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핵'안보"
이익치 진술조서(2차)
서석천
2009. 12. 7. 09:24
![]() | |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진술조서(2차) - 2003년 8월8일 | |
| |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진술조서 (2차)
피의자(피내사자) 박지원 등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등 피의(피내사) 사건에 관하여 2003. 8. 8.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 제 1과 1109호 조사실에서 임의로 전회에 계속하여 아래와 같이 진술하다. 문 : 진술인이 전회에 진술한 이익치인가요. 답 : 예, 제가 이익치입니다. 문 : 전회의 진술은 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나요 이때 검사는 진술인에 대한 제1회 진술조서 요지를 읽어준바, 답 : 예,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전회의 진술에서 2000. 4. 중순 일자불상 21:30경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서울프라자호텔 22층 토파즈 주점 룸에서 박지원 전문화관광부 장관에게 1억원권 무기명 양도성예금 150매가 든 누런 봉투를 정몽헌 회장의 지시로 갖다 주었다고 하였지요. 답 : 예, 제가 그렇게 진술하였고 그 것이 사실입니다. 문 : 위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를 마련한 김재수의 진술에 의하면 동인은 2000. 4. 4. 아침에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150억원을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로 준비하여 진술인에게 갖다 주라는 지시를 받고 같은 달 7. 하루에 현대건설 당좌계좌에서 현금 150억원을 인출하여 농협 종로지점에서 위와 같이 CD매입한 후 보관하다가 진술인이 해외에서 귀국하여 계동 소재 현대그룹 사옥 15층에 있던 진술인의 사무실에서 CD를 준비해 두었다는 보고를 하자 진술인이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한 후, 같은 달 중순 일자불상 19:30~20:00경 광장동 소재 산책로에서 진술인에게 위 CD를 전해 주었다고 하는데 그 구체적인 날짜는 언제인가요. 답 : 제가 해외에서 귀국한 후 계동 사옥에 있던 저의 사무실에서 김재수로부터 CD를 매입해 두었다는 보고를 받고, 그날 오후에 박지원 장관에게 연락하여 위 프라자호텔 22층 주점에 잇는 룸에서 박장관을 만나기로 약속한 후, 김재수에게 전화로 그날 저녁에 광장동에 있는 저의 집 부근의 산책로에서 CD를 전달받기로 하여 김재수로부터 CD를 받고 바로 저의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제가 승용차를 운전하여 위 프라자호텔로 가서 박장관을 만나 동인에게 CD가 든 봉투를 건네주었던 것은 맞는데, 제가 2000. 4. 5. 정몽헌 회장, 김윤규 건설사장과 같이 명예회장님을 모시고 일본에 갔다가 같은 달 7. 저는 명예회장님을 모시고 귀국하였고, 다음 날인 4. 8. 북경에서 예정되어 있던 남북정상회담 개최준비 회담이 있어 그 곳에서 정몽헌 회장과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어 출국하였다가 다음날인 4. 9. 귀국하였는데, 제가 일본에서 귀국한 직후에 김재수로부터 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고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에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정확한 날짜는 기억을 할 수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이 북경에서 귀국한 날짜는 2000. 4. 9.로 확인되었는데 그 날은 일요일이어서 출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음 날인 4. 10. 월요일에는 출근하였을 것인데 그때 김재수로부터 위 CD를 매입해 두었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은 아닌가요. 답 : 제 기억으로는 2000. 4. 8. 북경에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개최 준비 회담에서 「같은 해 6. 12.부터 14.까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하기로 한다」는 합의문을 작성하고, 같은해 4. 10. 10:00에 남북한 동시에 정상회담개최 발표를 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4. 10.날 제가 김재수로부터 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고 그 며칠 이후로 기억되는데 정확한 날짜는 기억을 할 수 없어서 4. 중순경이라고만 하였던 것입니다. 문 : 그 며칠 뒤인 4. 13.에는 총선이 실시되었는데 진술인이 김재수로부터 보고를 받은 시기는 총선을 기준하여 그 이전인가요, 아니면 총선 이후로 기억되는가요. 답 : 제 생각은 총선 이후로 생각되는데 그것도 정확한 것이 아니어서 구체적인 날짜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만 정몽헌 회장이 해외출장에서 귀국하기 직전에 제가 박장관에게 CD를 전달해 주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귀국하기 직전에 박장관에게 위 CD를 전달하였다는 것은 어떻게 기억할 수 있나요. 답 : 예, 그것은 제가 박장관에게 CD를 전달한 다음날 정회장의 비서 미스 최(최영미)에게 전화하여 “회장님이 오시면 연락을 해 달라“고 해 두었다가 미스 최가 정회장이 귀국하였다는 연락을 해 주어서 다음날 아침에 정회장님에게 제가 박장관에게 CD를 전달하였다는 보고를 하였기 때문에 기억을 할 수 있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의 귀국은 2000. 4. 17. 월요일로 확인되었는데 어떤가요. 답 : 그 날은 회장님이 오후에 귀국하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저는 다음 날인 4. 18. 아침에 회장실로 가서 보고하였던 것으로 보시면 될 것입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의 진술에 의하면 2000. 4. 3. 10:00경 김영완이 정회장의 사무실로 방문하여 현대의 대북사업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김영완이 “사실은 박지원 장관의 심부름을 왔다“고 하면서 남북정상회담개최 준비에 필요한데 150억원을 무기명 CD(양도성예금증서)로 도와 달라고 하여서 정몽헌 회장이 현대건설 자금도 어렵고, 대북사업도 어렵다고 하고 “너무 크다“면서 어렵다는 말을 하자 그래도 박장관이 꼭 도와 달라고 하더라는 말을 듣고, 정몽헌 회장은 전부터 박지원 장관에게 현대에서 추진하는 금강산관광 유람선에 카지노 허가와 면세점 허가를 부탁하고 있었고, 박지원이 문화관광부 장관이니까 현대가 추진하는 관광사업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주기로 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경위는 알고 있었는가요. 답 : 저는 그런 사정은 전혀 알지 못하였고, 다만 4. 4. 아침에 정회장이 불러서 갔더니 “박장관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필요하니까 도와달라는데 도와주어야겠다“면서 “내가 김재수에게 150억원을 준비하여 이회장에게 주라고 하였으니 준비되면 박장관에게 연락하여 갖다주라“고 하여 제가 “150억원이면 부피가 클텐데요“라고 하였더니 “무기명 같은 것으로 해서 부피가 크지는 않을거야“라고 하면서 박장관에게 연락할 전화번호가 기재된 메모지를 저에게 주어서 제가 (판독불능) 양복 윗주머니에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박장관에게 연락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50억원을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로 준비하라는 것은 돈을 받는 사람이 정회장에게 현금이든 무기명CD든지 어떤 형태로 달라고 요구를 하였으니까 정회장이 그대로 준비하라고 지시하였지 정회장이 스스로 무기명 CD로 준비하여 갖다 주라는 것을 생각하여 저희들에게 지시를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 : 진술인이 정몽헌 회장과 같이 남북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 모임을 주선하였던 경위는 어떠한가요. 답 : 그것은 98. 2~3경 일본인 고바야시를 통하여 북한의 아태평화위원장 김용순과 가깝다는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를 알게 되었는데 99. 12.경 정몽헌 회장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으면 현대의 대북경협사업에 우리정부의 도움을 원활히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저에게 요시다를 통하여 남북정상회담개최가 가능한지 여부를 북측에 타진해 보라고 하여 제가 요시다를 통하여 알아보았더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연락이 와서 정몽헌 회장에게 보고하고, 정회장이 박지원 장관에게 연락하여 우리정부의 의사를 확인하고 저에게 다시 요시다를 통하여 북측에 연락하여 일정을 결정하라고 하여 제가 요시다를 통하여 북측의 의사를 타진한 결과 2000. 3. 9. 싱가폴에서 예비접촉을 갖자고 하여 그때부터 같은 해 4. 8.까지 4차례에 걸쳐 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에 저와 정몽헌 회장이 다니면서 양측을 소개시키는 등으로 회담을 지원하였던 것입니다. 문 : 위 회담의 일시, 장소, 참석자 및 정회장과 진술인의 역할 등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① 2000. 3. 9. 싱가폴의 마리나 만다린호텔에서 남측의 대표인 박지원 장관, 김보현 국정원 국장, 서훈 과장 등이 참석하고, 북측은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 황철 참사, 권민 참사 등이 참석하였고, 그 때는 정회장과 저는 양측을 소개만 시킨 후 바로 나왔는데 그날은 서로 덕담만 주고받고 같은 달 17.에 상해에서 회담을 개최하기로 하는 약속만 하고 헤어졌고, ② 2000. 3. 17.-18. 중국 상해의 그랜드 하이얏트호텔에서 2차 회담을 하였는데 참석자는 싱가폴에서 만났던 양측이 그대로 만났고 정회장과 저는 양측에 인사만 하고 바로 나와서 각자의 객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다음 회담은 3. 22. 북경에서 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고 ③ 2000. 3. 22. 북경의 차이나호텔에서 양측이 다시 만나 회담을 개최하였는데 그때도 정회장과 저는 객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 날은 다음날인 3. 23. 새벽까지 회담을 하였는데 북측에서 남측 대표에게 정상회담 대가로 돈을 요구하였으나 남측이 이를 수용하지 못하여 결국 회담이 결렬되어서 그냥 귀국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3. 29. 정회장이 저에게 다시 북경으로 가자고 하여 북경에서 정회장이 송호경 부위원장을 만나서 정상회담개최 문제를 재개하기로 협의가 되어서 귀국한 후 정회장이 박지원 장관에게 우리 정부측의 의사를 타진한 결과 다시 회담을 재개하기로 결정되어 정몽헌 회장이 요시다를 통하여 북측에 의사를 알아보고 회담일정을 잡아보라고 하여 요시다에게 연락하여 4. 8. 북경에서 다시 남북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을 개최하자는 연락을 받고 ④ 2000. 4. 8. 북경의 차이나호텔에서 양측이 다시 만나 회담을 한 결과 2000. 6. 12.부터 6. 14.까지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 남북정상회담개최가 성사되었던 것입니다. 문 : 위 2000. 3. 22. 북경 회담이 결렬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저는 객실에서 정몽헌 회장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상해 회담에서부터 북측에서 남측에 10억불을 요구하여 남측에서 수용한 채 북경회담을 재개하였고, 그 회담에서도 북측의 요구를 우리 정부측에서 수용하지 못하여 결국 결렬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한 사실도 저는 정회장이 송호경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고 말해 주어서 알고 있습니다. 문 : 위 싱가폴, 상해, 북경 등에서 남측 대표로 회담에 참석하기 위하여 출국한 박지원의 일행은 누구가 있던가요. 답 : 싱가폴을 갈 때는 박장관의 수행비서인 젊은 사람이 따라갔는데 그후 상해와 북경에는 수행비서가 박장관을 따라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 진술인은 김영완이 박지원의 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에 동행을 하였던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예, 사실은 김영완이 싱가폴 회담개최때부터 마지막 회담까지 박장관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김영완이 박지원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요. 답 : 예, 남북정상회담개최를 위한 예비모임을 2000. 3. 9. 싱가폴에서 갖기로 결정된 것이 2000. 2. 하순경이었는데 그 무렵 정몽헌 회장이 저를 회장실로 불러서 이번 회담이 외부에 알려지면 큰일이니까 주변에 일체 정상회담개최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고, 출국할 때도 싱가폴에 직접 가지말고 다른 곳을 경유하였다가 회담장소로 오라는 등으로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썼고, 정몽헌 회장도 2000. 3. 2. 프랑스로 출국하여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바로 싱가폴에서 저와 만나기로 하여 저도 며칠 전에 홍콩으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일을 보고 바로 싱가폴로 가기로 하는 등 정상회담개최를 준비하는 회담을 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유지를 극도로 하였는데, 저는 그 당시 정회장이 박장관을 미리 만나서 박장관으로부터 정상회담 개최 문제는 극도로 보안유지를 하라는 지시를 받고 저에게 보안을 당부하였던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출국하기 이틀 전쯤인 2000. 3. 4. 08:30경 김영완이 계동 소재 현대그룹 사옥 15층 저의 사무실로 찾아와서 “박장관이 정상회담개최 문제로 싱가폴에 가는데 개인적으로 자기를 수행해 달라고 하여 정회장과 같이 나가려고 전화를 하였더니 벌써 출국을 하였더라“는 말을 저에게 하여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보안을 유지하라고 하고는 박장관이 김영완에게 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을 한다는 말을 해 주었고, 또 같이 가자고 하였다고 하여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고, 3. 6. 제가 홍콩으로 출국하면서 김영완과 같은 비행기로 출국하였다가 3. 8. 싱가폴에도 같이 가서 박장관 일행과 합류를 하였던 사실이 있는데 그 후에도 계속 김영완은 박장관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김영완과 같이 출국한 일정 및 경위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가요. 답 : 예, 저는 정회장의 지시로 홍콩을 경유하여 싱가폴에서 3. 8. 합류하기로 하고, 있었는데 2000. 3. 4. 08:30경 김영완이 저의 사무실로 찾아와서 “박장관으로부터 싱가폴에서 정상회담개최를 위한 예비회담을 개최하는데 같이 가자고 하여서 정회장과 같이 가려고 연락을 하였는데 벌써 출국을 하였더라“고 하면서 저에게 언제 출국하느냐고 물어서 저는 정상회담개최를 위하여 남북당국자가 만난다는 사실은 극도를 보안을 유지해야 되는 것인데 박장관이 김영완에게 이야기를 하였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또 김영완에게 박장관을 개인적으로 수행을 해 달라고 하였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박장관이 김영완에게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해 주고, 수행을 해 달라고 요청까지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어쩔 수 없이 “나는 3. 6. 몇시에 홍콩으로 출국하였다가 그곳에서 외국인 거래선에 부탁하여 호텔을 예약하였는데 3. 8. 홍콩에서 싱가폴로 가기로 예정되어있다고 하였더니 저와 같이 싱가폴로 가자면서 일정을 달라고 하여 저의 일정을 주었더니 김영완이 저와 같은 항공편을 이용하여 홍콩에 갔다가 싱가폴에도 같이 가게된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은 홍콩에서는 어느호텔에서 투숙하였으며, 김영완과 같은 호텔에 투숙 하였는가요. 답 : 저는 홍콩의 현대증권 거래선인 영국계 투자회사에 부탁하여 호텔을 예약하였는데 그 상호는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김영완은 제가 투숙한 호텔이 아닌 다른 호텔에서 투숙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이느 싱가폴에서 정몽헌 회장을 만나 김영완과 같이 왔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는가요. 답 : 예, 제가 김영완과 같이 싱가폴의 마리나 만다린호텔에 도착하여 보니 정회장이 먼저 도착하여 스위트루에 투숙하고 있었는데 제가 정회장에게 김영완과 같이 오게 된 경위를 말씀드렸더니 정회장도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영완을 정회장의 룸으로 오라고 불러서 세 사람이 같이 만났는데 김영완이 정회장에게도 박장관이 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에 자기를 수행해 달라고 하여 오게 되었다는 말을 하였고, 정회장은 김영완에게 아무튼 싱가폴에도 한국사람들이 많으니 각자가 보안을 유지해야 된다고 하였고, 김영완도 알았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서로 각자 행동을 하는 등으로 보안을 유지하자고 하였던 사실이 있습니다. 문 : 김영완은 그 후에도 계속 박지원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회담을 위하여 북측 인사를 만나는 자리에 박지원을 수행하였다는 말인가요. 답 : 김영완이 박지원을 직접 수행하였던 것은 아니고 김영완은 박장관과 같은 호텔에서 투숙하여 있다가 박장관이 회담을 하면서 김영완에게 전화로 상의를 하거나 아니면 은밀하게 만나서 상의를 하는 등으로 수행을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위와 같이 남북정상회담개최를 위한 준비회담을 하는 과정을 박지원 등 우리 정부측 관계자로부터 들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저는 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을 하는 과정에 우리정부측 관계자로부터 정상회담개최와 관련된 내용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없고, 그것은 정몽헌 회장도 듣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담이 끝나거나 중간에 북측 송호경 부위원장이 정회장이 투숙하고 있는 스위트 룸으로 찾아와서 정상회담 내용을 알려준 것으로 알고있고, 저는 그러한 사실을 정회장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정도이었습니다. 문 : 김영완은 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과 관련된 내용을 알고 있던가요. 답 : 예, 2000. 3. 22. 북경 차이나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는데 그날 밤 12시경 김영완이 제가 투구하고 있는 객실로 전화를 하여 남북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는 것을 “결렬된 모양입니다. 안 되는 모양입니다“라고 하면서 “내일 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알려주어서 저는 박장관이 김영완을 불러서 정상회담개최가 결렬된 사실을 말해 주어서 김영완이 알게 되었고, 동인은 자신의 방에 와서 저에게 전화를 해주는 것으로 알게 되었는데 저는 계속 정회장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가 새벽녘에 정회장이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송호경이 북측에서 요구하는 것을 남측이 수용을 하지 않아서 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고 하더라고 하여서 저는 “조금 전에 김영완이 전화로 결렬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라고 하였고, 다음날 저는 혼자 북경에서 귀국하였고, 정회장은 일본을 경유하여 하루 늦게 귀국하였을 겁니다. 문 : 진술인과 김영완의 출입국현황을 보면 3. 6. 같이 홍콩으로 출국하였다가 3. 10. 박지원, 김영완과 같이 귀국하였고, 3. 17.은 진술인이 박지원, 김영완과 같이 중국으로 출국하였다가 박지원만 3. 19. 귀국하였다가 3. 22. 다시 중국으로 출국하였으며, 3. 23.은 진술인. 김영완, 박지원이 같은 날 귀국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3. 17.-3. 18까지 상해에서 회담을 하고, 박지원이 귀국한 후 김영완과 진술인은 (판독불능)서 북경으로 같이 갔을 것이고, 상해에서 만났던 정몽헌도 같이 북경으로 갔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3. 19. 부터 3. 22. 북겨에서 회담을 개최하기까지 3일간 정몽헌과 진술인 및 김영완은 무엇을 하였는가요. 답 : 예, 상해 회담을 마치고 박장관만 귀국하고 정회장과 저는 며칠 후에 있을 북경회담 장소로 바로 이동하기로 하였는데 김영완도 남아 있다가 북경에 바로 가서 그곳에서 박장관을 만난다고 하여 3. 19. 저와 정회장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갔고, 김영완은 다른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와서 차이나호텔에 함께 투숙하고 있다가 3. 22. 남북당국자들을 만나기로 하였으며, 그 중 하루는 3명이 함께 발마사지를 받는 등 관광을 하였고, 그 외의 시간은 대부분 호텔에서 쉬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 : 그때 김영완으로부터 박지원과 회담에 관련하여 김영완이 박지원에게 무엇을 도와준다는 등의 말을 들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특별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개최를 위한 준비회담을 하다가 2000. 3. 22. 에는 남측에서 북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여 결렬되었는데, 정몽헌 회장이 송호경을 만나 회담을 재개하도록 하여 2000. 4. 8. 마지막으로 회담을 재개하였으나 마지막 회담이 재개되기 전에 4. 8. 회담에서는 남북정상회담개최가 성사된다는 보장이 있었는가요. 답 : 그 때도 정상회담개최가 성사된다는 보장은 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 8. 북경 차이나호텔에서 양측이 회담을 하다가 밤늦게 북측의 송호경 부위원장이 남측에서 북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하여 회담이 결렬되었다면서 정몽헌 회장에게 찾아왔는데 저는 정몽헌 회장이 불러서 갔더니 정회장이 회담결과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설명에 따르면 송호경 부위원장 우리 정부측에 5억불을 요구하였는데 우리 정부는 1억불만 주겠다고 하여 회담이 결렬될 뻔하였는데, 송호경 부위원장이 현대측이 북쪽에서 추진하는 사업 대가로 5억불을 내라고 요구하여 정회장님이 많다고 하면서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4억불까지는 부담하겠다고 하였는데, 북측에는 지불시기를 정상회담 이전까지는 송금해 주어야 된다고 하여 그러면 3억5,000만불은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5,000만불은 현대에서 북쪽에 시공하는 체육관 등에 현물로 주기로 하고 협상이 성사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회담이 타결된 때가 4. 9. 새벽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과정을 보면 4. 8. 회담이전에는 회담이 성사된다는 보장은 전혀 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2000. 4. 8. 정상회담 개최 준비회담을 재개하기로 하는 결정은 언제 되었나요. 답 : 3. 29. 저와 정회장이 북경 차이나호텔에서 송호경을 만났을 때 일본인 요시다는 북한측 사람들과 같은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는데 정회장과 송호경이 회담을 다시 재개하기로 하고, 송호경이 요시다를 통하여 날짜를 알려주기로 하였고, 다음 날인 3. 30. 저와 정회장이 귀국하였는데 그 다음날인 3. 31. 요시다로부터 저에게 4. 8.에 북경에서 다시 회담을 재개하기로 하자는 연락이 와서 제가 그 즉시 정회장에게 보고하였고, 정회장도 그 즉시 박장관에게 연락을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박지원 김영완을 통하여 정몽헌 회장에게 150억원 상당의 CD를 요구한 시기는 2000. 4. 3. 10:00경으로서 이때는 아직 남북정상회담개최가 성사된다는 보장도 없는 시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박지원이 김영완을 통하여 ‘남북정상회담개최 추진에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하였다‘는 말인데 어떠한가요. 답 : 글쎄요 저는 박장관이 왜 그런 핑계를 댔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박지원에게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회담 문제로 직접 연락을 주고 받을 만한 관계로 보이는데, 정몽헌이 위 150억원을 요구받은 것은 김영완을 통하여 요구를 받았다면 박지원에게 전화로 확인을 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인데 어떠한가요. 답 :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박장관이 절대로 보안을 유지해야 될 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을 하기 위하여 북측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도 김영완이 수행하도록 하는 것을 보고 정몽헌 회장이 김영완을 통하여 돈을 요구받았다면 박장관이 김영완을 시켜서 돈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충분히 믿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150억원 상당의 CD는 정회장이 저에게 직접 박장관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기 때문에 믿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또 제가 박장관에게 “정회장님 심부름입니다“ 하면서 150억원의 CD가 든 봉투를 전달한 다음 정회장님에게 “박장관에게 확실히 전달하였다“는 사실을 보고하기도 하였으며, 그 후 정회장님도 저에게 “박장관이 잘 받았다고 하더라“는 말을 저에게 하였던 적이 있는 것으로 보더라도 정회장은 위 돈이 박장관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문 : 진술인은 정몽헌 회장이 무엇 때문에 150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를 박지원에게 주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는가요. 답 :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회장이 대북경협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특히 금강산관광사업을 하면서 유람선에 카지노 허가와 면세점 허가를 받지 못하여 고심하고 있었는데 박장관이 관광사업의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 장관이고, 또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것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어서 박장관의 도움으로 카지노 허가도 받고 관광사업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돈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위와 같이 박지원 장관이 남북정상회담개최 준비회담을 하는 과정에 김영완이 수행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검찰에서 조사받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요. 답 : 제가 생각하기로는 정회장이 특검에서 150억원에 대한 조사를 받을 때도 김영완이 박장관의 돈 요구를 정회장에게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지 않다가 나중에 특검의 자금추적에서 김영완의 실명이 거론되자 어쩔 수 없이 김영완이 박장관의 돈 요구를 하였다고 진술하였던 사실이 있고 특검의 재판과정에서도 남북정상회담 문제로 해외에서 김영완을 보지 못하였다고 허위진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진술을 번복하기가 어려워서 검찰에서도 김영완을 해외에서 보지 못하였다고 계속 허위진술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정회장이 박장관에게 돈을 준 문제에 김영완이 개입되면 (판독불능)문제가 또 밝혀 질 것을 염려하여 김영완에 대하여는 허위진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 : 이상의 진술은 모두 사실인가요. 답 : 예, 사실대로 진술하였습니다. 문 : 더 할말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위 조서를 진술자에게 열람하게 하였던 바 진술한 로 오기나 증감 변경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므로 간인한 후 서명날(무)인케하다. -다음 아랫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