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2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천안함 폭침 주범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맞춰 남측에 파견한다고 통보한 것과 관련 "본격적으로 남북 대화를 논의할 적절한 인물이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통일전선부장은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육감은 '김영철은 천안함 사건 관련 인물인데'라는 질문에는 "천안함은 김영철뿐만 아니라 북한이 다 관련돼 있다. 이 사건의 최고책임자는 김정은(노동당 위원장)이다. 그렇게 따지면 누구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지금은 과거에 매이지 말고 일단 현재의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육감의 인터뷰에는 천안함 유족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내용은 없다.
"이 사건의 최고책임자는 김정은(노동당 위원장)이다. 그렇게 따지면 누구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맞는 말이다. 천안함 유족들도 북한 인사들의 방문을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 남북이 통일된다면 아들의 목숨이 헛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안함 유족이 원하는 것은 북한이 천안함 폭침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5.24 조치를 해제하지 않은 것도 북한이 ‘금강산 총격 사건’과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은 이유에서다.
한 천안함 유족은 "평화란 가해자가 잘못한 걸 시인하고 사과하고, 피해자가 이를 받아들여 대화에 나설 때 가능한 것 아니냐"며 "지금 우리 정부가 말하는 평화는 피해자 의사 짓밟는 가식에 불과한 것 같다"고 했다.
두 사건을 비교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교육감은 천안함 용사와 유족들을 세월호 희생자와는 다른 잣대로 바라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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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5일 '조선일보' 사설 캡처. |
2016년 2월 25일 '조선일보' 사설에는 이런 내용이 실렸다.
<지금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는 공사비 4000만 원을 들여 특별활동실과 교장실·교무실 등 공간 8곳을 일반 교실로 바꾸는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다음달 2일 신입생 300여 명(12학급)이 입학하는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이 쓰던 교실을 여태 비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와 세월호 학생 유가족들은 2014년 참사 이후 23개월째 보존해 온 교실 11개를 계속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학생들은 당분간 과학실과 음악실 등 특별활동실을 사용할 수 없고 교장실은 컨테이너로, 교무실은 도서관으로 옮기게 생겼다.
제일 큰 책임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에게 있다. 이 교육감은 원래 이 교실들을 희생 학생 동기생들이 졸업하는 올 1월까지만 유지하다 다시 재학생 교실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졸업식이 끝나고 신입생들이 입학하는 3월이 닥쳐왔는데도 "교실은 재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다"는 원론적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재학생 학부모들이 지난 16일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저지하면서까지 조속한 정리를 요구했지만 이 교육감이 무슨 조치를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사실상 사태를 방관했다고 볼 수도 있다.
재학생 학부모들은 "재학생들이 심리적 불안감, 우울감, 억압, 죄책감 등으로 현재 정상적 교육을 받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텅 빈 교실들을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지 짐작할 수 있다. 단원고에 입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추모관같이 무거운 분위기에서 3년을 보내도록 한다는 것은 학생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일이다.>
이 교육감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246명이 2016년 초 전원 제적(除籍) 처리된 것을 취소하고 학적 복원 절차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 교육감은 당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적으로 학적을 정리한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번 사태로 유가족에게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당연하고, 잘한 결정이다. 이런 결단력의 소유자인 이 교육감이 천안함 전사자와 유족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듯한 인터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이 교육감은 친북 성향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 때는 잇따른 친북 성향의 발언으로 이념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직후 국회에 출석해 “정상회담에서 NLL을 논의했느냐”는 질의에 “거론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나중에 공개된 대화록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당시 NLL를 직접 거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이 당선자는 “내가 말한 의도는 의제로 채택하지도 않았고, 실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한 것”이라고 해명해 거짓말 시비를 빚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6년에는 국회의 장관 임명을 앞둔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에서는 고문, 공개처형, 여성인권 침해, 외국인 납치 등도 벌어지고 있다”는 질의에 “민주화된 나라들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내용들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답변해 논란을 낳았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트위터에 “노무현 재단 조문단에 한자리를 얻어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빈소에 조문하려고 했는데… 2차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다”라는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과 관련해서는 "선수들이 개인적 욕망이나 팀의 희망을 넘어 큰 역사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MBC라디오에 출연해 "선수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단일팀을 구성하면) 금메달을 따는 것 이상으로 국제사회의 엄청난 주목을 받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육감의 발언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 교육감의 정계 입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1999년 신당 추진위 총무위원장을 맡았고, 2000년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에 이어 16대 국회의원이 됐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유세연수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 총무위원장을 맡았고, 2004년 대선 과정에서 불법 선거자금을 전달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이 교육감은 노무현 정부에서 남북관계 관련 요직에 두루 중용됐다.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2004~2006)에 이어 통일부 장관(2006~2008)을 맡았다. 장관 취임 이듬해인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준비기획단장으로 실무를 총괄했다. 이를 바탕으로 재임 기간 남북철도 개통, 금강산·개성관광과 개성공업지구 활성화, 남북경협 확대 등을 주도했다. 장관에서 퇴임한 뒤 노 전 대통령 뜻으로 설립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을 지냈고, 2010년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된 국민참여당 초대 대표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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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다. 사진은 2017년 8월 대전 유성구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 수호 55용사 흉상 부조 제막식’ 모습. 사진=오종찬 기자 |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고(故) 이용상 하사의 부친인 이인옥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천안함 8주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천안함 폭침 주동자를 남한 땅에 들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정부가) 천안함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북한에 남한 방문 인사를 교체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 않으냐."
'천안함 46용사 유족협의회' 회장 이성우씨는 "올림픽 폐막식에 김영철 같은 사람을 북측 대표로 받아들이면 세계가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보겠는가"라고 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