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와 5'18

광주사태 30주년에,

서석천 2010. 3. 4. 16:29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빨치산 1세대를 민주인사라 불렀습니다.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가졌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도시 게릴라 방법으로 한국을 제2의 월남화되게 하려 했다는 점에서 빨치산 2세대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란 게릴라 전으로 해방구를 설치하던 자들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1979년경 남민전이 도시 게릴라 방법으로 한국이 제2월남이 되게 하려다가 좌초되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봄 남민전 잔존세력들이 김대중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시금 도시 게릴라 방법으로 전민봉기를 일으키려다가 불발탄이 된 것이 광주사태였습니다. 

  광주사태 25주년 기념 국민대회 때 그들은 그들의 세계관이 반미 친북 세계관이었음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미국은 이땅을 떠나라!" "민족자주쟁취"의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이것은 흘러간 역사가 아닙니다.  바로 그 역사 논리, 바로 그 기치를 내세워 북한이 2012년에 적화통일을 완수하러 하고 있으니까요.

http://study21.org/518/photo/history/anti-us-rally.jpg

  자유북한방송은 2월 10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을 인용, “지난 1월 27일 ‘전체 조선민족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고 적화통일을 위한 남녘 각 계의 봉기를 촉구한 북한이 당시 채택과 함께 2012년을 통일강성대국의 원년으로 규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http://www.korea-np.co.jp/news/ViewArticle.aspx?ArticleID=40304 에 있는 기사대로 북한은 평화협정회담 제안 및 남조선에서의 자주, 민주, 통일투쟁 선동 등의 방법으로 한미동맹만 파열시키면 남한을 점령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08년 봄·여름에 우리는 어떻게 유언비어의 광풍이 광우사태를 일으켰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1980년 5월에는 광우 유언비어와는 비교도 안되는 악성 유언비어 광풍이 회오리쳤었습니다.  2008년의 광우 유언비어 광풍 때는 다행히 우리에게 인터넷이 있어서 거짓과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유언비어 대자보들만 난무하던 1980년 봄에는 그 누구도 감히 그 유언비어 광풍에 감히 맞설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이 광주사태의 왜곡인가요?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경 일분간 집단 발포가 있자 2시 반부터 무가 탈취하러 떠났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아래의 그 날의 시민군 작전지도가 보여주듯이 이미 오후 1시 이전에 광주시민군이 전라도 전 지역에 퍼져 동시다발적으로 총을 쏘며 무기탈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광주시민군이 조직되기도 전에 이미 또 다른 광주시민군이 전라도 전 지역에 퍼져있었으며, 과연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었느냐 광주사태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http://study21.org/518/photo/daily/5-21map.jpg


만약 광주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 없었다면 우리 근현대사의 치부인 광주사태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광주사태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것을 막기 위하여 우리 각자가 맡아야 할 역할과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자료와 시간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저의 일들을 제쳐 놓고 광주사태 자료들을 수집하며 연구하다보니 경제적 여건이 몰릴 대로 몰렸습니다.  그렇지만 광주사태 30주년을 불과 70 여일 앞두고 이제부터 중요한 자료들을 공개해야 할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광주사태의 진실 규명이 어찌 저만의 책임일 수 있겠습니까?  2012년 적화통일의 위기로부터 조국을 지켜내기를 원하십니까?  북한과 친북좌익의 심리전에 맞서려면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광주사태의 역사논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역사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