사회에 참석했지만 30분도 안 돼 쫓겨났다. 이날 이혁진은 옵티머스에서 대표직을 포함한 모든 영향력을 잃었다.
이혁진, 유영민 장관에게 “전파진흥원 감사해 달라”회사를 빼앗긴 이혁진은 정치권에 민원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2018년 3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유영민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만났고, 전파진흥원의 (옵티머스에 대한) 투자를 감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혁진은 2020년 10월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베트남 가서 거기에 마침 주무 장관인 금융위원장 최종구 위원장하고 유영민 과기부 장관이 동행한다는 얘기를 뉴스에서 확인하고 아무래도 거기에 가서 뭔가 하소연을 해야겠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간 것”이라고 밝혔다.
이혁진이 베트남에서 유 전 장관에게 민원을 한 뒤 2018년 4월부터 실제로 과기부의 전파진흥원 감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이 감사는 그해 6월까지 진행됐고, 전파진흥원은 옵티머스에 투자한 자금을 모두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전파진흥원은 “만기일에 자금을 회수했다”고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날짜별 회수 금액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파진흥원은 옵티머스와 관련해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투자자금 유용 성지건설 경영권 인수 과정 위법행위에 대한 수사의뢰’라는 제목의 수사 의뢰서를 제출했다. 추 장관이 검찰이 부실수사를 했다며 윤 총장을 공격한 소재가 바로 이 수사의뢰서다.
그러나 당시 검찰 수사팀은 “전파진흥원이 수사 의뢰를 해놓고는 정작 수사 단계에서 ‘수사의뢰는 예정에 없었는데 옵티머스 전 사주(이혁진)가 과기부에 민원을 제기해 과기부 지시에 따라 한 것’ ‘자금을 회수해 피해가 없었고 금감원 조사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수사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반박했다. 한편 검찰은 성지건설 횡령 부분을 수사해 성지건설 내 불법행위로 박준탁 성지건설 대표와 유현권 옵티머스 이사를 구속했다.
옵티머스, 전파진흥원 투자금 빠져나가자 ‘와르르’전파진흥원이 검찰에 제출한 수사의뢰서에 따르면, 전파진흥원은 2018년 1월에 90억 원, 3월 22일에 230억 원을 각각 옵티머스에 투자했다. 1월에 투자한 90억 원의 회수일은 확인되지 않고, 3월 22일에 투자한 230억 원의 회수일은 8월 9일과 10월 11일이다. 각 회수일에 얼마가 빠져나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8~10월 두 달간 최소 230억 원 이상이 회수된 것으로 보인다.
옵티머스의 ‘비자금 저수지’로 지목된 트러스트올에서 자금을 출금한 시기와 금액을 따져보면 이 중의 일부가 전파진흥원 투자금 상환에 쓰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옵티머스는 트러스트올에서 2018년 8월 9일 90억1996만 원을, 8월 24일에는 130억 원을 수표로 인출했다. 검찰 수사 결과, 전파진흥원의 옵티머스 투자 가운데 2018년 3월 22일 230억 원 투자분 중 130억 원의 펀드 만기일은 8월 9일이었다.
이처럼 전파진흥원의 투자금이 빠져나가자, 옵티머스 재정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된다. 결과적으로 이혁진의 감사 민원이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실제로 2018년 10월 17일부터 옵티머스의 각종 펀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후순위 펀드에 투자된 돈을 빼내 선순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돌려막기’가 시작됐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폰지사기’가 자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재현 측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2020년 5월 김재현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는 후속 조치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여권에서는 이 문건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금 운용 과정, 문건에 적시된 사업의 진행 상황 등을 감안하면 상당히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옵티머스는 2018년 2월 이혁진이 제기한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양호 전 행장의 소개로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이규철 변호사를 고문으로 영입한다. 이 변호사는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보로 활동한 인물이다. 2018년 12월에는 전파진흥원이 수사 의뢰한 성지건설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옵티머스 고문이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소개로 법무법인 서평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고문으로 위촉했다고 한다.
정관계 인맥 구축 정황2018년 12월 이후 매출채권 검토를 법무법인 서평이 담당했고, 이후 비용 문제를 고려해 채 전 총장이 지정한 법무법인 한송에서 이 업무를 담당했다고도 적혀 있다. 법무법인 한송은 2018년 3월 21일 옵티머스 이사로 선임된 윤석호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이다.
윤 변호사의 부인은 친여권 법조인으로 분류되는 이진아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에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 등과 여당 측 인사들을 변호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서울시와 각종 공기업의 고문변호를 맡았다. 2019년 10월부터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이 변호사가 청와대 행정관으로 임명되자, 윤 변호사의 급여가 월 500만 원에서 1500만 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또한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따르면, 김재현은 “상기 분쟁 과정에서 이혁진이 민주당과의 과거 인연을 매개로 국회의원, 민주당 유력인사 및 정부 관계자들에게 거짓으로 탄원, 회사를 공격하게 함으로써 이를 소명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민주당 및 정부 관계자들이 당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됐다”고 적시했다.
김재현은 “이혁진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도움을 줬던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되어 있고, 펀드 설정 및 운용 과정에도 관여가 되어 있다 보니 정상화 전 문제가 불거질 경우 본질과는 다르게 권력형 비리로 호도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고도 적었다.
공소장엔 ’30억 횡령범' 적어놓고, 기소 안했다
‘옵티머스 공소장’ 입수
입력 2021.01.19 03:00
5000억원대 피해를 낸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주민철)가 선박 부품 제조 업체 해덕파워웨이(해덕) 무자본 M&A 사건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기며, 핵심 관계자의 범행 사실을 공소장에 적시하고도 기소하지 않은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해덕 무자본 M&A 사건’은 옵티머스가 저지른 여러 범죄 중 하나로, 청와대 관계자부터 조폭까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다. 옵티머스는 펀드 자금으로 이 회사 지분을 확보한 뒤 일당 중 한 명을 최대 주주로 만들어 대표로 앉혔다. 이후 해덕파워웨이 회삿돈을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해, 이 회사 지분 확보에 들어간 돈을 거의 전액 회수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한 것이다. 윤석호 옵티머스 사내이사의 아내인 이모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이 회사 사외이사로 있었다.
본지가 입수한 이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해덕을 인수해 ‘펀드 돌려막기’ 자금을 마련하려 2018년 8월 한국 최대 규모 조폭인 양은이파 부두목 박모씨와 그의 측근 고모씨에게 인수 자금 230억원을 줬다. 박씨는 김 대표가 ‘7인의 회장단’이라고 부르는 옵티머스 후견인 중 하나다. 박씨와 고씨는 해덕을 인수한 뒤 한 성형외과 의사를 해덕의 명의상 대표로 앉히고, 회삿돈을 빼돌려 옵티머스 펀드 돌려막기를 지원했다.
해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던 박씨와 고씨는 2019년 5월 초 한 코스닥 상장사를 ‘사냥’하기 위해 해덕 자회사 세보테크 회삿돈 30억원을 빼돌려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 검찰은 이를 박씨와 고씨 등의 ‘횡령 범행’이라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1월 30일 김 대표와 해덕 관계자 등 4명을 기소했지만 고씨를 기소하기는커녕 구속조차 하지 않았다. 박씨는 2019년 5월 말 전남 최대 조폭인 국제PJ파 부두목 이모씨에게 과거 해덕 인수 자금으로 빌려 갔던 돈을 제때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당했기 때문에 기소 대상이 아니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청와대 관계자가 연루된 ‘해덕 무자본 M&A 사건’ 규모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인물만 기소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옵티머스 김 대표 등은 2018년 말 해덕이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돼 주식 거래가 정지되자 대표와 임원진을 갈아치웠다. 이들은 2019년 2월 박모 화성산업 대표를 해덕 대표로 만들면서, 이모 전 청와대 행정관을 사외이사로 앉혔다. 이 전 행정관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직전인 2019년 10월까지 해덕 사외이사로 있었다. 이 기간에만 해덕의 회삿돈 150억원이 옵티머스 펀드 투자 명목으로 김 대표에게 흘러갔다. 옵티머스의 대주주(지분 9.8% 보유)이기도 한 이 전 행정관은 이사회에 참석해 몇몇 주주들의 반대에도 옵티머스 투자에 동의하고 결의서에 직접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 전 행정관을 작년 7월 한 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을 뿐 추가 수사를 이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사건뿐만 아니라 작년 말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로 중앙지검 옵티머스 수사팀이 대폭 보강돼 정·관계 로비스트로 지목된 이들을 연이어 체포했으면서도 무수히 불거진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별다른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 등 코로나 대유행으로 소환 조사에 어려움을 겪는 등 차질이 있지만 계속 수사 중”이라고 했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
옵티머스자산운용이 투자자들에게 안전한 자산인 공공 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1조5000억원대 펀드 상품을 판매한 뒤 실제로는 대부 업체와 부실기업, 부동산 사업 등에 투자해 펀드가 부실화됐다. 펀드 환매 중단으로 인한 피해자는 1100명, 피해 규모는 5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이들이 펀드 투자를 유치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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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수배 중인 ‘라임 몸통’ 쫓는 경찰 출신 백왕기 변호사
‘라임 주범’ 김영홍, 필리핀에 잠적 중… 이미 신분 세탁 했을 수도
⊙ “라임 수사 지지부진한 건 도망간 주범 때문, 반드시 잡아야”
⊙ 도피 중 버젓이 ‘온라인 카지노’ 송출… 불법 자금 마련에 배당까지
⊙ 소극적인 수사 기관… “수백억원 피해 입은 의뢰인 위해 직접 팔 걷어붙였다”
⊙ 필리핀서 수차례 ‘셋업범죄’ 걸려 신변 위협 받아도… “포기 않겠다”
白旺基
1965년생. 대원고, 경찰대 행정학과(5기) 졸업 / 제42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32기), 중앙경찰학교 교수 / 現 필리핀 오션베스트리더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터질 게 터진 모양이었다. 라임 사태 발발 직후. 백왕기(56) 변호사는 단번에 이렇게 말했다.
“몸통은 김영홍이다.”
필리핀에서 해외 은닉재산 추적·환수·국제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그는 라임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메트로폴리탄은 라임으로부터 해외 리조트 및 카지노 사업 명목으로 3500억원을 투자받은 부동산 시행사다. 이 투자금은 후에 라임 사태를 일으킨 단초(斷礎)가 됐다. 김봉현 또한 옥중서신에서 실질적 ‘몸통’으로 김영홍을 지목했다. 백 변호사는 “현재 밝혀진 3500억원 이외에도 제이제이씨홀딩스, 제이케이인터내셔널, 캄보디아 리조트 1억 달러(약 1200억원)까지 합치면 그가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금액은 5000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백 변호사에 따르면 김영홍은 라임 사태 직전인 2019년 10월 필리핀으로 도피했다. 적색수배령이 떨어진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그림자도 못 찾았다. 백 변호사는 “김영홍이 횡령한 돈이 라임 피해금액(1조6000억원)의 30~40%를 차지한다”면서 “그를 잡지 않고는 라임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급기야 필리핀 현지에서 직접 김영홍을 찾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김영홍에게 수백억원의 피해를 입은 의뢰인 때문이다.
― 라임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니 어떻습니까. 지지부진하다는 시각이 많은데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에 가장 중요한 주범이 도망을 가버렸으니까요. 종범들은 다 주범에게 범죄사실을 떠넘길 거고요. 특히 김영홍 회장과 관련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수사가 안 되고 있습니다. 라임의 주범 격으로 꼽히는 인물 몇몇과 그 아래 수많은 종범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주범의 종범들은 처벌을 받고 있는데, 22개 메트로폴리탄 계열사 관계자 및 김영홍과 관련된 인물은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어요. 범죄 사실이 명백한데 말입니다.”
무색한 적색수배령
― 김영홍 회장이 필리핀에 있다는 건 어떻게 확신합니까.
“현지에서 목격담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두 달 전쯤에 막탄섬과 클락에 다녀갔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카지노 리조트에서 며칠씩 체류하며, 비호세력 삼는 지인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쓰고 있다고 하더군요.”
― 누가 제보했나요.
“카지노 업자들이죠.”
― 제보가 들어왔을 때 그 장소에 들이닥치면 잡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보통 다녀가고 한참 뒤에 알려줍니다. 카지노 업자들은 워낙 음성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스럽습니다. 자칫하다가는 본인에게 피해가 올 수 있거든요.”
― 말씀대로라면 김 회장은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셈인데, 왜 못 잡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한국 경찰은 필리핀 내에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 적색수배령이 떨어졌지 않습니까.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인터폴 수배 단계 중 가장 강력한 조치 아닙니까.
“물론 우리나라에서 인터폴에 적색수배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에 필리핀 경찰도 김영홍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는 있습니다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필리핀은 영미법체계를 따라요.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죠. 체포영장만 발부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주거 공간이나 호텔에 들어가려면 압수수색영장이 필요한데, 그게 포괄적으로 나오지 않거든요. 몇 호실에 있는지까지 특정을 해야 해요.”
― 적색수배라는 게 생각보다 무력하군요. 얼굴에 빨간 줄이 그어진 수준인 줄 알았는데.
“한국 검경에서 강력하게 필리핀 수사기관에 체포 동의를 구하면 도움이 될 텐데, 그 부분이 아쉽기는 합니다. 만일 국가 차원에서 필리핀에 강력하게 청구를 해서 대대적인 검거 작업이 이뤄지면 체포가 가능합니다. 그럴 경우 3주 정도만 수색하면 잡을 수 있어요.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 왜 그렇게 안 되고 있습니까. 한국 수사기관에서 비중을 안 두는 겁니까.
“수사의 필요성은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적색수배도 그래서 내린 거고요. 지난 1월 29일 재판부는 이종필에게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15년형(1심)을 내렸죠. 검찰에서는 그런 이종필과 김영홍을 ‘경제공동체’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벽이 있는 거죠. 예컨대 대한민국대사관 세부영사분관에 한국 경찰청에서 파견 나온 경찰관과도 공조가 가능한데, 제한적이에요. 업무도 많고 3년마다 보직이 바뀌니까 좀 적응한다 싶으면 발령이 나거든요. 또한 제가 경찰 출신인 게 외려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일종의 청탁으로 비칠 수 있어서 강하게 협조를 요청하기가 곤란한 거죠.”
‘끈질긴 악연’
‘라임의 주범은 김영홍.’ 백 변호사의 이 같은 말은 단순히 서류상 분석에서 나온 게 아니다. 라임 사태가 촉발된 건 지난 2018년 파티게임즈의 부실 BW(신주인수권부사채) 매입 때문이다. 2017년 6월, 당시 파티게임즈를 상대로 채권 회수를 진행하고 있던 인물이 백 변호사다. 라임의 자금 흐름에 그만큼 밝다는 얘기다.
“2017년 7월에 라임에서 투자한 파티게임즈는 2018년 3월,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상장 폐지 직전인 회사의 BW를 액면가로 인수하겠다는 세력이 나타난 겁니다. 급기야 상장 폐지가 됐고, 400억원이 휴짓조각이 됐는데도 일주일 뒤 그 세력은 권면총액 수준에 이를 사들였습니다.”
그 세력의 정체가 메트로폴리탄이었다. 이를 계기로 백 변호사는 라임 사태의 주요 인물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김영홍 회장은 배우 신은경의 전 남편인 김모씨의 소개로 2018년 1월 이종필 라임 부사장을 만났습니다. 그 무렵 메트로폴리탄 법인을 설립하고 3500억원을 투자받았죠.”
백 변호사는 “파티게임즈 BW 사태로 위기를 넘겼다고 판단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과 김영홍의 행각은 그때부터 더욱 대담해졌다”면서 “메트로폴리탄 관련 비상장 회사들을 동원하거나 급조해 사모사채를 발행하는 형식으로 수천억원을 마구 빼돌렸다”고 했다.
“김영홍은 여기서 더 나아가 향군상조회를 인수해 수익률 돌려막기를 계속하려 했죠. 라임 곁가지인 김봉현에게 65억원을 지원하며 향군상조회를 인수하도록 지시한 자도 김영홍이고요. 메트로폴리탄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라임과 관련된 회사라는 이유로 결국 인수에는 실패했습니다. 이때 김영홍은 재빠르게 판단했습니다. 이종필과 김봉현을 전면에 밀어놓고 필리핀으로 건너가기로요. 2019년 10월, 라임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에 말입니다.”
발 빠른 도피처 마련
악연이 따로 없었다. 필리핀에서도 김영홍과의 연결고리가 생겼다. 백 변호사는 2011년 7월 필리핀 막탄 소재 이슬라리조트의 채권 보유자들과 채권 회수 추심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필리핀 법정에서 이들을 대리해 리조트 소유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정 다툼 끝에 리조트를 공매한 후 매각대금을 채권자들에게 돌려줄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리조트를 이미 원소유자에게 매입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했다. 이들은 백 변호사의 의뢰인들이 추진하던 강제집행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김영홍이 개입했다는 게 백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소유권을 두고 갈등이 불거진 리조트를 2018년 10월 김영홍 회장이 차명으로 매입했다”고 했다.
리조트 매각 대금(295억원)을 지불한 인물은 채모 메트로폴리탄 대표이사다. 당시 채씨는 메트로폴리탄의 계열사로부터 300억원을 대여받아 개인 자격으로 리조트를 인수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마닐라 고등법원의 판결문까지 나와 강제집행만 남겨놓은 리조트를 누가 사겠습니까. 이 같은 무모한 일을 할 이유는 명백해 보였습니다. 도피처 마련과 자금 빼돌리기. 실제로 당시 필리핀에 ‘이슬라리조트 인수 비용’으로 신고 및 흘러들어온 자금도 전혀 없었어요. 295억원이 고스란히 증발한 거죠.”
― 그 돈은 어디로 갔나요.
“김영홍은 이 295억원을 춘천 지역 한 업자의 차명계좌를 이용, 자금 세탁을 거친 후 리조트를 소유하고 있던 조폭 등 주주 11명에게 지급했습니다. 리조트가 매각됐는데, 지분 이전 등기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인수 후 해가 바뀌어도, 심지어 현재(1월 11일 기준)까지도 기존 주주들이 그대로 등재돼 있어요. 결국 기존 주주들과 결탁했다는 뜻인 겁니다. 김영홍의 부하직원인 메트로폴리탄의 채모 대표이사가 지난해 2월 남부지검에 ‘필리핀 카지노 투자 명목으로 투자받은 라임 자금 중 리조트 매각대금을 김영홍 회장의 지시로 2018년 10월 수표로 끊어 인출했다’고 진술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죠.”
당연히 백 변호사의 채권자들은 여전히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한때 분열했던 채권자들은 다시 백 변호사를 찾아와 채권 추심을 의뢰한 상태다. 백 변호사가 본격적으로 김영홍을 쫓게 된 배경이다.
도피 중에도 온라인 카지노로 돈 벌어
쫓다 보니, 추가 범행도 눈에 들어왔다. 백 변호사는 도피 중인 김 회장이 현재까지도 카지노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했다. 불법 온라인 카지노를 통해서다. 국내에 송출 중인 정황도 포착했다.
― 이슬라리조트가 아직 영업을 하고 있습니까.
“업장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다만 온라인 아바타 카지노는 지속적으로 송출 중입니다. 아바타는 70명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숙박 장소는 카지노 관련자들이 사용 중이고요.”
― 온라인 아바타 카지노라면?
“일종의 ‘대리게임’입니다. 필리핀 현지 카지노에 있는 사람을 아바타로 지정한 뒤 플레이어의 지시대로 베팅을 하는 방식입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현장 직원과 대화하며 게임에 참여하죠. 국내에 송출 중인 정황을 파악했고, 게임 테이블 중 일부를 24시간 녹화한 증거자료를 남부지검에 제출했습니다. 판돈을 계산해보니 수익이 연간 350억원가량 되더군요. 도박 자금은 일명 ‘환치기’ 형태로 송금되고 있고요. 이에 따라 김영홍 일당을 도박개장죄 위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한 상태입니다.”
그는 “심지어 이 범죄 수익금은 김영홍을 비호하는 세력에게 배당까지 되고 있다”고 했다.
― 온라인 카지노로부터 배당을 받고 있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앞서 울산에서 이슬라리조트를 내세워 분양 사기를 친 이모씨라고 있습니다. 김영홍과 기존 주주들의 측근이죠. 현재 울산지검에 기소된 이씨는 검찰에 김 회장이 빼돌린 295억원과 온라인 카지노 배당금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 모두 증언했습니다. 본인 또한 카지노 배당금을 받고 있다며 관련 계좌 내역까지 제출한 상태죠.”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만일 불법 자금이 아니고, 인수 과정 또한 정상이었다면 이러한 추가 수익금은 라임 투자자들에게 배당돼야 맞는 겁니다. 그런데 조폭 출신 등 완전히 엉뚱한 이들이 배를 채우고 있는 형국이에요.”
‘김 회장’ 추적에 50억원 들여
혼자서는 만만치 않은 작업.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는 필리핀 검찰청(NBI)과 형사국(CIDG)에 직접 공조를 요청했다. 김영홍에 대한 사건·사고 자료를 취합해 필리핀 사법 당국에 제공하고, 체포를 의뢰했다. NBI의 추천을 받아 필리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설경비업체도 고용했다. 수색 과정에서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현지 로펌도 14군데나 선임했다. 여기까지 총 50억원의 비용을 썼다. 백 변호사는 “의뢰인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 이 비용이 전액 법률사무소의 손실로 잡힌다”면서 “국가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나라로 도망간 사람을 잡는데 국가만 의존할 수는 없으니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 로펌을 14군데나 따로 선임한 이유는 뭡니까.
“필리핀에서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셋업범죄’에 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송 상대측에서 누명을 씌워 저를 체포시키는 거죠. 셋업을 당하면 소리소문없이 목숨을 잃기도 해요. 이러한 셋업범죄를 하나라도 방어하지 못하면 채권 회수 활동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실력 있는 변호사들을 선임해놓고 있어야 합니다.”
― 셋업범죄는 영화에서만 들어봤는데요. 흔히 ‘마약 던지기(상대방의 소지품 등에 마약을 넣어두는 것)’ 같은 겁니까.
“그건 가장 쉬운 방법이고요. 예컨대 멀쩡한 사람을 인신매매범으로 만듭니다. 진범 A, B, C가 있고 팔려 간 여성 1, 2, 3이 있다고 쳐요. 이때 진범의 공범으로 저를 포함하고, 피해자 뒤에 가공의 4, 5를 추가시킵니다. 진범 A, B, C의 조서와 3명의 피해자로부터 진술을 받아놓고 나중에 가공의 4, 5를 빼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피의자 신분조서와 피해자 진술이 완전히 엮이게 되죠. 이런 식으로 기소가 되면 웬만하면 빠져나올 수 없어요. 그쪽에서도 변호사들을 다 끼고 조작하거든요.”
― 직접 당한 적도 있나요.
“지금까지 서른 건 정도요. 2012년 한 해에는 12건의 셋업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함께 일하던 필리핀 직원이 캐나다로 취업이 돼서 이민국에 가서 보니, 저와 함께 12건의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었죠. 그중 3건이 인신매매였어요. 셋업을 위한 고소를 할 때는 일부러 송달장소를 엉뚱한 데로 쓰기도 합니다. 두 번 출석을 안 하면 세 번째에는 체포영장이 발부되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체포영장이 날아오는 거죠. 그네가 지정한 경찰이 체포영장을 가지고 끌고 가서, 심할 경우 죽여버려도 아무도 모릅니다. 어쨌든 1년 반에 걸쳐 결국 12개를 모두 풀었습니다. 관련 경찰 등을 다 고발했고 체포영장을 발부한 판사들에게는 경고의 편지까지 보냈어요. 저 스스로 셋업에 강하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안 당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당하는 건 간단하지만 푸는 데는 몇 년이 걸리니까요.”
― 김영홍 회장 무리에게도 셋업을 당했습니까.
“김영홍이 이슬라리조트를 인수하기 전 리조트의 주주들로부터 당한 적이 있습니다. 후에 김영홍과 공모한 자들이죠. 2017년 10월,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제가 돈 강취죄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가 있더군요. 어쩔 수 없이 필리핀에 하루 동안 억류됐었죠.”
― 경찰, 변호사까지 공모해 셋업범죄를 일으키는데, 필리핀 수사기관과 공조가 가능하긴 합니까.
“지방은 아직까지 타락한 곳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닐라 법무부 자체는 믿을 만합니다. 물론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잡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신분 세탁 했을 수도
김영홍은 김인태 전 동남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김인태 전 회장은 경남종합건설 사주(社主)이면서 《동남일보》 회장, 마산 성안백화점 실질 사주, 경남종합금융 대주주, 마산상공회의소 제15대 회장을 지냈다. 외국환거래법 위반, 업무상배임 등으로 오랜 해외 도피 생활 끝에 철창신세를 진 그는 한때 아프리카 가봉인으로 여권을 위조해 워커힐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기도 했다. 김영홍은 그런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알려졌다.
― 김영홍 회장이 이미 신분 세탁을 했을 가능성도 있나요.
“앞서 막탄과 클락에서 목격된 게 사실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두 지역 간 이동 수단은 비행기 편밖에 없거든요. 국제수배가 돼 있는 상태인데 비행기를 탔다는 건 본인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죠.”
― 신분 세탁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 겁니까.
“필리핀 인구가 약 1억1000만명입니다. 그중 7%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호적이 없거나, 호적은 있는데 사망신고가 안 된 사람이에요. 후자의 신분을 돈을 주고 사는 거죠. 필리핀 브로커들 사이에서 시세는 3000만~7000만원 정도로 형성돼 있어요. 그 돈을 주면 완전히 필리핀 사람이 됩니다. 행정기관에도 바로 적용이 돼서 여권 및 각종 신분증 발급에서 사회보장제도 가입까지 가능합니다. 이것만 전문적으로 하는 필리핀 변호사도 따로 있고요.”
― 필리핀 정부에서는 이런 거래를 그냥 두고 봅니까.
“필리핀 사람이 한 명 더 생기는 거잖아요. 세금도 징수할 수 있으니까 알면서도 용인한다고 봐야죠.”
그는 “만일 김영홍이 신분 세탁을 마친 상태라면, 그를 쫓는 위험 부담은 더 커진다”고 했다.
“신분 세탁이 완료됐다고 하면 추적하는 작업이 상당히 예민해집니다. 신분 거래에는 필리핀 거대 조폭 세력과 정치인도 깊이 개입돼 있거든요. 이는 김영홍이 그만큼 필리핀에서도 네트워크가 끈끈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렇게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그의 신분 위조 여부를 밝혔다가는 제가 소리소문없이 묻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허허.”
하지만 더 큰 걱정거리는 따로 있다고 했다.
“현지에서 ‘이슬라리조트 매각설’이 들려오고 있다는 겁니다. 김영홍 일당이 현금화 작업을 시도하는 건데…. 이건 자리를 뜰 준비를 한다는 의미거든요. 실제로 2019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중국, 마카오, 그리고 한국인에게도 거래 제안이 들어왔었어요. 물론 리조트 내부 사정이 워낙 복잡해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요.”
그렇다고 거래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다. 카지노업자들에게 이슬라카지노는 충분히 매력 요소가 있다. 필리핀 대통령 직속기관의 정식 카지노 라이선스와 온라인 카지노 허가증인 ‘e정켓’까지 보유한 곳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라이선스를 다 가진 곳은 많지 않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리조트의 겉모습을 보고 500억원이 비싸다 느낄 겁니다. 허름하니까요. 하지만 업자들의 시각은 달라요. 마닐라의 2조원 규모 ‘오카다카지노’에서는 매각 협의 당시 1억 달러(1200억원)를 언급하기도 했죠. 만일 (김영홍이) 1200억원을 받고 리조트를 매각한다고 치면, 대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준다고 해도 본인은 최소 600억원을 손에 쥐게 되겠죠. 웬만한 코스닥 업체는 사들일 수 있는 금액을 가지고, 신분 세탁을 한 후 예컨대 남미 어디론가 숨어버리면 영영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주주 명부 등에 자신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빠져나가기도 쉽겠죠.”
‘지옥 끝까지 쫓아가겠다’
백 변호사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경찰서에서 근무했다. 한땐 천문학자를 꿈꿨다. “집안에 경찰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말에 별보다 ‘별 단’ 사람을 보기로 했다. 경찰 경력 약 10년, 법을 더 알고 싶어 고시 공부를 했다.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한동안 서초동에서 형사전문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2008년, 필리핀으로 떠났다.
― 어쩌다 필리핀에 가게 된 겁니까.
“당시 국내 몇몇 대기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필리핀의 한 리조트를 인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법률 자문을 맡았는데, 그 리조트에도 채권 문제가 있었습니다. 2008년 10월경 채권 회수를 목적으로 리조트 실사(實査)를 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현지에서 각종 행정심판 등이 이어졌고 그 자문 계약에 이어 관련된 사건이 들어오다 보니 2010년부터는 아예 근거지를 필리핀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 수많은 경제사범을 봤겠군요. 김영홍의 스케일을 그들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미증유(未曾有)의 인물이라고 봐야죠. 희대의 금융사기범으로 꼽히는 조희팔·주수도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어요. 대범하다고 해도 보통은 폰지사기(피라미드식 다단계 사기수법)에 그치는데, 이렇게 개인이 수백억·수천억원을 수시로 빼돌리는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게다가 본인의 실명 기사가 계속 쏟아지고, 적색수배까지 떨어졌는데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역사적으로도 국내에서 이런 케이스는 없었어요.”
― 만약에 잡힌다면 형량은 어느 정도로 예상합니까.
“경합범으로 따져봤을 때 최소 25년에서 최대 40년까지 보고 있습니다.”
― 추적 비용으로 수십억원을 쓰고, 신변 위협을 무릅쓰며 언제까지 쫓을 생각입니까.
“잡힐 때까지요. 수임한 사건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제 본분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의뢰인을 위해서는 아닙니다. 라임 사태로 피해를 입은 수많은 펀드 가입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서라도 꼭 잡도록 하겠습니다.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요.”⊙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라임 ‘몸통’의 오른팔이 밝히는 라임 사태
현직 검사 자주 찾던 ‘텐프로’ 主人, 훗날 라임 主犯 되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 사태 발발 2년 접어드는데 라임 수사 여전히 지지부진, 왜?
⊙ 2012년 화제였던 ‘특급호텔 성매매 사건’의 숨은 이야기
⊙ 펀드 고객 쌈짓돈으로 필리핀서 먹고, 자고, 즐긴 라임 일당들
⊙ 김영홍 소유 ‘텐프로’서 이종필과 만난 검사? “특수부, 사투리, K대 출신”
⊙ 박범계 장관, “검사 술자리 관심 갖고 있지만, 아직 조사 단계 아냐”
⊙ 오른팔 A씨, “국민 세금으로 투자자 보상? 주범 잡아 재산 환수해야”
10년간 김영홍의 ‘오른팔’로 지냈던 A씨. 사진=박지현 기자
“야, 그 검사 뽀뽀하는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내놔라.”
라임 ‘몸통’으로 지목된 김영홍(48·적색 수배 중) 메트로폴리탄 회장은 해외로 도주하기 전 강남에서 룸살롱을 운영했다. 이곳에 현직 검사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10년간 그의 ‘오른팔’로 살았다는 A씨는 이 룸살롱의 이른바 ‘바지사장’이었다. 그는 “김영홍은 오래전부터 검사 및 수사관들과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면서 “그러면서도 만일을 대비해 (업소에 찾아온) 검사들의 증거를 수집해놨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지지부진한 라임 수사가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메트로폴리탄은 라임으로부터 3500억원(최대 5000억원까지 추산)을 투자받은 부동산 시행사다. 이 3500억원이 라임 사태의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투자금은 당초 목적과 달리, 주로 코스닥 상장사들의 부실 전환사채(CB)를 되사는 데 쓰였다. 김영홍은 이 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창구로 메트로폴리탄 계열사를 23개나 세웠다. 라임 사태가 발발한 지 만 2년이 다 돼가지만, 메트로폴리탄과 관련된 인물은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김영홍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며, 이들 가운데는 라임 관련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활동하는 인물도 있다. 지난 6월 1일 A씨를 만나 라임 사태 이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라임 이슈가 한창이던 시기 필리핀에 체류하다 최근 귀국했다.
― 김영홍과의 관계는.
“10년 지기다. 2011년 초, 김영홍이 강남 L호텔에 있던 룸살롱을 위탁·운영한 적이 있다. 이때 내가 ‘바지사장’으로 있었다. 운영권한 없이 회계 등을 관리했다. 원래 2차(성매매)가 없던 곳인데 장사가 되지 않자 (김영홍이) ‘2차를 해야겠다’고 했고, 2012년 단속에 걸렸다. 김씨는 ‘지금 전과가 생기면 사업이고 뭐고 다 끝’이라며 대신 처벌 받아줄 것을 부탁해왔다. 나중에 반드시 보상하겠다며. 이를 계기로 유흥업소 바닥에서 소위 말하는 그의 ‘오른팔’이 됐다.”
룸살롱 운영하며 검사들 약점 모아
김영홍. 그간 그의 사진 한 장 드러나지 않고 베일에 싸여 있었다. |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2012년 11월, 강남 한복판 특급호텔 객실에서 버젓이 성매매가 이뤄졌다는 뉴스는 많은 이를 경악게 했다. 단속 전까지 이곳은 강남 최고의 ‘고품격 란제리 풀살롱’으로 통했다. 특급호텔인데다, 지하가 아닌 12~13층에 위치해 고위층 인사들이 특히 많이 찾았다. 실제로 단속 당시 적발된 성 매수자들은 대부분 ‘사’자 직업이었다. L호텔은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고, 김영홍은 이후 삼성동으로 자리를 옮겨 고급 룸살롱(‘텐프로’) 영업을 재개했다.
“L호텔이 문을 닫은 후 삼성동에서 ‘초○○’이라는 룸살롱을 운영했다. 중간중간 메○○, 오○○로 이름은 몇 번 바뀌었다. 2019년, 김영홍이 필리핀으로 가기 전까지 나는 이곳에서도 ‘바지사장’으로 일을 도왔다.”
― 김영홍은 어떤 사람인가.
“풍채가 좋고 말을 시원시원하게 한다. 없어도 있는 것처럼, 안 돼도 될 것처럼, ‘뭔가 있는 것’처럼 보여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이 꽤 있다. 특히 룸살롱을 오래 운영하며 이를 통해 네트워크도 많이 형성했다.”
A씨는 “검사들도 그중 하나”라며 검사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검사) 여러 명이 자주 왔는데, 기억에 남은 건 2017년 말인가, 2018년 초 겨울이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두 명과 한 유통 대기업 부사장이 온 적이 있다. 김영홍이 기업 간부에게 검사를 소개시켜주는 자리였다. 검사 둘은 선후배 사이였는데, 김영홍은 그중 후배 검사를 가리켜 ‘내 수사(2015년 원정 도박 관련)를 담당했던 검사님’이라고 소개했다.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 그날의 증거가 될 만한 자료가 있는지.
“삼성동 142-××번지 관할 파출소에 기록이 남아 있을 거다.”
― 파출소?
“그날 후배 검사가 술이 많이 취했다. ‘가오’를 부리며 기업 간부에게 시비를 걸더라. 드라마 대사 있잖나. ‘야! 나 대한민국 검사야! 기업 하는 ×× 주제에, 너 내가 털면 뭐 안 나올 것 같아?’ 선배 검사가 ‘그만하라’고 했는데 선배한테까지 대들다가 결국 (선배에게) 맞았다. 그 길로 (후배 검사가) 울며 뛰쳐나가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관 8명이 출동했다. 경찰관이 술 취한 검사 동영상까지 찍어갔다.”
A씨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게 후배 검사는 또다시 “나 검사야”라며 공무원증을 보여줬다고 한다. 경찰은 중앙지검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했고, 결국 당직실에서 그를 수습했다고 한다. 한편 경찰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현재 해당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112 신고내역과 근무일지 문서 보관 기간은 각각 1년, 3년이기 때문이다.
룸살롱서 라임 돌려막기 작전 謀議
이어지는 A씨의 말이다.
“검사들이 찾아오면 사실 실무자는 상당히 피곤하다. 최대한 잘, 무탈하게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김영홍은 달랐다. 뭐 하나 잡아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봤다.”
― 기회?
“(검사가) 여자와 신체 접촉하는 사진이나, 앞서 경찰이 온 날의 경우에는 술 취한 검사 동영상을 찍어서 자기한테 보내놓으라고 했다. 술 취한 검사는 그날 업소 직원의 뺨을 때리기도 했는데, 김영홍은 (검사에게) 겉으로는 너그러이 넘어가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뒤에서는 피해 사실을 다 수집해놨다. 이렇게 검사들의 약점을 무기로 갖고 있었다.”
그 무렵은 김영홍이 라임 사태를 일으키기 위한 ‘물밑 활동’에 한창이던 때다. 룸살롱을 소유한 김영홍은 2017년 말, 배우 S씨의 전 남편인 김정수 전 리드 회장과의 연으로 테트라 건설 시행사를 운영하며 라움의 부회장도 겸하고 있었다. 그러던 2018년 1월, 김 전 회장의 소개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을 만났고, 둘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펀드 돌려막기 작전’을 짰다.
실제로 라임의 돈이 대거 움직인 것도 2018년이다. 보유자금 4조원 중 2조원이 들어온 시기며, 공격적인 투자도 이때 이뤄졌다. 이 중 ‘뭉칫돈’ 3500억원이 모두 메트로폴리탄 계열사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작전은 주로 김영홍의 룸살롱에서 이뤄졌다”면서 “김영홍과 이종필은 처음부터 돌려막기를 할 계획으로 손을 잡고 23개 법인(메트로폴리탄 계열사)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필을 비롯해 대신증권 시절 이씨의 후배던 채모 메트로폴리탄 대표 등 관련자들도 2018년 초부터 업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초○○’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할 때인데, 셋은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대화만 나누다 흩어지곤 했다. 아, 담배도 엄청 피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영홍이 3500억원을 그냥 당긴(투자받은) 건 아니었다.”
― 그냥 당긴 게 아니라니.
“김영홍은 암 치료를 받은 터라 담배 냄새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모두 조심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이종필과 채 대표는 연신 담배를 피웠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채 대표가 김영홍 앞에서 ‘학연, 지연보다 강한 게 흡연’이라며 담배를 꺼내 물던 장면. 그 앞에서 어째 싫은 티 한 번을 안 내더라.”
― 김봉현이 청와대 전 행정관과 수원여객 전무를 만난 곳도 이곳인가.
(라임 사태 발발 직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청와대 전 행정관, 수원여객 전무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거긴 도산대로에 있는 속칭 ‘텐카페’다. 우리 업소에는 밴드가 없다. 김봉현은 소위 ‘뒤처리’를 위해 접대를 한 거고, 김영홍과 이종필은 라임을 시작부터 설계했다는 점이 다르다.”
현직 검사와 술자리 직후 잠적
2019년 10월 14일 환매 지연 사태 관련 기자간담회 중인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 사진=뉴시스 |
그로부터 약 1년 후. A씨는 “얼굴이 익숙한 검사가 다시 룸살롱을 찾아온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2019년 9~10월쯤이다. 검사 하나가 또 업소를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앞서 후배를 때렸던 선배 검사였다. 김영홍이 이 검사에게 이종필을 소개시켜주는 자리였다. 김영홍은 나에게 ‘검사님 이번에 부장검사로 영전하셨다. 너도 얼굴 보면 알 거야’라며 ‘들어와서 인사드려라’ 했다. 룸에 갔더니 그 검사가 ‘지난번 폭행 사건으로 실례가 많았다’며 술을 한 잔 따라줬다. 이종필은 어딘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인상이 좋지 않았다.”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술자리의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9~10월은 검찰・경찰의 라임 수사가 본격화되던 때로, 이종필은 이에 앞서 7월 9일 자로 출국정지 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묘하게도 이 자리 즈음인 2019년 10월 14일 이씨의 출국정지가 해제됐고, 결국 이종필은 2019년 11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잠적했다. 김영홍 또한 술자리 직후인 2019년 11월,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로비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는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 그 검사의 이름은 기억 안 나는지.
“검사들이 하도 많이 와서 이름까지 일일이 기억 못 한다. 명함 하나 주십시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그 검사가) 돈을 안 내거나 여자와 트러블을 일으켰던 것도 아니고. 다만 사투리를 썼고, 안경을 끼지 않았으며, 대체로 깔끔한 인상이었다. 김영홍에 따르면 K대 출신에 중앙지검 특수부 소속이었다. 부장검사라고 했지만 부부장검사였을 수도 있다. 통상 ‘부(副)’자를 생략하기도 하니까.”
박범계, “검사 술자리, 아직 조사 단계 아냐”
삼성동 142-××번지. 이곳은 현재 ‘슈○○○’라는 이름의 ‘셔츠룸’으로 상호가 바뀐 상태다. 접대부들이 속옷 없이 와이셔츠만 입고 나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A씨는 “간판은 바뀌었지만 김영홍은 여전히 이 술집을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소셜미디어에 버젓이 이미지 광고를 올리며 영업을 이어가던 곳인데 현재 잠정 폐쇄된 상태다. 34억원 탈세 혐의로 국세청에 고발을 당하면서다. 강남경찰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이 셔츠룸을 수사 중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A씨는 김영홍 측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최근 경찰에 출석해 위탁 운영 계약서 등 김영홍이 해당 업소의 실소유주라는 증거 자료 2000장을 제출했다. 그러면서 김영홍의 과거 검사 술 접대 의혹이 수면으로 떠오르게 됐다. 지난 6월 중순, 일부 언론에서는 이 내용을 짤막하게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내용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박 장관은 이에 다소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6월 15일 국회 본회의 참석 이후 그는 “(새롭게 드러난 검사 술자리 의혹에) 관심은 갖고 있지만 진상 조사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현재 나와 있는 의혹은 구체성이나 출처,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김봉현의 검사 술 접대 폭로가 ‘검찰개혁’의 결정적 구실(口實)이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선택적 진상 조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범’들의 숨은 자산, 이슬라리조트
한편 김영홍은 A씨 주장에 따른 ‘검사와의 술자리’ 당시, 이미 필리핀으로 도주하기 위한 작업을 모두 마친 상태였다. A씨가 검사와 관련한 사진 등 자료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이유는, 그 또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필리핀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2018년 말경 (김영홍이) 필리핀에 있는 리조트를 하나 인수했다고 했다. 그 리조트 카지노의 임원으로 앉혀줄 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김영홍보다) 미리 넘어가서 한동안 한국과 필리핀을 오갔고, 김영홍은 명동의 한 화장품 가게의 조모씨에게 환치기 업자를 소개받아 200억~300억원을 50억원씩 몇 차례 나눠 달러로 바꾼 후, 2019년 11월쯤 필리핀으로 넘어왔다.”
2018년 10월, 김영홍은 라임에서 투자받은 3500억원 중 300억원을 필리핀 세부 막탄섬에 있는 ‘이슬라리조트’ 인수에 썼다. 그간 이 리조트는 김영홍의 은신처로 알려졌는데, A씨에 따르면 이곳은 복수(複數)의 주범들이 숨겨놓은 자산이자, 휴양처 역할도 했다.
― 리조트에서 맡은 일은.
“이슬라리조트는 법인이 3개인데, 김영홍은 전체 법인의 실질적 대표자 역할을 했고, 나는 올해 1월까지 리조트 카지노의 회계를 관리했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이종필 또한 이 리조트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구속되기 전까지는 수익 배당도 받아 갔다. 이종필은 물론, 채모 메트로폴리탄 대표이사도 이 리조트에 몇 번 다녀갔다.”
― 언제, 정확히 몇 번 다녀갔는지.
“둘이(이종필과 채씨) 2018년 12월에 처음 왔고, 2019년도에도 두세 차례 방문했다.”
― 와서 뭘 했나.
“리조트 사업에 관여했다. 근처에 땅을 보러 가기도 하고 카지노에 들어와서 전반적인 운영에 대한 브리핑도 받았다. 이종필은 카지노 내 한국 직원과 면담도 진행했다. 근무하는 데 고충 사항은 없는지 물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도 제시했다.”
A씨는 “이처럼 이종필과 김영홍은 그간 드러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공유했다”면서 “둘은 경제공동체에서 나아가 ‘운영공동체’였다”고 말했다.
― 이종필과 이슬라리조트의 연결고리는 그간 드러나지 않았는데.
“아주 대놓고 왔다 갔다 했다. 경찰 입회 아래 야외에서 사격도 같이 하고 밤에는 여자들도 불러 놀았다. 이종필 등이 선발대로 들어오면, 여자들은 다음 비행기로 들어오는 식이었다. (이종필과) 마담과 다툼이 나, 서로 ‘죽이겠다’며 고성이 오간 적도 있다. 차마 말 못 하는 노골적인 일도 많았다.”
― 이들이 다녀간 증거자료는 있나.
“(내가 지난 1월) 카지노를 그만두면서 반납한 휴대폰을 돌려받지 못해 사진 같은 건 없지만 목격자들이 많다. 한국에 와 구글 계정으로 연동된 데이터를 찾아봤는데, 극히 소수의 자료만이 남아 있었다. (단체 사진을 보여주며) 이들이 이종필과 면담한 한국 직원들이다. 만일 (이종필이) 수사기관에 거짓 진술을 한다면 출입국 기록을 떼보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A씨에 따르면 이슬라리조트에는 현재 해외 도피 중인 이인광 에스모 회장의 흔적도 있다. 톱스타들의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던 이 회장은 라임으로부터 약 2200억원을 투자받아 티탑스(옛 동양네트웍스), 에스모(옛 넥센테크), 에스모머티리얼즈, 디에이테크놀로지 등 상장사를 연이어 인수한 후 허위 공시 등을 통해 주가를 띄웠다는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김영홍과 이인광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움직였다고 알려져 그간 이들의 직접적인 접점은 드러나지 않았다. A씨의 말이다.
“이인광이 중국에서 마스크팩 사업을 했었는데, 김영홍이 메트로폴리탄 관계사를 통해 그 사업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중국에서 대량의 마스크팩이 컨테이너로 건너온 적이 있다. 메트로폴리탄을 통해 투자했다면 한국으로 가는 게 맞는데 필리핀으로 넘어온 거다. 결국 이 100억원도 공중으로 뜬 셈이다. 지금도 이슬라리조트에 그 마스크팩이 쌓여 있다.”
국적세탁 후에도 韓 건강보험 혜택 받아
― 필리핀 체류 당시 김영홍은 어디 살았나.
“원래는 어느 호텔의 스위트룸에 머물 계획이었는데 호텔 공사가 지연돼 리조트 내부에 있는 빌라에 살았다. 총 14개 동이 있었는데, 8호에 (김영홍이) 거주했었다.”
―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지.
“김영홍이 아직까지 이슬라리조트에 머물고 있다는 보도가 있던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김영홍은 필리핀에 한 달 정도 머물다가 2019년 12월 마카오로 넘어갔다. 실질적으로 나와 함께 체류한 건 아주 잠깐밖에 되지 않는다. 마카오로 건너간 후에는 한동안 텔레그램으로 소통했다. 이를 통해 업무지시를 내렸고, 상황도 보고받았다.”
― 그럼 2019년 12월 이후로는 김영홍을 못 본 건지.
“얼굴을 본 건 2019년 12월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는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다, 라임 이슈가 점점 커지면서 연락이 끊겼다. 내가 카지노에서 일한 올해 1월까지, 리조트에 들른 적도 없다. 필리핀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지만, 정확한 행방은 모른다. 제3국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필리핀에서 도장을 찍지 않고 출국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 이미 국적세탁을 했다던데, 국적을 아는지.
“친해도 딱히 여권을 보지는 않으니까 국적이 어딘지는 모른다. 2010년에 이민 출국으로 해외에 나간 적이 있고, 국적 말소는 2015년경 된 걸로 안다. 그럼에도 계속 한국에서 건강보험 혜택은 받았다. 2019년 12월 마카오에서 텔레그램을 보내 ‘한국에 가서 (서울) 옥수동 △△내과에서 당뇨약을 처방받아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 3만4200원을 결제했는데, 보험이 적용된 금액이었다. 그러고 보면 (김영홍은) 진짜… 이 나라에 뭐 (기여)한 게 전혀 없는 사람이다. 군대마저 뺐다(안 갔다).”
메트로폴리탄 수사 2년째 지지부진
― 현재까지도 이 리조트 온라인 카지노 등의 수익금이 김영홍의 도피 자금으로 쓰인다던데.
“사실이다. 마카오로 넘어간 후에도 김영홍의 돈은 계속해서 카지노에서 관리했다. 꾸준히 배당을 받았고 지금도 실질적인 리조트 소유주로서 배당을 받고 있으며, 차명 계좌를 통해 몇몇 이해관계자에게도 배당금이 전달되고 있다. 최근 남부지검에도 이 같은 내용을 진술했고, 관련된 회계 자료를 모두 제출한 상태다.”
― 그런데 마카오에는 왜 간 건지.
“당시 메트로폴리탄 채모 대표와 라움의 박모 부장(메트로폴리탄 사내이사)을 마카오에서 만나 테트라와 프로방스 관련 사업을 논의할 거라고 말했다.”
A씨의 말에 따르면 채모 메트로폴리탄 회장과 라움 박모 부장은 김영홍과 긴밀하게 사업 내용을 공유하고, 이에 개입한 인물이다. 여기서 어딘가 묘한 점이 있다. 이 둘은 현재 진행 중인 메트로폴리탄 관련한 윤갑근 전 고검장의 알선수재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서고 있기 때문이다. 윤 전 고검장은 2019년 7월 이종필과 김영홍에게 ‘우리은행장(손태승)을 만나 펀드를 재판매하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받고 그 대가로 메트로폴리탄으로부터 2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검찰이 메트로폴리탄 관련 수사를 하면서, 정작 메트로폴리탄 사업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 둘을 증인으로 둔 셈이다. 이에 따라 ‘구조적으로 모순된 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 김영홍이 거의 2년째 안 잡히고 있는데.
“왜 이렇게 못 잡는 걸까.”
― 왜일까.
“이쯤 되면 수사기관에서 의지가 없다고 봐야 되지 않겠나. 하긴 막상 잡는다고 해도 골치 아프고, 피곤할 거다. 예를 들어 외국 법인인 리조트를 압류하는 과정도 국제법상 복잡할 것이고….”
― 정치권 로비 의혹도 제기되는데, 아는 바가 있다면.
“검사와는 친분을 유지했지만, 정치인을 만나는 건 못 봤다. 이런 얘기를 했다. ‘국회의원은 막상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돈만 뜯어가기 때문에 안 만난다’고.”
A씨는 이어 “2018년 무렵 김영홍이 대량의 수표를 내게 건네며 일반인인 모씨에게 전하라고 한 적이 있다. 정황상 돈세탁이었다”면서 “혹시 몰라 그때 수표번호를 다 적어놨다. 수사기관에서 이를 추적하면 새로운 사실이 나올 수도 있다”고도 했다.
― 그가 잡힐까.
“피해를 본 사람이 얼만데, 잡아야지. 무엇보다 펀드 피해자들이 아직도 가슴을 치고 있지 않나. 평생 쌈짓돈을 모아 투자한 고령자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돈 수백억원을 횡령해 호의호식했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에서 펀드 피해금을 보상해주겠다고 하던데, 여기에는 일정 부분 국민 세금도 들어가는 것 아닌가. 김영홍 수중에는 못해도 500억원은 있을 거다. 이 자금을 환수해 피해금을 충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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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6. 8
금감원, “대신증권 판매 라임 투자자에 최대 80% 배상” 결정
‘전액 배상’ 요구 투자자 여전히 반발…라임 펀드, ‘불완전판매’ 아닌 ‘사기’
글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금감원이 29일 대신증권에 라임펀드 투자자들에게 최대 80%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2020년 10월 금감원 앞에서 라임 대신증권 피해자 모임이 분쟁 조정 촉구 집회를 하는 모습. 사진=조선DB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29일 대신증권에 라임펀드 투자자들에게 최대 80%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사기가 적용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100%)’를 제외하고 불완전판매 배상비율로는 최고 수준이다. 앞서 KB증권(60%), 우리·신한·하나은행(55%), 기업·부산은행(50%)은 손해배상비율이 50∼60%이었다.
80%는 ‘기본비율’에 ‘공통가산비율’을 더한 수치다. 분조위는 대신증권의 배상책임 기본비율을 기존 30%가 아닌 50%로 산정했다. 여기에는 라임펀드 약 2500억원어치를 판매한 대신증권 반포WM센터 장모 전 센터장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금지’ 규정을 위반해 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공통가산비율 30%는 본점의 영업점 활동 통제가 미흡했다는 점을 고려한 수치다. 특정 영업점(반포WM센터)에서 본점의 심의·검토를 거치지 않은 설명자료를 활용한 불완전판매가 장기간 계속되고 고액·다수 피해자가 나왔다는 분석이다.
대신증권을 통해 라임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의 손해배상비율은 투자권유 위반 행위 여부, 투자자의 투자경험, 가입점포 등에 따라 개인 40∼80%, 법인 30∼80%로 자율 조정된다. 현재 대신증권에서 가입한 라임펀드 중 미상환된 금액은 1839억원(554계좌)다.
이번 분조위의 쟁점은 대신증권이 판매한 라임펀드에 사기적 부정거래에 따른 ‘계약취소’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계약취소가 인정되면 100% 배상이 가능하지만 불완전판매로 결론이 날 경우 일부 배상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액 배상’을 요구해온 투자자들은 이번 결정에 반발했다.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는 “이번 분조위 결정은 상품 자체의 사기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피해자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라면서 “대신증권 본점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설명 자료를 활용한 상품을 판매한 것 자체가 사기성이 농후한 것인데, 이를 불완전판매와 같은 선상에서 판단하는 것은 피해자를 우롱하는 일”이라고 했다.
글=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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祕話
라임 ‘몸통’의 오른팔이 밝히는 라임 사태
현직 검사 자주 찾던 ‘텐프로’ 主人, 훗날 라임 主犯 되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 사태 발발 2년 접어드는데 라임 수사 여전히 지지부진, 왜?
⊙ 2012년 화제였던 ‘특급호텔 성매매 사건’의 숨은 이야기
⊙ 펀드 고객 쌈짓돈으로 필리핀서 먹고, 자고, 즐긴 라임 일당들
⊙ 김영홍 소유 ‘텐프로’서 이종필과 만난 검사? “특수부, 사투리, K대 출신”
⊙ 박범계 장관, “검사 술자리 관심 갖고 있지만, 아직 조사 단계 아냐”
⊙ 오른팔 A씨, “국민 세금으로 투자자 보상? 주범 잡아 재산 환수해야”
10년간 김영홍의 ‘오른팔’로 지냈던 A씨. 사진=박지현 기자
“야, 그 검사 뽀뽀하는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내놔라.”
라임 ‘몸통’으로 지목된 김영홍(48·적색 수배 중) 메트로폴리탄 회장은 해외로 도주하기 전 강남에서 룸살롱을 운영했다. 이곳에 현직 검사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10년간 그의 ‘오른팔’로 살았다는 A씨는 이 룸살롱의 이른바 ‘바지사장’이었다. 그는 “김영홍은 오래전부터 검사 및 수사관들과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면서 “그러면서도 만일을 대비해 (업소에 찾아온) 검사들의 증거를 수집해놨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지지부진한 라임 수사가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메트로폴리탄은 라임으로부터 3500억원(최대 5000억원까지 추산)을 투자받은 부동산 시행사다. 이 3500억원이 라임 사태의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투자금은 당초 목적과 달리, 주로 코스닥 상장사들의 부실 전환사채(CB)를 되사는 데 쓰였다. 김영홍은 이 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창구로 메트로폴리탄 계열사를 23개나 세웠다. 라임 사태가 발발한 지 만 2년이 다 돼가지만, 메트로폴리탄과 관련된 인물은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김영홍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며, 이들 가운데는 라임 관련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활동하는 인물도 있다. 지난 6월 1일 A씨를 만나 라임 사태 이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라임 이슈가 한창이던 시기 필리핀에 체류하다 최근 귀국했다.
― 김영홍과의 관계는.
“10년 지기다. 2011년 초, 김영홍이 강남 L호텔에 있던 룸살롱을 위탁·운영한 적이 있다. 이때 내가 ‘바지사장’으로 있었다. 운영권한 없이 회계 등을 관리했다. 원래 2차(성매매)가 없던 곳인데 장사가 되지 않자 (김영홍이) ‘2차를 해야겠다’고 했고, 2012년 단속에 걸렸다. 김씨는 ‘지금 전과가 생기면 사업이고 뭐고 다 끝’이라며 대신 처벌 받아줄 것을 부탁해왔다. 나중에 반드시 보상하겠다며. 이를 계기로 유흥업소 바닥에서 소위 말하는 그의 ‘오른팔’이 됐다.”
룸살롱 운영하며 검사들 약점 모아
김영홍. 그간 그의 사진 한 장 드러나지 않고 베일에 싸여 있었다. |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2012년 11월, 강남 한복판 특급호텔 객실에서 버젓이 성매매가 이뤄졌다는 뉴스는 많은 이를 경악게 했다. 단속 전까지 이곳은 강남 최고의 ‘고품격 란제리 풀살롱’으로 통했다. 특급호텔인데다, 지하가 아닌 12~13층에 위치해 고위층 인사들이 특히 많이 찾았다. 실제로 단속 당시 적발된 성 매수자들은 대부분 ‘사’자 직업이었다. L호텔은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고, 김영홍은 이후 삼성동으로 자리를 옮겨 고급 룸살롱(‘텐프로’) 영업을 재개했다.
“L호텔이 문을 닫은 후 삼성동에서 ‘초○○’이라는 룸살롱을 운영했다. 중간중간 메○○, 오○○로 이름은 몇 번 바뀌었다. 2019년, 김영홍이 필리핀으로 가기 전까지 나는 이곳에서도 ‘바지사장’으로 일을 도왔다.”
― 김영홍은 어떤 사람인가.
“풍채가 좋고 말을 시원시원하게 한다. 없어도 있는 것처럼, 안 돼도 될 것처럼, ‘뭔가 있는 것’처럼 보여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이 꽤 있다. 특히 룸살롱을 오래 운영하며 이를 통해 네트워크도 많이 형성했다.”
A씨는 “검사들도 그중 하나”라며 검사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검사) 여러 명이 자주 왔는데, 기억에 남은 건 2017년 말인가, 2018년 초 겨울이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두 명과 한 유통 대기업 부사장이 온 적이 있다. 김영홍이 기업 간부에게 검사를 소개시켜주는 자리였다. 검사 둘은 선후배 사이였는데, 김영홍은 그중 후배 검사를 가리켜 ‘내 수사(2015년 원정 도박 관련)를 담당했던 검사님’이라고 소개했다.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 그날의 증거가 될 만한 자료가 있는지.
“삼성동 142-××번지 관할 파출소에 기록이 남아 있을 거다.”
― 파출소?
“그날 후배 검사가 술이 많이 취했다. ‘가오’를 부리며 기업 간부에게 시비를 걸더라. 드라마 대사 있잖나. ‘야! 나 대한민국 검사야! 기업 하는 ×× 주제에, 너 내가 털면 뭐 안 나올 것 같아?’ 선배 검사가 ‘그만하라’고 했는데 선배한테까지 대들다가 결국 (선배에게) 맞았다. 그 길로 (후배 검사가) 울며 뛰쳐나가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관 8명이 출동했다. 경찰관이 술 취한 검사 동영상까지 찍어갔다.”
A씨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게 후배 검사는 또다시 “나 검사야”라며 공무원증을 보여줬다고 한다. 경찰은 중앙지검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했고, 결국 당직실에서 그를 수습했다고 한다. 한편 경찰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현재 해당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112 신고내역과 근무일지 문서 보관 기간은 각각 1년, 3년이기 때문이다.
룸살롱서 라임 돌려막기 작전 謀議
이어지는 A씨의 말이다.
“검사들이 찾아오면 사실 실무자는 상당히 피곤하다. 최대한 잘, 무탈하게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김영홍은 달랐다. 뭐 하나 잡아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봤다.”
― 기회?
“(검사가) 여자와 신체 접촉하는 사진이나, 앞서 경찰이 온 날의 경우에는 술 취한 검사 동영상을 찍어서 자기한테 보내놓으라고 했다. 술 취한 검사는 그날 업소 직원의 뺨을 때리기도 했는데, 김영홍은 (검사에게) 겉으로는 너그러이 넘어가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뒤에서는 피해 사실을 다 수집해놨다. 이렇게 검사들의 약점을 무기로 갖고 있었다.”
그 무렵은 김영홍이 라임 사태를 일으키기 위한 ‘물밑 활동’에 한창이던 때다. 룸살롱을 소유한 김영홍은 2017년 말, 배우 S씨의 전 남편인 김정수 전 리드 회장과의 연으로 테트라 건설 시행사를 운영하며 라움의 부회장도 겸하고 있었다. 그러던 2018년 1월, 김 전 회장의 소개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을 만났고, 둘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펀드 돌려막기 작전’을 짰다.
실제로 라임의 돈이 대거 움직인 것도 2018년이다. 보유자금 4조원 중 2조원이 들어온 시기며, 공격적인 투자도 이때 이뤄졌다. 이 중 ‘뭉칫돈’ 3500억원이 모두 메트로폴리탄 계열사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작전은 주로 김영홍의 룸살롱에서 이뤄졌다”면서 “김영홍과 이종필은 처음부터 돌려막기를 할 계획으로 손을 잡고 23개 법인(메트로폴리탄 계열사)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필을 비롯해 대신증권 시절 이씨의 후배던 채모 메트로폴리탄 대표 등 관련자들도 2018년 초부터 업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초○○’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할 때인데, 셋은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대화만 나누다 흩어지곤 했다. 아, 담배도 엄청 피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영홍이 3500억원을 그냥 당긴(투자받은) 건 아니었다.”
― 그냥 당긴 게 아니라니.
“김영홍은 암 치료를 받은 터라 담배 냄새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모두 조심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이종필과 채 대표는 연신 담배를 피웠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채 대표가 김영홍 앞에서 ‘학연, 지연보다 강한 게 흡연’이라며 담배를 꺼내 물던 장면. 그 앞에서 어째 싫은 티 한 번을 안 내더라.”
― 김봉현이 청와대 전 행정관과 수원여객 전무를 만난 곳도 이곳인가.
(라임 사태 발발 직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청와대 전 행정관, 수원여객 전무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거긴 도산대로에 있는 속칭 ‘텐카페’다. 우리 업소에는 밴드가 없다. 김봉현은 소위 ‘뒤처리’를 위해 접대를 한 거고, 김영홍과 이종필은 라임을 시작부터 설계했다는 점이 다르다.”
현직 검사와 술자리 직후 잠적
2019년 10월 14일 환매 지연 사태 관련 기자간담회 중인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 사진=뉴시스 |
그로부터 약 1년 후. A씨는 “얼굴이 익숙한 검사가 다시 룸살롱을 찾아온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2019년 9~10월쯤이다. 검사 하나가 또 업소를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앞서 후배를 때렸던 선배 검사였다. 김영홍이 이 검사에게 이종필을 소개시켜주는 자리였다. 김영홍은 나에게 ‘검사님 이번에 부장검사로 영전하셨다. 너도 얼굴 보면 알 거야’라며 ‘들어와서 인사드려라’ 했다. 룸에 갔더니 그 검사가 ‘지난번 폭행 사건으로 실례가 많았다’며 술을 한 잔 따라줬다. 이종필은 어딘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인상이 좋지 않았다.”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술자리의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9~10월은 검찰・경찰의 라임 수사가 본격화되던 때로, 이종필은 이에 앞서 7월 9일 자로 출국정지 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묘하게도 이 자리 즈음인 2019년 10월 14일 이씨의 출국정지가 해제됐고, 결국 이종필은 2019년 11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잠적했다. 김영홍 또한 술자리 직후인 2019년 11월,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로비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는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 그 검사의 이름은 기억 안 나는지.
“검사들이 하도 많이 와서 이름까지 일일이 기억 못 한다. 명함 하나 주십시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그 검사가) 돈을 안 내거나 여자와 트러블을 일으켰던 것도 아니고. 다만 사투리를 썼고, 안경을 끼지 않았으며, 대체로 깔끔한 인상이었다. 김영홍에 따르면 K대 출신에 중앙지검 특수부 소속이었다. 부장검사라고 했지만 부부장검사였을 수도 있다. 통상 ‘부(副)’자를 생략하기도 하니까.”
박범계, “검사 술자리, 아직 조사 단계 아냐”
삼성동 142-××번지. 이곳은 현재 ‘슈○○○’라는 이름의 ‘셔츠룸’으로 상호가 바뀐 상태다. 접대부들이 속옷 없이 와이셔츠만 입고 나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A씨는 “간판은 바뀌었지만 김영홍은 여전히 이 술집을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소셜미디어에 버젓이 이미지 광고를 올리며 영업을 이어가던 곳인데 현재 잠정 폐쇄된 상태다. 34억원 탈세 혐의로 국세청에 고발을 당하면서다. 강남경찰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이 셔츠룸을 수사 중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A씨는 김영홍 측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최근 경찰에 출석해 위탁 운영 계약서 등 김영홍이 해당 업소의 실소유주라는 증거 자료 2000장을 제출했다. 그러면서 김영홍의 과거 검사 술 접대 의혹이 수면으로 떠오르게 됐다. 지난 6월 중순, 일부 언론에서는 이 내용을 짤막하게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내용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박 장관은 이에 다소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6월 15일 국회 본회의 참석 이후 그는 “(새롭게 드러난 검사 술자리 의혹에) 관심은 갖고 있지만 진상 조사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현재 나와 있는 의혹은 구체성이나 출처,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김봉현의 검사 술 접대 폭로가 ‘검찰개혁’의 결정적 구실(口實)이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선택적 진상 조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범’들의 숨은 자산, 이슬라리조트
한편 김영홍은 A씨 주장에 따른 ‘검사와의 술자리’ 당시, 이미 필리핀으로 도주하기 위한 작업을 모두 마친 상태였다. A씨가 검사와 관련한 사진 등 자료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이유는, 그 또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필리핀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2018년 말경 (김영홍이) 필리핀에 있는 리조트를 하나 인수했다고 했다. 그 리조트 카지노의 임원으로 앉혀줄 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김영홍보다) 미리 넘어가서 한동안 한국과 필리핀을 오갔고, 김영홍은 명동의 한 화장품 가게의 조모씨에게 환치기 업자를 소개받아 200억~300억원을 50억원씩 몇 차례 나눠 달러로 바꾼 후, 2019년 11월쯤 필리핀으로 넘어왔다.”
2018년 10월, 김영홍은 라임에서 투자받은 3500억원 중 300억원을 필리핀 세부 막탄섬에 있는 ‘이슬라리조트’ 인수에 썼다. 그간 이 리조트는 김영홍의 은신처로 알려졌는데, A씨에 따르면 이곳은 복수(複數)의 주범들이 숨겨놓은 자산이자, 휴양처 역할도 했다.
― 리조트에서 맡은 일은.
“이슬라리조트는 법인이 3개인데, 김영홍은 전체 법인의 실질적 대표자 역할을 했고, 나는 올해 1월까지 리조트 카지노의 회계를 관리했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이종필 또한 이 리조트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구속되기 전까지는 수익 배당도 받아 갔다. 이종필은 물론, 채모 메트로폴리탄 대표이사도 이 리조트에 몇 번 다녀갔다.”
― 언제, 정확히 몇 번 다녀갔는지.
“둘이(이종필과 채씨) 2018년 12월에 처음 왔고, 2019년도에도 두세 차례 방문했다.”
― 와서 뭘 했나.
“리조트 사업에 관여했다. 근처에 땅을 보러 가기도 하고 카지노에 들어와서 전반적인 운영에 대한 브리핑도 받았다. 이종필은 카지노 내 한국 직원과 면담도 진행했다. 근무하는 데 고충 사항은 없는지 물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도 제시했다.”
A씨는 “이처럼 이종필과 김영홍은 그간 드러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공유했다”면서 “둘은 경제공동체에서 나아가 ‘운영공동체’였다”고 말했다.
― 이종필과 이슬라리조트의 연결고리는 그간 드러나지 않았는데.
“아주 대놓고 왔다 갔다 했다. 경찰 입회 아래 야외에서 사격도 같이 하고 밤에는 여자들도 불러 놀았다. 이종필 등이 선발대로 들어오면, 여자들은 다음 비행기로 들어오는 식이었다. (이종필과) 마담과 다툼이 나, 서로 ‘죽이겠다’며 고성이 오간 적도 있다. 차마 말 못 하는 노골적인 일도 많았다.”
― 이들이 다녀간 증거자료는 있나.
“(내가 지난 1월) 카지노를 그만두면서 반납한 휴대폰을 돌려받지 못해 사진 같은 건 없지만 목격자들이 많다. 한국에 와 구글 계정으로 연동된 데이터를 찾아봤는데, 극히 소수의 자료만이 남아 있었다. (단체 사진을 보여주며) 이들이 이종필과 면담한 한국 직원들이다. 만일 (이종필이) 수사기관에 거짓 진술을 한다면 출입국 기록을 떼보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A씨에 따르면 이슬라리조트에는 현재 해외 도피 중인 이인광 에스모 회장의 흔적도 있다. 톱스타들의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던 이 회장은 라임으로부터 약 2200억원을 투자받아 티탑스(옛 동양네트웍스), 에스모(옛 넥센테크), 에스모머티리얼즈, 디에이테크놀로지 등 상장사를 연이어 인수한 후 허위 공시 등을 통해 주가를 띄웠다는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김영홍과 이인광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움직였다고 알려져 그간 이들의 직접적인 접점은 드러나지 않았다. A씨의 말이다.
“이인광이 중국에서 마스크팩 사업을 했었는데, 김영홍이 메트로폴리탄 관계사를 통해 그 사업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중국에서 대량의 마스크팩이 컨테이너로 건너온 적이 있다. 메트로폴리탄을 통해 투자했다면 한국으로 가는 게 맞는데 필리핀으로 넘어온 거다. 결국 이 100억원도 공중으로 뜬 셈이다. 지금도 이슬라리조트에 그 마스크팩이 쌓여 있다.”
국적세탁 후에도 韓 건강보험 혜택 받아
― 필리핀 체류 당시 김영홍은 어디 살았나.
“원래는 어느 호텔의 스위트룸에 머물 계획이었는데 호텔 공사가 지연돼 리조트 내부에 있는 빌라에 살았다. 총 14개 동이 있었는데, 8호에 (김영홍이) 거주했었다.”
―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지.
“김영홍이 아직까지 이슬라리조트에 머물고 있다는 보도가 있던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김영홍은 필리핀에 한 달 정도 머물다가 2019년 12월 마카오로 넘어갔다. 실질적으로 나와 함께 체류한 건 아주 잠깐밖에 되지 않는다. 마카오로 건너간 후에는 한동안 텔레그램으로 소통했다. 이를 통해 업무지시를 내렸고, 상황도 보고받았다.”
― 그럼 2019년 12월 이후로는 김영홍을 못 본 건지.
“얼굴을 본 건 2019년 12월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는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다, 라임 이슈가 점점 커지면서 연락이 끊겼다. 내가 카지노에서 일한 올해 1월까지, 리조트에 들른 적도 없다. 필리핀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지만, 정확한 행방은 모른다. 제3국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필리핀에서 도장을 찍지 않고 출국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 이미 국적세탁을 했다던데, 국적을 아는지.
“친해도 딱히 여권을 보지는 않으니까 국적이 어딘지는 모른다. 2010년에 이민 출국으로 해외에 나간 적이 있고, 국적 말소는 2015년경 된 걸로 안다. 그럼에도 계속 한국에서 건강보험 혜택은 받았다. 2019년 12월 마카오에서 텔레그램을 보내 ‘한국에 가서 (서울) 옥수동 △△내과에서 당뇨약을 처방받아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 3만4200원을 결제했는데, 보험이 적용된 금액이었다. 그러고 보면 (김영홍은) 진짜… 이 나라에 뭐 (기여)한 게 전혀 없는 사람이다. 군대마저 뺐다(안 갔다).”
메트로폴리탄 수사 2년째 지지부진
― 현재까지도 이 리조트 온라인 카지노 등의 수익금이 김영홍의 도피 자금으로 쓰인다던데.
“사실이다. 마카오로 넘어간 후에도 김영홍의 돈은 계속해서 카지노에서 관리했다. 꾸준히 배당을 받았고 지금도 실질적인 리조트 소유주로서 배당을 받고 있으며, 차명 계좌를 통해 몇몇 이해관계자에게도 배당금이 전달되고 있다. 최근 남부지검에도 이 같은 내용을 진술했고, 관련된 회계 자료를 모두 제출한 상태다.”
― 그런데 마카오에는 왜 간 건지.
“당시 메트로폴리탄 채모 대표와 라움의 박모 부장(메트로폴리탄 사내이사)을 마카오에서 만나 테트라와 프로방스 관련 사업을 논의할 거라고 말했다.”
A씨의 말에 따르면 채모 메트로폴리탄 회장과 라움 박모 부장은 김영홍과 긴밀하게 사업 내용을 공유하고, 이에 개입한 인물이다. 여기서 어딘가 묘한 점이 있다. 이 둘은 현재 진행 중인 메트로폴리탄 관련한 윤갑근 전 고검장의 알선수재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서고 있기 때문이다. 윤 전 고검장은 2019년 7월 이종필과 김영홍에게 ‘우리은행장(손태승)을 만나 펀드를 재판매하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받고 그 대가로 메트로폴리탄으로부터 2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검찰이 메트로폴리탄 관련 수사를 하면서, 정작 메트로폴리탄 사업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 둘을 증인으로 둔 셈이다. 이에 따라 ‘구조적으로 모순된 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 김영홍이 거의 2년째 안 잡히고 있는데.
“왜 이렇게 못 잡는 걸까.”
― 왜일까.
“이쯤 되면 수사기관에서 의지가 없다고 봐야 되지 않겠나. 하긴 막상 잡는다고 해도 골치 아프고, 피곤할 거다. 예를 들어 외국 법인인 리조트를 압류하는 과정도 국제법상 복잡할 것이고….”
― 정치권 로비 의혹도 제기되는데, 아는 바가 있다면.
“검사와는 친분을 유지했지만, 정치인을 만나는 건 못 봤다. 이런 얘기를 했다. ‘국회의원은 막상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돈만 뜯어가기 때문에 안 만난다’고.”
A씨는 이어 “2018년 무렵 김영홍이 대량의 수표를 내게 건네며 일반인인 모씨에게 전하라고 한 적이 있다. 정황상 돈세탁이었다”면서 “혹시 몰라 그때 수표번호를 다 적어놨다. 수사기관에서 이를 추적하면 새로운 사실이 나올 수도 있다”고도 했다.
― 그가 잡힐까.
“피해를 본 사람이 얼만데, 잡아야지. 무엇보다 펀드 피해자들이 아직도 가슴을 치고 있지 않나. 평생 쌈짓돈을 모아 투자한 고령자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돈 수백억원을 횡령해 호의호식했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에서 펀드 피해금을 보상해주겠다고 하던데, 여기에는 일정 부분 국민 세금도 들어가는 것 아닌가. 김영홍 수중에는 못해도 500억원은 있을 거다. 이 자금을 환수해 피해금을 충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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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펀드 2400억 종착지, 미국은 알고 있다

지난 6월 29일부터 미국을 방문해 7월 7일 귀국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해외 출장 목적에 대해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 장관의 미국 방문 목적이 2019년 1조6000억원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켜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로 불리는 라임자산운용(라임)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장관은 취임식 당일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됐던 서울 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다시 출범시켰다. 한국 ‘여의도 저승사자’가 남부지검이라면, 미국 뉴욕 ‘월가 저승사자’는 뉴욕남부연방검찰이다. 한 장관은 지난 7월 5일(현지시간) 이곳을 방문해 국제적인 부정부패에 대한 공조수사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장관의 뉴욕 방문이 라임 사건 해결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데는 이미 미국 수사당국이 돈의 흐름을 비롯한 라임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라임 돈의 상당 부분이 미국 사모펀드로 흘러 들어갔는데, 미국 측은 관련 수사를 이미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조선은 오랜 기간 해외 자산 도피 사건을 다뤄온 메리 리 미국 변호사와 이대순 변호사의 협조를 얻어 라임 사건 관련 한·미 수사당국의 자료를 입수해 소문만 무성했던 라임의 해외 돈 빼돌리기 의혹을 추적해봤다.
우선 2019년 라임 사태가 터진 것은 미국 사모펀드 IIG(International Investment Group LLC)에 투자한 2400억원이 공중에 날아간 것이 결정타였다. 2019년 11월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는 증권사기 혐의로 IIG 등록을 취소하고 펀드 자산을 동결했다.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기 전 라임의 수탁고는 총 4조5000억원대였다. 라임은 해외투자용 펀드 2개와 국내투자용 펀드 2개에 투자금을 비슷하게 나눠 투자해왔는데, 이 중 해외 무역금융 채권에 투자한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는 펀드 자산 약 6000억원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2400억원을 IIG에 투자했다.
그런데 라임이 IIG가 무역펀드라며 2400억원을 투자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평가가 많다. 무역펀드란 해외 무역 거래에서 발생하는 선결제, 운임, 원자재 구매 비용 등의 단기자금을 빌려주고 이자 수입을 올리는 펀드다. 이대순 변호사는 “무역펀드라고 하는데 쉽게 설명해 고금리 사채놀이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무역펀드가 되려면 은행이 지급을 약속한 신용장(L/C) 등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줘야 하는데, 회수가 전혀 안 된 것을 보니 금융회사 어디도 원금 보장을 하지 않았다”며 “정상적으로 리스크 평가를 하면 돈을 보낼 수 없는 펀드였다”고 했다.
IIG는 원래 남미 커피농장, 수산물 등에 투자를 해왔는데 이것 역시 이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리 리 미국 변호사는 “해외 농산물에 투자를 한다면 실제 농사를 짓는지 현지에 가봐야 알 수가 있는 것”이라며 “농사를 짓지 않고도 얼마든지 돈을 빼돌릴 수 있어 해외 펀드의 사기 수법에 많이 이용된다”고 했다. 이렇듯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투자였으나, 결국 라임 돈 2400억원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2019년 11월 미국 SEC가 사기혐의로 IIG를 기소한 내용을 보면 충격적이다. 이미 2007년부터 IIG는 깡통이었으며 돌려막기를 통해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임이 거의 마지막 투자자로 2400억원(2억달러)를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재판 결과 IIG 경영진은 구속되고 남은 돈 중 3523만달러는 미국 정부가 추징금으로, 2400만달러는 경영진과 직원들 변호사 비용으로 처리하라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에서도 피해자에게 돌아갈 돈은 없었다. 이에 대해 이대순 변호사는 “한국·미국의 사기범들은 마지막 순간에 돈을 해외로 빼돌리고, 몇 년의 감옥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SEC의 IIG 기소장을 보면 2017년 돌려막기(폰지사기)로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던 IIG에 ‘단비’가 내린다. 갑자기 펀드에 7000만달러가 들어온 것이다. 7000만달러를 입금시킨 인물은 ‘투자자-1(Investor-1)’. 이 인물은 2017년 1억3000만달러를 추가로 집어넣는다. 총 2억달러를 IIG에 입금시킨 것으로, 라임이 IIG에 집어넣은 돈의 액수와 입금 시점이 일치한다. 결국 미국 측 기소장에 등장하는 ‘투자자-1’이 라임일 가능성이 크다.
SEC가 주목한 것은 IIG가 한국에서 돈을 끌어오기 바로 전에 돈을 빼돌릴 방법까지 만들어 놨다는 점이다. 라임이 돈을 집어넣기 바로 직전에 IIG는 ‘파나마론(Panama Loans)’이라는 상품을 만든다. 파나마론의 수익성을 좋게 만들기 위해 유령회사들(shell companies·사기를 위해 서류상으로 만들어 놓은 회사)을 차려놓고 이들에게 고수익으로 돈을 빌려줬다는 것을 증명하는 약속어음 등의 서류도 만들어 놓는다. 돈이 들어오면 곧바로 이런 유령회사들에 흘러가는 구조였다. 미국 SEC는 파나마론의 회사들이 처음부터 유령회사로 가치가 없었으나(worthless), 그럼에도 IIG는 장부에 허위 자산으로 수천만 달러 가치가 있는 것처럼 적어 놓았다고 기소장에 적시했다. 메리 리 미국 변호사는 “기소장의 구조로 볼 때, 라임이 2400억원을 IIG에 투자하기 직전부터 돈을 빼돌리기 위한 치밀한 준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2400억원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의심이 들기 충분하다”고 했다.
기소장에 등장한 ‘직원-1’을 주목하라
돈을 빼돌릴 방법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향후 한국에서 2400억원(2억달러)이 확실히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돈을 한국에서 가져오고 그 돈을 빼돌릴 계획에 참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은 기소장에 비실명으로 등장하는 ‘직원-1(Employee-1)’이다. 기소장을 보면 돈을 빼돌리기 위한 유령회사를 만드는 데도 ‘직원-1’이 큰 도움을 줬다.
‘직원-1’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직원의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한 요청서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내용을 보면 ‘직원-1’은 ‘이미 수사에 협조했으니 신변 보호를 위해 비공개 재판과 자료 등에서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부분은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한다. 메리 리 변호사는 “신원을 보호해 달라는 ‘직원-1’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아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형을 감경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직원-1’이 사기 펀드의 구조와 들어온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증언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사법 당국은 ‘직원-1’ 등의 도움으로 사건의 실체를 모두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라 미국 수사당국의 기록이 한국 측에 넘어오면 2400억원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라임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낸 ‘직원-1’이 한국계 외국인을 뜻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일 가능성도 있다. 통상 미국은 해외에서 투자를 받을 경우 그 나라 언어와 문화에 능통한 금융전문가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나라에 적합한 투자 상품을 만들고, 현지 인맥을 이용해 자금을 끌어오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라임 사건을 다루는 한국 수사당국이 미국 측에 요청해야 할 자료에 대해 메리 리 변호사는 “IIG의 한국과의 관계(connection), 자금 흐름, IIG의 한국 투자에 관여한 인물 정보, 그들의 현재 위치와 받은 보수 등을 요청해서 받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미국으로 빼돌린 돈을 미국 법에 근거해 다시 찾아오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메리 리 변호사는 “한국 피해자들은 라임펀드 상품에 투자했고, 라임은 그 일부를 IIG의 상품에 투자했다”며 “IIG가 거짓으로 투자를 유치했다면, 라임이 IIG를 고소해야지 개개의 투자자들은 IIG를 고소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더욱이 라임 경영진은 2019년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 자신들이 투자한 IIG의 부실펀드를 싱가포르 소재 금융사에 넘기고 다른 펀드로 바꿔치기 했는데 그 역시 깡통이어서 결국 2400억원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싱가포르는 해외 자산 도피처로 유명한 곳이다. 라임 경영진은 펀드 돌려막기로 증거를 없애면서 막판에 고객 돈을 지키기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근거를 남겨 형량을 줄이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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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조6000억원 환매 중단 사태로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로 불리는 라임자산운용(라임) 피해자들은 금융권으로부터 “발생 가능한 위험을 0%에 가깝게 조정한 펀드”라며 가입을 권유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들은 사건이 터진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환매 중단된 1조6000억원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어떻게 투자돼 자신들에게 손실을 입혔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됐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새로 출범시키면서 감춰졌던 라임의 진실이 밝혀질 것인지 피해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20년 1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합수단을 해체시킬 때도 ‘라임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봉인하기 위해서’라는 뒷말이 많았다.
지난 6월 14일 서울 강남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정구집 라임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라임의 진실을 파헤치는 일을 계속해 왔다. 정 대표는 지난해 5월 열린 김부겸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김 총리 딸이 가입한 라임의 특혜성 펀드가 “일반인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펀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정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들에겐 대담한 사기행각을 벌이고 어떻게 이런 (특혜성) 펀드를 만들어 팔 수 있냐”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라임 상품을 판매했던 증권사가 “독약이 든 통을 비타민 라벨을 붙여서 판 것이었다”면서 “모든 기관이 모든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에 라임 진실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사모펀드는 원래 위험한 것이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모펀드 등급은 위험한 1등급부터 은행 예금 수준인 6등급까지 다양하다. 대신증권은 위험하다고 표시된 실제의 라임펀드 설명서를 가입자에게는 숨기고, 아예 새로운 펀드 상품으로 날조했다. 상품설명서를 보면 위험등급이 은행 예금과 같은 6등급 수준이다. 증권사 측은 오히려 은행 예금보다 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펀드운용사가 아닌 펀드판매사인 대신증권이 ‘판매사의 사기행위(사기적 부정거래)’라는 최초의 판결을 받은 이유가 아예 처음부터 실제 라임펀드와 무관한 가짜 상품을 조직적으로 날조해서 팔았기 때문이다.”
- 실제 라임펀드의 위험 등급은 무엇이었나. “최고 고위험인 1등급이었다. 어떤 식으로도 운용사가 투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투기성 펀드였다. 대신증권은 독약이 든 통을 비타민 라벨을 붙여서 판 것이다.”
- 라임펀드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가입했나. “최소 1억원 이상 투자해야 했는데 주로 나이든 노인들이 은퇴자금을 집어넣었다.”
- 라임펀드를 대신증권이 팔 때 뭐라고 했었나. “담보가 확실한 금융상품이라고 했다. 돈을 빌려주면서 200% 부동산 담보를 잡기 때문에 무조건 확정 수익이 보장된다고 했다. 리스크가 제로라고 했다. 그리고 대신증권이 세세하게 관리한다고 했다.”
- ‘리스크 제로’라는 말을 정말 믿었나. “제도권 금융사가 멀쩡하게 제공하는 상품설명서에 적혀 있었고 여러 차례 설명회도 열어 동일한 말을 했다. 돈을 굴릴 때 50억원을 빌려주면 100억원을 담보로 잡는다고 했다. 삼성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A급 이상의 회사에만 돈을 빌려준다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 은행 예금보다 안전하다고 했다. 은행 예금은 사고 나면 5000만원까지만 보장해주니까. 원금뿐 아니라 수익까지 보장해 준다고 했다.”
- 금융사 입장에서는 적당히 과장해서 팔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불완전판매라는 이유를 들어 책임에서 벗어나면 되는데 왜 가짜상품설명서까지 만들었을까. “그래서 처음부터 사기 치려고 작정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사고 당시 전 정권 핵심 인사가 ‘처음부터 사기칠 생각은 없었는데, 유동성 문제로 생긴 구멍을 메우려다가 주가조작을 하게 되었는데 점점 부실이 커지게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라임은 사기를 기획하고 설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금융 해프닝 혹은 운영상의 실수이니 적당히 배상만 해주면 되고 수사는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 당초 라임은 돈을 굴릴 능력이 있었나. “이들이 실제 투자한 것은 거의 없다. 1조원 넘게 투자를 했으면 부동산이든 회사 시설이든 뭐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나도 없다. 라임이 자기들은 주가조작이라도 해서 고객들에게 수익을 주려고 했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보니 조작을 해서 주가가 올라간 것은 자기들이 빼가고, 거품을 만든 다음 라임펀드 돈을 집어넣었다. 자기들이 빼돌린 돈을 ‘땜빵’하는 용도로 고객 돈을 집어넣은 것이다. 결국 1조6000억원이 ‘빵꾸’가 났다.”
- 1조6000억원은 어디로 갔다고 보나.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것이다. 3년 동안 국세청, 금감원, 검찰이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파악해서 결론을 내 알려줘야 할 것 아닌가. 한두 푼도 아닌데, 아직도 이야기가 없다. 다단계 사건도 끝나고 나면 돈이 어디로 갔는지 나오는데 라임펀드 1조6000억원의 종착지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 라임의 실체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모든 기관이 모든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고가 난 펀드 리스트는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영업비밀이라고 공개를 하지 않다가 다음에는 라임에서 투자받은 회사가 혹시 피해를 받을 것 같다며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환매 중단 가능성이 금융계에서 이야기되었던 2019년 8월경부터 몇 개월 동안 남부지검, 금감원이 라임펀드를 조사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왜 조사를 했는지, 무엇을 알아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김부겸 총리 딸과 라임사기 총책 둘만의 비밀펀드인 라임 테티스11호에 대해서도 이런 펀드가 존재했는지, 가입자가 누구인지, 어떤 펀드인지 알려달라고 오래전부터 요청했었는데 모든 기관이 한결같이 ‘모른다’라고만 답했다. 나중에 보니 다 알고 있었다.”
- 라임이 망했는데 (VIP 펀드로 의심되는) ‘폴라리스1호’ 수익률은 40%가 넘는다고 알려졌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우리는 깡통인데, (환매 중단 당시) 폴라리스1호는 1년 수익이 16%였고, 지금은 40%가 넘는다. 담당 검사에게 물어봤는데 설명을 못하더라.”
- 김부겸 전 총리 딸이 투자했다고 하는 ‘테티스11호’ 역시 수익이 높다.(테티스11호에 가입한 사람은 6명으로 이 중 4명이 김 전 총리 차녀 가족들로 밝혀졌다. 부부와 손자 손녀가 각각 3억원씩 총 12억원을 투자했다. 테티스11호는 다른 펀드와 달리 환매 수수료가 없고 환매 신청 후 나흘 만에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김부겸 전 총리 인사 청문회에서 어떻게 가입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봤는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전화해서 딸에게 물어보라고 했는데 답을 못 하겠다고 했다. 김부겸 총리 가족이 가입하게 된 과정이 밝혀지면 비슷한 과정으로 연결된 또 다른 실세들도 밝혀지기 때문에 답변을 못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 라임의 부실을 숨기고 판매한 혐의를 받는 장모 전 대신증권 반포 WM센터장에 대한 형이 낮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5월에 2년 징역형을 다 살고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라임펀드를 2000억원 넘게 사기 판매했기 때문에 검찰은 10년을 구형하였는데 핵심적인 범죄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었는데도 막상 선고된 형은 2년에 불과했다. ‘(형이 2년에 불과한 것으로 봐서) 장씨가 VIP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라는 말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장씨 측은 1심 재판 중에 테티스11호를 언급하면서 김부겸 차녀 가족의 실명을 굳이 언급했다.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무언가 더 큰 것을 알고 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 맛보기 정도로 폭로한 것 아닌지 피해자들은 의심을 하고 있다.”
- 장씨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나.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당시 펀드 전용 판매 센터를 세운 곳은 대신증권이 유일했다. 라임펀드뿐이 아니다.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등 전 정권과 유착 의혹이 있는 펀드들을 주도적으로 판 인물이다. 장씨가 ‘대신증권 목줄을 쥐고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피해자들에게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