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여행

무주 적상산

서석천 2008. 11. 3. 21:42

오늘은 토산에 뭍혀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중앙에 있는 우리나라 100경의 하나인 적상산 으로 간다.  

적상산(赤裳山)은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쌓여 가을 단풍이 온산을 뒤덮으면 마치 여자가 붉은 치마를 입고 있는 형상이라서 적상(赤裳)이라 이름했다나.  이 산은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괴목리, 포내리, 사산리, 서창리 일대에 걸쳐있고. 높이는 1,034m이다.

덕유산 국립공원 지역에 속하며, 4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산을 활활 타오를 붉은 단풍들로 하여금 붉은치마폭에 파뭍힐 기대하고,

부산진역에서 08:00에 출발하여 남해고속도 경유 통영대전간 고속도 로로 달리다 무주I/C 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삼거리 신호등에서 좌회전하여 무주구천동쪽으로 4km정도 가면 주유소( S-오일)바로 지나 우측으로 삼성 자동차 공업사(정비소)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우측에 보이며 적상산 안내판이 보인다. 그 길로 쭉 올라가면 서창마을이 나오고 연이어 매표소와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적상산이 참으로 독특하다. 병풍바위 모양의 바위들이 산을 온통 휘감고 있다.(11:24) 적상산이 덕유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어서인지 등산로는 널찍하니 잘 정비되어있고. 그다지 경사가 급하지 않은 등산로를 2분여 오르니 서창마을0.1km 안국사3.2km 첫이정목만나고, 서창통제소에서 1.4km 올라온 지점에 향로봉1.7km 안국사1.8km 의 이정목 만납니다.(11:45) 여기서 지그재그 산길을 20여분 오르니 장도바위가 나타납니다((12:07) 안내판에는 고려 말에 최영 장군이 산정으로 오르다가 절벽에 부닥쳐 앞으로 갈 수가 없게 되자 장도(將刀)로 내리쳐 길을 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이름에 비해 그다지 큰 바위도 아니고 쪼개진 사이로 사람이 드나들 수도 없을것 같다. 장도바위와 안내판 디카에 메모리하고 바윗길을 헤집고 이리저리 오른다. 숨을 헐떡이며 모퉁이를 돌아서니 돌담장이 앞을 가로막는다. 적상산성 서문(12:10)이다.

이 산성(사적 제146호)은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축성을 건의하여 건설된 것이란다. 현재의 성은 조선 인조 6년(1628년)에 다시 쌓은 것으로서 둘레가 8.143㎞에 이른다.  

안내판에는 문루가 있었지만 지금은 소실되어 사라져 버렸고, 성문밖에 서창(西倉)과 고경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서창은 미창(米倉)과 군기창(軍器倉)이 있었으나 지형이 험하여 성내까지의 운반이 어려워 성내 사고지 옆으로 옮겼다고 전하며, 지금도 마을이름을 서창이라고 한다고 적혀있다.  성문을 지나면서면 평지같은 능선길로 조금씩 오른다.

이 곳부터는 낙엽쌓인 융단같은산책길이 시작되며 왼쪽으론 신갈나무, 굴참나무, 그리고 단풍나무가 무성하다. 여기서 안국사 까지는 1.5km, 향로봉은 1.03km다. 안부에 올라서 좌측 향로봉쪽 으로 향한다. 우측으로는 적상산 거쳐 안국사로 가는길이다. 향로봉 쪽으로 가는데 이정표마다 적상산 표지는 보이지않고 향로봉만 적혀있다. 향로봉에(1,034m)(12:27)도착,  

누라 도착하여 정상증명 하고 되돌아 평지나 다름없는 능선 길을 가다보니 일행들은 이제야 안부에 도착한다. 앞좌측 적상산정상에는 예전에 못보든 무슨 송신탑이 보이고..., 우린 등로옆에서 점심보따리를 풀고..., 식사후 옆에 성벽이 낙엽에 뭍혀 있는걸 볼수 있다. 개념도엔 능선상에 산성은 분명히 있는데 그 흔적이 희미하여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산행 내내 산성그림자도 볼 수가 없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것 같다.

 

식사후 안국사 쪽으로 조금가니 좌측 정상같지 않은 정상에 이르면 흙밭 토산에 원시림처럼 수림만 울창하고.  다만 펑퍼짐하게 수많은 나무들이 삼림을 이루고 있고. 정상에서 200m 거리에 안국사가 있다. 정상은 마치 여인의 치마폭에 쌓여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고.

송신탑이 서 있는 적상산정상은 분명히 출입금지겠지 지레 짐작하고 오르기를 포기하고 오른쪽 우회로로 내려가니 안렴대와 안국사로 가는 갈림길(13:06)이정목이 나온다. (안렴대0.3km 안국사0.2km 향로봉1.3km)라 표기하고 있다.

이정표마다 적상산 정상을 표기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무계단을 지나 우린 안국사 쪽으로 내려선다.  안국사 마당에 내려서니(13:10) 경내 마당에선 덕유산자락 성지봉에서 두문봉까지의 지능선이... 먼발치로 쫘악 펼쳐지고...  

안국사는 본래 적상산 분지에 위치해 있던 사찰로 고려 충열왕 3년(1277), 월인화상이 창건한 것이라고도 하고, 조선초 무학대사가 국가의 앞날을 위해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고도 전한다.

광해 5년(1613) 사찰을 중수하고 그 다음해에 창건된 적상산 사고를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해 왔으며.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보경사 또는 상원사 등으로 부르던 것을 영조 47년(1771) 법당을 중창하고 안국사라 했다고도 하며.더러는 산성 안에 있는 절이라 하여 산성사라고도 불렀다 한다. 현재의 안국사는 본래의 위치가 양수발전소 상부댐(적상호)에 잠기게 되어 1992년에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국사의 단풍만 구경하고 미련없이 절을 떠나지만, 누라와난 절집 바로 밑에 있는 적산산성과 적산산성 호국사비등. 안국사 경내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일주문 빠져 적상호로 내려가는 포장도로로 나서면서 바로 적상산 산성만나고 안내판에는 "사적 제146호 적산산성. 총길이는8,143m 이고, 본래 동서남북으로 4개의 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고,----

실제 축성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축성의 형식으로 보아 삼국시대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산성내에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인 선원록을 보관한 사고(史庫)가 있었으며, 사고 수호를 위한 호국사등의 사찰이 있었다" 고 적혀있습니다. 산성안내판과 나란히 치목마을3.7km 향로봉1.5km 안렴대0.5km 이정목 만나고,(13:23)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길 아래에는 적상호수도 보이고 1995년 6월 23일 준공하였다는 무주 양수발전소도 보입니다. 양수발전소는 1천m 높은 산등에 댐을 막아 물을 뿜어 올려 이 물을 발전시키는 우리 나라 최대규모의 양수발전소로 용량 60만 Kw/h의 발전시설을 위해 안국사터(표고850m)에 상부댐을 건설하고 포내리(표고 250m)에 하부댐을 만들어, 괴목천 물을 저수하였다가 전기 수요가 적은 야간에 적상산 정상 가까운 분지에 막은 상부댐으로 끌어올리고, 주간에 589m의 낙차폭을 이용하여 발전하는 시스템으로 양수발전소의 효과로 대형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의 효율을 높이는 효과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적상호로 내려가는 포장도로는 안국사까지 승용차 들락거리고 대형버스는 적상호 주차장까지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치목마을로 내려가는 산행길 들머리는주의깊게 살펴야 겠습니다. 이조실록을 보관해왔었다는 사고 직전 도로변 오른쪽에 위치한 치목마을2.7km 송대1.1km 이정목(13:32)을 놓쳐선 안된다. 산상호수 구경하고 사고 한바퀴 둘러본후엔 이 이정목으로 되돌아와서 숲속 샛길로 들어가야 한다. 이후론 오직 외길인지라 15분후에는 나무다리 만나고, 곧이어 우측계곡의 직벽으로 된 병풍바위 지나3분이면 치목마을1.6km 상부댐1.1km 의 이정목과 송대폭포 만납니다. 송대폭포는 가뭄으로 흐르는 물이 없습니다. 바닥으로 졸졸 흐르는물에 하산길 산님들이 한가로이 세수를 하고 있습니다. 등로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페르시아 융단을밟는 기분이고 등로양편으로는 철지난 철쭉과 진달래 나무가 앙상하고.... 자작나무과 서어나무와 물푸레나무 등 잡목으로원시림 같은 수목이 울창합니다. 오늘 산행은 그다지 힘든 구간도 없고 급경사도 없는 아주 평이한 산으로....  몸이 어찌나 가볍던지 그동안의 쌓인 피로가 이제서야 풀리는가 싶다. 무르익디 무르익은, 가을의 절정이란 기대아래... 적상산을 찿았건만 활활 타오를 여인네의 붉은 치마폭은 갈기갈기 찢어져 누렇게 퇴색 낙엽 되어 딩굴고  아마도 지난 여름 가뭄이 이 가을의 운치를 깡그리 빼았아 갔는것 같구려~~ 그래도 즐건하루 였슴다.!!!