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과정을 저해한 것이고, 나아가 그 과정에서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공직을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어서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드루킹’(김동원ㆍ구속 수감) 일당과 댓글 순위 조작 등을 공모한 혐의로 지난 1월 30일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1심 판결문 중 한 대목이다. 현직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여권의 유력 정치인을 겨냥해 재판부가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표현한 게 눈에 띈다.
“죄질 매우 불량하고 무겁다”
판결문은 김경수 지사가 “사후(事後)에 조작이 불가능한 여러 객관적인 물증과 그에 부합하는 관련자들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범행을 모두 부인하면서... 단순히 인사 추천만 했을 뿐이라는 등 수긍하기 어려운 변소(辯訴)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변소’란 ‘자신을 변론하다’는 뜻의 법률 용어다. ‘변소로 일관하고 있다’를 좀 더 쉽게 말하면 ‘자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외에도 “위법성의 정도가 중대(重大)” “죄질이 무겁다”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등의 표현을 판결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월간조선》은 김경수 지사의 1심 판결문을 입수해 그 내용을 면밀히 분석했다. 판결 요지는 이미 많은 언론이 보도했지만, 김경수 지사의 구체적인 범죄 행위를 판결문 바탕으로 심도 있게 다룬 적은 거의 없다. 《월간조선》은 160장(A4 용지 기준)에 달하는 판결문 전문(全文)을 기반으로 ▲김경수 지사와 드루킹 일당의 구체적인 범죄 행위 ▲범죄 행위에 관한 재판부의 시각 등을 담아봤다.
사건의 두 갈래
김경수 지사에게 적용된 혐의는 ‘컴퓨터 등 업무방해 혐의’(징역 2년)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다. 김 지사의 구체적인 ‘범죄 사실’을 판결문에서 발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피고인(김경수-기자 주)은 2016. 6. 30.경 김동원을 소개받아 알게 된 후, 2016. 11. 9.경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하여 김동원으로부터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 및 대선 선거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내부 조직 및 향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운용할 ‘댓글 순위 조작 프로그램’(일명 ‘킹크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다.
■ 피고인과 김동원 등은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일반인들이 많이 열람한 것으로 분류되는 소위 ‘대문 기사’ 중 정치 부분 뉴스 기사를 이용자들이 많이 구독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뉴스 기사 하단에 1차로 노출되는 댓글란에 경공모가 지지하는 댓글이 위치할 수 있도록 킹크랩 관리 서버의 지령에 따라 작동되도록 하여 자신들의 정치적인 의사에 따라 기사의 댓글 순위를 기계적으로 조작하기로 순차 공모했다.
■ 김동원과 도○○은 댓글 순위 조작 시스템을 동원해 위와 같이 더불어민주당 경선 및 대선 선거운동을 지원하고 그 대가로 피고인에게 적대적 M&A를 통한 재벌해체라는 경공모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주요 요직에 도○○이 임명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구하기로 계획하였다.>
‘범죄 사실’을 기초로 했을 때, 이 사건은 크게 ▲김경수 지사의 개입하에 이뤄진 드루킹 일당의 ‘댓글 순위 조작’ ▲도○○을 ‘일본 오사카총영사’에 임명하기 위한 김동원의 인사 청탁으로 나눌 수 있다.
특정 프로그램 사용해 조직적으로 ‘댓글 순위 조작’
‘댓글 순위 조작’부터 알아보자. 그러기 위해선 ‘경공모’와 ‘킹크랩’에 대해 알아야 한다. 경공모란 ‘드루킹’ 김동원이 2009년 1월 5일 경부터 운영자로 활동한 인터넷 네이버 카페 ‘경제적공진화모임’의 줄인 말이다. 킹크랩은 ‘댓글 순위 조작 시스템’의 이름이다. 킹크랩에 작업할 뉴스 기사의 웹페이지 주소(URL)와 작업 대상 댓글의 키워드, 공감 또는 비공감, 사용할 휴대전화 개수 및 아이디(ID) 개수 등을 입력한 후 명령을 실행하면, 해당 댓글들에 자동‧반복적으로 ‘공감·비공감’ 클릭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원하는 댓글이 상단에 올라가게 된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기준)과 김동원 등은 2016년 12월 4일 21시17분경부터 2018년 2월 8일 03시28분경까지 총 2325개의 네이버 아이디와 킹크랩 프로그램을 이용해 총 7만 5788개의 네이버 뉴스 기사의 각 댓글 118만 6602개에 총 8833만 3570회의 ‘공감·비공감’ 클릭 신호를 보냈다. 마치 다수의 네이버 이용자들이 실제로 네이버에 접속한 것처럼 허위의 클릭 신호를 보낸 것이다.
2017년 3월 3일 12시11분경부터 2017년 4월 29일 12시37분경까지 총 204개의 ‘네이트’ 아이디와 킹크랩 프로그램을 이용해, 총 7개의 네이트 뉴스 기사의 각 댓글 38개에 총 3088회의 ‘추천·반대’ 클릭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즉,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 조직적으로 댓글 순위 조작을 했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고인은) 김동원 등과 공모하여 위와 같이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네이버, 다음, 네이트의 각 정보처리장치의 통계집계시스템에 장애를 발생시킴으로써 피해자 회사들의 댓글 순위 산정 업무를 각각 방해하였다”고 판단했다.
‘經人先’의 탄생 과정
댓글 순위 조작의 핵심 축이던 ‘경공모’는 ‘경인선(經人先)’과 관련이 깊다. 재판부는 2016년 9월 12일, 김동원이 경공모 회원들을 중심으로 경인선 조직을 꾸렸다고 판단했다. 경인선이란 ‘경제도 사람이 먼저다’란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7년 대선 기간 중, 한 유세장에서 수행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인선으로 가자’고 여러 차례 외치던 조직이다. 당시 김정숙 여사를 수행한 이 중 한 명이 바로 김경수 더불민주당 의원이다.
재판부의 심리(審理) 결과, 김경수 의원과 김동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과 경기도 파주의 경공모 사무실 등지에서 총 11번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김경수 의원은 경공모 사무실을 첫 방문한 2016년 9월 28일, 김동원에게서 경공모와 경인선에 관한 소개를 청취했다. 판결문 상, 김 의원이 처음으로 경인선이란 조직에 대해 보고를 받은 날이다.
재판부는 김경수 의원의 경공모 사무실 첫 방문 이후, 김경수-김동원 간의 본격적인 ‘협력 관계’가 이뤄졌다고 봤다. 판결문에는 “(김동원은) 2016년 10월경부터... 2018년 3월경까지 1년 6개월 동안 박○○이 댓글 작업에 관하여 정리한 기사 목록을 피고인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로 전송하였다”고 적혀 있다. 재판부는 이 기간 동안 김경수 의원에게 전송한 기사의 수가 총 8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2017년 11월 9일, 김경수 의원은 경공모 사무실을 두 번째 방문했다. 이날은 김 의원이 도○○씨를 처음 본 날이면서 킹크랩 시연회를 본 날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1심 공판에서 가장 쟁점이 된 사안 중 하나는 김경수 지사가 이날 시연회를 참관했는지 여부였다. ‘2016년 11월 9일’과 관련한 재판부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 피고인은 2016. 11. 9. 경공모 사무실을 두 번째로 방문하여 경공모 전략회의 팀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동원으로부터 경인선 조직과 선플 작업에 관한 브리핑을 받았고, 경공모 전략회의팀 멤버인 도○○ 변호사 등과 명함을 교환하였다.
■ 2016. 11. 9.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하여 김동원으로부터 온라인 여론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킹크랩의 필요성에 관한 브리핑을 들은 후 킹크랩 프로토타입을 이용한 댓글 순위 조작 작업에 관한 시연을 보았다.>
김경수의 주장, 경공모 회원들의 일관된 진술로 무너져
김 지사가 문제의 ‘11월 9일’ 시연회 자리에 있었고, 댓글 순위 조작에 관한 브리핑도 받았음을 적시한 것이다. 김경수 지사는 사무실 방문은 인정하면서도 킹크랩 시연은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저 경공모 회원들이 온라인에서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선플’(칭찬하는 ‘착한 댓글’)을 달고, 상대 후보에게도 ‘악플’(비난하는 ‘나쁜 댓플’)을 달지 않는 차원의 작업으로만 이해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관련자들의 일관된 진술로 김경수 지사의 주장은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시연회 자리에 있었던 경공모 회원들(우○○, 김○○, 박○○, 장○○ 등)이 김 지사가 참석한 시연회의 상황을 자세히 진술했기 때문이다. 경공모 사무실에서 숙식하면서 김동원과 함께 댓글 순위 조작에 가장 깊숙이 관여한 우○○, 박○○, 양○○의 일관된 진술이 김 지사의 유죄(有罪) 판단에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그 요지를 판결문에서 옮긴다.
<■ 김동원은 ‘피고인이 2016. 11. 9.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하기 전에 우○○이 킹크랩 프로토타입 시연을 보여주었다, 피고인에게 2층 강의장에서 우○○으로 하여금 킹크랩 프로토타입 개발에 사용된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킹크랩 프로토타입 작동 화면을 보여주었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 우○○은 ‘프로토타입이 어느 정도 완성되고 난 후에 피고인이 방문하기 전에 김동원, 박○○, 양○○에게 짧게 시연해 주기도 하였다, 피고인에게 2층 강의장에 휴대전화기를 들고 들어가 프로토타입을 켜고 시연해 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 박○○은 ‘피고인이 방문하였을 때 김동원이 브리핑을 하던 도중에 경공모 회원들을 내보내고 우○○을 불러서 킹크랩 프로토타입을 시연하게 하였는데 당시 우○○이 휴대전화기를 들고 강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 양○○은 ‘피고인이 경공모 사무실을 두 번째 방문한 날 김동원이 브리핑을 하던 도중에 강의장에 있던 경공모 회원들이 강의장 밖으로 나왔고, 우○○이 휴대전화기를 들고 강의장으로 들어갔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위의 밑줄친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참석자들의 진술은 거의 일치한다. 반면 김경수 지사와 김 지사의 변호인은 이들이 ‘경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서로 진술을 짜 맞추고 허위진술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동원 등의 진술은 모두 신빙성이 없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하지만 판결문은 “김동원, 우○○, 박○○, 양○○의 진술은 피고인이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한 날짜가 2016. 11. 9.로 확인되기 전부터 일관되어 온 진술인”이라고 했다. 이어 “진술 내용은 이후에 다른 객관적인 증거로 확인될 수 있는 부분임에도 무턱대고 거짓 진술을 한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온·오프라인 넘나든 경인선의 ‘광폭 행보’
재판부는 김경수 의원이 지속적으로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진 ‘온라인 정보보고’에도 주목했다. 이 정보보고의 성격에 대해 재판부는 “온라인 여론의 조작 위험성을 알리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이 사건 댓글 순위 조작 범행의 도구로 이용된 킹크랩 프로그램의 개발 필요성 및 그 주요 내용을 설명한 것”이라고 보았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김 지사를 비롯한 드루킹 일당은 댓글 순위 조작의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드루킹 일당은 상대적으로 보안성이 높다고 알려진 ‘텔레그램’이나 ‘시그널’ 같은 메신저로 소통했다.
이 정보보고 또한 ‘경인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2016년 11월 9일 김경수 의원이 경공모 사무실을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201611 온라인 정보보고’란 문서를 브리핑 받았다.
이 문서의 맨 첫 부분에 ‘KIS(경인선)조직’이 등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드루킹 일당이 2016년 10월 12일부터 2018년 1월 19일까지 작성한 ‘온라인 정보보고’ 주요 내용에도 경인선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김경수 지사와 드루킹 일당이 경인선 조직을 중요하게 관리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동원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경인선 조직을 이용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경선운동 및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경인선의 활동 범위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었다. 판결문에서 요약한 경인선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경인선 회원들은 텔레그램 ‘KCS방’, ‘밤나들이가즈아방’에 뉴스 기사 URL이 올라오면 수시로 댓글을 달거나 댓글을 클릭하는 댓글 작업을 했고,
▲박○○과 김○○은 2016년 12월경 김동원의 지시로 ‘네이버 경인선 블로그’를 제작하여 2016. 12. 6.부터 2018. 3. 19.까지 약 1,470개에 달하는 문재인 후보 홍보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성격의 글 등을 포스팅하여 온라인상 선거운동을 했고,
▲김동원은 더불어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경인선 타올(타월)을 직접 제작하여 피고인에게 전달하였고,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경인선 회원들이 직접 위 타올을 지참하여 2017. 3. 27. 광주 경선, 3. 29. 대전에서의 충청권역 경선, 3. 31. 부산에서의 영남권역 경선, 4. 3. 서울에서의 수도권역 경선 등 각 경선장에 직접 참여하게 하기도 하였다.>
김경수와 송인배 만나 도○○ ‘이력서’ 전달한 김동원
경공모와 경인선 조직이 체계적으로 운영되자, 김동원은 김경수 의원과 송인배(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씨를 상대로 도○○에 대한 인사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김동원은 2016년 6월 30일, 경공모 회원인 구○○에게 소개받은 송인배씨를 통해 국회의원 회관에서 김경수 의원을 처음 만났다. 송인배씨는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이 중 한 명이다. 그만큼 이 사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방증한다. 송씨는 김동원에게서 2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다른 혐의(정치자금 수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동원은 2017년 2월 7일 김경수 의원을, 같은 해 3월 2일 송인배씨를 만나 도○○의 이력서를 전달했다. 이력서를 전달하면서 김동원은 송씨에게 “도○○을 문재인 후보 법률지원팀에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3월 14일 김동원은 의원회관에서 김경수 의원을 다시 만났다. 이 만남을 갖기 전 김동원은 도○○의 인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문서를 작성했다. 그 내용을 판결문에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 도○○ 변호사의 선대위 추천 문제(한○○ 보좌관과 논의 후 송인배 위원장이 추천)가 지체되고 있는 점에 대한 김 의원(김경수 지사-기자 주)님의 의견을 물어볼 것’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고, 피고인을 만난 이후 2017. 3. 15.경 (김동원이) 텔레그램 전략회의팀 채팅방에 올린 메시지를 보면... ‘아보카님 건은 여차저차해서 송인배가 추천을 해주기로 했는데 일주일 넘게 소식이 없다 하니까, 바둑이 말로는 송인배로는 지금 선대위에 자리 끼워주기 어려울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 본인이 챙기겠다고 했고 송인배를 만나보겠다고 합니다. 만나고 일처리 결과는 추후 알려주기로 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한○○ 보좌관’은 김경수 의원의 보좌관을 말하며, ‘아보카’는 도○○의 인터넷 상 닉네임이고, ‘바둑이’는 김경수 지사의 별명을 의미한다.
도○○의 ‘일본대사行’ 불발되자, 악플 작업에 협박 운운
대선 이후인 2017년 6월 ‘일본대사’ 자리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동원은 6월 7일 국회의원 회관을 방문해 김경수 의원을 또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동원이 김경수 의원에게 ‘도○○을 일본대사로 추천해 달라’고 하자, 김 의원은 ‘일본대사는 문 대통령과 면식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며 거절했다.
김동원은 ‘(김경수 지사가) 3월에 도 변호사의 선대위 추천을 송인배 대신 본인이 직접 챙겨주겠다고 말했으면서도 이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도○○이 선대위에 들어가지 못해 일본대사 추천이 어렵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해서 기분이 언짢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이유로 김동원은 그간 지속해 왔던 ‘댓글 작업’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도○○의 인사 청탁이 관철되지 않자, 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중단한 것이다. 실제로 드루킹 일당은 2017년 6월 11일부터 15일까지 경인선 조직을 이용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이른바 ‘악플’이 상위에 올라가도록 작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동원은 같은 해 6월 14일 12시경 도○○에게 텔레그램으로 메시지와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서를 발송했다.
<지난 7일(6월 7일로 추정-기자 주) 김경수와의 만남에서 몇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가 경선 직전에 갖다준 아보카님과 ○○○○님의 인사자료를 김경수가 챙겨놓거나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아보카님께서 일본대사로 나가도록 힘써달라는 말씀을 듣고 (중략) 김경수에게 청탁을 넣었습니다 (중략) 자신도 당황하니까 송인배 탓으로 돌리더군요.>
같은 날 도○○은 김동원에게 ‘제 느낌’이란 제목의 답신을 보냈다. 여기서 도○○은 인사 문제에 주저하는 김경수 의원을 겨냥해 ‘일종의 협박’을 가하겠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김경수가 일본대사 대신 제시한 자문위원은 전혀 의미가 없는 자리이므로 뉴스 작업을 모두 중단하고 향후 지방선거와 관련한 작업도 하지 않겠다고 김경수에게 통보하고, 김경수는 일종의 협박으로 받아들이겠지만, 현재 내부에서 뉴스 작업과 관련하여 언론 매체와 야당에 양심선언하자고 하는 의견이 있어 논의 중이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넌 김경수-김동원
김동원은 6월 15일 18시50경 도○○에게 ‘지난번에 저 만나고 김경수 의원이 인사 자료를 가지고 청와대 들어가 외교부 특1급 자리 두 곳을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중 한 곳은 오사카총영사라고 들었습니다. 다음주에 김경수 의원과 한 번 더 통화해 보면 정확해질 것 같습니다’러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즈음 김경수 의원은 일본대사 대신 오사카총영사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경수 의원은 2017년 6월 7일부터 14일 사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특임 공관장 자리 중에 오사카총영사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청와대 인사수석실 선임행정관 김○○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도○○을 오사카총영사로 추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5개월이 지나도록 도○○의 인사 문제는 매듭 지어지지 않았다. 2017년 11월 15일 김경수 의원을 만난 후, 김동원이 텔레그램 채팅방에 올린 내용에는 ‘인사 관련- 아보카님 오사카총영사 내정은 12월 중에 결정될 예정임. 바둑이는 오사카가 안 되면 다른 곳도 가능하냐고 질문, 오사카로 내정해 달라고 재차 이야기함. 긍정적으로 추진할 듯’이라고 기재돼 있다.
그해 12월 28일경 도○○의 오사카총영사행(行)은 최종적으로 불발됐다. 이날 김동원은 한○○과 약 10분27초간 통화한 뒤 자신의 측근인 장모 변호사에게 “오늘 김경수 쪽에서 전화 연락을 받았는데, 이 오사카가 힘들고 센다이로 나가야겠다고 얘기를 해서 지금 골치가 아프고 있습니다, 조금 이따가 김경수하고 통화를 해 봐야겠네요’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김동원은 같은 날 20시04분06초부터 20시29분20초경까지 김 의원에게 메신저와 일반 전화를 이용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김경수-김동원 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동원은 ‘2018년 1월 2일 피고인이 직접 전화를 하여 센다이총영사는 어떠냐고 수차례 제안했는데 거절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김경수 지사는 ‘김동원이 오사카총영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얘기했던 기억은 난다’며 ‘오사카가 왜 안 되는지 설명했는데 김동원은 계속 오사카총영사로 추천해 달라고 요구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는 요지의 진술을 했다. 결국 김동원이 도○○의 센다이총영사직마저 거절하면서 김경수-김동원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자리나 탐하는 양아치로 보지 말라’
그렇다면 김동원은 왜 그토록 도○○의 일본대사, 오사카총영사를 집착에 가깝게 관심 보였을까? 그 이유가 ‘돈 문제’ 때문이라고 재판부는 해석했다. 판결문의 관련 대목이다.
<경공모는 소액주주운동을 통한 적대적 M&A의 방법으로 재벌을 개혁하여 경제민주화를 이루고자 하였는데, 김동원은 이러한 경제민주화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자투표제도 활성화와 상법 개정 등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계속하여 유지하여야 하므로 피고인을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또한 소액주주운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해외 자금을 끌어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일본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오사카총영사와 같은 고위 공직에 도○○이 임명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동원의 USB에서 발견된 ‘김 의원님 20171214’ 문서에서도 이러한 정황이 잘 드러난다. 이때는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지고 있던 시점이다. 김동원은 김경수 의원에게 ‘저나 저희 회원들을 자리나 탐하는 양아치로 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김동원은 일본 관련 직책을 요구한 배경에 대해 ‘개성특별행정구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해외 자본의 유치를 위해서 일본 기업 측에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는 직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같은 점에 비춰 “도○○을 오사카총영사로 보내는 것이 김동원과 경공모 조직에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김경수 지사 측은 센다이총영사직을 추천해 주겠다는 제안과 자신의 지방선거 출마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시기 상 김경수 의원이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로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제135조 제3항을 근거로 “선거운동 관련 이익의 제공에 있어 ‘선거운동’이 반드시 이익 제공 당시를 기준으로 하여 그 요건을 충족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김동원에게 도○○을 센다이총영사로 인사 추천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은 공직선거법 제135조 제3항 소정의 ‘이익 제공의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주목되는 민주당의 ‘판결문 분석 기자간담회’
김경수 경남지사의 1심 판결이 나온 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극렬하게 반발했다. 김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판사를 ‘사법 적폐’로 규정하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 최보식(崔普植) 선임기자는 <현 정권은 허익범 특검팀에 고마워해야 한다>(2월8일자)란 제하의 기명 칼럼에서 “어용(御用) 사법부가 아닌 이상 김경수 지사는 무죄가 될 수 없었다. 객관적 물증이 너무 확실한데다 정황 증거와 공모자의 진술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고 밝혔다. 최보식 기자는 사법부를 겨냥해 비난을 쏟아내는 여권과 그 지지 세력을 이렇게 비판했다.
<여당과 지지 세력이 김경수 지사 문제로 며칠째 사법부를 공개 협박하고 난리 칠 일은 분명 아니었다. 진영 논리가 아닌 사실 관계를 따져보면 달라진다. 김 지사 한 명의 구속으로 일단 그쳤으니 운(運)이 참 좋았구나 여기게 될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파탄을 맞았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사법 개혁을 제대로 안 해 사법 농단에 관여됐던 판사들이 아직도 법대(法臺)에 앉아 있다” “국민이 사법부를 압박해야겠다는 의견도 있다” “감히 촛불혁명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대선 불복으로 대한다는 말인가”라며 기세등등한 여당과 지지 세력을 보면 ‘세상을 자기 위주로 편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2월 19일에 ‘김경수 경남도지사 1심 판결문 분석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김 지사 판결문의 법리적 오류를 밝혀내겠다는 취지다. 당초 이 간담회는 2월 12일 열리기로 돼 있었지만, 발제자의 사정 등을 이유로 일주일 미뤄졌다.
민주당이 이 간담회에서 ‘판결문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실관계나 논리를 제시할 수 있을지,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사법 적폐’의 민낯을 들춰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