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용도변경 둘러싼 은밀한 거래

서석천 2014. 7. 7. 14:15

 

[용도변경 둘러싼 은밀한 거래]

업자는 시의원에 뇌물 뿌리고 시의원은 공무원에 밥·술 사
비공개인 도계위원 명단 통째로 업자에 넘겨 주기도

6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초입. 등산길을 따라 좀 올라가면 8만㎡(2만4000여평) 크기 땅에 5~7층짜리 건물 14개가 눈에 들어온다. 콘도로 이용하겠다며 세운 건물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사람 한 명 찾지 않는 거대한 유령 건물이 됐다. 산속에 힘겹게 올렸는데 왜 이용하는 사람이 없을까? 답은 용도 변경을 둘러싼 건설 시행업자와 서울시의원 간의 은밀한 거래에 있다.

2007년 시행사 대표 김모(52)씨는 이곳에 대형 콘도를 지으면 100억원 이상의 분양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고도가 20m로 묶여 5층 이상 건물을 올릴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씨는 전 서울시의원 명모씨를 찾아갔다. 명씨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시의 도시계획 수립·조정 등 안건을 심사하는 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도시계획 담당 공무원들과 친분을 쌓고, 크고 작은 용도 변경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김씨는 그런 명씨에게 3억여원을 쥐여주고 우이동 일대 고도 제한을 완화하고, 인허가가 잘 될수 있도록 부탁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초입에 거의 다 지어진 5~7층짜리 콘도 건물들이 방치돼 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초입에 거의 다 지어진 5~7층짜리 콘도 건물들이 방치돼 있다. 건축 시행업자는 이 부지에 콘도 건물을 짓기 위해 전직 시의원과 유착, 구청·시청 등에 로비를 했다. 두 사람이 징역형을 받으면서 현재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윤동진 기자
명씨는 바로 움직였다. 용도 변경 입안 권한을 가진 구청장에게 김씨를 소개했다. 구청을 수시로 드나들며 도시계획과 공무원들에게 밥과 술을 샀다. 안건이 서울시로 넘어가자 토지 용도 변경 승인 권한을 가진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위원인 류모 시의원 등을 불러 "잘 부탁한다"고 청탁했다. 비공개인 도계위원 명단을 빼내 김씨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결국 김씨 바람대로 고도 제한을 완화하는 안건은 도계위를 통과했고, 2009년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들의 은밀한 거래는 결국 서울시 감사팀에 꼬리를 잡혔고, 명씨는 법원에서 징역 2년을, 김씨는 징역 3년을 받았다. 이 건물은 5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를 마치지 못한 채 아무도 찾지 않는 흉물이 됐다.

우리나라 모든 토지는 용도가 정해져 있다. 어떤 곳에는 룸살롱 같은 유흥 시설이 들어갈 수 있고, 어떤 곳은 아파트를 최대 7층까지만 지을 수 있다. 이런 곳에 아파트를 30층까지 지을 수 있게 해주면 어떻게 될까? 시공사나 지주에게 큰 이익이 생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3000㎡(900여평) 부지에 있는 4층짜리 A빌라 건물은 용도가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묶여 주거용으로만 쓸 수 있다. 허용되는 용적률(전체 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 비율)도 250%에 불과해 아무리 높게 건물을 올린다고 해도 8층까지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이곳이 상업시설로 용도가 변경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용적률이 800%로 올라가고, 20층 정도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술집과 노래방뿐 아니라 룸살롱·안마방 같은 유흥업소도 들일 수 있다. 70억~80억원 정도인 건물 가치는 단숨에 200억~300억원으로 치솟는다. 여기에 각종 임대 수익을 더하면 기존보다 30배가 넘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리는 용도 변경은 시·도 도계위가 최종 결정한다. 서울시 도계위에 매년 올라오는 150~200건의 안건 대부분은 공무원·시의원·대학교수·변호사 등 위원 25~30명이 투표가 아닌 '합의'로 결정한다. 시 관계자는 "중요하고 민감한 안건이어서 '합의'가 원칙"이라 했다.


	2013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처리 안건.
도계위원들은 이처럼 스스로 조심한다고 하지만 수백·수천억원의 이권이 걸린 결정을 내리는 탓에 늘 지주나 건설업자의 로비 대상이 된다. 2000년 청주시의원 C씨는 건설업자 남모씨에게 "공원 지역에 골프 연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5000만원을 받았다. 자신은 도계위원이 아니지만 잘 아는 도계위원에게 로비하면 용도 변경을 해줄 수 있다며 접근했다. C씨는 결국 2007년 이 문제로 법정에 서야 했다.

서울 강서구 재력가를 청부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형식 서울시의원처럼 지방의회 의원이면서 도계위 위원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업자들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한 전직 서울시의원은 "선출직은 주민을 대신해 나왔다고 보기에 도계위 내에서 발언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라 했다. 시의원들에게 도계위원 자리는 큰 기회다. 한 정치권 인사는 "재선과 삼선을 노리는 입장에서는 인맥을 쌓고 정치 자금도 만들어야 하는데 도계위원처럼 좋은 자리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한 자치단체 관계자는 "지방의원들이 도계위에 참여하는 것의 장점보다는 단점과 부작용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도계위원과 업자들 간 거래가 워낙 은밀해 잡아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안전행정부 감사실 관계자는 "도계위에서 결정되는 대부분의 절차는 서류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제보를 받고 감사를 나가더라도 당사자들이 잡아떼면 증거를 잡아낼 수 없어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2011년 2월 지방의원이 도계위 같은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피하도록 하는 '지방의원 행동강령'을 대통령령으로 정했다. 하지만 전국 244개 지방의회 가운데 이를 지키는 곳은 16곳뿐이다. 나머지 228곳(93.1%)은 "지방의원의 의정 활동이 위축돼 지방자치제도가 훼손될 수 있다"며 따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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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청부살인사건 관련 진술 확보

재력가 송모(67)씨를 청부 살해한 혐의로 서울시의원 김형식(44)씨를 구속한 서울 강서경찰서는 "김씨가 2014년 지방선거 전까지 (부동산) 용도 변경을 약속했다"는 말을 숨진 송씨가 자주 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고 1일 밝혔다. 이 같은 진술을 한 사람은 건축사 H(47)씨로 그는 송씨의 의뢰를 받아 용도 변경을 전제로 설계도면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H씨는 "용도 변경이 현실적으로 안 되는 일이라 말렸는데 송씨가 '김형식이 선거 전까지 다 한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도면이나 만들라'고 해 김씨의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고 진술했다.

H씨는 이날 본지 전화 통화에서도 "2012년 여름 송씨로부터 '강서구 순봉빌딩을 증축할 수 있게끔 설계도면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작년에도 '김형식 의원이 (용도 변경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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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서 추진, 서울시가 不許 "애초 金의원 능력 밖의 일"

1일 오후 7시 30분쯤 서울 지하철 5호선 발산역. 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삼겹살집에는 60여명의 손님이 들어차 있었다. 대부분 회식을 하는 직장인이었다. 이 건물(순봉빌딩)에는 삼겹살집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체육관·은행 등 14개 업체가 꽉 들어찼다. 시내버스는 물론 공항버스까지 순봉빌딩 앞에서 멈춘다. 공항대로와 강서로가 교차하는 입지는 강서구를 대표하는 외식 상권이고, 인근 마곡지구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십 개 업체가 입주를 확정했다.

내발산동 A부동산업체 관계자는 "이 일대가 건물의 용적률을 크게 높이는 상업지역으로 변경되면 땅값과 건물 가치는 두 배로 늘고, 임대 수익도 많이 늘어나 로또에 당첨되는 격"이라고 말했다.

/윤동진 기자
순봉빌딩의 주인은 살해당한 재력가 송모(67)씨다. 송씨는 이 빌딩 일대의 용도변경에 매달렸다. 본지 취재 결과, 송씨는 순봉빌딩을 중심으로 이 일대에 적어도 4채의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하 1층, 지상 4층 웨딩홀과 거기에 딸린 상가, 주차장뿐만이 아니다. 20m 떨어진 순봉상가아파트의 25개 호는 모두 송씨 가족 명의로 되어 있다. 일가(一家)가 아파트 1동을 통째로 가진 것이다. 이 밖에도 송씨는 강서구 일대에서 관광호텔과 스포츠센터까지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일반주거지역이 상업시설로 바뀌게 되면 용적률이 기존 250%에서 800%로 높아지고, 증축할 수 있는 높이도 4층에서 최대 20층까지로 확대된다고 말한다. 일반주거지역 내 건물은 용도가 판매시설·의료시설·업무시설 등으로 제한되지만, 상업시설로 바뀌게 되면 단란주점, 성인오락실, 안마시술소, 모텔 등 유흥시설과 숙박시설까지 입점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면적 5561㎡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순봉빌딩은 일반음식점, 체육관, 학원, 헬스장 등이 입점해 있는데, 이익이 많이 나는 유흥업소 등은 들어오지 못했다. 도시계획변경이 되면 건물도 더 높이 올릴 수 있고, 수익이 많이 나는 유흥업소 등도 입점 가능해진다.

인근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상업지구로 바뀐다면 (용적률이) 800%까지 되는데, 고도 제한을 감안하더라도 14층까지는 너끈히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용도변경이 되면 룸살롱 등의 가게도 입점할 수 있다는 점이 건물주에게는 큰 이익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실제 강서구청은 2012년 4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일반주거지역인 이 일대를 상업지역으로 변경하는 '도시계획변경'을 추진했다. 강서구 도시계획과는 2012년 6월 송씨 빌딩이 포함된 지역의 도시계획변경안(案)을 올렸다.

그러나 서울시는 "구체적 개발 계획 없는 용도변경은 지가(地價)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지 않았다. 당시 구청이 개발 가능 여부에 대해 용역도 맡겼지만, 이곳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강서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최근 5년 사이 서울시에서 주거지역을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 신청해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 강서구 세수(稅收) 확보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아 추진했다"면서 "도시계획변경 추진 과정에서 김 의원의 압력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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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재력가 청부살인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서울시의원 김형식(44)씨와 중국 보따리상 팽모(44)씨는 차례로 신병이 검찰로 넘겨졌다. 살인을 자백한 팽씨는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호송차에 올라탔다. 반면 살해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는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경찰이 얼굴을 가릴 것을 권유했지만 거부했다고 한다.

그는 “혐의를 인정하느냐” “왜 그랬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경찰조사에서 팽씨는 “절친한 친구인 김 의원이 괴로워하면서 재력가 송모(67)씨를 죽여달라고 부탁하기에 들어줬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6·4 지방선거 예비 후보 등록을 앞둔 김씨가 지속적으로 압박과 회유를 거듭했기 때문에 범죄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고 해도 사람을 죽일 수가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이에 대해 사건 초기부터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진행할 수록 두 사람의 ‘이상한 친구관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 관계가 살해교사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친구인 김형식 서울시의원의 지시를 받아 살인을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팽모씨가 서울 강서 경찰서에서 서울 남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조선일보 DB
지난 3일 친구인 김형식 서울시의원의 지시를 받아 살인을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팽모씨가 서울 강서 경찰서에서 서울 남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조선일보 DB
경찰과 주변에 따르면 두 사람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2000년 무렵, 야권(野圈)당직자였던 팽씨의 형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 처음에는 중국 보따리 장사를 했던 팽씨의 사정이 좋았다. 자주 밥이며 술을 샀다. 김씨는 10년간 민주당 신기남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뒤 노무현 후보 캠프 기획위원, 열린우리당 최연소 부대변인을 역임했다. 2010년에는 시의원에 당선됐고,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재선에 성공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팽씨의 사업을 부도를 맞게 되자, 김씨는 7000만원 이르는 돈을 선뜻 빌려졌다. 이후 생활비 명목으로 크고 작은 돈을 수시로 건네기도 했다. 그냥 주는 돈만 1350만원 정도라고 한다.

팽씨에게 김씨는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386 운동권’으로 한신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씨는 언변이 좋았다. 팽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화려한 면모의 김씨를 좋아했다. 그는 시의원에 당선된 친구를 주변에 자주 소개했다고 한다. 팽씨의 주변인들은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팽씨가 하도 친구 자랑을 해서 김씨가 누군지 알게 됐다”고 경찰에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에 대한 팽씨의 감정은 선망이나 동경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씨가 바라보는 팽씨는 다르다. 지난달 26일 김씨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당시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팽씨를 아예 ‘깡패’로 묘사했다. 김씨가 대포폰만으로 팽씨와 통화한 이유를 밝힌 대목이었다. “의리는 있지만, 깡패인 팽씨와의 만남을 외부에 가급적 알리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팽씨와 함께 술 마시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재력가 송씨(67)를 둔기로 내리쳐 살해하고 중국으로 달아난 팽씨가 공안에 붙잡히자, 김씨는 “붙잡히면 자살하라”고 다그치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실제 팽씨는 중국 감옥 안에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는 등 이를 따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른 한편으로 김씨는 “아들의 대학을 책임지겠다” “생활비 등을 보태겠다”는 말로 팽씨에 대한 회유도 병행했다. 구속된 상태로 서울 강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을 때는 몰래 쪽지를 전달하는 수법으로 설득을 이어갔다.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사과를 받아줄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고백해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 날 용서해주길 바란다. 그래도 친구 얼굴 보니까 좋다”는 것이 첫 번째 쪽지의 주요 내용이다.
지난 3일 60대 재력가를 청부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서울 남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조선일보 DB
지난 3일 60대 재력가를 청부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서울 남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조선일보 DB
두 번째, 세 번째 쪽지에서는 노골적으로 묵비할 것을 종용했다. “절대로 졸지 말고 지금은 무조건 묵비권. 기억해라. 지금 저들이 가진 증거는 네 진술, (뒤집을 수 있는) 네 진술뿐이다”라고 적는 식이다. 팽씨의 아내 A씨는 “김씨는 평소 남편을 다시없는 친구로 대했지만, 가족 모임에서는 우리 부부가 자신의 아이를 쓰다듬는 것조차 저지했을 정도로 가식적이었다”고 경찰에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팽씨가 우정으로 친구인 김씨를 따랐다면, 김씨는 ‘팽씨는 언제든 내 의지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순수하지 않은 감정으로 대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사람까지 대신 죽였을 정도로 신의를 지키려고 했던 자신에게 거듭 “스스로 죽으라”고 요구하는 김씨의 모습에 팽씨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팽씨는 “얘기를 해보니 친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여기에는 아내의 설득도 크게 작용했다. 팽씨 아내는 “남편을 희생양 삼아 혼자 빠져나가려는 김형식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며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설득했다.

김씨는 확실한 물증을 들이대기 전까지는 거짓말로 일관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숨진 송씨와는 금전 관계가 없었다고 했다가 다음 경찰이 지문과 사인이 찍힌 차용증을 들이대자 그제야 “차용증에 사인한 것은 맞다”는 식의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구속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는 처지이지만, 김씨는 시종 여유가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유치장에서 나오는 식사를 뚝딱 비우고, 덥다면서 반바지를 구해다가 입기도 했다. 조사과정에서 미소를 띠기도 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진술서를 읽어보면서 “말이 왔다갔다했네요. 말이 왜 이렇게 왔다갔다했죠?”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랬던 그가 지난달 30일 오후부터 “경찰 단계에서는 더는 진술하지 않겠다”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조사를 받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친구 팽모(44)씨와는 다른 모습이다. 체격이 건장했던 팽씨는 유치장에 있는 동안 10㎏도 넘게 체중이 빠졌다. 밤마다 살해 당시의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김씨는 유치장 안에서 “팽○○ 미안하다. 제수씨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해주라”고 큰소리를 지르는 방법으로 팽씨에 말을 걸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팽씨는 “됐다. 너나 잘하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출처]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