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경재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하면, 우리는 ‘金日成 금수산 기념궁전 불바
서석천
2011. 1. 4. 10:35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하면, 우리는 ‘金日成 금수산 기념궁전 불바다’ 발언으로 맞불 놓았어야
⊙ 北,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때도 평양 북방 ‘북창비행장’에서 미그기 출격
⊙ 점→선→그림으로 이어지는 정보융합 노력 부족해 정보생산 실패
⊙ 국정원, 도발징후 알고도 대비태세 강화 촉구에 ‘미흡’
⊙ 金正日의 황해도 방문은 ‘포격승인 방문’
⊙ 軍, 해안포 공격만 예상하고 122mm 방사포 전방이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
韓哲鏞
⊙ 1946년생. 육사(26기)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국제관계학 석사.
⊙ 베트남전 참전(백마부대 소대장), 정보본부 歐洲·소련 주무장교, 한미연합사 정보참모부
정보운영실장, 7군단 참모장(준장), 육군본부 정보처장, 8사단장(소장), 국가정보원 국방보좌관,
국군 제5679부대장.
⊙ 前 건국대 충주캠퍼스 북한학과 초빙교수.
⊙ 상훈: 인헌무공훈장, 베트남동성훈장, 미국 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
⊙ 저서: <진실은 하나>.
⊙ 北,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때도 평양 북방 ‘북창비행장’에서 미그기 출격
⊙ 점→선→그림으로 이어지는 정보융합 노력 부족해 정보생산 실패
⊙ 국정원, 도발징후 알고도 대비태세 강화 촉구에 ‘미흡’
⊙ 金正日의 황해도 방문은 ‘포격승인 방문’
⊙ 軍, 해안포 공격만 예상하고 122mm 방사포 전방이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
韓哲鏞
⊙ 1946년생. 육사(26기)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국제관계학 석사.
⊙ 베트남전 참전(백마부대 소대장), 정보본부 歐洲·소련 주무장교, 한미연합사 정보참모부
정보운영실장, 7군단 참모장(준장), 육군본부 정보처장, 8사단장(소장), 국가정보원 국방보좌관,
국군 제5679부대장.
⊙ 前 건국대 충주캠퍼스 북한학과 초빙교수.
⊙ 상훈: 인헌무공훈장, 베트남동성훈장, 미국 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
⊙ 저서: <진실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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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신예 전투기 미그-29(왼쪽) /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출격한 우리 공군 KF-16(오른쪽) |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서해 5도가 목에 가시, 눈엣가시, 옆구리의 비수(匕首)다. 북한은 이러한 성가신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서해 5도가 북한의 영향권하에 놓이게 되면, 서해 인천 앞바다가 북한의 내해(內海)로 전락해 인천항과 인천공항이 위협을 받고, 결국 수도권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우리가 서해 5도와 북방한계선(NLL)을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서해 5도와 NLL은 우리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섬들이다. 이렇게 중요한 섬 연평도가 북한의 기습적인 포격을 받았으니 국가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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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공군의 미그-23 전투기. 북한이 연평도 포격도발 직전 전개시킨 미그-23과 동형이다. |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징후 6가지
2010년 11월 23일 오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도 3·26 천안함 사태처럼 우리의 정보 분석과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꼭 같은 실수가 반복돼 안타깝다 못해 자괴감(自愧感)까지 든다. 김태영(金泰榮) 국방장관이 천안함 폭침 사태가 발생한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선언했던 일이 불과 8개월 전이다. 그렇게 빨리 망각해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줄 정도로 우리 군은 무기력하단 말인가.
연평도 포격 사태 때는 천안함 폭침 때보다 훨씬 뚜렷한 도발 징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설마 하다 일방적으로 당한 꼴이 됐다. 정보란 하나하나가 ‘점(點)’과 같아서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러 개의 정보를 취합해 분석하다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는 ‘선(線)’으로 변한다. 그 선들을 잘 연결해 분석하면 윤곽이 뚜렷한 ‘그림’이 나오게 된다. 정보란 마치 모자이크처럼 여러 조각을 짜맞춰 그림을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여러 출처에서 수집된 각기 다른 도발 징후가 있었다. 그 출처들의 정보를 융합해 분석하고 평가하는 역량과 노력이 미흡했다. 아니, 북한을 무한한 의구심을 가지고 집요하게 응시하고 물고 늘어져서 연구하고 분석·평가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상시적인 위협 정보라고 판단하고는 설마 해 방치하다가 낭패를 당했다.
당시 도발 징후들은 대략 여섯 가지가 있었다. 첫째, 2010년 8월 북한의 서해 5도 공격계획을 국가정보원이 수집했다. 둘째, 연평도에서 우리가 포병 실탄사격 훈련을 할 때는 보복하겠다는 북한군의 경고 메시지가 있었다. 셋째, 해안포의 동굴 포문이 개방된 것을 탐지했다. 넷째, 122mm 방사포 부대가 해안 쪽으로 이동해 전개하는 것을 탐지했다. 다섯째, 김정일(金正日) 일행이 황해도 오리농장과 양어장을 방문해 현지지도를 한 사실을 북한 언론이 연평도 포격 하루 전인 11월 22일 보도했다. 여섯째, 포격 시간 바로 직전, 평양 북방의 북창비행장에서 이륙한 전투기 MIG-23기 5대가 서해안 지역을 초계비행하고, 전방기지인 황주비행장에 전개한 것을 탐지했다. 최소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첩보가 있었음에도 서해 5도 공격 징후와 북한군의 위협 경고는 상시적인 것이어서 ‘설마’ 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도발징후 감지하고도…
2010년 12월 1일, 원세훈(元世勳)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서 “지난 8월 감청을 통해 서해 5도에 대한 북한의 공격계획을 확인하지 않았느냐”라고 한 의원이 질문하자 “감청이 있었다”고 정보위 여야 간사들에게 전한 것으로 언론은 보도했다. 군과 정부의 대비태세와 관련해 국정원은 “북한이 NLL을 무력화하는 언동을 많이 해 왔기 때문에 (북한의) 공격계획을 상시적 위협으로 봤으며, 민간인 지역까지 포격할 것으론 예상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포격 당일과 그 전에는 감청이 어려운 유선으로 (북한이) 작전을 수행해 (포격을) 미리 파악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은 ‘국정원이 감청한 내용이 군과 청와대에도 전파 보고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같은 보도를 보고 국정원장에 대해 청와대와 군은 발끈했다. 국회 속기록을 확인한 결과, 증언 내용을 국정원장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언론은 보도했으나, 국정원 북한담당 3차장이 답변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 분야에 종사한 전문가들은 감청내용을, 그것이 허위정보나 역정보가 아닌 이상 북한의 속내, 즉 진의를 드러낸 것으로 본다. 따라서 국정원이 그것을 상시적 위협, 즉 공갈협박 내지는 으름장으로 본 것은 중대한 실수였다. 당시 국정원의 감청내용이 허위정보가 아닌 이상, 감청내용 그 자체만으로도 첩보(諜報·information)가 아닌 정보(情報·intelligence)로 취급했어야 마땅하다.
그때가 어느 때인가. 2010년 11월로 예정된 G20 정상회의를 3개월여 앞둔 시기였다. 이러한 도발정보를 그렇게 쉽게 처리해서는 안 될 시기였다. 화급한 정보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고, 국방부의 대책을 촉구할 뿐만 아니라 국정원이 계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야 했다. 국정원도 국방부처럼 결정적인 정보를 한낱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방치해 버렸다.
국정원이 스스로 국정원 본연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만으로도 볼 때 국방부, 국정원, 청와대가 서로 유기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G20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에, 비극적인 천안함 폭침 사태의 악몽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정보를 소홀히 취급하고 대비가 미흡하다면, 평시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 제2, 제3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두 번째의 보복 경고 메시지와 관련, 이것 하나만 가지고는 우리가 북한의 엄포 내지는 허세 또는 공갈협박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2010년 8월 국정원의 감청내용을 감안하면 이것이 단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의 보복성명이나 발표는 으름장 또는 공갈협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감청내용은 적의 속내, 즉 진의(眞意)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적의 발표 내용과 감청 내용이 동일한 경우에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확고한 적의 의도(意圖)로 분석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첫째 징후인 국정원의 감청 내용, 둘째 징후인 북한군의 보복 경고 메시지만 갖고도 적이 도발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판단해 최악의 경우를 대비했어야 했다.
122mm 방사포의 전방전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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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일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한나라당 이범관 간사 대행(오른쪽)과 최재성 민주당 간사가 국정원에서 종이에 프린트해 제공한 북한 무도지역 피폭지점 위성사진을 놓고 설명하고 있다. |
세 번째 징후인 해안포 동굴 입구문의 개방도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예삿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군은 통상적인 훈련활동의 일환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동안 수차례 NLL상에 해안포 훈련을 빙자해 NLL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실제사격을 감행했던 것을 미뤄볼 때,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네 번째 징후인 4군단 예하의 122mm 방사포 1개 대대의 전방 이동 배치, 다섯 번째 징후인 김정일의 황해도 4군단 지역의 오리농장과 양어장 방문은 통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군 당국은 도발 이틀 전에 4군단 소속 122mm 방사포 1개 대대가 황해도 강령군의 개머리 지역으로 이동 배치되고, 사격 준비를 위한 활동을 포착했다. 122mm 방사포의 전방전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이유 또한 도발하면 해안포로만 도발하지 방사포로 포격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설마 하고 있다 허를 찔린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도발 하루 전인 11월 22일, 김정일 부자가 황해남도 용연군의 오리농장과 양어장을 방문한 사실을 사진 한 장과 함께 보도했다. 방문일자는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진에는 김정일 왼편으로 총참모부 작전국장 김명국 대장과 행정부장인 장성택이 보였다. 방문지역은 백령도와 마주보는 NLL과 인접한 황해남도 해안지역이다. <조선중앙통신>은 ‘농장지역 현지지도를 위한 것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이는 ‘연막작전’이었다. 실은 4군단장 김격식 대장을 만나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지침(指針)을 내리고, 포격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승인하기 위한 방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3·26 천안함 폭침 도발 때도 도발 전 김정일이 서해함대사령부를 방문해 격려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김정일은 군사적 도발의 중요 고비마다 직접 방문해 확인하고 격려하는 것을 관례화하고 있다. 2010년 1월 17일, 김정일은 폭설과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남포해안 지역에서 육해공군 합동훈련을 직접 참관했다. 여차하면 서해 5도에 대해 봉쇄 내지는 상륙 등 공격 도발을 위한 훈련임을 배제할 수 없었던 징후였다.
122mm 방사포의 전방 해안지역 전개, 김정일의 황해남도 해안지역 방문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정보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 군은 정보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소홀했고 방심했다. 군인정신의 해이와 안보의식의 결여다.
MIG-23기의 전방전개는 도발임박 징후
여섯 번째 최신예기인 MIG-23기 5대의 전방전개는 도발 징후의 ‘하이라이트’다. 아군 공군기의 보복응징에 대비한 조치였던 것이다. 아군기가 북한지역의 포진지에 대한 보복응징 폭격에 나설 것에 대비해 공중전을 위한 전개였다. 군의 속성상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철칙이지만, 북한은 만약을 위한 대비책을 더 철저히 준비하는 경향이 있다.
당시 MIG-23기의 전방전개는 도발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였고, 결정적인 징후였다. 평양 북방의 북창비행장에 배치돼 있는 MIG-29와 MIG-23 등 최신예 전투기들은 평양의 영공(領空)을 방어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한마디로 김정일 경호를 담당하는 전투기들이다. 북한은 서해상에서 우리의 신예기인 F-15K나 F-16 전투기에 대적하기 위해 부득이 평양 북방의 최신예기를 동원했던 것이다. 도발의 결정적 징후라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때도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때, 아군 공군기의 보복응징에 대비해 최신예기인 MIG-29기 2대를 전방에 배치한 적이 있다. 천안함 사태 때도 야간에 최신예 전투기 2대가 북창기지에서 이륙해 남하한 후에 전방에 배치된 적이 있다.
도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을 때는 전투기 2대를, 연평도 포격 때처럼 도발규모가 크거나 성격이 확연히 다르고 위중한 경우에는 전투기를 2대 이상으로 늘려 5대를 전개했다. 천안함 폭침 사태 때 청와대가 “북한의 특이동향이 아직 없다”고 발표하는 것을 듣고, 필자는 “최신예 미그기가, 그것도 야간에 남하 비행한 정황은 북한의 소행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주장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속담처럼, 북한은 도발을 해 놓고 남한의 대응공격이 두려워 심야에 최신예 전투기를 남하 비행시켜 전방기지에 전개했던 것이다. 북한의 도발과 최신예 미그기의 전방전개의 연관성은 제2연평해전 때, 천안함 폭침 사태 때, 조기경보 차원에서 우리가 얻은 값진 ‘정보교훈’이다. 그런데 연평도 포격 사태 때 교훈을 살리지 못하고 말았다.
‘공포의 균형’
‘공포의 균형(Ballance of Terror)’ 이론은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미국이 소련에 의한 핵전쟁을 억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소련이 제1격(the first strike)으로 미국의 어느 1개 도시를 핵공격하면, 미국은 제2격(the second strike)으로 소련의 여러 도시를 대량의 핵무기로 보복하는 개념이다.
이는 소련이 핵무기로 미국에 대해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미국의 전략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소련으로부터 핵공격을 받으면, 공격받은 것보다 몇십 배 더 많은 핵무기로 대량보복을 한다는 것이다. 소련은 후환이 두려워서 미국에 대해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하지 못했다. 미국이 소련의 선제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는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냉전시대에 미·소 간의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이 생존할 수 있는 것도 주변 아랍국들의 도발에 대하여 철저하고 강력한 보복응징을 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해 반드시 철저하게 보복응징함으로써 다소 불안하지만, 그나마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 또한 ‘공포의 균형’ 전략을 원용한 것이다.
37년 전인 1973년 3월,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3사단 지역에서 북한군이 기관총으로 아군을 향해 사격해 피해를 입히자 사단장은 사단포병을 동원해 적 GP를 초토화시키는 보복응징을 함으로써 북한군이 그 지역에서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도록 한 사건이 있었다. 이렇듯 보복응징을 할 때는 ‘공포의 균형’ 전략을 원용해 과감하고 강력하게 몇 배로 제대로 하면 북한군도 도발을 쉽사리 하지 못하게 돼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생각보다 소심하고 겁이 많다. 그들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해 보복응징 때는 공황에 빠질 정도로 수십 배로 강력하게 해야 한다.
오늘의 군 상층부는 당시 박정인(朴定仁) 장군과 같은 결기가 없는가. 무엇 때문에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당시 인근 상공에 출격해 대기 중이던 F-15K와 F-16 전투기에 폭격명령을 내려 강력하게 보복응징을 못했는가. 동종(同種)의 무기로 대응한다는 교전규칙에 얽매여 K-9 자주포로만 응징하다 보니, 제대로 응징보복을 하지 못한 결과다.
우리가 마치 확전이 두려워 겁에 질린 존재로 김정일의 눈에 비치는 계기가 돼 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확전도 전면전으로의 확전은 지양해야 하지만, 국지전, 즉 서해 5도와 황해남도 해안지역에 국한된 국지전은 감내해야 한다. 그것까지도 두려워하면 북한은 우리를 얕잡아 보고 앞으로 우리를 계속 시험할 것이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천안함 폭침 이후 국방부와 청와대는 “다시 도발해 오면 강력하게 보복응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수사(修辭)였는가. 천안함 사태와 같은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 국방안보 특보가 신설되고,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3개월 시한부로 구성돼 활동을 마쳤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3개월 동안 활동하며 천안함 폭침 사태와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연구검토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무엇을 연구해 보고했기에 또다시 똑같은 사태가 발생했는가.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서북 5개 도서에 대한 북의 위협분석과 대비책을 수립해 보고했는가.
천안함 폭침이 정보 수집과 분석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서도 정작 안보총괄점검회의에는 대북정보 전문가가 한 사람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들이 적도 모르면서 무슨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을까. 국방부와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그리고 청와대가 전부 허공에다 헛손질과 헛발질만 한 꼴이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도 배운다는데 자기 자신의 실패에서조차 배우지 못해서 또 당했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반대로 안전한 벙커 속 지휘통제실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국방부와 합참 등 상부는 공황에 빠져 버렸는지 제대로 보복응징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말단 해병 장병들의 대응사격은 성공적이었으나 군 상부의 작전지휘는 실패작이다. 이는 제2연평해전 때의 상황과 빼닮았다. 당시도 말단 전투는 성공적이었으나 상부의 작전지휘는 실패작이었다.
북한의 ‘서울 불바다’론에 대한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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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 20km인 북한의 122mm 방사포(다연장로켓). 군은 4군단 소속 방사포 1개 대대가 황해도 강령군 개머리 지역으로 이동배치해 사격준비 활동한 사실을 탐지했으나, 설마 하다 허를 찔리고 말았다. |
북한은 휴전선 일대의 현 진지에서 서울을 포격할 수 있는 장거리 170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를 전방 휴전선 일대에 배치하기 시작하면서, 1994년 3월 판문점 군사회담 북측대표 박영수 대좌가 ‘서울 불바다’론으로 공갈협박을 가해 왔다.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수틀리면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
만일 북한이 서울을 포격하면,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북한 포병발사 진지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재 서울 수도를 지향하고 있는 300여 문의 장사정포를 전부 무력화시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일단 서울에 포탄이 집중적으로 떨어지면 서울이 공황에 빠지게 된다. 북한은 이를 간파하고 수틀리면 서울을 포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서울을 아예 포격할 수 없도록 하는 전술전략을 강구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김정일을 심리적 공황에 빠지게 할 우리의 방책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우리도 평양을 포격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한다. 역대 국방장관 중 어느 장관은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에 맞서 ‘평양도 서울에서 2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는 평양도 우리의 사정권 안에 있어서 평양이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평양을 포격하면 김정일이 우리만큼 큰 충격을 받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김정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 체제 자체가 인명과 인권을 우리 자유민주 체제처럼 중시하고 존중하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공황에 빠질 만한 표적이 평양에 없는가. 한 곳이 있다. 김일성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이다. 내재적 접근법에 의해 볼 때, 김정일 북한의 급소, 즉 아킬레스건은 금수산 기념궁전이다. 만일 북한이 서울을 포격하면 우리가 이 금수산 기념궁전을 미사일로 포격하는 것이다.
김정일과 그 추종자들에게 금수산 기념궁전은 김일성 시신이 안치돼 있어서 신성시되는 신전(神殿) 또는 성전(聖殿)이나 다름없다. 금수산 기념궁전은 김정일 북한의 최대의 약점이고 급소다. 우리에게는 둘도 없는 좋은 표적이다. 김일성 시신을 대피시킬 수 있지만, 그 궁전을 갱도로 대피시킬 수는 없다. 금수산 기념궁전을 포격함으로써 김일성 주체사상의 혼(魂)을 빼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김정일은 혼비백산해 심리적 공황에 빠지게 되어 혼절하게 될 것이다. 우리 서울이 공황에 빠지듯 김정일과 북한이 공황에 빠지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김정일이 과연 서울을 포격할 수 있겠는가?
금수산 기념궁전은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포격해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우려가 없다. 오히려 수많은 북한 주민을 굶겨 죽이면서까지 8억 달러나 들여 건축한 궁전이기 때문에 파괴되어야 마땅한 건축물이다. 또 거기에는 북한 주민이 거주하지 않아서 인도적 측면에서도 표적으로 부적합한 곳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듯, ‘금수산 기념궁전 불바다’ 발언을 함으로써 싸우지 않고 북한의 ‘서울 불바다’ 포격 의지를 근원적으로 꺾는 것 또한 최선의 방책이다.
2012년 북한은 김일성 출생 100주년을 맞이해 강성대국의 해로 선포하고 있다. 필자는 걱정스럽다. 북한이 서해 5도와 서울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즉 서해 5도 공격과 ‘서울 불바다’ 포격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서해 5도와 서울은 김격식이가 지휘하는 4군단의 정면 책임지역이다. 김정일이 북한군 총참모장 출신인 김격식 대장을 전방군단인 4군단장으로 내려보낼 때는 꿍꿍이속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4군단 책임지역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조건 충성파인 그에게 맡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김격식의 지휘하에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 지금 군부에는 얼마 전에 차수로 초고속 승진한 총참모장 이영호와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정찰총국장 상장 김영철, 그리고 이번 연평도 포격을 지휘한 4군단장 김격식 대장 등 3인방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인물이다. 정보당국자들은 절치부심하는 심정으로 ‘눈’과 ‘귀’를 총동원해 정보망에 ‘구멍’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