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와 5'18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증언

서석천 2009. 12. 13. 14:47

'5.18 사기극'의 진실규명은 막을 내렸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의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증언
 
 
[편집자 주: 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과 반정부폭동 사이에 애매한 논란의 속성을 띠고 있다. 광주사태의 민주화 운동 속성은 충분이 국가가 인정해줬다. 하지만 광주사태의 기획성, 잔혹성, 반란성, 폭동성에 대한 조사는 미미하다. 광주사태가 공정하게 재조사 되어야, 순진하게 민주화에 투신한 광주시민들의 명예가 진정으로 지켜질 것이다. 광주사태 북한군 개입도 조사해야, 광주사태에 대한 소모적 논란을 해소할 수 있고, 동시에 민주를 빙자하여 반복되는 광우난동사태 같은 반정부 군중폭란도 공권력으로 당당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조사돼야, 진실규명으로 모두에게 유익하고, 국론분열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5.18사기극의 종말(1)

5.18광주에서 시민들이 166명 사망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여기저기에서 탈취한 자동차를 몰다가 사고로 죽고, 맞아서 죽고, 타죽기도 했다. 5.18의 영웅 윤상원도 타죽었다.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시체가 12구 있었다.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중 116명이 총상으로 죽었다. 이 116명 69%가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에 의해 사망했다. 죽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린 사람들이다. 이 69%는 계엄군이 죽이지 않았다. 그러면 누가 죽였는가? 이번에 36인의 탈북인들이 증언집을 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다 북한특수군이 와서 수많은 시민들을 쏘았다고 증언한다.

1)계엄군은 이 69%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2)계엄군에서는 M-16소총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이 69%는 시민군을 가장한 도깨비들에 의해 사망했다. 3) 그 도깨비들이 바로 북한 특수군이었다고 탈북자들이 하나같이 증언한다. 이 세 가지를 연결해 놓고 판단해보면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5.18 광주에는 계엄군이 임신부의 배를 찔러 태아를 꺼냈다는 유언비어가 있었다. 대검으로 여학생의 유방을 도려냈다는 유언비어도 있었고, 여자의 목과 팔을 잘라 다리난간에 매달아 놓았다는 유언비어도 있었다.

1) 공수부대에 물어보니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2)수사기록을 보아도 그런 기록은 없다 3) 공수부대의 운용방법과 절대다수에 포위되어 매타작을 당하던 공수부대의 처지를 종합해 보아도 이는 공수부대가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4) 그런데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북한특수군이 와서 저지른 범죄라고 증언한다. 왜냐 하면 중앙 TV가 그런 끔찍한 만행이 저지러지는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을 반복해서 방송해주었다고 증언한다.

이런 동영상이 북한 중앙 TV에서 반복 방송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정보기관도 몰랐다. 우리 정보가 아주 형편 없었던 것이다. 동영상은 오직 북한의 수중에만 있었다. 그렇다면 북한군이 광주로 내려와 으슥한 무대를 잡아 실제로 여인들을 납치해다가 그런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면서 동영상을 촬영해 북으로 보냈다는 것이 된다.

혼란을 틈타 광주사람들을 총으로 죽이고 때려죽이고 여자만 골라 잔인하게 죽인 것은 광주시민들을 흥분시켜 소요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저지른 것이고, 동영상을 촬영하여 이를 북한에서 반복 방송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하루 빨리 남한으로 쳐들어가 불쌍한 인민을 해방시키자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저질렀다고 증언한다.

사기극의 실체

'5.18공화국영웅'들은 전라도지역 무기고 위치를 1980년 2월 말까지 다 파악했고, 약도와 도면까지 다 작성했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수사기록을 보면 5월 21일 아침 9시에 아시아 자동차에 600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장갑차 2대와 군용트럭 328대를 빼앗았다. 그리고 17개 시군에 꼭꼭 숨어있는 38개 무기고를 향해 차량들이 분산됐다. 12-16시 사이에 5,408정의 각종 총기를 탈취했다. 이는 무기고 위치를 알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007작전이었던 것이다. 수사기록과 탈북자들의 중언들이 일치하는 것이다.

증언집은 무기고 털고, 무기를 나누어주고, 시민들에게 총기 사용법을 가르쳐 준 사람들이 다 공화국 영웅이었다 증언들을 한다. 교도소를 공격한 사람들도 공화국 영웅, 장갑차를 몬 사람도 공화국 영웅, 시민들을 등 뒤에서 쏜 사람들도 공화국 영웅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수사기록을 보면 장갑차를 몰았다는 영웅이 나타나 있지도 않고, 교도소를 공격했다는 영웅도 나타나지 않는다. 시민군이 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가 해냈으니 분명히 도깨비는 존재한다. 누가 그 도깨비일까? 광주시민일까, 북한특수군일까? 그런데 증언자들은 하나같이 다 공화국 영웅들이 했다고 증언한다.    

북한에서 넘어온 사진 두 개가 있다. 최대를 자랑하는 1만톤짜리 프레스 사진이다. 하나는 거대한 공장 내부에 설치돼 있고, 다른 하나는 잠수함 부두에 설치돼 있다. 전자에는 ‘5.18청년호 1’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후자에는 ‘5.18청년호 2’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김일성이 5.18에 대해 얼마만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가를 웅변해주고 있다. 이는 확실한 증거자료가 된다. 북한에는 5.18공화국영웅도 많고 5.18영웅묘지도 여러 개 있다고 증언들을 한다.            

민주화의 상징 중의 한 사람인 문익환이 김일성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공개돼 있다. 그의 초상이 '민족통일상 수상자'라는 글자와 함께 북한 기념우표에 그려져있다. 5.18의 주역 서경원이 간첩혐의로 10년형을 거의 다 살았다. 5월 18일 오후 4시에 경찰관 15명을 인질로 잡았다는 윤기권(19)이 그 공로로 2억원을 받고 폭동 12년 후인 1991년에 월북했다. 간첩말고는 데려갈 사람이 없다. 김대중은 너무나 잘 알려진 공개된 간첩이었다. 이래도 5.18에 붉은 색깔이 보이지 않는가? 어디까지 보여줘야 붉은 빛을 보았다 하겠는가?

탈북자들은 김대중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김대중은 '선생님', '남조선에서 투쟁하는 공화국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은 김대중에게 남한 정권을 안겨주려고 광주사태를 벌였다”

사석에서는 김일성기념관에 김대중 코너도 있다고 말하는 탈북자도 있다.

지금은 이와 같은 것을 증언하는 증언록이 마련돼 있고, 5년에 걸쳐 완성한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이라는 책도 마련돼 있고, 그를 뒷받침 하는 원천자료들도 준비돼 있다. 이런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책의 머리말 시안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여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모든 기록들을 보면서 필자는 5.18은 김대중 등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하며,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 불순분자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쏘는 것은 물론 제주 4.3사건에서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러 놓고, 좌익들이 이를 군인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소위 모략전을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 굳혀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심리적 내전’이 바로 5.18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걸어 5.18단체들이 고소를 했고, 38세의 여검사 박윤희가 기소를 한 것이다.

위의 사실자료들을 가지고 따져볼 때 과연 고소와 기소가 합당한 것이었는가? 5.18단체들은 무고한 광주시민이 무기고에서 탈취된 무기들에 의해 사살되고, 광주의 여인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한 이 사실을 놓고 이것이 공수부대가 저지른 만행이었다고 거품 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와 논리는 없다. 이제 2만 탈북자 시대를 맞아 북한으로부터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십 명의 증언자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오직 위험을 향해 치닫고 있는 국가를 구해보겠다는 일념에서 증언기록들을 남겼다. 이들 증언에 의하면 북한이 져야 할 책임을 엉뚱하게 공수부대에 뒤집어 씌웠다. 

북한과 한통속인 김대중과 5.18

5.18단체들은 광주시민들이 공수부대에 의해 당했어야 5.18의 명예가 존중되는 것이고, 북한특수군에 당했다 하면 이를 엄청난 불명예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필자를 향해 고소를 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명예훼손 사건이다. 이 경우는 공익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는 오직 허위사실 적시에만 적용된다. 그런데 위 필자의 표현에는 허위사실 적시가 일체 없다. 단지 역사편찬가로서의 ‘의견’만 있을 뿐이다. 그 의견을 놓고 고소를 하고 기소를 한 것이다. 5.18부상자회 회장 신경진 등이 고소를 했을 때인 작년 6월과 박윤희 검사가 기소를 했던 금년 7월까지만 해도 증언집이 없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증언집이 나와 있다. 36명의 증인이 있고, 이 증언들을 뒷받침할 수사자료가 있다. 그러면 증언은 믿을만 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믿을만한 근거"가 있으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어제 11월 12일 오후 4시 제2차 공판이 있었다. 고소자인 신경진이 증인으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어제는 그야말로 불꽃튀는 황산벌싸움이 있었어야 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여러 날을 통해 46개의 질문서를 작성했고, 질문에 해당하는 증거자료들을 모두 3부씩 복사해 갔다. 재판장용, 검사용 그리고 피고인인 필자용. 그런데 황산벌 결투에 나오기로 되어 있던 상대가 꼬리를 내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나왔다면 그는 120 여명의 방청객들 앞에서, 판사, 검사 앞에서 인내하기 어려운 망신을 당했을 것이다.  

이에 무서워 적장이라는 자가 손을 든 것이다. 차라리 뒤에서 지고 말지, 수많은 방청객들 앞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재판의 판결결과가 무죄로 끝을 맺는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2002년에 필자가 광주에서 당했던 재판에 재심을 청구할 것이고, 신경진 등에 대해 손해배상이 청구될 것이고, 중차대한 국가안보 문제에 유입돼야 할 정보를 차단하고 공론화를 차단하려 한 박윤희 검사는 수많은 부처에 진정대상이 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5.18의 사기극은 그야말로 종말을 고하고 광주시민들은 물론 모든 빨갱이들이 허탈상태 즉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런 것이 예방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필자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길이다. 그러나 마은혁 판사보더 더 기막힌 판사가 있다 해도 필자에게 죄를 선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5.18부상자회 회장 신경진이 5.18 장사 지냈다

신경진을 비롯한 5.18단체는 그야말로 화약고에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5.18은 화려한 사기극이다” 증언록의 제목이다. 이 책은 임천용 회장에 의해 10월10일, 5.18기념재단에 ‘공고문’처럼 게시돼 있다. 5.18을 야유하는 듯한 꼬리 글들이 길게 달린 채. 그래도 5.18단체들은 이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필자에게 했던 것처럼 고소도 못하고 꼬리를 내린 채 납작 엎드려 있다. 5.18단체는 아무래도 죽은 것 같이 보인다. 숨소리 조차 없다.

판사가 다음 기일을 2달 2일 후인 내년 1월 14일 오후 4:30분으로 잡자고 했다. 판사가 변호인을 선정하라며 끝까지 밀어 붙였다. 하는 수 없이 국선변호인을 쓰겠다고 했다. 어째서 구태여 변호인을 선임하라고 밀어붙이는 것일까? 이에 대해 회원님들의 의견들이 많았다. 필자에게 유죄는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무죄를 내리자니 빨갱이들로부터 시달릴 것이고 동시에 여검사 등에게 닥칠 후폭풍이 예상될 것이다. 이런 불을 원만히 끄기 위해 필자에게 직접 하기 어려운 말을 변호인을 통해 하겠다는 뜻이 아닐까? 일종의 조정? 

결론적으로 기승을 부리던 5.18단체는 이제까지 식물인간처럼 광주의 한 구석에 누워만 있다. 임천용 회장 등 36명의 증언자들이 신경진 등의 턱을 툭툭 치면서 “이 친구들아, 사기극 그만 집어치워, 5.18은 사기극이잖아~이 책좀 읽어봐” 이렇게 하는데도 고소를 하지 못하고, 발끈하지도 않고, 긴급성명서도 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이는 꼬리를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5.18이 사기극이라는 데 대해 묵시적 인정을 하는 것이라 해석된다. 어제 오신 동지들께서는 좋은 꼴 좀 보시자 잔뜩 기대를 하셨다가 허탕을 쳐서 서운해들 하셨다. 부산, 대구, 인제 등 멀리에서도 오셨고, 육사 7기 노 장성 선배님 3분도 오셨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황산벌에서 싸우기로 해놓고 나타나지 못하는 저들의 수모도 말이 아닐 것이다. 이로써 이른바 민주화의 상징이요 역사왜곡의 발원지(fountainhead)인 5.18은  나무구루가 전기톱에 잘려 넘어가듯이 넘어가 버렸다. 

 국정원에 바란다  

탈북자 정명훈은 북한특수군으로 5.18광주에 왔었다. 그의 마지막 계급은 소령. 그런데 국정원이 정명훈의 입을 막고 군 부대에 넣어 특별관리를 해오고 있다. 국정원은 하루 빨리 그를 해방시키고 진상을 발표하라


북한특수군은 분명히 왔다. 북한에서 소령으로 있었던 탈북자 정명훈이 모 군부대에 교관으로 있다 한다. 그는 빨갱이 정권 하의 국정원에 의해 모진 협박을 받았다 한다. "다시는 그딴 말 입 밖에 내지 마라"

이명박 시대의 국정원, 이명박의 국정원은 이제 그를 특별관리하고 있는 국정원 직원이 누군인지 찾아내고, 그에게 협박을가했던 자가 누구인지 찾아내고 정명훈 예비역 소좌(소령)를 세상 밖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5.18광주에 왔었다는 사실을 정식으로 공개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오늘부터 편지를 써서 청와대와 국회의원들에게 그를 통해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서달라고 호소할 것이다. 그리고 국정원의 옳지 못한 자세를 질타해달라고 호소할 것이다. 신문광고도 할 것이다. 

 
5.18사기극의 종말(2)
 
5.18단체들과 북한과의 밀접한 관계

5.18단체의 이념적 색깔은 무엇일까? 아래의 사실들이 스스로 답을 줄 것으로 믿는다.    

1. 북한 특수군과 고첩들이 광주시민들 모르게 5.18 광주에 내려와서 그들의 특수작전을 수행하고 갔다면 이는 누구의 불명예일까? 불법과 만행을 저지른 북한정권의 불명예요, 이를 막지 못한 한국정부의 불명예일수는 있어도 5.18단체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들 할 것이다. 그런데 5.18단체는 5.18광주에 북한특수군이나 간첩들이 개입했다는 것에 대해 어이 없게도 자기들의 불명예라고 인식하면서 5.18과 북한을 연결시키는 생각들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떼법을 과도하게 적용하여 물리적 법적 테러를 가해왔다.  

2. 5.18에서 광주시민들이 많은 희생을 당했다. 누구로부터 당했는가? 사실이야 어찌 됐든 5.18단체들은 광주시민을 희생시킨 존재가 북한군이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반드시 한국군이어야만 5.18의 명예가 존중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5.18이 북한의 명예를 적극 옹호하고 있는 반면 한국군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에 36명의 탈북자들이 용기 있고 애국심에 불타는 증언집을 냈다. 북한특수군이 무기고를 털고 시민들을 등 뒤에서 쏘았고, 광주 여인들의 목을 잘라내고, 얼굴을 두 쪽 내고, 유방과 국부를 도려내고, 임신부의 배를 찔러 태아를 꺼내는 무지막지한 만행을 저지르면서 이를 촬영하여 북한으로 보내 중앙방송에 반복적으로 내보냈다고 증언한다. 5.18은 김대중과 김일성이 짜고 저지른 만행이라고 증언한다. 5.18단체들은 이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고, 북한에 대한 분노조차 드러내 보이고 있지 않다.
    
3. 5.18 유력관련자들은 대부분 빨갱이들이다. 김대중은 남한에서는 거물간첩 이적행위자로 알려져 있고, 북한에서는 남조선에서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공화국영웅이라고 증언돼 있다. 김대중 내란음모 주역이요 민주화의 상징인물인 문익환은 빨갱이다. 그의 초상이 북한 기념우표에 올라 있고, 우표에는 민족통일상 수상자로 표기돼 있다.  5.18 주모자 중 한 사람인 서경원은 5.18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받았고, 1988년 8월 북한을 2박 3일 방문하여 공작금을 수령한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윤기권은 5월 18일 오후 4시, 경찰관 15명을 인질로 잡은 공로로 2억원의 포상금을 수령한 후 간첩의 안내에 따라 1991년 4월에 월북했다. 5.18의 주요 주도자들이 빨갱이들인 것이다.    

4. 2006년 12월 20일 탈북군인들의 조직인 자유북한군인연합이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광주에 북한군 수백 명이 축차로 들어와 광주시민을 등 뒤에서 쏘아 광주시민의 분노를 유발시켰고, 여인들만 골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했다는 내용을 사진과 함께 발표했다. 기자회견 다음 날인 12월 21일 5.18 제단체는 긴급성명서를 냈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이 5.18을 모략했으니 즉시 사과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엄포만 있고 실행이 없자 자유북한군인연합은 1개월 후인 2007년 1월 23일, 6개의 의혹에 대해 공론의 장에서나 법정에서 다투어보자, 이런 성명서를 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유북한군인연합에 대해서는 고소를 하지 않고 있다.

반면 국민들이 위 기자회견 내용을 인용하면 법적 물리적 보복을 해왔다. 일예로 대치동 소재 서울교회 이종윤 목사님은 2008년 9월 28일 '양심에 거리낌 없이 힘쓰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위 기자회견 내용을 인용했다.  이에 대해 5.18단체들은 동년 10월 19일에는 16명, 26일에는 30명, 그리고 11월 2일에는 200여명 정도를 올려 보냈고, 이들은 교회로 와서 술을 마시고 욕을 하고 몸싸움을 하는 등 난동을 부렸고 급기야는 서울교회를 상대로 수억 원 단위의 민사소를 냈다. 한국 국민에 대해서는 얕잡아 보고 북한 군인출신들에 대해서는 무서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남북한 출신에 대한 신분적 차별대우인가? 감히 인민공화국 전직 장교들을 고소하는 것이 5.18단체의 큰형님 김대중의 조국인 공화국 예의에 어긋나서 그러는 것인가?  

5. 자유북한군인연합이 지난 9월말에‘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라는 증언집을 냈다. 임천용 편집자는 5.18단체의 홈페이지인 ‘5.18기념재단’에 자유북한군인연합이 지난 10월 10일, 표지그림과 함께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했고, 시스템클럽을 포함하여 수많은 인터넷 매체들에 5.18은 사기극이라는 취지의 글들을 올렸다. 5.18단체들의 턱을 툭툭 올려치면서 “야, 이 친구들아, 이제는 사기극 좀 그만해, 알갔어?”주의를 주는 동영상이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이 증언집은 제목에서 5.18을 사기극이라고 단정했다. 북한특수군이 5.18광주에 와서 무기고를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고, 장갑차를 몰고, 광주의 임산부와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인들을 살해했다고 매우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에 대해 5.18단체들은 일체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게 그 팔팔했던 그 기세, 대한민국 위에 군림했던 광주공화국 총사령부인 5.18단체가 어쩌다 이런 말못할 수모를 다 당하면서 엎드려 있는가?          

6. 2008년 8월 15일은 건국 6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 때 한 신문은 “5.18묘역에 웬 건국60년이냐, 성난 광주”라는 제목으로 5.18단체가 건국 60주년 개념에 적극 반대한다는 기사를 냈다. “5.18묘지에는 김해곤, 강술생, 최승훈 씨의 공동작인 '바람의 시- 거대한 부표'가 전통색채 깃발로 수놓아졌다고 했다. 4.19 묘역을 찾은 시민들은 신선한 충격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8월 23일의 뉴스를 보면 5.18단체와 일부 광주시민들이 5.18묘지에 건국60주년은 수용될 수 없다며 심하게 반발했고, 보훈처는 예술품들을 철거했다. 건국 60년이 싫다는 것이다. 5.18단체에 김대중은 큰형님으로 통한다. 빨갱이 김대중은 언젠가 5.18묘지로 파 보내져야 할 것이다.

2009.11.13.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